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53)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53화(53/373)
“난 또 뭐라고. 이 정도 조건이면 얼마든지 사인하지. 클클.”
나는 느리게 웃으며 신의 계약서를 다시 받았다.
“그럼요. 제가 불안증이 있어서 서약받은 것일 뿐입니다.”
마법인지 식은 꼬치 위를 발부스가 손으로 몇 번 어루만지더니 얼핏 김이 모락모락 피어난다.
나는 발부스가 그것을 뜯어 먹을 동안 계약서를 다시 읽었다.
사실 내용은 별것 없었다. 간단히 정리하면 이 정도려나.
1. 내기, 혹은 도박의 대가는 끝나기 전까지 지불하지 않으며 계속 다음 판으로 이전된다. 단 이 경우 2배로 계산되며 완전히 끝난 후 최후의 패자가 최후의 승자에게 지불한다.
2. 여기서 대가의 지불이라 함은 발부스는 아티팩트. 아델리안은 금화로 계산한다.
3. 내기, 혹은 도박은 아델리안이 포기할 때까지 진행한다.
4. 둘 중 대가를 지불할 능력이 없는 단계까지 판돈이 올라갔을 경우 그 자리에서 내기, 혹은 도박은 끝이 난다.
5. 내기 혹은 도박의 종류는 발부스가 정하며 그것은 변동되지 않는다.
“이거 너무 맛있군. 특히 이 소스가……! 그나저나 나에게 불리한 게 없어 사인하긴 했다만. 왜 저런 조건이 필요한지 모르겠어.”
입가에 소스를 묻히고 뒤늦게 발부스가 의문을 표함에 나는 선한 얼굴로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제 별명이 라베스의 망나니입니다. 도박도 당연히 많이 해봤지만 역시 도박의 짜릿함은 판돈의 크기에서 나오죠. 아시잖습니까?”
내 말에 발부스가 고개를 끄덕인다.
“이쪽이 한 번 이기고 저쪽이 한 번 이기고 해봐야 판돈의 위치만 바뀔 뿐, 진정한 도박은 부담을 등에 이고 해야 제맛이죠.”
사실 따져보면 발부스에게 나쁜 조건으로 보일 것이다. 특히 1번이. 왜냐하면 발부스가 이길 때마다 돈을 얻는 경우 그는 100번 중 1번만 지면 99번의 판돈을 버는 거지만, 내가 제시한 방법으로 하면 그는 100번 중 마지막 한 번만 져도 99번 동안 쌓인 대가를 치러야 하니까.
허나 내 말을 받아들인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도박의 재미를 위함이나 사실 그가 빚쟁이이기 때문이다.
개념 글에 올려진 영상. 누군가 기적 5연방으로 얻어낸 그 영상에서 나왔었지. 발부스는 도박쟁이가 아니라 빚쟁이라고.
그가 그 많은 아티팩트를 가지고 있음에도 이런 토굴에 사는 이유.
그건 이름 모를 신과 한 도박에서 졌기 때문이었다. 이 좁고 어두운 토굴에서 가끔 들어온 사람들과 도박해 얹은 것으로 연명하거나 그 빚을 갚아 나가는 생활.
그걸 못해도 수백 년은 했을 테니 발부스는 자신의 도박 실력에 자신도 있겠다. 내가 제법 부유해 보이니 나를 거 하게 털어먹을 생각이겠지.
물론 발부스가 방심왕인 것도 사실이고.
“그리고 한두 번 제가 진 다음 발부스님께서 재미없다고 안 한다 하시면 제가 너무 억울할 테니 넣은 조항입니다. 제가 포기하거나 제가 파산하거나. 그전까지는 계속하는 것으로.”
“뭐, 어린 인간. 네가 파산하기 전에 포기한다고만 한다면 내 양심은 괜찮겠군. 클클클. 그럼 마지막에 내가 정한 종목으로 하되 변동하지 않는다는 건?”
“저는 기껏 좀 익숙해지려는데 발부스님께서는 많이 해본 도박이라 질린다고 바꾸시면 안 되니까요, 하하. 이 정도는 봐주세요. 발부스님에 비하면 초짜 아닙니까.”
어차피 내가 건 조건 중 1번 외에는 발부스가 손해 보는 게 없고 1번도 발부스는 나에게 질 생각을 안 하니까 괜찮다.
여차하면 져줄 생각을 할지도 모르지만 제법 자존심이 강한 편인 데다.
[발부스 아리베이크―도박에 중독된 고대 요정]대표 Traits : [도박(SS)] [손놀림(S+)] [행운(A)] [눈썰미(A-)]
히든 Traits : [자만심(S)] [수영(F)]
붙기도 힘든데 올리기는 더 힘든 행운까지 A라면 초반에 지려야 질 수 없을 터.
이노센트 사가에서 발부스를 만나면 뜨는 게임은 총 3가지.
하나는 주사위 게임. 하나는 발부스가 내주는 몬스터를 잡는 배틀 게임. 그리고 마지막은.
“그럼 시작하죠. 도박.”
“좋아. 종목은 카드로 하지.”
카드 게임.
자잘한 규칙이 몇 개 있긴 하지만 쉽게 말하자면 발부스가 설명한 카드 게임은 이노센트판 블랙잭이었다.
딜러 대신 아티팩트를 이용해 카드를 한 장씩 받아 확인한 뒤 킵하거나 패스해서 콩콩… 아니 22를 만드는 게임.
수백 년을 도박에 빠진 발부스를 내가 제대로 해서 이길 확률은 없지.
내 숨소리, 눈짓. 하다못해 심장 박동으로라도 내 패를 알 터.
“그럼 시작하지. 카드 게임 아티팩트를 발동시키겠다. 그리고 마나에 걸고 맹세하지. 카드를 내가 조작할 일은 없을 거야.”
발부스, 그는 도박쟁이지 사기꾼은 아니었으니 나름 최대한 공정한 조건으로 시작한다 말하지만.
‘애초에 실력이 사기야, 실력이.’
나는 속마음을 숨긴 채 기대된다는 얼굴을 했다.
“그럼 카드 받겠습니다.”
* * *
처음 이곳에 와서 발부스와 도박을 한다 말할 때까지만 해도 루나나 제로는 대놓고 걱정스러운 얼굴을, 케인은 티는 안 나지만 계속 내 곁에 있던 것으로 보아 케인도 걱정했나 본데.
‘나쁜 아이들이구만.’
내가 신의 계약서를 꺼내자마자 토굴방 바로 옆에 이어진 작은 공간에서 자기들끼리 모여 앉아 대화 중이다.
“그럼 내가 하단으로 낮게 박차면?”
“피하는 대신 정강이를 눌러 꺾으면 될 것 같은데.”
“선배님, 이번 향신료 블랜딩은 향이 어떻습니까?”
얼핏 들어보면 루나와 케인은 몸 대신 말로 대련 중인 거 같고.
제로는 내가 준 향신료 통을 애지중지 껴안고 향신료를 섞다가 대화에 종종 궁금한 걸 묻는 모양.
‘외로운 싸움이다. 진짜.’
나는 카드를 받아 나만 보이는 각도로 윗부분을 조금 굽혀 숫자를 확인했다.
‘8.’
지금 내 패가 11, 7, 8이니 22에는 너무 벗어난 상황.
패스가 한번 있으니 패스하고…….
“패가 안 좋은 모양이구만, 클클클.”
“하, 영 운이 안 따라주네요.”
최대한 포커페이스를 유지한다고 해봤지만 발부스의 눈썰미를 피할 수가 있나.
1골드부터 시작한 판돈은 7판이 지난 지금 64골드.
신의 계약서를 쓴 탓인지 정확한 골드의 숫자가 우리 둘의 머리 위에 떠 있었다.
일반인에겐 큰돈이겠지만 나나 발부스에겐 적은 돈.
“아, 또 졌네요. 24 대 22라니. 이번엔 아깝네.”
“클클클. 이게 연륜이지. 계속하자고. 아직 괜찮지?”
테이블 위의 카드를 긁어모아 다시 딜러 아티팩트에 넣는 발부스의 얼굴이 싱글벙글하다.
내가 포기하지 않았기에 64골드는 아직 발부스의 이득도, 나의 손실도 아닌 상태로 다음 판이 되어 128골드의 판돈이 걸렸다.
“킵, 패스, 킵.”
“이런, 졌습니다.”
“클클클클!”
역시 도박쟁이 발부스. 이름 모를 신에게 진 빚을 갚는 것보다도 도박 그 자체의 재미에 빠진 모양.
카드로 22를 맞추는 게 쉬운 것 같으면서도 어렵다.
일반적인 트럼프 카드가 아닌 이 대륙에서 쓰는 카드라 무늬도 5종류에 무늬마다 점수 계산이 다르다.
몇 종의 무늬로 무슨 숫자로 22에 가깝게 만드느냐에 따라 고하도 다르니.
‘뉴비 이겨서 좋냐, 고인물이 너무하네.’
분명 지려고 시작한 초반 게임이긴 한데 슬슬 열 받네?
나는 한 판 한 판 이길 때마다 입이 째지는 발부스를 보며 부들거렸다.
“또 졌습니다.”
“이제 판돈이 너무 큰데, 클클 그만 포기하지그래.”
연기가 아니라 조금씩 진심으로, 발부스를 한번 엿먹이고 싶어진다, 정말.
“무슨 소릴, 다음 판 가시죠.”
나는 카드를 받아 슬쩍 확인했다. 5종의 카드 무늬 중 가장 품계가 높은 무늬의 카드.
거기에 딱 한 장 들어 있는, 1 혹은 10으로 해석되는 일종의 조커 카드와 10, 11카드.
이 게임에서 나올 수 있는 최고 패.
‘하필 지금, 진짜.’
나는 살짝 미간을 모은 뒤 입을 열었다.
“패스.”
안 그래도 발부스의 행운이 A등급인 이상 여기서 한 번 나에게 좋은 패가 들어왔다면 계산상 나에게 좋은 패가 다시 들어올 일은 한참 뒷일 것이다.
이번 판돈은 8,192골드.
이젠 슬 귀족이라도 한 번에 쓰기엔 부담스러운 금액.
하지만 저거 먹자고 내가 여기 왔을 리가.
‘등비수열이라고 알려나 몰라.’
강수호일 때 알던 잡다한 지식 중 이런 설화가 있었다.
체스판 위의 쌀알 이야기.
체스를 좋아하던 왕이 한 소년에게 진 대가로 소원하나를 들어준다 하자 소년은 이리 말했다.
체스판의 첫 칸엔 한 알 그다음 칸엔 두 알. 네 알, 여덟 알.
이런 식으로 체스칸 64칸을 채워달라고.
흔쾌히 주겠노라 대답한 왕은 이내 신하들이 왕국에 그런 능력은 없다며 난리 치는 이유를 바로 짐작하지 못했다고 한다.
‘참고로 64칸까지 간 뒤의 쌀알은 18,446,744,073,709,551,615알이며 한 4천 톤 된다고 하지?’
“졌습니다.”
“아, 또…….”
“도련님… 이거 드시구 하세요.”
중간에 루나가 아티팩트 반지를 받아가더니 직접 짠 과일주스와 간단한 샌드위치를 내 앞에 놓아준다.
나는 주스를 원샷하며 비장하게 입을 열었다.
“다음 판, 가시죠.”
“끄응…….”
이제 슬 안색이 미묘해진 발부스. 나는 그를 보며 느리게 웃었다.
“슬 포기해. 알고 있잖아. 인간 아이야, 너는 나에게 못 이기는데 말이야. 응?”
슬쩍 나를 위해 말한다는 듯 회유에 들어간 발부스를 보며 나는 일부러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무슨 소리냐는 듯 입을 열었다.
“저와 계약서 작성하셨잖습니까.”
“그건 그렇지만. 슬 부담스럽지 않니? 인간아, 너 그러다 다 털린다.”
나는 웃으며 신의 계약서를 팔랑거린 뒤 잘 보이게 들고 한 곳을 짚었다.
3. 내기, 혹은 도박은 아델리안이 포기할 때까지 진행한다.
“끄응!”
지금 판돈은 32,768골드.
어찌 보면 적은 돈이나 이 상태로 2판만 더 진행해도 금액이 확 달라진다.
131,072 골드.
단순 계산으로 1골드를 10만 원으로 잡았을 시 130억.
‘이제 시작이네.’
나는 이제 받는 카드를 패스하지도 않고 확인하지도 않은 채로, 딜러 아티팩트가 주는 순서 그대로 3장을 테이블에 엎은 뒤 팔짱을 꼈다.
“뭐, 뭔가?”
“아, 너무 져서 말입니다. 그냥 해서는 도저히 이길 방도가 안 나서요. 제 수도 다 읽히는 것 같으니.”
나는 빙글빙글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냥 안 보고 걸겠습니다.”
“자네 미쳤나? 그러다 파산한다니까. 이미 금액이 어마어마해!”
발부스의 안색이 파리하게 질린다.
“발부스 님이 손해 보실 거는 없잖아요.”
그에 나는 무대포 망나니처럼 굴며 의자를 뒤로 까닥거렸다.
‘쫄리겠지.’
이런 식으로 운에 맡겼다간 100번 중 99번은 발부스가 이길 것이다.
하지만 그냥 하면 100의 100. 발부스가 이기겠지.
발부스의 행운이 높다 하나 트리플까진 아니니 단 한 번 내가 이기는 순간이 오긴 할 것이다.
혹은 계속 내가 져서 발부스가 파산해 버리거나.
전자는 승리. 후자는 대승리.
그때까지 내 골드가 버티나 발부스가 가진 아티팩트의 가치가 버티느냐의 승부.
어지간하면 발부스가 이기겠지만. 도박사는 누구보다 확률 계산에 빠르다.
단 한 번, 내가 끝까지 버티고 버텨 단 한 번만 이기는 순간.
혹은 내가 끝까지 버텨 발부스의 아티팩트보다 판돈이 올라가는 순간.
‘발부스는 다 털리는 거지.’
내 당당한 태도에 계산을 마친 듯 발부스가 입가를 파르르 떨었다.
발부스는 아티팩트, 나는 골드로 대가를 한정한 이상 건물이나 보석, 마정석이 아닌 골드가 나에게 얼마나 있겠냐 이거지.
“굳이 파산하겠다면야! 좋아 후회하게 만들어 주마, 인간 꼬맹이!”
카드를 쥔 발부스의 손이 빨라졌다. 한 판 한 판 빠르게 진행해 금액을 어서 키우고 나를 침몰시키겠단 의도가 얼굴에 뻔히 드러난다.
‘하지만 저것도 함정일 거야.’
발부스는 무모한 도박사가 아니다. 저런 모습마저 냉철하게 계산해 나를 떠보는 거겠지만.
‘난 금력만 믿고 간다.’
나는 여전히 보지도 않고 테이블에 카드를 내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