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5)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5화(5/373)
“트레잇을 확인한 이후로 며칠 잠잠하다 싶었더니 더 심해진 거 같아. 차라리 방을 엉망으로 부수는 게 낫지…….”
“원래 사람을 때리거나 모욕은 줬지만 그래도 누굴 죽인 적은 없었는데 이번엔…….”
앳된 목소리가 겁에 질려 살짝 떨린다.
아무리 듣는 이 없는 곳에선 황제도 쉬이 입에 오르락내리락한다곤 하나 엄연히 이곳은 크루거 가문의 성.
알카이도는 낮게 헛기침하곤 복도의 모서리를 돌아 바닥을 닦던 하녀들에게로 걸어갔다.
“앗! 알카이도 집사님…….”
“저 그게…….”
발소리에 뒤를 돌아본 하녀들의 얼굴이 벌게졌다.
“엘리스 시녀장에게 말해 둘 테니 반성하거라.”
“용서해 주세요, 알카이도 님!”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어요.”
하녀들 사이에서 드레이크라고 불리는 시녀장을 입에 올리자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자신을 따라와 애원하는 시녀들을 뒤로한 알카이도는 살짝 미간을 좁혔다.
‘크루거 가문의 수치.’
할 줄 아는 것이라곤 사치와 행패뿐인 크루거 가문의 망나니.
어렸을 때부터 그러했다. 껍데기뿐인 부친의 사랑만 믿고 안하무인에 그 어떤 것에도 재능을 보이지 못한 건.
나름 아델라인 그 자신도 노력해 본 적은 있었다. 유명한 기사, 마법사. 하다못해 저 밀림의 주술사까지 초빙해 가르쳤으나 제나 뒤떨어진 둔재.
그 사람의 가장 확고한 가치관, 기질. 어떤 것에 특별한 재능이 있는지 어떤 것이 그 사람을 이루는 근본인지.
그것을 모두가 알 수 있도록 신이 내려준 자비.
성인식이 되면 귀족도 평민도 모두가 공평하게 행하는 의식 후 확인된 건 모두의 예상대로 크루거 가문이 아니었다면, 그 태생이 귀족이 아니었다면 없었을 트레잇만 타고 태어난 자.
결국 신이 확인 한 일이다.
그 어떤 것에도 특출한 재능이 없으며 타고난 운명도 기질도 없음을.
‘아무리 가주께서 결정하셨다곤 하지만…….’
성인식 이후 충격을 받아 정신을 차렸나 생각할 정도로 한동안 조용하더니 술을 마시고 사용인들에게 행하는 폭력도 모자라 노예를 사와 학대할 정도로 망가진 이가 대륙에서 가장 부유한 가문을 이끌 자격이 되는가.
그래서 알카이도는 방금 통신구로 온 전언에 기대했다.
‘가디아 아가씨가 돌아오신다.’
비밀리에 이루어진 가주 승계라곤 해도 그 모두에게 비밀로 할 수는 없는 법.
비록 가디아도 이 거대한 크루거 가를 이끌기엔 약간의 약점이 존재하지만.
‘그건 얼마든지 보완 가능한 문제니까.’
통신구로 날아든 전언들을 아델리안에게 전하기 위해 알카이도는 지하의 감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좋은데 이거.”
이곳에 떨어진 이후 제일 마음에 들었던 건 첫 번째는 잠자리요, 두 번째는 음식이었다.
몸이 한없이 가라앉을 것 같이 푹신하면서도 허리가 아프지 않게 몸을 지탱하는 침대는 아마도 마법이 걸린 게 아닐까 싶었을 정도로.
그리고 이 빵.
윤기 나는 갈색의 단단한 껍질은 두껍지 않아 입에 넣으면 파삭 부서지고 그 안의 하얀 속은 결대로 찢겨 부드럽지.
돈이 넘쳐나는 크루거 가문이라서 그런지 향신료를 적당히 써서 구운 송아지 스테이크는 입에서 살살 녹고 말이야.
이상하게도 조금씩 강수호였을 때의 내가 희미해진 기분이다. 그래서인지 김치나 라면 같은 현대의 자극적인 음식보다 이곳 음식이 더 맛있는 거 같기도 하고.
[아델리안 수호 크루거―만금의 소유자]대표 Traits : [금력(SS)] [오만(S)]
히든 Traits : [부유감(S-)] [사용자의 눈(SSS)]
나는 계승식 이후 변화된 내 트레잇을 보며 송아지 스테이크를 꿀꺽 삼켰다.
역시 기분 탓은 아니네. 부유감 트레잇에 ‘-’가 붙어 있다.
저게 날 이 세계에 이질감을 느끼게 하고 과몰입하지 못하게 하는 트레잇 같은데 완전히 없어지면 난 어찌 될까.
게다가 금력도 올랐고. 아마 SSS가 아닌 SS가 붙은 건 전 가주인 카이만이 따로 가지고 있을 재산 때문인 거 같고…….
그의 호칭이었던 ‘만금의 조율자’ 와는 달리, 내가 ‘만금의 소유자’가 된 건 딱히 가문의 일에 깊이 관여하지 않아서일 것이다.
대륙의 경제가 어찌 돌아가는지 내가 어찌 알겠어?
그나저나 이렇게 루나와 나만 맛있는 것으로 입이 즐거우니 마음 한쪽이 좀 찔린다.
난 고개 돌려 하얀 귀를 나풀거리며 무언가를 삼키고 있던 루나에게 입을 열었다.
“오늘 며칠째지?”
내 메이드라기엔 슬슬 먹이 주며 데리고 다니는 애완 토끼족이 되어 버린 거 같은 루나가 입 안 가득 빵을 집어넣다 깜짝 놀라 하얀 귀를 파닥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므… 므가어?”
“다 씹고 말해. 며칠째냐고, 물만 준 게.”
나랑 겸상하더니 어느새 내 밥도 잘 뺏어 먹는 먹보 토끼에게 웃으며 말하자 루나가 순간 목이 메는지 가슴을 쾅쾅 치다 입을 연다.
“으음, 5일째요……. 그런데 도련님. 사람이 5일간 아무것도 안 먹었는데 살 수 있어요? 어쩌면 이미…….”
“도련님 아닌데 이제. 그나저나 5일째라… 슬 확인하러 가볼까?”
“아, 맞다. 가주님 …네?”
나는 냅킨으로 입을 대충 닦곤 아직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수프 한 접시를 들어 루나에게 건넸다.
“그거 들고 따라와.”
무얼 착각했는지 나와 수프를 번갈아 보다 감동한 얼굴로 따라오는 루나.
‘글쎄, 네가 생각한 그게 아닐 텐데.’
벌써부터 미래의 서방에게 정이 들었는지 저렇게 얼굴이 활짝 핀다 펴.
어찌나 미리 알고 도망가는지 감옥으로 가는 동안 사용인들 하나 만나지 않아 제법 이르게 도착했다.
형식상 감옥을 지키는 병사에게 저리 가라는, 아니지 나는 나쁜 놈이니까.
얼른 저리 꺼지라는 의미로 사납게 한번 눈짓하곤 감옥 문을 열었다.
그리고 보이는 건 시체같이 미동 없는 바닥의 인영.
“히익! 도련님…….”
…설마 죽은 건 아니지?
“하아… 너… 너……!”
비쩍 마른 입술은 피딱지로 가득하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충혈된 눈 하나는 실핏줄이 터졌는지 완전히 붉어져 황금색 눈동자가 번들거렸다.
누가 보면 지옥에서 기어 올라온 악귀인 줄 알겠어. 놀래라…….
난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표정 관리하곤 의자를 발로 끌어 케인의 앞으로 다가가 앉았다.
“내가 말했잖아. 넌 진짜 쓸데없는 고집과 아집이 가득하다고.”
과장되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난 진짜 너에게 투자해서 이득 좀 보고 싶어. 난 정말 네가 대륙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해.”
날 노려보다가도 힘이 없어 고개를 툭 떨구는 케인의 뒤통수를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다 다시 고개가 올라옴에 얼른 눈빛을 뒤집었다.
야, 주인공… 미안하다. 이게 다 널 위해서야, 레알.
“솔직히 너도 인정하지? 네가 아주 고집불통에 눈앞의 사실도 마음에 안 들면 부정하고 가진 건 없이 자존심만 세서, 그거 하나 남아서 지랄하는 거.”
히죽히죽 웃으며 말하니 명치를 얻어맞은 것처럼 눈빛이 흔들린다.
그래, 네가 모를 리가 있냐.
너 원작이든 게임이든 인간 불신에 자존심만 세서 손해 보는 일인 걸 알고도 한 거지, 어디가 모자라서 그러고 다닌 건 아니잖아. 안 그래?
“자존심이 밥 먹여줘? 자존심이 마나를 올려줘? 아니면 어디서 포션을 구해 줘? 넌 말이야, 그 쥐뿔도 없는 자존심. 마음먹은 건 안 바꾸는 그 멍청함 때문에 인생 망할 놈이야. 알아?”
내가 합의금이 무서워서 욕 하나 안 쓰고 키배하던 사람이야. 원작 읽을 때도 너 면전에서 이러고 싶었는데 꿈을 이룬다 야.
“뭐가 문제야? 솔직히 너도 알잖아. 내 말의 진의가 무엇이건 내 의도가 무엇이건 결국 신의 계약서 한 장이면 너도나도 배신할 수 없다는 거.”
그거에 사인만 하면 강해질 수 있는데. 그 기회가 눈앞에 있는데도 붙잡지 않는 건 아집이다.
불굴.
그게 문제지. 자신의 힘으로 오롯하게 강해져서 복수하고 싶다는 그 생각, 몇 번이고 처음부터 다시 읽고 다시 플레이한 내가 어쩌면 인생 1회차인 너보다 더 잘 이해하고 있을걸?
“배고프지? 어때 먹여 줄까?”
대놓고 충성 맹세를 하란 것도 아니라 내 이름을 한 번 부르거나 내가 행하는 호의를 받는 것.
그게 뭐가 그렇게 힘들어.
난 식었음에도 먹음직한 냄새를 풍기는 수프를 루나에게서 빼앗아 케인의 눈앞에서 찰랑찰랑 흔들었다.
“…꺼져.”
저 지독시리 말 안 듣는 똥개 같은 놈. 내가 너 진짜 망가뜨려서 부술 거였으면 후유증 없는 약물이라도 썼다 진짜. 알아?
내가 어? 너 곱게 키워서 어? 장가보내려고 이 자식아.
나는 바르르 떨리는 입꼬리를 다시 올리곤 수프는 바로 원샷 때린 뒤 그릇은 옆으로 던졌다.
“하긴 좀 약했다. 그렇지? 한 달은 더 굶은 다음에나 갈등할 텐데 너라면… 그렇지?”
살아있다면 말이지, 이 똥개 놈아.
나는 웃으며 약지에 자리한 크루거의 반지를 엄지 손가락 끝으로 매만졌다.
아주 가늘게 양각된 문양, 그 끝을 힘주어 누르곤 옆으로 밀듯 움직이자 문양이 새겨진 반지의 가운데 부분만 작은 요철음과 함께 드륵 회전한다.
혈계 마법이 걸린 아티팩트답게 맨 위로 오는 문양마다 배정된 아공간의 물품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 같다.
그중 각종 마법 시약 및 마나석만이 배정된 공간을 열어 반지를 낀 손을 허공에 비집어 넣어선 이내 주먹만 한 마나석을 꺼냈다.
마나석에서 흘러나오는 은은한 빛이 경악한 케인의 얼굴을 하얗게 물들였다.
“그건…….”
“이 정도는 되어야 군침이 좀 고여?”
작은 성 하나와 가치가 비슷할 그것을 나는 사과처럼 던졌다 받으며 흔들었다.
“파격 세일. 지금 말만 하면 이거 너 준다. 그럼 바로 밥 먹고 힘내서 흡수하는 거지. 넌 내일이면 마나 소드를 쓸 수 있을지도 몰라. 어때?”
내 손이 흔들리는 방향으로 케인의 눈동자도 움직인다.
내 말이 들리는 것인지 아닌지 한참이나 내 손을 좇던 그 시선이 내 등 뒤에서 멈추고 이내 눈을 질끈 감는 모습에 내가 결국 승질이 뻗쳐서 한마디 하려는 순간 감옥 문이 열렸다.
“아델리안 님. 통신석으로 전언이 들어왔습니다.”
지금 살짝 넘어왔던 거 같은데 이걸 이렇게 망쳐? 미치겠네, 진짜.
나도 모르게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돌려 알카이도를 노려보았다.
“내가 분명히 아무도 감옥에 들어오지 말라 한 거 같은데 알카이도.”
“가디아 아가씨께서 귀환하신다는 전언입니다.”
가디아의 이름을 듣자마자 뻗치던 열은 삭고 목이 서늘해진 기분에 큼큼 소리를 내곤 찡그리며 일어났다.
“누나가 돌아온단 소리가 꼭 지금 당장 날 기다리지 못하고 여기서 할 정도의 가치가 있는 정보야?”
“제가 생각하기엔 그렇습니다.”
겉으론 공손하게 한쪽 가슴에 손을 올리고 허리를 약간 숙이고 있던 알카이도가 고개를 들어 나와 눈을 마주했다.
“몇 시간 안 되어 도착하실 테니 말입니다.”
“…….”
몇 시간… 몇 시간?
나도 모르게 고개 돌려 케인을 바라보았다.
분명 가디아는 남자라는 이유로 남동생만 편애하는 아버지와 그 편애를 등에 업고 날뛰는 동생. 그리고 자신의 아름다운 외모에 홀려 추근대던 사람들 덕에 남자를 싫어하지만…….
딱 한 명.
케인은 보자마자 사랑에 빠졌지. 자신을 바라보는 눈이 무감각한 남자는 처음이라며.
여기서 중요한 건 가디아는 케인을 보자마자 사랑에 빠졌다는 것이고 처음 하는 사랑에 폭주하며 가문이고 뭐고 다 바쳤다는 것이다.
동생인 아델리안의 목을 날려서.
“알았어. 마무리하고 갈 테니 문이나 닫고 나가.”
난 애써 여상스레 행동하며 손을 저어 알카이도를 물리곤 손아귀에 쥐고 있던 마나석을 케인 눈앞에 내려 팽이처럼 빙글 돌렸다.
“방해받았네. 그렇지? 케인, 내가 널 괴롭히는 거라 생각해?”
아, 물론 물만 주며 잠 안 재우는 건 괴롭히는 게 맞긴 한데.
이게 다 너 잘되라고 하는 일이야, 인마.
“억지로 네 입에서 원하는 말을 들을 생각이었으면 마약이라거나 환각제라거나 좋은 게 많지 않겠어?”
물론 허락해 주면 당장…….
낮게 뒤잇는 내 말에 흉흉하게 눈을 부라리는 걸 보니 안 되겠다.
“내가 진짜 큰 거 바라니? 네 자존심이 만금보다 가치 있는 건 너뿐이야, 케인. 복수하고 싶다며. 그런데 손에만 피를 묻히고 다른 곳은 깨끗한 채로 너 혼자 고아하게 살겠다?”
너 진짜 이기적인 아이구나?
물도 죽지 않을 정도로만, 수면도 제대로 취하지 못해 한계에 다다랐을 케인의 눈이 흔들린다.
“그래서 이게 필요 없단 말이지?”
난 팽이 돌듯 빙그르르 돌던 마나석을 손가락으로 툭 짚어 멈춘 뒤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난… 나는…….”
초췌한 케인의 얼굴. 나는 그를 내려보며 발을 올리곤 이내 힘차게 마나석을 밟아 깨트렸다.
콰직!
“도, 도련님! 으아앙! 마나석이!”
누가 알까. 이 정도 크기의 마나석이 이렇게나 쉽게 부서진다는 것을.
스스로 빛을 내던 것이 산산이 부서지며 점차 그 빛이 죽어가더니 몇 번 명멸하곤 이내 사방으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나는 나보다 더 아까워서 방방 뛰는 루나를 못 본 체하며 마나석의 빛이 꺼져서일까, 아까보다 더 거멓게 죽어가는 얼굴을 한 케인에게 웃음을 던졌다.
“나도 필요 없어, 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