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56)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56화(56/373)
품에서 끄집어내려 했던 스크롤은 양손의 짐 덕에 한끝 늦어버렸다.
붉은색의 브레스로 인해 붉게 빛나던 금발.
그 등 돌린 모습을 끝으로 공간은 이지러졌고 온몸이 한번 비틀렸다 돌아온 곳은 온통 녹음뿐.
인간의 발길이 오랫동안 닿지 않은 곳인지 부엽토로 무른 바닥은 점점 꺼져 이내 케인의 발목까지 들어갔다.
“하.”
“거짓말. 거짓말이죠, 선배님…….”
풀썩!
루나와 제로를 바닥으로 버리듯 팔을 풀어낸 케인의 눈이 허공을 노려보았다.
케인은 바닥에 버려진 루나를 당겨 안고 눈물을 흘리는 제로를 인지하지도 못한 듯 허공을 노려보다 짓씹듯 입을 열었다.
“인정할 수 없다.”
아델리안의 능력과 그곳의 상황. 그 모든 것이 찰나에 케인의 머릿속에서 정리되었다.
생존률 0%.
이미 이성으론… 살아남았을 리 없다. 그러니 남은 이들을 살리려면 이곳의 정보를 빨리 파악하고 이동해야 한다고 그리 생각했지만.
케인은 저도 모르게 손을 들어 허공을 어루만졌다.
느껴지긴 하나 그 실체가 검보다는 불확실했던 마나.
손끝에서 오롯하게 느껴지는 그 단단함에 매료되었기에 케인은 마나 대신 검을 들었으나.
천재.
그는 천재였으며, 그 모든 것에 재능이 있었으므로.
그리고 지금 누구보다도 갈망함으로.
마나는 물이고 불이요, 바람이며 땅이고 빛이며 어둠이었다.
지금은 바람이겠지.
꽉 막힌 방 안에 아주 작게 창을 열면 실낱같은 바람이 들어와 피부를 스치듯, 케인은 본능적으로 아직 포탈이 덜 닫혔음을 느꼈다.
그 좁디좁은 곳에서 비져나오는 황무지를 느꼈기 때문에.
“적어도 나만큼은.”
나만큼은 돌아가야지.
그의 기사이므로.
몸이 갈갈이 찢겨나간다 해도 문을 열어야지. 그것이 맹세이므로.
눈이 보이지 않는 소경이 그 끝만 더듬어 단면의 차이로만 수십 수백 개의 퍼즐을 맞추듯, 케인은 손끝에 오러가 아닌 마나를 입혀 아직 닫히지 않은 포털의 입구를 강제로 잡아냈다.
단 한 번의 실수면 손가락뿐만 아니라 몸 전체가 마나의 격류로 무너져 내릴지도 모르지만, 설사 이미 아델리안이 죽었다 해도. 그 온전한 시신조차 없다 해도.
자신은 돌아가 그 끝을 확인해야만 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케인이 닫힐 듯 닫히지 않고 열릴 듯 열리지 않는 그 틈을 조금씩 찢어내며, 억지로 마나를 거슬러 쥐어 잡고 있는지 얼마나 지났는가.
“여긴… 어디…….”
“토끼 선배님…….”
루나가 깨어나고 그녀의 체온이 숲의 습기와 서늘함에 빼앗기지 않게 보호하던 제로가 입을 열던 순간.
끊길 듯 끊기지 않고 흘러나오던 황무지의 마나가 아닌 불의 마나가 케인의 손끝에서 겨우 잡혀 있던 포탈을 찢어내며 그들을 감싸 올렸다.
* * *
도박 수.
할데론 지방의 영주가 가보로 지니고 있다가 경매장에 팔았던 그 펜던트.
모든 공격을 단 1회 막아주는 귀물이라고는 하나 과연 레드 드래곤의 브레스마저 막아 줄 것인가.
얼마 전까지 손에 쥐고 놓지 않던 도박의 끝자락이 날 떠나기 전, 한번 행운이 통했을까.
목에 걸고 있던 펜던트를 낚아채듯 쥐고 루나와 케인을, 제로를 살리기 위해 그 앞으로 나선 순간.
그리고 레피드의 주둥아리에서 나온 파이어 브레스가 날 덮친 순간.
번쩍!
눈앞이 먹먹해지는 빛과 함께 손아귀에 쥐어져 있던 펜던트가 모래처럼 바스러지는 느낌이 났다.
그리고 동시에 후폭풍에 케인이 사준 실드 아티팩트가 웅웅거리며 연달아 발동하더니 그것마저 바스러질 때쯤.
강한 압력과 굉음으로 귀까지 먹먹해지고 눈과 귀가 망가진 것처럼 빛인지 어둠인지, 내가 서 있는지 바닥에 구르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나는 겨우 숨만 몰아쉬는 채로 몸을 떨었다.
―미천한 벌레 놈이!
소리가 아닌 사념이라 내게 분노하는 레피드의 의지가 고스란히 내 몸으로 떨어지는 가운데.
개미 수천 마리가 눈앞을 지나가고, 전구 수천 개가 내 눈앞에서 제각기 다른 속도로 꺼졌다 켜짐을 반복하는 것 같은 가운데.
시야가 조금씩 뿌옇게 흐려지듯 초점이 느리게 잡히면서 드디어 색을 구분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을 때쯤, 떠낸 눈앞에서 붉은 무언가가 흔들리고 있었다.
“멍청…한대…니?”
뭐라고 하는 거지.
그나마 고막이 완전히 파열된 건 아닌지 웅웅거리는 잡음과 섞여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를 방해하지 마라!
분노한 레피드의 목소리.
그리고 겨우 돌아온 감각에 의하면 바닥에 뒹굴던 내 몸이 한번 퉁겨 올라갈 정도로 강한 충격파가 한 번 더 내 몸을 덮쳤고 그에 나는 콜록거리며 무언가 진득한 것이 섞인 기침을 연신 토해 냈다.
“빌어먹을 놈아. 네가 정리해. 얼른.”
“어딜 치는 것인가!”
“콱! 인마! 어딜 마룡병에 걸려서. 이게 미쳤나 정말.”
“경박한 말투하고는… 아니, 윽! 악!”
손끝부터 저릿저릿한 게 몸 어디가 단단히 고장 난 느낌.
포션이라도 마시고 싶었으나 레피드가 있는 한 내 의지와 상관없는 죽음이 기다리니 숨을 고르는데 순간 더운물에 빠진 듯 온몸에 온기가 확 돌더니 시야가 깨끗하게 변했다.
‘누가 고전 짤 빨아 왔나.’
이런 시답잖은 생각이 스칠 만큼. 마치 조금 전까지 사실적인 악몽이었던 것처럼, 혹은 꿈에서 깬 듯, 혹은 상념에서 빠져나온 듯 숨쉬기가 편하고 시야가 맑으며 먼 곳에서 부는 바람 소리까지 귀에 잡혔다.
나는 몸을 일으키며 고개를 들어 내 눈앞에 서 있는 두 인영을 바라보았다.
긴 적발을 높게 묶었는데도 종아리까지 내려오는 여자와 반대로 짧은 적발의 사내.
여자는 몸에 달라붙어 활동성을 높인 무투복을 입고 있고 사내는 온갖 화려함을 모아 빚어낸 것 같은 옷을 입었다.
둘 다 부유감 트레잇이 있는 내가 눈을 감는 게 아깝단 생각이 들 만큼 아름다운 외형.
“흐응… 이유는 알겠군. 지금 무슨 상황인지 모를 텐데도 저런 오만한 눈빛이라니.”
“감히 벌레엑. 으윽.”
“끝까지 이러네. 레피드. 넌 벌로 봉인 걸어 둘 테니 한동안 인간으로 살아 봐, 그럼.”
“아니, 못해도 서클은 더 풀어 줘야지! 이러면 힘이……!”
여자가 중얼거리다 나를 벌레라고 부르려던 이의 발을 짓밟아 비비듯 발목을 돌리는 것을 보며 나는 마른 침을 삼켰다.
[레피드―마룡왕이 되고 싶은 드래곤]대표 Traits : [드래곤(SSS)] [오만(S)] [마룡병(B)]
히든 Traits : [농업(S)] [접목(S)] [레이첼―&*^]
레이첼을 본 순간 레이첼이 내 쪽으로 고개를 휙 돌리더니 성큼성큼 걸어온다.
나는 오류 난 듯 깨진 트레잇 창을 치우며 나보다 한 뼘은 더 커 보이는 레이첼을 올려보았다.
“방금 뭐지? 뭔가… 아닌가 착각인가. 되게 익숙한 뭔가가 있었는데.”
살짝 눈을 가늘게 뜨고 허리에 손을 올린 뒤 고개를 조금 숙여 나를 바라보는 그 붉은 눈에 나는 시선을 피하지 않고 눈동자를 마주했다.
“…누구십니까.”
“짐작할 텐데? 그나저나 사과할게. 내 동생이 마룡병에 걸려서 지상 최악의 마룡이 되겠다느니 뭐니 하며 몬스터를 마구잡이로 모으던 중이라 거기에 휘말린 것 같은데.”
털털하게 씩 웃는 레이첼.
상상이나 일러스트와는 비교도 안 되는 파괴력에 내가 대답하지 못하고 서 있는데 레이첼이 굽혔던 몸을 바로 세우며 2m 가까이 되는 키로 나를 내려보았다.
“일단 몸은 리커버리를 썼으니 괜찮을 거야. 그리고…….”
레이첼이 고개를 돌려 허공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다시 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시답잖은 인간은 아닌가 봐? 꽤 인망 있네. 레피드!”
“아, 왜 부르는 건가.”
“그런 고리타분한 말투는 집어치우고 당장 이리 와.”
레이첼이 눈에 쌍심지를 켜며 손가락으로 바닥을 쿡쿡 찌르듯 가리킴에 레피드가 투덜거리며 걸어왔다.
뻑!
“나이 처먹고 헤츨링 때나 걸리는 마룡병에 걸려서 잘하는 짓이다, 정말. 몬스터는 당분간 협곡에 봉인하고 너는 뒷수습이나 해. 그리고.”
레이첼이 레피드의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뻑 소리가 날 만큼 친 뒤 허공의 어느 쪽으로 고갯짓했다.
“포탈 역계산해서 다시 데려와. 너 때문에 저 인간 아이의 일행이 떨어졌으니 네가 수습해.”
레이첼이 사납게 말함에 레피드가 노려보다가 조용히 몸을 돌려 한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내가 돌아갔다고 인간들에게 화풀이하지 말고. 불시에 저 인간이랑 그 친구들이 살아 있나 찾아가서 확인해 볼 거니까.”
“잠시……!”
내가 어디론가 돌아간다고 말하는 레이첼의 말에 조금 놀라서 그녀를 잡기 위해 입을 열려던 찰나 레이첼이 스크롤을 찢더니 어디론가 사라졌다.
분명 원작에선 케인의 얼굴을 보자마자 생긴 것도 마음에 드는데 뭔가 특별한 게 느껴진다며 일행에 합류했으니.
케인만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레피드 저 망할 도마뱀 덕에. 아니 그전에 발부스 그 자식부터 족쳐야 하나.
“젠장, 마음 같아선 뼛가루도 남지 않게 소멸시키고 싶지만… 레이첼이 확인한다 했으면 하니…….”
투덜거리던 레피드의 앞으로 푸른 포탈이 허공을 찢듯 나타나더니 이내 케인이 뛰쳐나온다.
그리고 나나 레피드가 무어라 할 새도 없이.
서걱!
“……!”
레피드가 급하게 뒤로 물러나며 피가 분수처럼 터지는 자신의 목을 한 손으로 눌러 지혈하며 마법으로 치료했다.
레피드의 앞에 생긴 은색과 무지개색이 옅게 섞인 실드를 케인이 오러로 쳐내곤 강한 파동과 함께 버티는 것을 보더니 오러를 한점에 집중에 베기가 아닌 찌르기로 실드를 깨버렸다.
“죽어라.”
“미천한 인간 놈이!”
아까 레이첼이 무언가 봉인을 건 듯 드래곤의 모습으로도 변하지 않고 단번에 케인을 소멸시킬 최고위 마법도 난사하지 못하는 채.
레피드가 당황한 얼굴로 케인의 검격을 겨우 피해 몸을 움직이다 도망가려는 듯 텔레포트라고 외치는데 케인이 허공 어딘가를 잘라버린다.
“무슨 인간이 이동 마법을 방해해?”
오러가 더 강해진 듯 황금색이 어린 검으로 레피드를 쫓아 움직이다 이내 오러를 날리듯 검을 휘두르자 삭월 모양으로 오러가 날아가 레피드의 뺨을 스쳐 길게 핏자국을 낸다.
“도련님……!”
“아델리안 님……”
그리고 루나와 제로가 울고 불며 나에게 뛰어옴에 가만 그 둘을 껴안고 도닥거리는데 그런 내 모습에 레피드가 어이가 없는 어조로 소리쳤다.
“거기! 거기 네놈! 어서 말리지 못하겠는가!”
“닥쳐.”
“눈 뒤집힌 거 보시죠. 말리면 말 듣게 생겼나.”
허둥지둥 몇 번이고 걸어낸 방어 마법을 살얼음처럼 깨부수고 쫓아 들어오는 케인 덕에 레피드는 계속 치료 마법을 돌리며 으르렁거렸다.
나는 살살 스트레스가 날아가는 기분에 조금 더 즐겼다.
‘일단 정말 따지고 보면, 내가 살아 있는 한 손해는 아니야.’
사실 이노센트의 메인 파티원 중 제일 만나기 어려운 레이첼과의 연결고리를 얻었다.
이게 게임은 지금으로부터 뒤의 시점이라 이미 레이첼이 합류한 상태였는데 지금 내가 찾기엔 방법이 요원했단 말이지.
“이 미친 벌레! 아니, 인간이!”
“말하지 못하게 턱 아래를 부숴주지.”
거기에 지금 케인이 눈에 보일 정도로 파워업 했고. 발부스에게 얻은 아티팩트 중에 케인에게 꼭 필요한 것도 있었으니 근시일 내에 지금보다 더 강해질 터.
“아니, 무슨 디스펠을 시동어도 없이 하냐고! 너 인간 아니지? 어? 동족이지!”
“목을 내놔라.”
나는 너무 울어서 이제 눈물도 안 나오는지 입으로 꺽꺽거리는 루나와 제로에게 아공간에서 물 하나씩 꺼낸 후 손에 쥐여 주었다.
그 김에 나도 물 좀 마시며 아공간에서 의자도 3개 꺼내 우리 셋이서 나란히 앉아 느긋하게 케인과 레피드를 바라보았다.
“저, 저 저!”
“죽어.”
그런 내 모습에 레피드가 어이가 없는 얼굴로 나를 손가락질함에 케인이 순간 가속해 목으로 검을 휘둘렀고 레피드는 나를 가리키던 손가락을 목 대신 희생하며 뒤로 굴렀다.
오, 다시 재생하네. 마나 많이 남았구나. 지금 말리나 나중에 말리나 뒤끝이 있을 것 같은데 조금만 더 이따 말릴까.
“당근 먹을래?”
“크으응. 네에…….”
“저두 부탁드립니다, 아델리안 님.”
루나가 눈을 비비며 끄덕거림에 나는 당근 3개를 꺼냈다.
오독!
아, 달짝지근하네.
“그만, 그만 좀 해! 이 돌아버린 인간 놈이……!”
나는 드래곤 멱따는 소리를 들으며 당근을 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