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37)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37화(37/373)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만은 없습니다. 부디 저를 찾지 마세요.
도련님께서 악마가 아니시라면 제 마음을 아실 거라 믿습니다.
도련님, 미워요…….
(중략)
…할론.
눈물로 빚어낸 열세 장의 편지.
할론은 다시 잡혀 와 5년이 아닌 10년을 이 본성에서 서류만 본다 해도 지금은 나가야 한다 생각했다.
어느 시녀들은 너무 근육만 가득해서 얼굴과 밸런스가 안 맞았던 예전보다 살짝 근육이 빠져 균형 잡힌 지금이 보기 좋다고 했지만.
‘위로가 되지 않아…….’
그 짠내. 흐르던 땀이 입술에 묻었을 때 느껴지는 그 소금기.
오랫동안 쇠질을 하고 나면 손에서도 쇠 냄새가 배여 샤워 후에도 희미하게 남아있다.
무리하게 단련을 한 뒤 침대에 누우면 몸이 갓 구워낸 마시멜로처럼 퍼지는 것 같은 그 쾌감.
운동과 단련은 배신하지 않는다. 한번 무거운 것을 들고 나면 그만큼의 근육으로 돌아오기 마련.
한 장 한 장 처리해도 무수히 쌓이는 저 서류와는 다르게 근육은 확실한 보상을 눈으로 보여준다.
그 말인즉슨.
“행복은 저 밖에.”
할론은 그동안 살짝 길어져 목덜미에 닿는 자신의 올리브색 머리를 쓸어 올린 뒤 환하게 웃었다.
‘가출하자.’
자신이 가출하는 것을 누가 본다면 아델리안에게 이를지도 모르는 일.
할론은 금화를 문 까마귀 기사단에서 배운 잠입 및 암살 훈련의 성과를 이리 쓰게 될지는 몰랐다 되뇌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짐은 필요 없지. 일단 현금만 들고 나가는 거다.
할론은 그동안 야금야금 준비해 둔 로브와 작은 배낭을 챙겨 희번덕거리는 눈으로 성을 나갔다.
어차피 내성 사람들만 할론 자신이 서류 노예가 되었음을 제대로 아니 밖과 이어진 외성 문지기는 자신이 나간다 해도 별로 신경 쓰지 않으리.
나중에 없어진 자신을 찾아 수소문해도 알 수 있는 건 많지 않을 것이다.
할론은 너무 들뜬 얼굴을 감추기 위해 손으로 입가를 누르고 나와선, 금방이라도 소리치고 싶은 마음을 숨기며 느리게 걷다 문지기의 시야 밖으로 나가자마자 미친 듯이 달렸다.
성과 마을로 이어진 길 대신 조경된 작은 숲을 가로질러 마을 안쪽으로 들어와선 인파 속에 섞여서도 걸음을 재촉한다.
‘일단 배를 몇 번 갈아타야……!’
“꺅!”
앞에서 느리게 걷던 사내를 피해 왼쪽으로 몸을 꺾었는데 동시에 반대쪽에서 오던 소녀가 할론과 같은 방향으로 몸을 틀었는지 서로 부딪혔고, 넘어지려는 소녀를 할론이 팔을 뻗어 붙잡았다.
“괜찮으십니까?”
단단한 할론의 몸에 튕겨 나가 바닥으로 쓰러질 뻔한 소녀의 허리를 할론이 걷어 안듯 잡아 조심스럽게 바로 세워주곤 바닥에 흘린 종이도 주워 건네자 소녀가 숙였던 고개를 들어 할론을 바라보았다.
“아, 정말 감사합니다!”
화사하게 웃는 얼굴. 귀엽게 흔들리는 회색 머리칼과 제비꽃 같은 보라색 눈동자.
멍하게 눈이 풀리는 할론에게 꾸벅 인사한 소녀는 건네받은 종이를 다시 보며 안쪽 골목으로 걸었다.
“그러니까… 제일 큰 집이…….”
가슴에 있던 심장이 귀로 자리를 옮겼을까.
자신의 심장 소리를 자신이 듣는 일이 토할 만큼 뛰고 난 뒤가 아니라 가만히 서 있을 때도 가능한 일이었나?
길을 잃은 건지 자꾸 할론의 눈앞에서 이 골목 저 골목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소녀를 보며 천천히 할론의 발걸음이 항구 대신 안쪽으로 향했다.
“제가 도와드릴까요, 영애?”
“히익! 저, 저 저. 귀족 아, 아닌데요?”
동그랗게 뜬 그 보라색 눈에 할론이 부드럽게 웃었다.
“저는 할론이라고 합니다. 곤란한 듯 보였기에…….”
“저, 저는 아리아… 아니, 아리인데요. 아리예요, 아리.”
이름도 귀엽지… 아리아.
할론이 아리아의 손에 든 종이를 건네받으며 그녀와 눈을 마주했다.
“혹시… 제일 큰 집이 어디인지 아세요? 루나 씨가 그쪽으로 가면 된다고 하던데…….”
할론은 입 안의 혀로 퉁기듯 혀끝을 움직여 되뇌었다.
‘도련님, 감사합니다.’
* * *
알카이도에게 그날 신전에서 본 여자에 대해 조사 명령을 내린 뒤, 그녀를 곰곰이 다시 떠올려 보는데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었다.
그날 날 보자마자 무슨 복선 같은 말 한마디 던진 뒤, 절뚝거리는 환자를 뒤로 둔 채 호다닥 숙소로 가서… 그날 바로 모든 짐을 다 짊어 매고 퇴전했단 소리잖아?
‘칼 루이스네, 칼 루이스야.’
내가 비딱하게 앉아 투덜거리는데 루나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오늘 퇴전하는 날이죠, 도련님?”
“어서 와, 루나. 맞아, 드디어 신전에서 나가는 날이지.”
그동안 감찰관 와서 조사받고 증언하고 ‘저도 피해자인데요.’ 하고 웃으며 압박도 하고.
사실 아델리안의 얼굴부터 대놓고 귀족티가 나는 터라 일이 커지진 않았다.
이러나저러나 루비 파티가 초보 파티 잡아먹기를 시도한 게 맞으니까.
‘던전 무너진 것도 나오기 직전에 들은 폭음이랑 연결하니 적당히 넘어갔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분이 인 듯 안쪽에서 폭탄 포션을 썼다니 그 덕에 더 쉽게 넘어갔지.
나는 요 며칠 던전 뺑뺑이를 과도하게 돈 듯 살이 빠져 보이는 루나의 뺨을 보다가 손가락으로 꾹 눌렀다.
“으에……?”
“내가 하랬다고 밥도 안 먹고 돈 거는 아니지? 살이 빠졌는데.”
“아니에어.”
내가 볼을 누른 덕에 미묘하게 뭉개진 발음으로 대답한 뒤 웃는 루나를 보다 나도 마저 웃어주다 말고, 퇴전 수속을 마쳤는지 이제 들어오는 케인에게로 눈을 돌렸는데… 마찬가지로 살이 빠져 더 날렵해진 케인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럼 설마 간이 식량만 먹으며 던전 돌았냐 너네?”
“헤헤…….”
“음.”
…잘하는 짓이다. 오늘은 신전에서 퇴전하는 김에 애들 밥이나 비싼 것으로 먹어야지.
나는 고개 저으며 나가다 문득 떠오른 것에 둘을 바라보았다.
“일단 마탑부터 들리자.”
내 생각이 맞는다면 속성석이 많을수록 좋으니까.
* * *
“없습니다.”
나는 코덱스를 넘겨주다 없단 말에 고개를 들어 마탑의 직원을 바라보았다.
“마탑에 속성석이 없단 말입니까?”
경매장처럼 대량으로 구매는 못 해도 조금씩은 팔 텐데 어째서?
내 의아한 얼굴에 직원도 난처하단 눈빛을 보내며 일단 코덱스부터 받았다.
“요즈음 갑자기 속성석의 매물이 줄었어요. 당분간 개인이 사기는 힘들 거라고 봅니다.”
미리 사둔 게 꽤 넉넉하긴 하지만 사람이란 게 막상 사려는데 없다니 더 필요한 거 같고 그러네.
‘게임에서야 이런 물량의 유동까지 세세하게 구현된 거 같진 않고, 원작은 케인이 한참 다른 데서 구를 시기라 이유가 애매하긴 한데.’
하지만 내가 누군가, 원작과 게임을 몇 번 했는데 예상되는 게 하나도 없을 리가.
보통 이런 문제는 어지간하면 악신교단 짓으로 찍으면 반은 맞다.
나머지는 뭐 카이만이나 기타 등등이지.
“뭐 그럼 속성석은 두고 마법 부여 부탁합니다.”
확실히 광산 도시보다 물가가 높은 편이라고 해야 할지 마법사의 자존심이 더 비싸다고 해야 할지.
같은 마법이라도 좀 더 비싸게 부르는 것 같지만 부담될 리가. 나는 선금으로 주먹만 한 보석과 마정석 몇 개를 건넨 뒤 빠져나왔다.
“너희 이런 말 들어봤냐?”
먹는 것까지 단련이다.
내가 웃으며 하는 말에 루나와 케인이 슬슬 내 눈을 피한다.
저거저거 젖살 빠진 것 좀 봐라. 어?
“내가 생각해 봤는데 말이야. 조금만 부지런하게 움직이면 녹즙을 여행하면서도 만들 수 있을 것 같거든?”
“잘못했다.”
“밥 잘 먹구 다닐게요!”
나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으며 두고 보겠단 손짓 한 뒤 이제는 움직이는 데 아무 지장 없는 다리로 가볍게 걸음을 재촉했다.
“오늘은 내 퇴전 기념으로 맛있는 것 먹고, 며칠 동안 던전 돈 거 보고도 들을 겸 휴식이야. 알겠지?”
“네에… 좋아요.”
“그러지.”
사실 내가 원래 있던 라베스는 대륙에서도 손꼽히는 향락도시라 당연히 유흥 쪽으로 규모가 거대해서 경매장이나 도박장. 레스토랑이 꽤 수준 높은 편이었기에.
그것에 길들어진 나는 다른 곳의 레스토랑은 성에 안 찰 것 같았는데 웬걸.
미궁 도시는 도시의 규모도 크지만 그 안에 도는 돈의 흐름도 거대하다 보니 미궁에서 나오는 부산물과 마정석, 그것을 가져오는 모험가들이 생활하며 쓰는 돈과 더불어 미궁이란 특성상 관광업도 가능하다 보니 유동 인구가 어마어마했다.
그렇다 보니 유흥 쪽으로도 산업이 크고 더불어 외식 문화도 자리가 잘 잡힌 데다 돈이 많은 이들도 다른 도시에 비해 비율이 높아 꽤 고급 레스토랑이 모여 있는 편이었다.
개중에선 지금 내가 온 곳처럼 아주 특색 있는 곳도 있고.
“와, 신기해요…….”
레스토랑의 가운데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원통형 해수조가 꾸며져 있었다.
저 정도 크기의 수조면 물의 압력으로 터져버릴 텐데 마법으로 고정한 것인지 안에는 하나의 생태계 같은 아쿠아리움이 꾸며져 있었다.
사람의 몸보다 큰 조개가 입을 열 때마다 주먹만 한 오색 진주가 드러났다 사라지고 보기에도 화려해 보이는 이색적인 물고기가 떼를 지어 수조 안을 헤엄친다.
소형 자동차만 한 새끼 크라켄도 산호초 더미 쪽에 꾸며둔 난파선 모형 안에서 들락날락하다 이내 납작 웅크려 있고 보는 각도에 따라 빛무리를 달리 뿌리는 거대 해파리도 유유히 촉수를 흐느적거리며 유영한다.
흰자위와 눈동자로 이루어진 사람과 달리 아몬드형의 눈이 전부 푸른색으로 보이는 데다 귀 대신 화려한 지느러미와 꼬리를 가진 인어 족도 몇몇 수조 안에서 물을 즐기듯 움직이고 있었다.
‘목에 종속 목걸이가 없는 걸 보니 저 인어 족들은 정규직인가 본데.’
빛 계열 마법을 건듯 수조 안은 멀리서도 화려하게 빛나며 종종 그 안에 있던 물고기나 새우 등을 인어들이 건져주는 걸 보니 직접 먹고 싶은 걸 고를 수도 있는 모양.
“뭐 먹을래?”
희미하게 레스토랑 안을 울리는 인어의 아리아를 들으며 나는 루나와 케인에게 물었고 둘은 입술을 달싹였다.
“으음, 사실 메뉴를 봐두 뭐가 뭔지…….”
“잉팔카 튀김의 잉팔카가 뭔지 모르겠다만.”
응, 사실 나도 잘 몰라.
하지만 안 그런 척, 나는 다 아는 척하는 미소를 띠며 말했다.
“뭐든 시켜. 낯선 것도 자꾸 해봐야 는다. 일단 시키면 뭐가 잉팔카인지 알겠지?”
그리하여 문제의 잉팔카 튀김과 더불어 A 코스로 일단 통일하기로 했다.
코스는 C까지 있으니 당분간 여기로 와서 하나씩 다 먹여 줘야지.
물속에서 불러서 레스토랑 전체에 고루 소리가 퍼지는 건가.
옥색 구불거리는 머리칼을 산호와 조개로 장식한 인어가 그 큰 수조를 헤엄치며 부르는 아리아를 3층에 앉아 바라보다 이내 천천히 나오는 음식으로 시선을 돌렸다.
지구로 치면 아페리티프.
식전주가 먼저 한잔 나온다. 입맛을 돋우는 게 주목적인 술이라 가늘고 긴 잔에 한 모금 정도 되는 양인데, 저거 화이트 와인이네.
굉장히 산뜻하고 은은한 향의 와인인데 맛은 드라이하고 뒤끝이 깔끔하게 떨어지니 금방 구미가 돌았다.
잔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나와 케인, 루비의 곁에 서서 식사를 돕는 사용인이 내려놓는 건 스푼처럼 생긴 작은 그릇에 조개관자와 하얀 소스를 올린 요리.
“샤 브리레 조개관자에 미슈스 소스와 키미를 뿌린 애피타이저입니다.”
설명해 주니 편하네.
오독오독 한 식감에 소스는 크리미한 듯 부드러우면서 후추같이 알싸한 맛이 잠시 퍼지다 기분 좋은 향신료의 잔향만 남기며 사라진다.
그리고 생선과 고기를 잘게 다져 틀에 넣어 굳힌 뒤 얇게 썰어낸 테린이 한 조각.
입에 넣으니 혀의 체온으로 고기의 지방이 먼저 녹아 농후한 맛이 잠시 번지다 생선의 담백함으로 지워졌다.
얇은 데다 작은 것으로 한 조각만 먹으니 아쉽네…….
그다음으로 나오는 새우 포타주로 속을 덥게 한 뒤 화이트 와인 한잔과 민어구이. 사실 물고기 이름은 완전 처음 듣는 거였는데 모양은 민어 스테이크랑 비슷했다.
그리고 한번 입가심을 하기 위한 새콤한 과일을 얼려 만든 샤벳 한 스푼.
“쌍뿔 흰 깃 바실리스크의 안심살입니다.”
메인은 닭고기네.
닭 가슴살과 다리 살 중간 정도의 부드러움과 지방이라고 해야 하나?
나이프로 자르니 두부 자르듯 쉽게 잘리면서도 막상 입에 넣어 씹으면 너무 부드럽지 않고 되려 씹는 맛이 있으며 육즙이 씹을 때마다 번진다.
마치 푹 고아 부드러운 토종닭처럼 누린내 없이 깊은 맛이 나는데 나도 모르게 맛있다 하고 한번 되뇌곤 삼켰다.
그리고 고기의 육즙으로 가득한 입 안을 마지막으로 씻어내기 위해 신선한 해초와 야채의 샐러드가 손바닥보다 작은 접시에 나온다.
확실히 코스요리다 보니 양이 조금씩 종류가 다양하게 나오는 데다 하나씩 어떤 재료로 만든 것인지 설명해 주니 루나와 케인의 식견이 넓어지는 것에도 도움되고.
‘당분간 여기 출근 찍는다.’
여행도 좋지만, 뭐다? 식도락도 행복이다.
바실리스크의 안심을 마지막으로 디저트와 식후주가 나올 차례였지만 우린 잉팔카 튀김을 추가로 주문했던 터라 디저트 전에 마지막으로 그게 나왔다.
“이거 맛있겠네.”
“특이하네요…….”
딱 봐도 이건 쥐포 튀김 같은 거다.
일반적으로 씹으면 부슬부슬 흩어지는 생선튀김이 아니라 살짝 말린 어포를 튀긴 건데 내가 지구에서 먹어본 쥐포 튀김과 거의 흡사했다.
약간 다른 것이라면 쥐포는 그 특유의 꼬릿하다고 해야 하나?
맛있는 느낌으로 약간 달짝지근한 듯 묘한 냄새가 나는데 이건 씹기 전까진 고소한 기름내만 나다가 씹으면 기름과 같이 달고 짭짤한 즙이 나오는 정도.
잉팔카 튀김까지 해치운 우리는 후식으로 입 안에서 탱글탱글 단맛이 터지는 해초 열매 절임을 퍼먹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내가 누워 있는 동안 뭐 했는지 말해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