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46)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46화(46/373)
챠비드.
가장 넓지만 가장 척박한 나라.
늘 떠돌며 생활하는 유목 문화와 더불어, 그만큼 자유로운 분위기 덕에 생겨난 모계 중심의 사회.
그래서 대륙과는 언제나 가치관이 달랐고 중요시하는 부분도 달랐으며 애초에 대륙의 중심인 인간들은 늘 챠비드의 수인들을 차별해 왔다.
애초에 아인족이라 부르며 하나의 종족 취급을 해준 것도 고작 이삼백 년 정도. 그전까진 말이 통하는 가축 취급을 한 적이 더 오래니.
수십, 수백 년간 이어진 증오의 고리.
그것이 다시 터지는 것도 예상치 못할 일은 아니었으나.
‘왜 하필 지금…….’
루나는 분홍색 입술을 질근 물었다.
“그 건방진 인간은 뭐야? 왜 감히 챠비드로 데려온 것이고? 우리 수인의 긍지 따윈 팔아버리고 인간족에게 붙은 건가? 설마 우리의 성물이나 성지를 노리고 온 건 아니겠지?”
타고 온 거대 양, 메이들은 풀을 뜯게 조금 먼 곳에 풀어 둔 뒤, 아델리안과 조금 떨어져 걸어온 곳에 있는 바위에 걸터앉아 캐묻는 산양족 출신의 부족장.
그녀의 가로 동공이 줄어들며 루나를 노려봄에 루나의 어깨가 더 움츠러들었다.
“그런… 게 아니에요…….”
부족의 크기와 강한 전사의 수에 따라 나뉘는 으뜸 부족과 버금 부족.
왕이란 절대적 권력이 없는 챠비드에선 5곳 이하로 유지되는 으뜸 부족과 10개 이하로 유지되는 버금 부족의 권위가 하늘을 찌르는 만큼, 소심함이 아직 다 사라지지 않는 루나로서는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자신이 여기서 곧이곧대로 ‘네’만 반복하고 기세에 밀려 어물거린다면 아델리안에게 자신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짐이 될 수는 없어……’
“도련님은… 저와 함께 저희 부족에 가는 중이었을 뿐입니다……. 성지나 성물 같은 건, 그런 건 상관없어요.”
조근조근 울리는 루나의 말에 산양족이 코웃음을 쳤다.
“그걸 어찌 믿지. 그 뺀질뺀질 오만한 인간 놈이 마음에 들지 않아. 믿음도 가지 않고. 게다가 요즘 챠비드의 분위기가 안 좋으니 네 잘난 주인을 위해서라도 그냥 돌아가.”
“하지만… 도련님은 좋은 분이세요. 그런 우려는…….”
“인간들은 영악하고 자기만 아는 종족이야. 5년 10년을 같이 지낸 이들도 자신의 이익에 따라 속이는 게 다반사지. 너도 속고 있는 거라면? 그렇게 집에 가고 싶으면 너 혼자 들어가.”
산양족이 다리 하나를 굽혀 바위 위로 자신의 발굽을 올리며 하는 말에 루나가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저 여자가 뭐라구 도련님을 욕하는 거지?’
마음에 안 들어…….
으뜸 부족의 부족장이면 단가?
묘하게 치밀어오르는 반항심에 루나가 입을 열었다.
“싫어요. 왜 저희에게 이러세요? 적어도 무슨 문제인지는 말씀해 주셔야죠.”
“뭐?”
“그렇잖아요. 도련님의 말대로 상인들 정도는 드나듦에 제약이 없을 게 뻔한데. 지금 으뜸 부족장님께서 하시는 일은 다른 으뜸 부족과 상의가 된 일인가요? 아니면 단순한 화풀이이신가요?
아델리안이 봤다면 ‘광분이 문제냐, 추종이 문제냐!’ 하고 읊조렸을, 말 잘하는 루나 강림에 산양족 여자가 의외라는 듯 고개를 기울이다 입을 열었다.
“화풀이? 참 나… 그래, 화풀이로 볼 수 있겠지. 좋아. 네겐 설명해 줘도 될 문제니. 듣고 나면 생각이 바뀔 수도 있고. 챠비드의 사막이 70여 년 전부터 넓어지고 있는 것은 알고 있겠지?”
루나가 끄덕임에 산양족이 손을 한쪽으로 내밀자 표범 무늬가 피부에만 떠 있는 표범족이 냉큼 물주머니를 손아귀 위에 올렸다.
“우리는 얼마 전 그 사막의 중심에 인간족이 드나들며 무언가 마법적 연구를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들이 사막화를 부추기는 것 같더군. 우리가 이렇게 척박하게 사는 게 인간들 때문이란 소리야.”
“게다가 부족장님, 그것도 말씀하시죠. 요즘 노예사냥이 더 심해졌다는걸.”
중간에 표범족 남자가 부추기듯 얹은 말에 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셨던 산양족 여자가 손등으로 입가를 훔치며 말했다.
“맞아. 게다가 요즘 노예사냥이 기승을 부려. 심해도 너무 심해. 인간족 놈들, 한 번씩 챠비드로 들어와 사냥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젠 들어오는 모든 인간들이 사냥꾼으로 보일 정도야.”
“상단으로 들어온 이들은 짐이 많아 이동이 느려 파악이라도 쉽지만 저렇게 서넛이서 들어와 아이들만 몇 명 잡아가는 것들은 쉬이 잡지도 못해.”
산양족과 표범족 외. 뒤에 서 있던 다른 수인족들까지 눈빛이 흉흉해지며 살기가 번졌다.
“그놈들, 나이가 많거나 자기들 관점에서 상품 가치가 없는 수인은 그 자리에서 전부 죽이지. 그뿐 아니라 말이나 양, 염소 같은 가축도 씨 몰살을 시키고 조금 키우는 농산물을 전부 불태운다.”
원래도 인간족들은 챠비드보다 훨씬 풍요로운 대륙에서 살았으면서 이제 이 척박한 땅을 더욱 척박하게 하는 것도 모자라 아이들을 납치하고 잔인하게 늙은 수인족들을 죽이며 그들의 재산과 땅을 불태우고 있었다.
“그 덕에 굶어 죽는 동족들이 얼마나 는 줄 알아? 식량을 전부 수입 중이지만 인간놈들은 우리 사정을 알고 가격만 처올리고 있어!”
“이젠 팔만한 다 큰 양이 없어서 곡식을 사기는커녕 작은 양을 잡아먹지 않으려 애쓰는 시국이다. 미래를 위해 먹는 입을 줄이려 노인들이 굶는 부족도 있다더군.”
분노에 찬 그들의 외침에 루나의 어깨가 다시 줄어들다 말고 애써 휘청거리는 몸을 바로 세우며 떨리는 목소리로 루나는 다시 변호했다.
“안타까운 일이에요. 맞아요, 비극이죠. 그런데 그게, 그게 우리 도련님과 무슨 상관이죠? 도련님은 다만 저와 같이 제 가족들을 보러 온 거라구요.”
케인이 고향에 갔을 때 루나도 자신의 부모님, 동생들을 떠올렸다.
그걸 알아챈 아델리안이 준 기회. 자신의 부족으로 가 전통 요리도 같이 먹고 부모님과도 인사 하고, 그런 즐거운 시간을 기대했는데.
루나가 어쩐지 눈과 코가 찡해지는 기분에 킁 하고 숨을 들이마시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노예사냥? 식량의 부족? 다 큰일이고 마음 아픈 일인 건 알지만 우리 도련님이 잘못한 건 아니잖아요. 우린 그냥… 집에 가구 싶었단 말이에요.”
루나가 작은 몸을 바들거리며 겨우 숨을 토해 내듯 하는 말에 몇몇 맹수류 수인족의 눈에 불이 켜진 듯 안광이 희번덕하게 돌았다.
“감히 인간의 편을 들어?”
“대륙으로 나가더니 더러운 물이 들었구나. 동족이 아닌 인간에게 너무 물이 들었어.”
맹수류 수인족의 살기에 초식류 중에서도 유독 여린 토끼족이 쉬이 견디기는 힘든 일.
하지만.
‘차라리… 그 미궁속 트롤이 더 무서워……!’
루나는 겁에 질려 바들바들 떨기만 하는 대신 호흡을 가라앉히며 몸을 곧게 세웠다.
여기서 자신이 숙이면 그 빌미로 아델리안에게 어떻게 굴지 모른다. 어쩌면 좋은 말로 그들이 처음부터 사정을 이야기한 뒤 아델리안에게 양해를 구했다면.
‘도련님은 다정하니까.’
루나 자신만 괜찮다 했다면 뒤로 물러나 다음 기회에 다시 오자고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저들이 먼저 압박하고 핍박했으며 하지 않은 일을, 앞으로 할 일도 없는 일을 빌미로 이리 나온다면…….
‘물러서면 안 돼. 도련님을 위해서.’
작은 입을 앙다물고 살짝 한쪽 발을 앞으로 내밀며 무게중심을 언제든 바꿀 수 있도록 엄지발가락에 힘을 주는 그 순간, 루나의 귀로 희미한 소리가 들려왔다.
“가라, 케인몬.”
“뒤에 붙은 건 무슨 개소리지.”
탓, 탓!
허공에 생성한 파츠 실드를 밟는 소리.
이내 쾅! 하고 하늘에서 케인이 떨어지며 바닥을 크게 짓밟곤 루나의 앞에 서냈다.
“갑, 갑자기 위에서?”
“뭐냐. 저쪽에 있던 것 아닌가?”
순간 하늘에서 떨어지듯 강림한 케인의 모습에 다른 수인족이 무기를 꺼내 들며 긴장하는 순간 손뼉소리가 들렸다.
“크, 히어로 랜딩.”
“도련님…….”
루나가 슬쩍 고개를 돌린 곳엔 오만한 듯 아름다운 얼굴로 웃는 아델리안이 걸어오고 있었다.
* * *
“토끼 선배님… 괜찮으시겠죠?”
나는 걱정스러운 제로의 목소리에 입가에 검지를 대고 쉿, 한 다음 고개를 돌렸다.
“쟤네들 뭐래.”
“요즘 사막이 커졌다는군.”
“또?”
“거기에 노예사냥이 성행한다고 말하고 있다.”
역시 만능 케인이네.
처음엔 이곳에 나와 케인, 제로를 감시하는 수인족 둘을 빼고 다들 우르르 멀리 떨어져 루나를 데려간 덕에 그쪽 상황을 알 수가 없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핸드폰 녹음을 하고 통화 켜놓고 몰래 대화하는구나 깨달으며 얼른 세이렌을 보급화해야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하던 찰나.
혹시나 하고 케인에게 들리냐 물었더니 케인에몽 왈, ‘너는 안 들리나’ 하는 게 아닌가.
하, 얄미운 주인공놈… 다른 이들도 다 지처럼 신체 능력 우수한 줄 아나.
하여튼 그 덕에 나는 우리를 감시하는 수인족이 못 듣게 최대한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리고 지금은?”
“인간들 탓을 하고 있군.”
그리 말하는 케인이 묘한 표정을 짓는다.
“우리가 하지 않은 행동을 비난하고 있군.”
이거… 소 뒷걸음치다 쥐 잡는다고.
툭하면 인간이, 인간놈들이. 인간이 죄다 하던 케인이였으나, 남들이 저러는 걸 보니 생각이 좀 바뀌는 건가.
그래, 네가 봐도 모든 인간을 한데 묶어 싸잡아 비난하니까 좀 꼴사납지?
앞으로 나쁜 놈은 나쁜 놈, 착한 이는 착한 이. 종족에 구애받지 않고 색안경 없이 볼 준비를 하게 되냐? 어?
내가 흐뭇하게 케인의 얼굴을 분석하는데 순간 표정이 굳어진다.
“살기를 뿜으려 하는군. 아니, 지금 뿜었다.”
“예? 그럼 큰일 아닙니까?”
“뭐? 아니, 루나 저 조그만 애 하나를 두고 무슨 짓거리야.”
나는 살짝 찡그리곤 먼 곳에서 봐도 그들이 루나를 압박하는 것 같은 순간 아공간에서 바로 코덱스를 꺼냈다.
“가라, 케인몬.”
“뒤에 붙은 건 무슨 개소리지.”
한 번의 힘을 무의미하게.
“으아……!”
나와 제로를 낚아챈 케인이 허공을 차올리듯 반투명한 파츠 실드를 밟자마자 사라지고 다시 내가 위치를 예상해 생성한다.
귀에서 후웅 후웅 바람 소리가 들렸다.
“그, 어딜 가는 거야! 거기 서!”
“뭐야? 하늘을 날아?”
뒤늦게 우릴 지키던 수인족이 뒤따라 뛰지만 이미 한참이나 멀어진 후.
중간에 제로와 날 안전한 뒤쪽에 떨군 케인의 앞으로 한 번 더 파츠 실드를 생성하자 강하게 밟곤 크게 도약하여 케인이 루나의 앞에 착지했다.
무릎을 꿇으며 힘을 분산하는 그 완벽한 히어로 랜딩에 내가 손뼉을 안 칠 수가 없다 진짜.
“도련님…….”
“루나, 어깨 펴.”
우리가 뭐가 꿇린다고 기죽어? 어깨 펴.
나는 루나와 케인을 중심으로 반원 그리듯 거리를 채며 무기를 든 수인족들을 보며 느리게 웃었다.
“수인족들은 셋을 상대로 열둘이나 무기를 드는 게 예의인가 봐?”
아직 아무 능력이 없는 제로에게 파츠 실드를 걸고 뒤로 빠지라 손짓한 뒤 빈정거리자 예상대로 저들이 발끈한다.
“어딜 인간족이 우리 일에 끼어들지?”
“계속, 인간족 인간족 하는데. 좀 꼴사납지 않아? 개도 자기 집 마당에서 반은 먹고 들어간다지만 밖에서는 찍소리도 못하면서 자기네 나라 안이라고 아직 죄도 없는 우릴 핍박하고 말이야.”
“감히 누굴 모욕하느냐!”
“모욕은 그쪽이 먼저 했지. 곱게 지나가는 여행자를 둘러 싸고 돌아가라며 핍박하는 으뜸 부족이라. 챠비드의 자랑스러운 전통인가 그런 게?”
케인아, 잘 봐라. 사기와 갑질은 인간족이라고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지능이 있으면 하는 거야.
내 말에 얼굴이 붉어진 산양족이 노성을 지른다.
“말로 해선 안 되겠구나. 이리 오만하고 교만하며 제멋대로라니. 게다가 무얼 믿고 이리 뻣뻣하지?”
누굴 믿긴 케인을 믿지.
내가 웃으며 코덱스를 띄운 그대로 부족장과 눈을 마주하자 그녀가 이를 으득 갈아낸다.
“혹시 사냥꾼들과 접점이 있는 건 아니겠지? 역시 우리 부족으로 끌고 가야……!”
분노에 차 땋은 머리가 부들거리는 족장이 다시 손 쇠뇌를 겨눔에 나는 느리게 입을 열었다.
“그 사냥꾼들. 대충 뒷배가 누군지 아는데.”
“뭐?”
순간 뛰어나오려 한 듯 폭발적으로 굵어진 표범 사내의 허벅지가 줄어든다.
“그들이 어떤 단체인지 안다니까?”
“…그걸 어찌 믿지? 지금 상황을 모면하려는 수작 아닌가?”
당하고만 살았나. 아, 요즘은 당하고만 살았겠네.
나는 파라락 페이지가 넘어가던 코덱스를 탁, 닫곤 케인과 루나에게도 손짓해 먼저 겨눈 무기를 걷어내게 하며 입을 열었다.
“우리, 좀 더 제대로 된 공간에서 제대로 된 대화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은데 어찌 생각하지?”
너희, 악신 교단이라고 들어는 봤나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