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55)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55화(55/373)
드드드득 하는 진동음과 콰직거리는 파열음.
나는 그 불길한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으나 이미 토굴 안쪽은 토사가 무너져내린 듯 길이 막혀 있었다.
젠장, 발부스에게 이런 능력이 있었나?
“뛰어!”
나는 크게 소리친 뒤 토굴 밖을 향해 뛰기 시작했으나 머리 위로 주먹만 한 토사 뭉치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급히 코덱스를 꺼내 파츠 실드를 연달아 사용했지만 중간에 채우지 않았기에 몇 장 남지 않아 금방 아웃.
“아델리안 님 조심하세요!”
제로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돌이 섞인 토사가 떨어진다. 그에 내가 움츠렸고 동시에 케인이 검을 꺼내 토사를 쪼갰다.
“케인! 도련님이 다치지 않게 부탁해!”
케인은 나를, 루나는 제로를 들어 업고 입구까지 뛰기 시작한다.
내 발로 뛸 때보다 배는 빠른 속도,
중간중간 떨어지는 토사와 돌을 케인이 쳐내며 입구 밖으로 뛰어나옴과 동시에 내 얼굴로 뜨거운 피가 튀었다.
“뭐, 뭐야.”
크륵?
발부스가 안개 밖에 몬스터를 깔았나?
토굴 밖으로 나오자마자 만난 몬스터를 케인이 반으로 갈라냄에 내 얼굴에 튄 피를 소매로 훔치며 고개를 드는데 순간 보이는 수많은 몬스터의 무리.
지평선까지 차있는 이들은 마치 군대처럼 보였고 수는 기천, 아니 기만에 달하는 것 같다.
“그락?”
“끼유융…….”
“킁, 킁킁!”
나는 안개 안과 밖이 보이기에 망연자실했다.
절대 다 죽일 수 없는 수. 아무리 케인이라도 중과부적.
안개를 뚫고 근처로 오는 몬스터를 케인이 연신 목을 가르거나 하다못해 기도를 베어 소리를 막으며 움직였다.
“조용히 해.”
케인의 말에 제로는 자신의 입을 막아 소리를 죽였고 케인도 천천히 날 내려놓으며 검을 들고 내게 눈짓한다. 마치 안전한 길로 인도 하라는 듯이.
하지만…….
‘이게 무슨…….’
사방을 둘러봐도 온통 몬스터, 몬스터 무리뿐. 나는 일단 몬스터와 몬스터 사이. 그 좁은 길을 찾아 몸을 움직이며 머리를 굴렸다.
생각, 생각하자.
내가 아는 발부스의 능력으로는 이만한 몬스터를 부릴 수 없다. 게다가 발부스가 불러낸 몬스터라면 안개와 상관없이 우리를 발견했을 터.
하지만 지금은 우왕좌왕 두리번거리는 걸 보니 저 몬스터들도 안개에 갇힌 형상이다.
거기에 발부스의 콜로세움에 나오는 몬스터와는 확연히 다른 종류. 그 말이 의미하는 바는.
리자드맨 오크, 우드 골렘이 아닌, 몬스터 박람회라도 온 듯 온갖 종류의 몬스터들.
고블린, 코볼트 같은 소형종부터 트윈 헤드 오우거나 바실리스크, 어스 웜 같은 대형, 초대형 몬스터까지.
분명 같이 있으면 서로 싸우거나 잡아먹을 몬스터들이 한곳에 모여 있는 이유는 짐작하긴 어렵지만…….
‘발부스, 그놈. 몬스터의 무리 중심으로 유적을 옮겼군.’
원래 발부스의 유적은 랜덤 생성이다. 한곳에서만 리젠되는 게 아닌 챠비드의 평원 어딘가에 안개가 깔리고 그 중앙에 나타나는 방식.
그 말은 발부스의 마음대로 유적의 위치를 금방 옮길 수 있단 소리.
그래서 우리가 말을 묶고 들어 온 평원이 아닌 몬스터로 가득 찬 황무지 같은 곳에서 나온 것이다.
‘너무 과신했어.’
발부스의 아티팩트 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까지 대가로 잡으면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계약서에 사인하지 않을까 봐 아티팩트만 넘겨받은 조건을 건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발부스를 죽이는 것도 마찬가지. 어쨌건 발부스는 기억을 빼앗고 아티팩트를 착취하는 악덕 NPC긴 했으나 이노센트 사가에선 누군가를 죽인 적 없으니 이 정도로 악독할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으므로.
‘너무 게임 속 정보를 과신했다.’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자신이 애지중지하던 모든 것을 빼앗겼으니 날 죽여서라도 찾으려 한다고 예상할 수 있었겠지만.
부유감은 이곳이 현실이 아니란 그 미묘한 기분이 들게 함과 동시에 죽음이나 실패에 대한 불안을 줄여주는 대신 이런 부작용이 있는 것이다.
토굴로 돌아가려 해도 토굴이 사라졌다. 이곳에 남은 것은 우리 네 명과 희뿌연 안개.
그리고 수천, 수만에 달하는 몬스터 무리. 저 지평선까지 거대 몬스터의 실루엣이 보인다.
시간이 지나니 안개가 조금씩 흐려진다. 사방을 고개 돌려 바라보니 원래 우리가 들어간 입구가 아닌 다른 곳에서 나온 듯 거대한 화산과 더불어 협곡으로 이어진 황무지 같은 평원.
어디로 이동해야 하지?
그나마 몬스터 무리의 정중앙은 공간이 나지 않았는지 외각에 가까운 곳이었던 덕에, 나는 일단 최대한 몬스터가 적은 방향으로 안갯속에서 내가 길잡이를 자처해 움직이며 맞닥뜨리는 몬스터는 케인이 소리 없이 죽였다.
하지만 안개의 공간은 이곳의 몬스터를 모두 가둘 만큼 크지 않았으니 탈출하려면 결국 몬스터들의 시야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렇지 않고 머물러 숨을 돌리고 계획을 다시 짜려 해도 시시각각 안개는 옅어지는 상황.
‘발부스, 다시 만나면 그 값을 톡톡히 치르게 해주지.’
내가 입술을 질근 거리며 아공간 속으로 손을 넣었다.
이 안개는 발부스가 부린 마법의 산물. 그러니 안갯속에서 이동 스크롤을 쓰는 것은 도박이다.
마법으로 이루어진 안개니 좌표를 찾아야 하는 이동 스크롤의 특성상 주위에 특수한 마나가 일렁이면 좌표가 제대로 잡히지 않을 확률이 높으니까.
그러니 안개 밖으로 나가는 순간 찢어야 한다. 안개를 이루는 마나에 방해받지 않고 스크롤이 좌표를 찾을 수 있도록.
‘발동되는 데 1분 남짓이었나.’
가문에서 혹여 암살자를 보내면 도주하기 위해 초반에 챙겼던 랜덤 텔레포트 스크롤.
추적될까 봐 좌표를 고정으로 설정하지 않고 땅속이나 바닷속. 하늘 위에서 떨어지지 않게 도착할 곳의 위험을 미리 스캔하는 기능을 넣은 덕에 일반적인 이동 스크롤보다 대기 시간이 긴 편.
‘1분 정도는 암살자들 무리가 와도 케인과 루나가 날 지켜 줄 수 있을 거로 생각했지만.’
이 수많은 몬스터 무리 안에서 그게 가능할까?
나는 시선을 움직여 차가운 얼굴로 나에게 등을 보인 채 사방을 경계하는 케인과 굳은 얼굴로 내 앞과 옆을 지키는 루나, 그리고 내 뒤에 숨은 제로를 바라보았다.
믿는 수밖에.
“케인, 루나. 잘 들어. 안개 밖으로 나가면 이동 스크롤을 쓸 거야. 발동에 걸리는 시간은 1분이고.”
“지켜드릴게요, 도련님.”
머뭇거리지도 떨리지도 않은 목소리로 말하는 루나.
“1분이군.”
여상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케인.
“저도… 도움이 되고 싶은데… 죄송합니다.”
나는, 사실 몸만 크지 따지고 보면 갓 태어난 아이나 다름없는 제로를 괜찮다는 듯 도닥였다.
나는 그들을 믿고 숨을 고른 뒤 안개 밖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우리의 냄새를 맡은 몬스터들의 수많은 눈이 우리에게 쏠리는 그 순간.
스크롤을 찢었다.
아니.
찢으려 했다.
―크아아아!
귀가 아닌 뇌리로 강타하는 포효소리.
“크르르……!”
“꾸우으, 낑……”
순간 모든 몬스터들이 경의를 표하듯 엎드리거나 피를 토하며 주저앉았고 루나는 귀를 막으며, 케인 또한 휘청거리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이것도 부유감 때문인가.
거대한 몬스터들이 납작 엎드린 가운데, 오롯하게 나만이 이 자리에 우뚝 서 천천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내 영역에 이질적인 마나 구역이 생겨 와 봤더니. 보이는 것은 건방진 인간이로군.
소리가 아닌 사념.
귀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뇌에 꽂히는 그것은 소리가 아닌 개념, 그 자체였다.
나는 전율이 흐르는 몸을 부여잡고 붉은 눈동자와 눈을 맞췄다.
그 거대한 동체는 공기를 밀어내지도 않고 허공에 고고히 떠 있다 조용히 협곡 중앙으로 내린다.
루비 속에 빛무리를 박아 넣은 듯 짙게 빛나는 붉은 몸체. 긴 꼬리와 거대한 피막 날개. 붉은색의 갈라진 뿔.
나는 이것이 무엇인지 안다. 실제로 본 적은 없으나 나는 저 존재를 잘 알고 있다.
그것은 숨 쉬는 것 같은 본능에 가까운 깨달음이었다.
“드래곤…….”
마나 감응력이 없는 아델리안의 몸으로도 알 수 있었다.
안개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마나의 밀도. 몸이 저릿저릿한 것이 이게 드래곤 피어인가.
그것은 방사형으로 저 드래곤의 몸에서 뿜어져 나와 보이지 않는 파도처럼 우리를 휩쓸고 있었다.
지금 상황에선 스크롤을 찢어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을 터.
“아우… 으…….”
루나가 괴로워하는 소리가 나직하게 내 귀를 파고듦에 나도 모르게 걸음을 움직여 루나와 케인의 앞을 막아낸다.
곧이어 아주 조금 편해지는 숨소리.
‘내게는 피어가 통하지 않아.’
오우거나 바실리스크 같은 대형종의 몬스터마저도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리는 피어를 버티고 서있는 데다 몸을 움직여 일행을 피어의 범위에서 가리기까지 함에 드래곤이 나를 응시했다.
―감히 나를 똑바로 보는구나. 나 레피드를. 한낱 벌레 새끼가.
압박감.
그 지독한 옥죔. 숨쉬기 불편한 마나의 흐름이 내 몸을 감는 기분에 나는 최대한 심호흡하며 천천히 몸을 낮췄다.
보이는 모습만 해도 아파트 한 채는 될 만한 크기. 발로 지그시 우리를 밟기만 해도 물리적으로 우린 터져버릴 것이다.
공포, 그 두려움은 내 몸을 찰나에 스치고 사라졌다. 누군가 강제로 두려움을 느끼는 부분을 숟가락으로 파낸 것처럼.
―분명 하찮은 인간일진대 내 피어를 견디는구나. 거만하구나, 벌레야. 거슬리고 거슬리는 도다. 영광으로 알라. 이것에 네가 소멸하는 것을.
나와 마주한 그 눈동자에 짙은 혐오가 깔린다.
‘오만함!’
생각지도 못한 트레잇이 발목을 크게 잡았다.
아니, 오만함이 아니라도 어차피 용서는 없었겠지.
이게 드래곤마저도 어그로를 끈단 말인가. 하긴 드래곤이니 효과가 더 클지도 모른다. 존재하는 그 누구보다도 오만함으로 뭉친 생물이니.
쏟아지던 피어가 빨려 들어가듯 협곡 쪽으로 사라지더니 이내 드래곤의 목 아래쪽이 옅게 빛난다.
나는 사방에서 옥죄던 마나가 사라짐과 동시에 급하게 손에 든 스크롤을 찢었다.
옅게 웅웅거리며 스크롤을 중심으로 생성되기 시작한 포탈.
남은 시간은 60초!
“케인, 정신 차려.”
루나는 이성을 잡기 힘든 듯 웅크려 꼼짝도 못 하고 있고 제로는 그런 루나를 지키듯 안고 있었다.
드래곤의 피어를 이리도 가까운 곳에서 직격당했으니 온몸이 저려 제대로 움직이기도 힘들겠지.
거대한 몬스터들조차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있고 작은 소형 몬스터 중엔 피를 토하고 죽은 것들도 보일 정도니 숨을 쉬는 게 다행인 상황.
하지만 케인, 너는 달라야지. 너만큼은 달라야지.
너는 내가 믿는 주인공이니까.
“…명해라.”
케인이 비틀거리며 일어난다. 그 눈은 핏물이 번졌음에도 황금색으로 빛이 났다.
“루나와 제로를 챙겨.”
케인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나중엔 드래곤조차 상대할 수 있다 해도. 지금은 고작 초반의, 이제 검을 들기 시작한 상태.
일어나는 것.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임을 나 또한 잘 알고 있지만 지금 믿을 것은 케인뿐.
비틀거리며 입에서 흐른 피를 손등으로 닦은 케인이 결국 기절한 루나와 벌벌 떠는 제로를 안아 든다.
한껏 마나를 삼킨 드래곤의 목이 붉게 빛나고 천천히 입이 벌어졌다.
―소멸하라.
남은 시간 20초? 10초?
순간 사방이 느려진 기분. 뇌가 뜨거워지는 감각과 동시에 빠르게 생각이 정리된다.
‘이대로는 안 돼.’
그냥 스크롤을 쓰면 브레스와 함께 이동될지도 모른다. 내가 가진 목걸이로 1회를 버틴다 해도 같이 이동한 여파만으로 우린 전부 몰살.
거기에 드래곤의 브레스를 목걸이가 얼마나 버틸지도 의문이지만 목걸이와 브레스가 만나 퍼질 마나의 파동이 텔레포트 스크롤을 교란한다면?
나는 고개 돌려 케인과 루나, 제로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그래, 주인공은 원래 죽지 않는 법이지.
“아델리안!”
무언가를 느꼈는지 케인이 나를 향해 다급하게 소리침과 동시에 나는 스크롤을 그의 옷자락에 끼워 넣고 목걸이를 뜯어 쥐며 내게로 쏟아지는 브레스 앞으로 몸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