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367)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367화(367/373)
겨울, 그것도 새벽의 냄새가 났다.
한겨울에는 오전 5시, 6시가 되어도 밤처럼 어두운 날이 잦다.
그 시간에 출근하거나 혹은 뭐라도 하려고 나가면 아주 깊은 밤과는 다르게 해가 뜨기 직전의 느낌과 더불어 그 특유의 냄새가 난다.
마치 비 오기 직전 나는 먼지 냄새처럼.
새벽과 겨울에도 냄새가 있다.
그런데 그런 냄새가 페어리들의 마을에서 나고 있었다.
숲의 페어리들은 꽃과 버섯, 나뭇잎으로 마을을 꾸몄고 바다 페어리들은 산호와 조개. 고둥과 해초 등으로 마을을 꾸몄었지.
이곳은 설산이다 보니 수정과 보드라운 털로 만든 바닥재, 아니면 하얀색 비늘 같은 것들로 마을이 꾸며져 있었다.
“인간이다…….”
“이게 얼마 만에 보는 인간이야?”
나와 케인, 그리고 리프는 페어리들이 뿌려주는 페어리 더스트로 인해 몸의 크기가 줄어든 상태라 눈높이가 같아진 페어리들이 알짱거리며 우리를 보는 게 너무 잘 보였다.
한쪽으로 쭉 걸어가니 안에 물이 들어간 수정으로 만든 화려한 의자에 앉은 페어리 퀸이 눈에 들어왔다.
“…정말 흥미로운 인간이네…….”
설산의 페어리 퀸이 나와 케인, 그리고 리프를 훑어본다. 붉은 피가 아닌 것이 흐르는지 유독 시린 색의 피부와 연한 푸른색의 입술. 그리고 손톱.
마치 얼음 속에서 막 나온 것 같은 페어리 퀸이 수정 옥좌에서 일어나 걸어왔다.
“숲, 그리고 바다의 냄새.”
내 곁에 와 중얼거리던 페어리 퀸이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묘한 눈빛을 보내기에 나는 얼른 대답했다.
“저 사람 좋아합니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사실 이리 강대한 힘을 가진 이를 우린 반기지 않아.”
혹 나를 페어리 애호가로 볼까 봐 선수 친 게 잘 먹혔는지 페어리 퀸이 케인 쪽으로 고개를 틀었다,
확실히 케인의 힘만 보면 경계할 만 하지만… 나는 괜찮다는 듯 괜히 케인의 어깨를 툭툭 치며 대답했다.
“그게 손님이 아닌 경우에 한해서 말이죠?”
“말은 잘 돌리네. 솔직히 당장 설산에서 나가라 말하고 싶긴 한데.”
그렇지만 이곳까지 온 이상 원하는 걸 얻지 못한다면 되돌아가지 않겠지?
하고 묻는 페어리 퀸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반대로 원하는 것만 얻는다면 아주 빠르게 이곳에서 멀어질 생각이고 말입니다.”
내 말에 흰자 없는 푸른 눈으로 페어리 퀸이 응시했다.
“좋아. 이곳에 뭘 찾으러 왔지?”
“설산의 눈물이라고 아십니까?”
그 물음에 주위에서 꺄르르 웃으며 날아다니던 다른 페어리들이 멈칫하더니 우리를 빤히 쳐다보았다.
* * *
페어리 퀸이 케인을 흘긋거렸다.
원래라면 저 격을, 그 높은 힘을 느낀 순간 거처도 버리고 도망치는 게 맞을 정도였다.
다시는 중간계로 오지 못할 걸 각오하고 요정계의 문이라도 열고 부리나케 날았어야 했겠지.
저 페어리의 인장을 받은 사내가 아니었다면.
저건 아무리 나사 하나 빠진 듯 살아가는 페어리들이라 해도 쉬이 주기 힘든 인장이었다.
이 사내는 위험하지 않다는 보증. 더불어 저자를 믿어도 된다는 품질 확인서 같은 것.
친구이자 손님이니 모른 척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비록 그 옆엔 인간이 아닌 무언가가 붙어있긴 하나 분위기를 보아하니 광기에 물들거나 타락한 인물은 아니었다.
더불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그저 숨만 후 불어도 사그라질 사내의 말을 듣고 있는 것만 보아도 그러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래 둘 자는 아니었다. 얌전하게 군다 한들 맹수는 맹수인 법.
빠르게 내보내려 했지만 인간들이 바라는 게 설산의 눈물이라면 말이 조금 달랐다.
페어리 퀸은 인간 사내의 말에 미간을 살짝 모으며 대답했다.
“그게 필요해서 왔다면 도와주기 힘들어.”
페어리 퀸이 그리 말하자 자신을 아델리안이라 소개한 금발의 사내가 입을 열었다.
“어째서 그러합니까.”
“그건 우리의 생존과 달려있으니까.”
북부, 그것도 설산의 근방은 아주 춥다.
어느 정도냐면 계속해서 일정한 온도의 냉기를 뿜어내는 설산의 눈물 덕에 그나마 지금의 기온을 유지할 정도로.
즉 차가운 마나가 응집하여 만들어진 설산의 눈물이 흡수하는 냉기가 내뿜는 냉기보다 더 많은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추운 곳이라 해도 더 내려가지 않게 온도를 보조해주는 설산의 눈물을 이곳에서 들고 가버렸다간 골치 아파진다.
그리되면 이 설산과 빙벽은 아주 조금씩 그 세를 부풀리다 못해 수백 년 후엔 아예 북부 전체가 얼어붙을 게 확실한 정도였으니까.
“그래서 곤란해. 그게 없어지면 이곳의 기온은 더 내려갈 거야. 그렇다고 우리가 계속 둥지를 남하할 수는 없잖아.”
페어리 퀸의 말에 아델리안이 냉장고라고 중얼거리다 대답했다.
“그건 그냥 간단한 문제입니다. 다른 마물들이야 얼어 죽는다고 해도 큰 피해는 없는 일이니.”
결론적으로 페어리의 둥지가 얼어붙지만 않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아델리안의 말에 페어리 퀸이 다시 수정 의자에 앉아선 입을 열었다.
“설마 설산 내부에 존재하는 온천 근처로 둥지를 옮기라는 말 같은 걸 하진 않겠지?”
그건 임시방편이며 설산의 눈물이 사라지면 결국 그 온천도 언젠간 얼어붙을 거라고 페어리 퀸이 말했다.
“물론 저 아래, 온천을 데우는 근원까지 얼어붙지는 않겠으나 한참 멀리 떨어진 온천은 얼어붙을 테고.”
그렇다고 그 지열이 응축된 곳까지 파고 들어가 사는 것은 안 될 말이라며 페어리 퀸이 고개를 젓자 아델리안이 웃었다.
“아티팩트와 더불어 마법진을 그리면 어떻습니까.”
“그건 불가능하다는 걸 당신도 알 텐데. 이 설산은 마나의 흐름이……. 아.”
이 설산은 마나의 흐름이 엉망이다. 그래서 본인 내부의 마나를 쉬이 움직여 자신의 몸을 데우거나 보조 마법 정도는 걸 수 있지만.
마법 아티팩트 같은 건 전부 모양만 번지르르한 쓰레기였다.
왜냐하면 설산의 눈물이 내뿜는 마나가 교란시키기 때문에.
“설산의 눈물을 저희가 가지고 나간다면 일반적인 아티팩트나 마법진은 작동을 제대로 하겠죠.”
인간 사내, 즉 아델리안의 말이 맞긴 했다.
하지만 다른 문제도 있었다.
“이론상 그건 가능해. 하지만…….”
그렇게 한다면 들어가는 마정석 양이 어마어마하리라.
물론 설산 어딘가엔 마정석 광맥도 있긴 하나 몸집이 작은 페어리들이 많은 양을 들고 왔다 갔다 하긴 힘든 곳이었다.
페어리 퀸이 잠시 침묵하는데 아델리안이 말했다.
“마법 아티팩트부터 마법진의 조성 및 유지. 그것에 들어가는 마정석은 제가 감당하죠.”
“…뭐?”
그 말에 페어리 퀸이 눈을 깜빡거렸다.
* * *
어차피 아무리 길어도 10년 안팎이다. 그 시간 동안 버티지 못할 만큼 나약한 지갑이 아니란 말이지.
카이만의 지갑을 무시 마라.
난 당당하게 질렀고 맹세까지 했으며 계약서도 적었다.
그 모습에 케인과 리프가 조금 이상하게 바라보긴 했지만.
괜찮아. 내 등허리가 휘나. 카이만의 등허리가 휘지.
등골에 빨대 꽂는 삶. 여기서는 해도 된다.
‘카이만이 뭐라 할 리도 없고.’
나는 페어리 하나가 붙어 안내하는 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페어리들이 다니는 길이라 아주 좁거나 혹은 길이라기보단 추락용 구멍 같은 것이 몇 번 나오긴 했으나 그건 전부 케인이 해결했다.
스카로 길을 틔운다거나 나와 리프를 안고 바닥까지 떨어진 뒤 사뿐히 발디딤 한다거나.
잘 키운 케인 열 공사 장비 안 부럽지. 암 그렇고말고.
“이쪽으로 이제 쭉 가면 나올 거야.”
깃이라기보단 민들레 홀씨 같은 날개를 가진 페어리를 바라보다가 난 고개를 끄덕였다.
“자 이거는 수고비.”
나는 아공간에서 사탕 병을 꺼내 페어리에게 한 알 안겨주었다.
여기로 내려오기 전에 설산의 페어리들에게 다 뿌리긴 했지만 길 안내 비용은 또 따로 쳐줘야지.
“고마워!”
페어리가 사탕을 조심히 안아 들고 얼른 날아간다.
나는 그 모습을 보다가 케인과 리프에게 고개 돌리며 말했다.
“그럼 얼른 들고 나가자.”
제로가 밖에서 얼마나 외롭겠어. 세이렌도 안되니 걱정할 거다.
내 말에 리프가 끄덕끄덕했고 케인은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온통 푸르스름한 공간. 케인이 허공에 빛을 하나 띄우긴 했으나 전체적으로 시린 느낌이다.
그런 얼음 동굴의 끝에. 석순 하나가 올라와 있었다.
특이하게도 위가 뾰족하지 않고 한번 부러진 후, 그 위를 아이스크립 스쿱으로 안을 파낸 거 같이 옴폭 파여있었다.
그 안에 둥근 무언가가 보이는 게 얼핏 보면 한국의 백룡동굴에서 본 달걀 석순같이도 느껴졌다.
‘저 둥근 게 설산의 눈물인가.’
살짝 파인 석순의 윗부분은 동굴에서 떨어진 물 같은 게 찰랑찰랑 차 있다.
나는 석순 근처로 다가가 케인을 흘긋거렸다.
“이거 파가면 되겠지?”
내가 그리 말하며 손을 뻗는데 케인이 내 손목을 잡으며 고개를 저었다.
뭐야 설마 그럼 석순 통째로? 그럼 너무 큰데.
“돌이 아니라 그 위에 찬 저 액체가 설산의 눈물이다.”
그에 나는 잠시 석순을 내려보았다. 그럼… 저걸 무슨 유리병 같은 거에 담아가야 하나.
스포이드도 없는데 어떻게? 이게 물 길듯이 떠서 가기에는 너무 얄팍하다. 그렇다고 스푼으로 옮겨 담는 것도 아닌 거 같고.
살아 있는 신이 설마 이거 여기까지 직접 와서 입대고 마시고 하진 않았을 거 아닌가.
천으로 닦아서 짜나? 그럼 테이트리아는 수건으로 한 번 정수된 설산의 눈물 마시는 건가?
오만 생각을 다 하는데 케인이 나에게 손을 까닥거렸다.
“병.”
지금 내 크루거 반지 외엔 제대로 기능을 안 하지.
내가 아공간을 열어 빈 병 하나를 건네자 케인이 스카를 빨대 모양으로 변형시켜선 그대로 설산의 눈물이 찰랑거리는 석순의 옆 부근에 박아 넣었다.
쪼르륵.
작은 소리와 함께 병으로 설산의 눈물이 채워지기 시작한다.
‘고로쇠네.’
내가 그 생각을 하며 지켜보는데 포션 한 병 정도 채워진 뒤 마개를 닫던 케인이 입을 열었다.
“설산의 눈물은 완전히 없어진 게 아니라 다시 천천히 찰 거다.”
그러니 주기적으로 한 번씩 이곳으로 와 채워진 설산의 눈물을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으면 마나 교란이 다시 심해질 거란 말에 나는 으쓱였다.
“나중에 일 다 끝나면 네가 한 번씩 와서 몸보신하면 되겠다.”
듣자 하니 무협지로 치면 공청 석유 같은 느낌이니.
내 말에 케인이 그냥 피식 웃었다. 그 모습에 난 괜히 팔꿈치로 케인을 툭툭 치며 입을 열었다.
“뭐야, 자신 없어?”
“나보단 다른 사람이 마시는 게 낫겠군.”
이미 자기는 풀돌 다 하고 한계 각성 다 한 유닛처럼 말하네.
그에 나는 웃으며 리프의 어깨에 팔을 걸친 뒤 입을 열었다.
“그럼 리프가 마셔도 좋고. 그렇지?”
―저보단 관리자께서 드시는 게 나을 겁니다.
“난 먹어봐야 소용없어. 이 몸뚱어리는 그냥 의미가 없다.”
나는 리프의 말에 어깨만 으쓱였다.
“얼른 나가자.”
나는 케인에게서 건네받은 설산의 눈물을 아공간으로 넣었다.
뭔가 기분 탓이겠지만 공간이 정돈된 기분이다.
사실 나야 마나를 느낄 수 없으니 느낌적 느낌만 받는 거지만 세이렌은 달랐다.
<아델리안님! 걱정했습니다. 정말 왜 이리 늦게…….>
이제 세이렌이 잘 되네. 나는 걱정이 묻어나는 제로의 목소리에 괜찮다 괜찮다 말하며 달래기 시작했다.
“나 배고파. 케인 놈은 밥도 안 주고.”
아니, 크루거 반지의 아공간 안에 있던 과일이나 육포만 먹었다니까 우리.
내 투덜거림에 제로가 미리 잡아서 숙성 중인 고기가 있다고 대답하며 얼른 준비하겠다 한 뒤 세이렌이 끊겼다.
일단 제로는 처리했고.
세이렌 안되는 동안 다른 쪽엔 일 안 터졌나 싶어 연락 돌리려는데 케인이 날 지그시 바라본다.
“뭐.”
왜.
“아니다. 얼른 나가도록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