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4)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4화(4/373)
우리 도련님이 달라졌어요.
이젠 아침마다 발로 차지두 않구요.
술잔을 던지거나 토끼족이라구 토끼 걸음으로만 따라오기 이런 것도 이제 안 시키구요.
무엇보다 가끔 과자를 밀어주시거나 귀도 만져 주세요.
정말이에요, 정말.
사실 도련님이 아무리 때려두 아프지 않았지만 아픈 척하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데요.
거짓말은 할 수 없어서 가족들에게 보내지 못하던 편지두 이제 보낼 거예요.
여기서 잘 지낸다구. 도련님두 잘 해주신다구.
저는 자랑스런 초원 토끼족의 전사니까요!
* * *
빠졌네, 빠졌어. 메이드가 뭐 저래.
햇볕이 잘 드는 창가에 앉아선 무슨 꿈을 꾸는지 입까지 오물거리며 조는 루나를 버리고 나는 일어섰다.
내 특전이 평소에 얼마나 개판 치며 살았는지, 이곳에서 눈을 뜬 이후 루나 외엔 나에게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이가 없었는데…….
갑자기 멋들어진 카이저 수염을 한 집사가 날 도련님이라 부르며 말을 걸 때 얼마나 놀랐는지.
[알카이도 헤이먼―철혈의 집사]대표 Traits : [충성(A)] [냉정(B)]
히든 Traits : [흥정(C)] [결벽증(A)]
원작에선 아예 나오지도 않고 게임에서도 회상에나 등장하는 아델리안과 달리 익숙한 이름이다.
알카이도, 원작에선 아델리안 대신 가문의 인장을 소지한 채로 가디아를 기다리던 가문의 대행자.
게임에선 재능이라곤 빙결 마법뿐인 가디아를 대신해 크루거 가의 금력을 유지하려고 내가 써먹은 NPC.
난 저 충성 트레잇만 믿고 써먹다가 뒤통수 맞았었지…….
아픈 기억을 떠올린 탓일까, 살짝 찡그린 내 얼굴에 그가 헛기침을 하며 한 번 더 입을 열었다.
“가주님께서 부르십니다, 도련님.”
“나 귀 안 먹었어. 한 번만 말해도 괜찮아, 알카이도.”
이때다!
난 훌륭한 망나니로 보이기 위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의 어깨를 일부러 치고 나갔다.
그리곤 바로 당당하게 왼쪽 복도로 직진!
어차피 이 성의 맵이야 게임 하며 수없이 돌아다녀 봤으니까 이 방향이 맞을 것이다.
“이쪽입니다, 도련님.”
…게임 할 땐 분명 이쪽이었는데.
하긴 맵만 누르면 훤히 다 보였던 게임이랑은 다르지. 나 아닌 누가 왔어도 단박에 찾아가진 못했으리라.
그나저나 잘 만들어졌다 해도 풀 3D 게임도 아니고 인디 게임으로 나왔다 보니 이렇게 현실에서 이 성을 걸으니 뭔가 느낌이 새롭다.
더 화려하고 더 크고 더 멀고……!
한참을 알카이도의 뒤를 따라 걷고 있자니 먼 곳에서부터 나와 눈이 마주치는 하녀 하인들이 흠칫하며 빙 둘러 돌아가는 것이 눈에 보인다.
‘아니, 아델리안 이놈 뭘 하고 다닌 거야? 설마 사람을 죽이진 않았겠지?’
…아무리 그 레이첼이라 해도 설마 그런 놈을 내 특전이라고 했겠어? …그치?
이게 다 업보지, 업보야……. 지금 와서 내가 개과천선 하긴 글렀고.
어차피 앞으로 내가 할 일은 누가 봐도 정상적인 일과는 경우가 벗어나니까 그냥 이 이미지를 유지하는 게 도움 될 터.
“가주님께선 도련님만 들어오라 하시니 전 이만.”
알카이도의 말에 나는 괜히 휘파람을 부르며 비싸 보이는 도자기 하나 손가락으로 툭 밀어 떨어뜨렸다.
“그럼 알카이도는 할 일 없겠네. 이거 치우고 돌아가.”
절대 네가 내 뒤통수 때려서 이러는 건 아니고, 나 지금 망나니라서 그래. 알지?
난 표정 변화 없이 살짝 고개를 숙인 알카이도를 보며 씩 한번 웃어주곤 그가 열어낸 문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아버지.”
아버지는 언제나 아들이란 이유로 동생만을 사랑했다. 어머니를 죽이고 태어난 그 아이를. 아무 재능도 없는 동생을 아버지는 남자라는 이유로 후계자로 삼았으며 사랑했다. 그 차가운 뱀 같은 남자가 유일하게 자식으로 선택했다.
언젠가 읽은 원작에서 가디아가 몇 번이고 말했던 그대로, 백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남자는 무척이나 차갑게 보였다.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처럼.
‘하지만 난 알고 있지.’
저 사람이 얼마나 가디아를 사랑하는지.
“여전히 버릇이 없구나, 아델리안. 곧 네가 가주 대행을 맡아야 하거늘.”
“그건 아버지가 그냥 계속하세요. 왜 굳이?”
부유감 덕분인지 아버지란 말이 그냥 연극 대사처럼 술술 잘도 나온다. 나는 집무실 소파에 걸터앉아 그를 올려다보았다.
“내가 맡으라 하면 그리하거라.”
“그럼 맡을 테니 제가 그걸로 무엇을 하든 상관하지 마세요.”
날카롭게 그려진 것 같은 눈썹이 까딱한다. 나 말고 진짜 아델리안이었으면 지금 깨깽 했으려나?
하지만 알 게 뭐야. 어차피 아델리안이 반지를 이어받고 지가 하고 싶은대로 살다 가디아에게 목 썰리는 걸 아는 나로선 두려울 게 없었다.
게다가 원작에서 당신이 왜 반지를 넘기려는지 난 이미 알고 있거든.
한 나라에 맞먹는 금력, 그것에 못 미치는 무력과 권력.
그걸 상쇄하기 위해 가주직을 넘기고 일을 꾸미려는 당신은 딸을 지키고 싶어 하잖아.
원작에선 집사에게, 게임에선 아들에게 황금으로 덧씌워진 독배를 건넬 만큼.
그는 12가지 문양이 조각된 크루거 반지를 건넸고, 나는 알았다는 대답 대신 그의 손에서 반지를 낚아챘다.
“그리고 불의 정수는 너무 숨기지 마세요. 누나가 알면 자신을 태워 죽이려는 줄 착각할걸?”
당신이 예뻐서 말해 주는 게 아니고 가디아 성격 좀 고쳐보란 소리야, 아버지.
[카이만 진원 크루거―만금의 조율자]대표 Traits : [금력(SSS)] [위엄(S)] [계산적(A)] [모략(A)]
히든 Traits : [풍랑(B)] [기만(B)]
난 얼핏 보이는 아버지의 트레잇을 끝으로 문을 닫았다.
* * *
반지를 약지에 끼우니 알맞게 줄어든다.
마음 같아선 아공간에 처넣고 싶긴 하지만 끼고 있어야 혈계 마법을 쓸 수 있으니까.
이제 내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누구도 이 성에서 나에게 거역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큰 인계식도, 파티도 없었지만 속 사정이 어찌 되었건 가주 승계는 방금 이루어졌으니까.
다른 가문이라면 가주로서 해야 할 업무 등등을 인계받고 서류도 보고, 앞으로 가문을 어찌 이끌어 갈지 공부해야 할 테지만.
난 대업이 끝날 때까지 목숨만 붙어 있어도 기특한 희생양이라~
“이제 진짜 시작이다, 이거야.”
이 거지 같은 망겜에서 나도 바라고 날 이곳에서 보낸 레이첼도 바라는 건 단 하나.
완벽한 해피 엔딩.
하렘 엔딩!
딱 기다려, 케인. 너 꽃밭 깔아주고 난 탈출한다. 메인 파티 성질머리도 내가 고치고 만다.
“도, 도련님 절 버리시고 가면 어떡해요…….”
“뭐래? 잘만 자더니.”
난 어느새 날 찾아내 옆에 붙어 울먹거리는 루나를 밀어내곤 케인을 가둬둔 지하실까지 내려갔다.
게임 할 때 본 회상으론 아델리안이 경매장에서 살 때 종속의 마법을 걸어서 겉으론 순종적으로 만든 뒤 부렸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내가 지금 그랬다간 케인의 복수 대상에 올라갈 게 뻔해서 그냥 데려왔더니 꼴이 말이 아니다.
그새 더 늘어난 상처를 보니 여기서도 어지간히 저항했나 보다.
“눈에 힘 좀 풀지? 네 눈빛으로 사람 죽일 수 있었으면 벌써 타 죽었겠지만 넌 인간이잖아.”
바실리스크 혼혈도 아닌 이상 눈빛만으론 어찌할 수 없단 걸 알면서도 오금이 저린 눈빛이라 애써 괜찮은 척 하며 말을 걸었다.
“변태 새끼. 난 남자다.”
“알아, 이 미친놈아! 무슨 생각하는 거야?”
난 평범하게 여자 좋아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여자 캐릭터가 네 미래의 마누라인 건 아냐?
그럼에도 널 하렘 엔딩으로 밀어주려는 이 오타쿠의 마음을 오해하지 마!
“뭔가 오해가 있나 본데, 난 그런 쪽으로 널 산 게 아니야.”
난 애써 진정하곤 팔다리가 묶인 채 돌바닥에 널브러진 케인의 앞에 의자를 가져와 앉았다.
재수 없지? 알아. 근데 난 절대 너에게 얕보여선 안 되거든.
무재능 무능력한 아델리안의 몸과 평범한 게임 오타쿠가 할 만한 최대의 작업은 허세와 사기지.
넌 잘 걸렸어, 나에게.
“난 네가 원하는 게 뭔지 잘 알아, 케인 레이너스. 마지막 생존자.”
순간 케일의 눈이 커지며 몸부림쳐 내 쪽으로 기어온다.
“내 이름. 어찌 알았지?”
“눈빛으론 날 못 죽인다니까 케인. 그리고 네가 물을 말은 그게 아니지. 어찌 알았냐가 아니라. 너에게 뭘 원하냐.”
나는 의자에 앉은 채로 몸을 조금 숙여 내 발끝까지 기어온 그에게 낮게 말했다.
“네 원수가 누군지 알아, 케인. 내가 그들을 죽일 수 있게 도와줄 테니 거래를 하자.”
“거래?”
“그래, 거래. 나는 널 강하게 만들어 줄 테니 너는 최고가 된 뒤 모든 일이 끝나면 나에게 충성해라.”
허튼소리라는 듯 미간을 모으는 케인의 얼굴에 난 덧붙여 입을 열었다.
“아, 물론 네 성격에 진짜 충성은 기대도 안 할 테니 겉으로? 너는 강해질 수 있는 기회를 서포트 받고 나는 최고란 타이틀을 가질 수 있고.”
원하면 신의 계약서를 쓰자. 하고 속삭이는 말에 케인의 어깨가 떨렸다.
계약을 어기는 사람에겐 신의 징벌을.
“이해할 수 없어. 난 아직 생일 전이라 어떤 재능을,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나조차 모르는데 네 말을 믿으란 말이냐?”
“내가 왜 네 풀네임을 알까. 네 과거를, 네 바람을, 네 원수를 어찌 알고 있을까. 그것들을 아는데 왜 내가 네 가능성을 못 알아봤을 거란 생각을 하지?”
저 의심병자에게 굽신거리고 난 널 선의로 돕고 싶다 아무리 떠들어봐야 귓등으로도 안 들을 것이다.
진심은 통한다. 이런 거는 저놈에겐 안 통한다. 믿는 사람마다 족족 통수 맞고 생체 실험도 당했는데 믿긴 누굴 믿어.
그냥 나는 신비롭고 뭔가 있는 놈이고 저놈은 무언가 알고 있고 거래를 하면 얻는 것이 있다는 쪽으로 가는 게 훨 낫지.
믿음과 진심이 아닌 거래와 이용.
불알친구가 아니라 사업적 파트너. 그게 나랑 저놈에게 어울리는 관계다.
나는 수많은 영화 등에서 봐온 흑막의 느낌을 어떻게든 연기하며 태연하게 웃었다.
“난 누구보다 강한 사람을 원해. 내 가문을 그 누구도 무시하지 못하게 만들 예정이야. 그렇다면 대륙 최강만이 내 기사로 합격이겠지.”
그런데 지금 알려진 대륙 최고라는 사람들을 생각해봐. 어딘가의 왕실 기사, 탑의 주인. 요정의 반려.
“그들을 어느 세월에 가문의 것으로 데려오지? 그냥 키우는 게 더 빠르지 않을까?”
난 매드 사이언티스트다. 나는 흑막이다. 나는 살짝 돌아버린 이상주의자다.
내가 가진 사상은 삐뚤어졌고 나는 정상이 아니다. 그러므로 내가 하는 말은 함정이라기보단 어긋난 진심이다.
믿어라, 케인. 믿어. 신의 계약서도 있잖아. 절대 너에게 손해 볼 짓은 아니야.
“네 말을 믿을 수 없다.”
X새끼! 나는 깨질뻔한 미소를 애써 유지하며 눈을 마주했다.
“왜지?”
“난 강하지 않으니까.”
대놓고 얼굴로 ‘내가 강했다면 그 일은 없었겠지’ 하고 말하지 마라, 이 주인공아.
어차피 혼자서 무슨 짓을 해도 강해져서 복수할 생각만 하면서.
“아니. 넌 강해. 정확하겐 강해질 예정이지. 내가 널 그렇게 만들 테니까. 네가 지금 할 일은 딱 하나.”
난 의자에서 내려와 케인의 앞에 고개를 숙여 귓가에 속삭였다.
“단 한 번. 나를 인정하면 된다. 네 미래를 맡길 스폰… 아니, 서포터로.”
어감이 좀 이상해서 단어를 냉큼 바꾼 뒤 웃었다.
“뭐?”
“너는 진다는 걸 인정하지 않아. 패배도 실패도 부정하지. 하지만 말이야, 사람이 발전하려면 한번은 자존심이나 의지를 꺾어야 하거든.”
그래야 불굴이란 트레잇이 없어지니까.
내 말 좀 들어라. 나도 이러고 싶진 않았어. 진심.
“그래서 난 널 꺾으려 들 거야. 난 네가 얼마나 잘 버티는지 보는 게 아니야. 내 말을 기억해 딱 한 번이야. 한 번만 널 놓아. 말하는데 절대로 나는 널 그냥 괴롭히는 게 아니야.”
무슨 말인지 모르겠단 얼굴을 하는 케인을 보며 나는 손짓했다.
인마, 너 천재 트레잇 있잖아.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무슨 소릴 하는지 다 알면서.
역시 정신 좀 이상한 흑막 느낌으로 위장하길 잘했다. 그래야 내가 앞으로 하는 일도 그냥 쟤는 생각하는 게 정상이 아니야 하고 퉁 칠 수 있을 테니.
“앞으로 죽기 직전까지 물도 주지 마. 그리고 잠도 재우지 말고.”
어이가 없단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케인에게 미리 챙겨온 신의 계약서를 흔들다 벽에 붙였다.
“내 이름 보이지? 내 이름 한 번만 부르면 끝나.”
케인이 자지 못하게 감시할 병사와 바톤 터치 하며 감옥 문을 닫고 걸어 나갔다.
“도련님… 진짜… 도련님 맞아요? 너무… 무서워… 저 아이가 불쌍해요…….”
저 소심쟁이가 울먹울먹하면서도 그냥 실컷 발로 차고 끝내라느니 밥을 못 먹는 건 너무 끔찍하다느니 말하는 걸 보니 미래의 신랑은 신랑이다?
난 요 며칠 난폭하게 굴지 않아서인지 말도 잘 거는 루나를 보다가 상냥하게 웃었다.
“그럼 루나가 오늘 나올 당근 케이크 포기할래?”
“…네?”
순간 할 말을 잊었는지 정지한 루나를 버리고 걷자 뒤늦게 정신 차린 듯 내 팔에 매달리며 ‘포기 할게요오…’ 하는 그녀를 난 밀어냈다.
응, 이미 늦었어.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