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371)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371화(371/373)
접경지 심부에서 우레같은 소리가 울렸다. 마치 공기가 가득 든 가죽 주머니가 귀옆에서 펑펑 터지는 것만 같았다.
아주 멀리서 접전을 벌일 텐데도 그 진동이 발아래로 종종 여기까지 울렸다.
“후우. 2차 온다. 준비해.”
상황이 이러니 아무리 몬스터들이라도 그걸 견딜까.
이미 기척에 민감한 하급 몬스터들은 한바탕 웨이브가 밀고 들어온 지 오래.
피비린내가 감돌고 뒤쪽으로는 한참 소각이 진행 중이었다.
원래라면 저런 자잘한 몬스터라도 다 돈이니 이빨이며 가죽이며 벗기는 게 다반사였지만 이번은 달랐다.
“아깝긴 합니다만…….”
“그래도 어쩔 수 없어. 저것들부터 도축하면 나중에 손이 달리는 데다가 둘 자리도 없어서 다 오염원이 될 테니까.”
어차피 도축할 수 있는 기회가 정해져 있다면 조금이라도 비싼 몬스터를 하는 게 낫지.
누군가의 말에 몇몇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눈빛을 굳히며 얼굴을 돌렸다.
“온다.”
아까 소형 몬스터들의 웨이브와는 다른 땅 울림이다.
아예 대형 몬스터나 혹은 상급 몬스터의 경우 안에서 격돌하는 힘에도 쉬이 웨이브를 일으키지 않을 것이었다.
저 힘이 자신을 향하는 게 아닌 것을 아니까.
이것은 소위 말하는 접경지의 왕을 정하는 의식이나 다름없으니 누가 이기던 그 이후에 눈치를 살피고 고개를 숙이려 들 터.
그 영역을 얼마만큼 소화할지도 레이첼과 공작급 몬스터가 승부를 겨룬 후의 일이라 여길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 생각을 하지 못하는 몬스터들. 즉 제대로 된 지성이 생기기 딱 그 직전.
위압을 가늠할 수 있되 저 힘이 어느 영역까지 뻗칠지 계산할 수 없는 몬스터들은 무작정 도망칠 수밖에.
이것은 몬스터들에겐 재난이며 천재지변이나 다름 없었다.
쥐나 벌레 같은 위치의 소형 몬스터들은 이미 끝났다.
지금 밀려오는 것은 그 이상.
“궁수대는 미리 준비! 앞쪽에 폭탄석을 묻던 공대들도 전부 뒤로 물러나!”
메이샤가 외치자 깃발을 든 이들이 수신호를 보냈다.
[그럼 금방 다녀올게요.]메이샤의 옆에 있던 페오가 메모를 보였고 그때까지 침묵하고 있던 라인하르트가 입을 열었다.
“뒤쪽으로 몬스터를 흘리지 말도록.”
한두 마리의 몬스터라도 흘리면 혹 화전민들이 피해를 볼지 모르니.
“예. 알겠습니다.”
그 말에 메이샤가 대답하자 라인하르트가 페오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은 뒤 한 팔에 안고 마치 그 자리에서 순식간에 사라진 것처럼 빠른 속도로 이동했다.
페오의 힘은 광역공격에 치중되어 있다. 거기에 다른 생명체를 타고 번지는 번개의 힘이었기에 주변에 아군이 있는 것이 더 방해였다.
하지만 라인하르트만은 다르다. 그는 페오의 힘을 전부 쏟아부어도 버틸 수 있을 만큼 강자니까.
라인하르트와 페오. 그 둘이서 전방의 전방.
가장 앞으로 가 저 멀리서부터 레이첼과 공작급 몬스터와의 전투에서 도망쳐 나오는 웨이브를 바라보았다.
“끝나고 나면 코코아를 타주마.”
라인하르트의 말에 페오가 해맑게 웃었다.
[좋아요, 할아버지.]그 할아버지라는 말이 왜 이리도 간질한지.
라인하르트가 자신의 팔에 안겨있던 페오의 머리를 한 번 더 쓰다듬어 준 뒤 놓자 페오의 몸이 자기장을 일으키며 허공으로 솟았다.
페오의 머리카락이 가늘게 흔들렸다. 옷이 펄럭였다. 그대로 양손을 앞으로 내밀며 페오가 중얼거렸다.
―얼른 하고 할아버지랑 코코아 먹어야지.
페오가 힘을 모으자 라인하르트의 갑옷 위에서 정전기가 튀듯 타닥타닥하는 소리와 함께 빛들이 반짝거렸다.
공기 중에 떠다니는 먼지 한 톨 한 톨이 뒤켜지듯 허공 여기저기서 콩 볶는 소리와 함께 불빛이 산란한다.
원래도 크게 웃자란 나무 덕에 어두컴컴한 숲이었으나 구름이 몰려들기라도 한 듯 그림자가 더 짙어졌다.
“키에엑!”
“크락, 크르륵.”
각양각색의 중형 마물들이 서로 싸우지도 않고 섞여 무언가에게서 도망치듯 이쪽으로 달렸다.
발로 대지를 박찰 때마다 흙이 갈려 나가고 뒤로 튄다. 그것들은 몸에 진흙이 튀어 더러워졌음에도 불구하고 혼이 나간 듯 뛰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뭇잎의 그림자가 땅에 완전히 스며든 것처럼 사방이 어두워진 순간.
수십 개의 벼락이 나뭇가지를 부수고 사방을 밝히며 땅으로 쏟아져 내렸다.
그것은 거대한 기둥이 박히듯 대지를 박살 내며 동시에 몬스터에게 맞았으며 그 몬스터를 중심으로 다른 몬스터에게로 마치 체인처럼 퍼져나갔고.
땅에 떨어진 것은 반경 몇십 미터를 타고 흘러가며 발 디딘 것들 전부를 마비시키기 시작했다.
“끄에엑!”
“캬학! 케르윽!”
낙뢰의 중심에 있던 몬스터들은 그대로 숯덩어리가 되어 절명했다.
조금 멀리 있던 것들은 안타깝게도 바로 죽지도 못하고 온몸이 뒤틀리거나 마비되는 고통을 받으며 경련했다.
그리고 그 낙뢰를 신호로 라인하르트도 자신의 몸에 오러를 두르며 앞으로 뛰쳐나갔다.
한참 번개 지대가 만들어져 피가 끓다 못해 타들어 가는 공간에 금속으로 된 둔중한 갑옷을 입고 라인하르트가 포탄처럼 박혔다.
온몸에 타고 흐르는 낙뢰는 라인하르트에겐 단 하나의 데미지도 주지 못했고 오히려 번개로 한 겹 더 두른 효과만 만들어냈다.
그대로 거검을 휘두르며 몬스터를 베거나 써는 것이 아닌.
그대로 분쇄하며 라인하르트가 대형 몬스터처럼 웨이브를 반으로 가르듯 전진했다.
그야말로 학살이었다.
* * *
“어디 보자. 이렇게 페어리 퀸의 인장은 거의 다 모았으니까.”
사막 페어리는 만나지 못해서 못 모으긴 했지만 그래도 3명의 페어리 퀸에게 받았으니 괜찮을 거다.
이걸로 요정의 신발을 얻게 되면 쓸 수 있는 최저요건은 맞췄고…….
나는 내 말 토마 위에 앉아 이리저리 흔들리며 메모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델리안 님. 왜 아리나이드의 수도가 아닌 정령의 숲에 먼저 오신 겁니까?”
듣자 하니 그 요정의 기사는 지금 수도의 궁전에 있다던데요, 하고 제로가 묻는 말에 나는 으쓱였다.
“가뮈르 좀 보고 겸사겸사.”
하며 잠시 메모는 멈추고 리프를 응시하며 웃었다.
“이제 비공정도 가동 시켜야지.”
아직 바다 빛 진주가 풀 차지 되려면 시간이 남았다. 처음 비공정을 봤을 때 에너지가 거의 바닥난 상태였으니까.
기본 가동만 하는데 1년 정도가 소요될 거라 여겼었지.
그 이후에도 제대로 운용하려면 사실 어렵다고 봤는데.
‘설산의 눈물로 보조 동력을 넣으면 되니까.’
리프에게 물었더니 이름이 붙을 정도로 강력한 속성 비보는 바다 빛 진두의 출력에 맞출 수 있을 거라 했으니까.
설산의 눈물은 그 속성도 그렇고 딱 가디아에게 어울리는 비보였다.
하지만 가디아가 케인도 아니고 순수한 인간으로선 비보를 감당하기 힘들다.
불의 정수가 속성 비보 중 가장 강력한 데다 난폭하다는 사실을 제외하고서라도, 카이만만 해도 그렇게 공을 들이며 중화시켰는데도 나중에 고생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설산의 눈물을 가디아에게 바로 주었다간 암살시도냐며 가디아가 되려 날 암살할지도 모르니까.
‘비공정은 에너지 단박에 채울 수 있어서 좋고,’
나는 한번 가공된 선물 납품 가능해서 좋고.
―드디어 관리자께서 비공정과 함께 하시는군요.
내 말에 리프가 무표정하고 무감각하게 말했다.
하지만 이제는 알고 있다. 얼핏 들으면 고저가 거의 없는 말투이나 그 안에 감정이 있다는 걸.
좀 기뻐 보이네.
나는 손을 뻗어 리프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레이첼이 공작급 몬스터를, 파이얀이 마족과 접선을 해보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가는 길이 지루한지 제로가 궁금한 게 생긴 듯 입을 열었다.
“그렇지.”
“그럼 몬스터도 혹 저희와….”
“아니 그건 아니야.”
나는 토마의 목을 긁어주며 말했다. 공작급 몬스터의 경우 회유가 가능하면 리스크를 안고도 할 만하지만 일반 몬스터는 아니다.
나중에 악신 교단이 대륙을 휘저을 때 몬스터들이 조종받는 듯 악신 교단은 빼고 연합군 쪽만 공격했으니까.
그러니 일반 몬스터는 미리 수를 줄여두는 게 나중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마족은 일단 엄연히 아인족에 속하고 공작급 몬스터는 이성이 있으니 교섭 및 회유가 가능하지만 나머진 아니니까.
물론 제로 입장에서 왜 그리 묻는지는 알고 있다. 도플갱어는 몬스터로 분류되니까 모든 몬스터가 적이 아님을 듣고 싶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일개 인간이고 내 팔 안의 사람들만 챙길 수밖에 없어서.
몬스터 하나하나 살아야 할 이유를 찾을 시간은 없다.
다만 넌 다르지 뭘 걱정하는 거야, 저 녀석은.
“다 끝나면 어떤 집에서 살고 싶은지 생각이나 미리 해둬. 지루하면.”
빨간 벽돌집이나 혹은 석회를 바른 하얀 집도 좋겠지.
제로가 살 거면 인간 기준으로 약간 크게 짓는 게 좋을 거다. 키가 커서.
내 말에 제로가 듣다가 씩 웃는다.
“나중에도 다 같이 살면 재미있을 거 같습니다.”
“과연 애들이 잘도?”
레이첼만 해도 못 견디고 바로 여행이나 갈 거 같은데.
뭐 게다가.
난 없을 거고. 다시 메모지에 눈을 돌리는데 리프가 슬쩍 날 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관리자님. 도착했습니다.
나는 그 말에 토마를 멈춰 세웠다. 예전에 체이서와 싸우며 망가졌던 숲은 제법 복원된 듯 나무들이 키가 좀 작다는 것만 제외하면 멀쩡하다.
얼핏 보기에는 완만한 동산이 섞인 숲의 지형이었다. 이곳으로 지나다니는 이들은 없는지 사방이 조용하다.
“입구가…….”
―위장되어 있을 뿐입니다.
리프가 자신의 말에서 내려 동산 쪽으로 걸어가자 아주 미약한 진동이 느껴진 후 동산의 일부분이 잘려나간 것처럼 사라지며 금속질감의 문이 나타났다.
드래곤의 몸에 검을 꽂아 넣고 있는 사내가 조각된 문.
그러고 보니 이제 와 깨달은 거지만 저 문양을 조금 더 단순화한 게 악신 교단의 문양이구나.
초승달 같은 건 짐승을 뿔, 그것을 가로질러 넣는 검은 살해의 의지.
더불어 검 사이에 위치한 다이아몬드는 인간을 나타내는 문양.
인간이 모든 짐승을 죽이겠단 그 문양은 첫 번째 회차의 케인과 테이트리아가 쓰던 인간군의 문장이었다.
그것을 마크가 아닌 제대로 그린 게 저 그림이겠지. 거대한 뿔을 지닌 드래곤과 그것을 밟고 칼을 꽂는 모습.
하지만 이제 비공정은 케인과 함께 연합군의 뒤에 설 것이고 테이트리아는 혼자일 것이다.
‘어느 누가 네 편이 되겠어.’
나는 테이트리아를 떠올리며 비공정 안으로 들어섰다.
―관리자님!
―케인님!
―어서 오세요!
―관리자 2인과 최상급 골렘, 네임 리프 외 허가되지 않은 객체 1인 확인.
관리를 맡겨뒀던 다른 상급 골렘들과 시스템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제로는 그때 가뮈르랑 있었지.’
나는 허가 되지 않은 객체라기에 순간 누군가 했다. 나는 제로의 손목을 잡고 바로 관리자의 권한으로 인간 외 생명체 허가 인증을 내린 뒤 일부 권한도 이양했다.
솔직히 나는 자신 없고 네가 케인 어시 해서 비공정 운행해라.
“엔진실로 가자.”
―네, 관리자님.
비공정에 설산의 눈물부터 넣어 놓고 가뮈르에게 가는 게 전체적으로 시간을 단축할 수 있을 테니.
“제로는 매뉴얼 좀 읽고 있고 케인은 에너지가 충전되면 이동할 항로 좀 미리 확인해줘.”
더불어 갑자기 이 큰 게 나라의 상공에 나타나면 소란이 일 테니 스텔스 기능 확인도 해주고.
내 말에 제로는 웃으며 네, 하고 대답하고 케인은 고개 돌려 함장실로 같다.
비공정은 아주 컸다. 보이는 크기도 크지만 마법이 걸려 내부는 훨씬 크다. 작은 도시의 반 정도는 될 만큼.
그러니 타이탄도 적재하고 있고 더불어 지상에 내리면 군수 공장도 되는 거겠지.
나는 아공간에서 설산의 눈물이 든 병을 꺼내며 엔진실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