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364)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364화(364/373)
더운 바람이 불었다. 조금 텁텁한 흙내음에 섞인 열기.
루나가 크게 심호흡한 뒤 분홍빛 머리칼과 함께 길게 늘어진 귀도 같이 뒤로 쓸어넘겼다.
“어때요. 여기도 처음이죠?”
“…네. 신기해요.”
루나의 옆에 서있던 마리안느가 에리엘에게 묻자 에리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삶의 대부분을 테이트리아 수도에서 보낸 에리엘에게 챠비드의 도시는 그야말로 별세계나 다름없었다.
지나가는 사람 대부분이 아인족이었다. 게다가 제국의 수도는 매우 넓어 성벽이 아주 먼 곳에서 보였는데 이곳은 건물 높이가 낮고 성벽도 제법 가깝게 보였다.
더불어 울창한 녹음 대신 대신 척박하게 흙과 돌이 드러난 바위산이 먼 풍경으로 아스라이 보였다.
거기에 도로가 제대로 정비된 제국과는 달리 챠비드의 도로는 큰길을 조금만 벗어나면 흙길이었는데 그 덕에 바람이 불 때마다 노란 흙먼지가 바닥을 쓸 듯 날아들었다.
“와…….”
가끔 신전에서 내려오는 일을 하기 위해 나가기는 했지만 늘 얼굴을 가리고 임무를 완수해야 했기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편이었으니 이런 분위기 자체가 에리엘에겐 낯설었다.
더불어 아인족임에도 귀족의 소유라는 목걸이 등을 하지 않고 눈빛조차 아직 형형하게 살아 있다니.
그것은 에리엘에게 이상한 기분을 몰고 왔다. 자신도 모르는 새 너무나 많은 것을 잘못 배운 느낌이었다.
‘그렇네. 아인족이라고 태어나서부터 노예는 아닌데.’
아니라곤 해도 에리엘 자신은 테이트리아 수도의 귀족들처럼 그들을 태생적으로 얕잡아 보고 있던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자 에리엘의 귀가 붉어졌고 그 모습에 마리안느가 에리엘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모르는 게 생기면 배우면 돼요.”
“…그렇겠죠?”
에리엘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데 루나가 주위를 둘러보다가 한곳을 손가락질하며 가리켰다.
“식사하구 가죠, 우리.”
간판에 크게 수저와 포크가 그려진 가게였다. 안으로 들어가니 인간족보다 체형이 다양한 이들이 많은 챠비드다 보니 의자나 테이블의 크기도 제각각이었다.
그중 세 명이 앉을만한 자리로 가서 루나가 이것저것 시킨 뒤 마리안느를 바라보았다.
“이제 여기 왔으니까. 설명을 듣구 싶어요.”
왜 나랑 온 건지.
루나의 물음에 마리안느가 방실 웃으며 대답했다.
“친해지고 싶기도 하고. 이번 여로의 끝에는 꼭 루나 씨가 있어야 한다는 그런 기분이 들었달까요.”
아닐 수도 있고.
아니면 뭐 친구 하나 생기는 거죠, 하며 가볍게 말하는 마리안느의 모습에 루나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마리안느가 조금 수상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루나는 아델리안에게 소상하게 들어서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는 알고 있었기에 더는 물어보진 않았다.
운명이라 하면 입에 올리는 그것마저도 운명이라.
괜히 얽히고설키게 되면 복잡해지는 건 루나가 아닌 아델리안이니까.
조금 궁금하고 답답하기는 해도 믿는 게 나을 것이다.
그리 생각하는데 음식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단맛이 강한 콩을 한 번 삶아 염소젖을 넣고 갈아낸 뒤 향신료를 섞어 콩과 젖비린내를 잡은 스프.
요거트 같이 살짝 시큼한 냄새가 나는 데다 이것저것 많이 섞여 갈색이 도는 곡물빵과 염소젖 치즈.
더불어 선인장 과육이 섞인 선인장즙까지.
그것을 신기하게 보던 에리엘이 빵을 조금 뜯어 갈은 콩 스프에 찍어 먹다가 입을 열었다.
“뭔가… 이렇게 여기 있는 게 좀 현실감이 없어요.”
마리안느를 만나서 지금까지 겪은 일 대부분이 그러했다.
신을 잠시라도 잡아두는 봉인진을 만들고 그것의 핵이 되어 신의 격을 견딘 것이 아주 오래된 일 같다.
너무 밝은 곳에만 있다가 조금 어두운 곳에 들어오면 눈에 보이는 색감이 달라지고 물건 하나하나 그 음영이 더욱 도드라지듯이.
지금 그런 기분이 들었다. 마치 자다가 갑자기 깨어버려 보이는 것도 들리는 것도 또렷한데 뇌는 멍한 것처럼.
약간의 이질감.
이 모든 사람들이. 입에 들어가는 음식부터 이 세계가.
그리고 자기 자신까지.
모든 것이 누군가 만들어낸 삶이라는 걸 알게 되자 에리엘은 조금 이상한 감상에 젖게 됐다.
내세를 말하는 신들이야 많지.
대부분 죽고 나면 그 신이 다스리는 공간으로 가 새롭게 살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 세계가 그 살아 있는 신이라 불리는 신이 수차례 반복하는 세계라면.
자신은 이미 죽어 그 신의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닌가.
양면의 신 바사하의 세계로는 가지 못하고.
거기까지 생각한 순간 무언가. 가엽다. 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것은 바사하가 자신에게 내린 계시일까 아니면…….
“음식 식어요.”
“아, 네네. 맛이 좀 독특해요.”
에리엘은 자신도 모르게 빵으로 계속 콩스프를 젓고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에리엘 많이 먹어. 모자라면 꼭 더 말하고.”
병아리색 콩스프에 갈색의 빵이 섞여 중간중간 색이 짙어졌다.
그것을 스푼으로 떠먹는데 마리안느가 어쩐지.
이런 말을 하면 마리안느의 나이에 비해 아주 실례에 가까운 말이겠지만.
소위 말하는 어머니의 눈 같은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에 에리엘이 고개를 거의 스프 그릇에 박듯 하고 먹기 시작했다.
왜 그런지는 알 거 같았다. 마리안느는 운명의 신 르웰르의 성녀니까.
어쩌면 아직 모르는 운명 속에서 에리엘 자신은 마리안느와 친한 사이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잘해주나? 그런데 그게 싫지 않았다.
고통은 가까워도 온기는 멀리 살아서 조금 낯설지만 이런 것도 괜찮구나, 하며 에리엘이 막 선인장 음료수를 마시는데 루나가 입을 열었다.
“그래두 계획 같은 거 있으면 말해줘요.”
여기서 무엇을 할 것인지. 어떤 것이 필요한지.
루나의 물음에 마리안느가 선인장 과육을 씹다 말고 얼른 삼키며 대답했다.
“일단 챠비드 어딘가에 무겁고 깊은 별이라는 비보가 있어요.”
아마 아델리안 씨는 다른 사람을 통해서 찾을 생각이겠지만.
“그걸 찾을 수 있는 운명을 지닌 이가 몇 없거든요.”
처음은 그 정도만 말씀드리고. 하며 마리안느가 루나를 빤히 응시했다.
“그리고 또 제가 알기로 챠비드에는 으뜸 부족이나 버금 부족이라는 게 있다고 하던데.”
몇 년에 한 번씩 큰 회담을 열어 으뜸 부족과 버금 부족을 가르는 행사를 한다고 들었어요. 하는 말에 루나가 눈을 깜빡였다.
“그렇긴 한데… 그 행사에서 뭘 하려구요?”
루나의 물음에 마리안느가 헤헤 웃었다.
“우리도 거기 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정확하게는 루나 씨가요.”
챠비드에서 부족이라 하면 가족 단위도 있으니까 하는 말에 루나가 잠깐 손을 멈췄다.
“어… 그러니까 제가 대전사루요?”
“그게 아니더라도 관전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어떻게 하려면 할 수는 있긴 할 거 같은데.
루나는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아델리안도 모든 걸 다 말해주고 일을 진행하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마리안느는 운명을 읽다 보니 자기 혼자만 알고 넘어가는 게 더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련님이라면 이러이러해서 이렇게 하고 싶은 거라고 해주실 텐데.’
그렇다고 꼬치꼬치 캐묻기에는 원래 예언자란 함부로 말을 입 밖에 내뱉어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기에 그조차 조심스러웠다.
“일단… 예전은 몰라두 지금에 와서는 그 행사는 말 그대루 행사가 된 지 오래예요.”
그냥 보여주는 형식으로 각 부족의 대전사를 서로 내세운 뒤 먹고 마시며 즐기는.
“제국으루 치면 신년제나 이번 축제 같은 그런 거요.”
그러니 자신이 참석을 원한다고 해도 대전사의 결투 참여는 쉽지 않을뿐더러 관전하더라도 먼 자리에서나 가능할 거라며 말을 덧붙였다.
“그래두 좋으시다면 부모님께 말씀드려 볼게요.”
루나의 말에 마리안느가 웃으며 자신의 두 손을 맞잡고 활짝 웃었다.
“좋아요.”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에리엘은 마지막 남은 빵을 세 등분해서 하나씩 둘의 그릇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 * *
아이고, 두야. 아이고.
티비에서 막장 드라마 이런 거 보면 매번 연기자가 뒷목 잡던데.
실제로 뒷목 잡고 좀 주무르니 훨씬 나은 거 같다.
이게 바로 생활의 지혜인가.
“일단 파이얀. 난리 난 거 정리해서 추후 보고해주고 남해 군도로 사람 보내서 이상한 소문 좀 무마해줘.”
한 명씩 처리하자 하나씩
난 할 수 있다.
“그리고 아르만은 갑자기 왜 해룡이 두 마리로 늘었는데 설명해 봐.”
내가 앓는 소리를 흘리며 소파에 드러누운 채 세이렌을 받으니 리프가 읽던 책을 내 머리 아래에 밀어 넣고 물을 가져온다.
남이 봐도 아파 보이는 모양이다.
그나저나 지금 아르만이 하는 말을 듣는데…….
아무리 들어도 내 머릿속엔 레비가 고질라나 특촬물에 나오는 괴수처럼 양손 들고 포효하는 모습밖에 안 떠오른다.
그거 맞아?
<아, 예. 그거 맞습니다. 수십 배로 커진 레비 씨가 울부짖는데.>
됐다. 몸이 투명하지만 않았으면 된 거지… 나도 이제 레비에게 부여된 처연한 과부 분위기의 누님 캐릭터 이런 이미지는 리프의 농간임을 알고 있었다.
“레비는 꼭 케이크 먹여주고……. 마린은…….”
조만간 마정석 보낼 테니 사탕처럼 줘.
레비랑 비슷한 거 같은데 그럼 좋아할 거다.
일단 피해 규모 등은 따로 집계한 뒤 보고받기로 하고 레이첼과 통화했다.
“넌 진짜…….”
내가 분명히 가기 전에 드래곤들에게 말 잘해달라고 했잖아.
그래서 레이첼 네가 제국을 갑자기 들쑤시는 일 없게 한다며.
‘이상하게 그때 불안하더라니.’
내가 세이렌을 잡고 잔뜩 말하자 레이첼이 당당하게 대답했다.
<아니 진짜 난 말 했다니까? 근데 이 드래곤 놈들이!>
레이첼 너에게 명예 한국인을 수여해주마.
한국인 4대 시작 문장 중 3개를 바로 한마디에 다 넣어버리는구나.
남은 하나는 욕이라 차마 나에겐 못했나 보지?
그래 양심이 있으면 나에게 하면 안 되지.
“…그래서 뭐래.”
<애들이 이제 진짜 딴짓 안 하고 내 말 잘 듣겠다던데.>
그거 말고…….
“살아 있는 신은 뭐라고 하던.”
갑자기 빈정 상해서 뭐 안 봐주겠다 이런 식으로 나오진 않았겠지……?
내 물음에 레이첼이 잠시 생각하듯 음. 하는 소리를 내더니 대답했다.
<맛있는 거나 먹고 다니라던데?>
“그것뿐?”
<아, 그리고 네가 준 시간 헛되게 쓰지 말라고 했다.>
그 말에 난 헛웃음을 지었다.
아주 우릴 물로 보네, 테이트리아 이 자식.
“…알았다. 그리고 레이첼 너 이제 뭐 할 거면 꼭 내 허락 받고 해라. 어?”
<어? 안 들려 갑자기 이거 왜 이래. 마나가 떨어졌나. 여보세요? 안 들린다. 나중에 또 세이렌 할게.>
어딜 구식 핸드폰 배터리 빼는 거 같이 행동해?
내가 몇 번 더 레이첼을 불렀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그에 나는 리프가 가져다준 물을 고맙다 말한 뒤 벌컥벌컥 마시며 한숨을 내쉬었다.
‘맛있는 거나 먹고 다녀라?’
그 말인즉슨 그냥 시간 벌기밖에 안되니 남은 시간 하고 싶은 거나 하며 달라는 소리였나.
누굴 무슨 시한부 취급을 하네.
내가 이를 빠득빠득 가는데 마침 케인과 제로가 대련을 끝난 듯 들어온다.
그에 나는 벌떡 일어나 케인의 어깨와 제로의 어깨에 손을 올린 뒤 눈을 응시했다.
“우리. 잘하자. 알았지? 잘하는 거다.”
내 말에 제로는 영문을 알 수 없단 얼굴을 하다가 부드럽게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고 케인은 대답했다.
“걱정하지 마라.”
그래. 우리가 테이트리아 그놈이야말로 평소에 맛집 찾아다니지 않은 거 후회하게 만들어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