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365)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365화(365/373)
“알카이도님. 이번에 올린 시안에 관련해서…….”
“알카이도 집사님. 동결기 혹한 훈련의 부지 선택이…….”
알카이도 헤이먼.
철혈의 집사라 불리는 사내가 크루거 가문의 성안을 거닐 때마다 한 묶음, 또 한 묶음씩 서류가 늘기 시작했다.
원래라면 절차를 밟아 올라가야 하는 게 맞으나 이렇게 건네진 것은 모두 시급을 다투는 일이었다.
“피곤하군…….”
아델리안도 그렇고 카이만마저 미친 듯이 일을 늘린다. 마치 내일은 없는 것처럼.
챠비드의 수인 상단부터 시작해서 황위 찬탈을 위한 내전까지 계획하는 것인지 무기와 더불어 군마에 식량까지 손을 대지 않는 구석이 없었다.
물론 그것은 쌍수 들어 환영할 일이었다. 아델리안이 말했듯 대륙은 좁아졌고 제국은 넓어졌으니.
그 한자리 크루거에서 살라 먹어도 좋으리라.
아니 그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변수가 생겼지.’
황제.
그가 다시 공식 석상에 나타날 줄이야.
테이트리아 황제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수도의 귀족들이 황실에서 빼앗아 나눠 가진 권력을 전부 회수하고 있었다.
더불어 그리 권력을 빼앗긴 수도 귀족들을 무엇으로 구슬렸는지 황제에게 충성을 맹세한 이들은 이권의 줄타기가 아닌 진심으로 그를 지지하고 있었다.
그건 분명 크루거 가문에 제법 큰 손실이었다.
게다가 그뿐이랴. 샤하드 황자의 도로 공사에 크루거 상단이 붙어 이문을 남기기는커녕 오히려 도로에…….
“쿨럭.”
알카이도가 손에 쥐고 있던 손수건으로 입을 막고 기침을 하며 걸음을 멈췄다.
그칠 듯 그치지 않고 간헐적으로 이어지는 기침에 누군가의 손이 알카이도의 등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오늘은 서류를 보시는 대신 좀 쉬시는 게 어떠하겠습니까.”
한 뼘이나 되는 서류를 들고 가던 알카이도에게 뒤따르던 기사가 등을 두드리며 물었다.
외성도 아닌 내성.
그것도 실내인데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갑주를 차려입은 사내.
알카이도는 자신의 반걸음 뒤에서 따라오던 그 검사를 바라보다가 자신이 입에 대고 있던 손수건을 다시 품 안에 넣으며 말했다.
“쉬는 게 어떻겠냐라…….”
알카이도가 다른 손으로 안고 있던 두꺼운 서류를 은색 건틀릿을 끼고 받은 검사가 다시 물었다.
“제가 하겠습니다.”
“테이 자네가… 아니지, 이제 그 이름으로 부르기엔 너무 많이 달라졌군.”
이미 저 도플갱어 검사가 미궁의 던전에서 삼켰던 테이라는 이의 흔적은 더 이상 저 몸에 남아 있지 않으니.
아델리안이 이곳에 맡겨두고 떠났던 도플갱어들.
그들 대부분은 대륙에서 유명한 이들과 뒤바뀌었으나 단 하나.
검사 테이만큼은 알카이도의 곁에 남기지 않았던가.
알카이도는 투구 사이로 살짝 내비치는 그레이 블루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일단은 집무실로 가지.”
알카이도는 잔기침을 참듯 속으로 삼키며 느리게 걸었다.
원래도 그리 적지는 않았던 나이.
하지만 가문을 타고 내려오는 병력은 알카이도를 서서히 갉아먹고 있었다.
‘피비린내가 지겨워 후사도 보지 않았건만.’
그리하여 자신의 핏줄이 아닌 크루거 가문 그 자체의 번영을 꿈꿔오지 않았나.
하지만 이 정도는 감히 생각지 않았는데.
알카이도는 자신을 뒤따라오는 검사의 손에 들린 두꺼운 서류를 곁눈으로 응시하다 눈동자를 돌리며 문을 열었다.
“오늘 약은 드셨습니까.”
알카이도의 뒤를 따르던 검사가 서류를 익숙하게 집무실 책상 위에 두며 묻는 말에 알카이도는 자신의 카이저 수염을 손끝으로 쓰다듬으며 말했다.
“약을 먹고 혈액을 뽑는 경우 그 맛이 느껴져 싫다고 하지 않았나.”
오늘은 아직 알카이도의 피를 삼키지 않았다.
그 말인즉슨 아직 약을 먹지 않았다는 소리.
그에 검사가 투구 안에서 짧게 한숨을 쉬듯 하더니 책상 서랍 안에서 약통을 꺼냈다.
“얼른 드십시오.”
곧 물까지 들고 와 건네는 은색 건틀릿을 보던 알카이도가 약을 받아들며 품평하듯 입을 열었다.
“나는 그리 말하지 않는다네.”
철혈이라 붙은 이름에는 연민도 정도 없다는 말에 검사가 대답했다.
“아니요. 저는 이리 말합니다.”
단호한 그 말에 알카이도는 쓰디쓴 약을 삼킨 뒤 작은 병을 꺼내 손가락을 찔러 피를 담기 시작했다.
“나는 그 누구에게도 그리 말해본 적이 없다네.”
손가락만 한 병에 찰랑찰랑 채워진 혈액.
그것을 바라보던 검사가 다가와 투구를 벗었다.
그레이 블루색의 눈동자와 완벽하게 다듬어진 카이저수염. 그리고 희끗한 회백색의 머리칼.
알카이도와 완전히 생김새가 같은 사내가 병을 들고 핏물을 삼키며 대답했다.
“그야 우리에게 타인이 아닌 이는 처음 생긴 것이니 말입니다.”
알카이도는 이미 스스로보다 더욱 자기 자신이 되어버린 도플갱어 검사를 응시했다.
* * *
“으그그… 이, 거 맞…아?”
“맞다.”
나는 케인을 노려보았다. 몸이 덜덜 떨리고 이가 다닥다닥 소리를 내며 부딪힌다.
그런 내 모습을 리프가 무표정하게 바라보지만 난 그 눈에서 안타까움을 느꼈다.
―한 시간 정도 지났으니 괜찮지 않겠습니까, 관리자님.
귀로 스치는 바람 소리에 섞여 희미하게 리프의 말소리가 울린다.
나는 나에게 손을 내미는 리프를 응시하다 얼음장처럼 굳어가는 내 손을 뻗어 잡았다.
손을 맞잡아 이어진 곳으로 뭔가 따뜻한 기운이 몰려 들어온다.
마치 추운 겨울날 지나가다 마신 어묵 국물처럼 몸속에서 더운 기운이 짜르르 퍼졌다.
그 덕에 겨우 나는 굽어진 몸을 펴며 따스한 온기를 즐기다 케인을 노려보았다.
“나 얼어 죽기 전에 얼른 찾아라.”
내가 으르렁거리듯 말하자 케인이 고개를 돌리고 다시 걷는다.
‘일이 왜 이렇게 됐지.’
리프가 내 몸에 마나를 넣어 체온을 덥혀준 덕에 머리가 이제야 제대로 도는 기분이 들었다.
체온조절용 아티팩트에 로브까지 입고 있는데 왜 이렇게 되었나.
나는 괜히 케인의 뒤통수를 노려보았다.
분명 설산의 눈물을 찾으러 빙벽과 가까운 설산으로 온 것까지는 좋았다.
더 이상 말로 올라갈 수 없는 곳까지 도착한 뒤 걸어서 이동하기로 한 터라 자연스럽게 말은 근처에 두고 올라야 했는데 몬스터 및 동사의 위험으로 제로는 산 아래에 남기로 했었다.
산이 가파른데다 워낙 커서 아래에서 올려보니 구름과 눈보라 등으로 정상이 보이지 않을 정도라 나도 제로와 남을까 했지만 케인을 믿을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물었다. 확실히 여기 있는 거 맞냐고.
‘케인 놈이 뭐라고 했더라.’
그럴 거라고. 정확하게 어디 있는지는 모르나 근처에 가면 아무리 안정되어있어도 느낄 수 있을 거라 했다.
‘하지만 이 부근 전체가 마나 불안정 지역일 줄은 몰랐지!’
산 아래부터 중턱까지는 나름 괜찮았다. 고산병 이런 게 올 만한 높이였지만 아티팩트 덕인지 괴롭지도 않았고.
눈이 아닌 우박 같은 게 휘몰아쳐도 이미 인간의 범주를 넘어선 케인과 리프는 물론이고.
일반인인 나도 마법이 걸린 로브를 걸친 덕에 다치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올라가던 와중 어느 순간 추위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는 차가운 공기를 계속 마셔서 그런가 했지. 체온조절 아티팩트가 있다고는 해도 체온이 가끔씩 내려갈 수 있으니까.
그러다 중간에 몬스터를 하나 만났다. 하얀색 털을 가진 고릴라를 닮은 설인.
거기서부터 문제였다.
케인이 바로 처리하긴 했으나 설인이 내지른 단말마와 더불어 케인의 힘이 너무 강해 가벼운 눈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그래서 케인이 리프와 날 안고 급격하게 설산 위로 이동했는데 이게 산사태와 갑자기 높아진 고도.
거기에 이 산 어딘가에 있는 설산의 눈물이란 비보 덕에 위쪽의 마나 흐름이 아주 난장판이 되었던 거다.
어느 순간부터 체온조절 아티팩트가 먹통이 되더니 몸이 으슬으슬 떨려오다 못해 피부가 찢어질 듯 아픈 느낌이 들었다.
급한 대로 아공간에서 두꺼운 옷을 빼입긴 했는데 혈계 마법으로 이어진 크루거 가문의 반지는 작동되었지만 다른 작은 아공간 마법은 제대로 발동하지 않았다.
“으으… 네 마나로 주변의 마나를 좀 안정화할 수는 없어?”
“할 수는 있으나 그리한다면 내가 평정한 공간엔 설산의 눈물이 내뿜는 희미한 흔적 따위는 들어오지 않을 거다.”
저리 말하니 별수 없었다.
설인과 산사태 때문에 한 번에 산을 확 올라온 덕에 나만 내려갈 수도 없었다.
더불어 리프는 아직 케인 정도의 경지가 아닌지라 길을 제대로 찾을 수 없었기에 제로가 있는 베이스캠프까지 가려면 케인이 동행해야 했다.
그렇다고 케인이 우릴 데려다주고 혼자 올라간다?
마나가 불안정해서 세이렌도 안된다는데 저놈이 저 위에서 뭘 할지 기다리는 거 자체가 더 스트레스였다.
그나마 케인이나 리프가 손을 잡아 몸 안으로 마나를 흘려보내 주면 일시적으로 체온이 높아지긴 했다.
‘단지 일반인이라 너무 남의 마나를 자주 받으면 마나 몸살 난다고 케인이 그래서 1시간에 한 번 정도로 조절 중인 게 문제지.’
마나 몸살이 아닌 추위로 인한 몸살과 근육통 같은 건 나중에 포션으로 치유하면 된다는 악마 같은 케인 놈 때문에 나만 고생 중인거다.
“아.”
“찾았어?”
케인이 잠시 멈춰서는 모습에 내가 신나서 물으니 케인이 슬쩍 몸을 비틀어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이 산이 아닌가 봄. 그거냐? 그거냐고.
지금 이 설산에 있는 비보의 마나는 한 가닥의 털실 끝이 수십, 수백 가닥으로 풀려있다고 했다.
그중 단 하나만 제대로 연결되어 있고 나머진 끊어진 상태로 사방에 나부끼는 것과 비슷하다 했지.
즉 희미한 기운을 더듬어 가다 보면 어느 순간 끊기거나 사라지는 거다.
그러니 아무리 케인이라 해도 마나가 불안정한데다 비보의 기운도 중구난방인 이 상황에서 단번에 찾기는 어려울 수 있다는 걸 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고.
케인과 리프는 스스로 몸 안에서 마나나 오러를 돌릴 수 있는 데다 탈인간의 경지라 안 춥겠지만 나는 일반인이었다.
본의 아니게 한국으로 되돌아간 기분이 든다.
냉동만두가 되어가고 있었다.
걷다가 걷다가 관절이 얼어 삐그덕 하는 느낌에 멈추니 케인과 리프가 양쪽에서 날 잡고 마치 연행하듯 들고 가기 시작했다.
마치 순대처럼 가득 찬 지하철 안에서는 내가 스스로 걷지 않아도 발이 살짝 떠서 밀리는 것처럼.
“쉬…다… 가자…….”
내가 털이 가득한 후드로 얼굴을 파묻은 뒤 중얼거리자 케인이 잠시 주위를 바라보더니 그냥 바로 옆에 존재하는 가파른 절벽 쪽에 구멍을 뚫고 들어간다.
그 안에서 불을 피우니 얼어붙었던 얼굴이 녹아가는지 홧홧하게 간질거렸다.
나는 물 대신 포션을 모닥불에 데워 마시며 입을 열었다.
“…여기 맞지?”
“맞다.”
혹은 이 산과 이어진 빙벽 어딘가거나.
그리 말하는 케인에게 나는 신경질적으로 빈 포션병을 던졌고 케인은 당연하게 그걸 잡아 처리했다.
“…북부에서 빙벽 아주 길고 큰 거 알지.”
이 산과 이어진 빙벽이 어지간한 성벽만큼 길고 단단한데 이 자식이.
―관리자님. 잠시 이곳에서 쉬다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동굴 밖을 보니 우박과 눈보라가 섞인데다 마나도 묻은 건지 보라색과 푸른빛이 섞인 눈 폭풍 같은 게 번쩍거렸다.
그 모습에 나는 코를 훌쩍거린 뒤 물었다.
“그냥 케인이 계속 동굴 파면서 이동하면 안 되나?”
눈 폭풍이 사라지기 전까지 두더지 하라는 듯 케인을 바라보았다.
앞에서 판 흙은 내 뒤로 넘기고 공기 같은 건 깊이 파들어 가기 전까지는 외부와 연결된 통로를 조금 남기면 된다.
혹 깊게 들어갈 일이 생기는 경우 잠시 정도는 케인이 감내할 수 있을 테니.
“언제 그칠 줄 알고.”
포션을 마신 덕에 근육통도 가벼운 동상도 전부 치유된 내가 그리 말하자 케인이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