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58)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58화(58/373)
하긴, 못해도 천 년은 살았을 드래곤이 이때껏 배고픔을 알았겠는가 피로감을 느껴 보았겠는가.
보아하니 유희 생활도 접어두고 마룡병에 걸려 몬스터를 모으고 요새를 지으며 시간을 보낸 것 같으니 이런 반응인 것도 이해는 간다만.
“그냥 생으로 먹으면 안 되는 건가?”
개로 변했으면 턱 아래로 홍수가 났을 것이다. 안달복달하는 얼굴로 제로를 보채며 레피드가 하는 말에 제로가 일단은 웃는 낯으로 대답했다.
“네.”
“왜지? 탈이 나는 건가. 드래곤일 때는 서펜트를 날로 삼켜도 괜찮았거늘.”
“인간은 그러면 죽습니다.”
“그거 다 익은 거 아닌가?”
“아닙니다.”
“맞는 거 같은데. 그리고 너 인간이 아니로군.”
“손 떼시고. 이제 말 하실 때마다 음식 더 늦어집니다.”
제로, 잘 받아주나 했더니 한계가 왔구만.
그 협박에 레피드의 눈꼬리가 슬쩍 올라가다가도 제로가 소스를 발라 불 위에서 돌리는 모둠 꼬치에 슬 내려간다.
“드래곤은 원래 다 저런가요?”
책에서 본 것과는 완전 다른데 하는 루나의 귓속말에 나도 어깨를 으쓱였다.
나도 드래곤은 책으로만 봐서.
근데 다 저렇지는 않겠지. 명색이 드래곤인데.
“인간의 음식은 생각했던 것보다 괜찮군.”
드디어 조리 시간이 끝난 후 개인 접시를 받은 레피드는 입가에 소스가 묻어 피처럼 흘러내리는 것도 모른 채 한입 크게 베어 물며 다시 감탄했다.
확실히 제로의 손맛이 나날이 발전하는 게…….
나는 수프를 한 모금 마신 뒤 모닥불에 알맞게 구운 버섯을 한입 가득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이건 진짜 향신료의 배합이 정말 미쳤다.
지금 살짝 제로는 특능 개발 안 해도 데리고 다녀야 한다는 생각이 들 만큼.
“왜 인간은 이 정도만 먹고 배가 부른 거지? 나는 더 먹고 싶은데 말이야.”
레피드가 배가 찬 듯 자신의 복부를 만지며 투덜거림에 케인이 무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갈라줄까. 그럼 더 먹을 수 있을 것이다.”
“너는 내가 꼭 좌표 다른 곳으로 날려준다. 인간 같지 않은 인간 놈.”
으르렁거리는 레피드와 들은 체도 하지 않는 케인을 보며 나는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난 뒤.
이내 배가 불러 식곤증이 오는 듯 살살 눈이 풀리는 레피드를 바라보았다.
“분명 수면 마법 같은 것은 아닌데… 몸이 급격하게 무거워지고 대부분의 것이 귀찮아지며 졸음이 쏟아지다니… 인간들은 다 이런 건가.”
‘내 살면서 안구가 뻑뻑해진다는 말이 실제였음은 또 처음 알게 되었군.’ 하며 눈을 비비는 모습에 나는 피식 웃곤 제로가 입가심하라고 끓인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당분간 인간으로 유희 생활해야 할 텐데. 말버릇이 그러면 의심하지 않겠어?”
내 말에 레피드가 마음에 안 든다는 얼굴로 찌푸리다가 한숨을 쉬듯 목소리를 흘렸다.
“강제로 유희 생활이라니… 망할 누님 같으니라고. 그나저나 이제 자면 되는 건가?”
나는 레피드의 말에 느긋하게 앉아 차를 마시며 대답했다.
“식사를 한 뒤 바로 자면 소화가 잘 안 되지. 그냥 대화 좀 할까? 거래 조건도 있었고.”
“으음, 인간의 몸이란 그렇게 연약한가. 하긴… 인간의 겉은 비늘도 질긴 가죽도 아니면서 자르면 금방 붙지도 않지. 겉이 그러하니 속도 별반 다를 것 없이 여리겠군.”
레피드가 자신의 양손을 들어 제 몸을 꾹꾹 눌리고 밀어 만지작거리며 말하더니 혼자 이해하곤 고개를 주억거렸다.
“내가 궁금한 건 인간에 대한 네 감상이 아닌데.”
내 말에 레피드가 입을 쩍 벌려 하품하더니 한쪽 눈만 뜨곤 나를 바라본다.
뭐야, 기분 나쁘게.
“흠, 그래 내 누이에 관해 물었었지. 인간들은 생물의 외형에 아주 약하다더니 사실이었군. 그런 폭력 드래곤을…….”
감았던 한쪽 눈을 뜨더니 이번엔 반대쪽 눈을 감는 레피드.
뭔데, 기분 더럽게.
“누이는 마법은 손맛이 없다며 저열하게도 육체로만 상대를 제압하는 유희에 빠져 있다. 한 10년에서 100년 사이겠군.”
“그거 기간이 너무 극과 극 아닌가. 그전에 눈은 좀 가만히 있지그래.”
아니 10~100년이면 인간은 최대 3세대도 차이 나는데 그게 무슨 말이야.
내 말에 레피드가 두 눈을 번쩍 뜨더니 살짝 미간을 좁힌다.
“눈을 하나씩 감으면 감은 눈이 덜 아플 줄 알았더니. 비슷하군.”
‘인간이란… 이리도 가련한가.’ 하면서 고개를 젓는데. 아, 왜 꼴 보기 싫냐, 진짜. 드래곤들 다 이런 건 아니겠지?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닌 듯 제로와 루나는 슬금슬금 잡일 하는 척 자리를 뜨고 케인 또한 검을 챙겨 몸을 움직이기 위해 떨어진다.
결국 나와 레피드만 모닥불 앞에 남아 차를 손에 들고 있었다.
“고작 물 한 잔인데 맛을 넣다니. 인간들은 먹는 것을 참 좋아하는군. 그러고 보니 드래곤들 중에도 미식 유희를 즐기는 이들이 종종 있었지.”
말린 허브 끓인 물 한 잔으로도 저리 좋단다. 정말 똥강아지 같은 드래곤이야.
철없고 사고 치기 좋아하는. 마치 설이나 추석에만 놀러 오는 사촌 동생 같은 느낌이랄까.
하지만 나는 굴하지 않고 비즈니스 스마일을 유지하며 금방이라도 욕을 내뱉을 것 같은 입을 차 한 모금 마시며 달랬다.
“당분간 인간 무투가로 유희 보내며 마법은 쓰지 않겠다 한 뒤 이동도 스크롤로 하고 있으면서 동생을 응징하는 일은 드래곤의 힘으로 때리는 그런 폭력 드래곤이 취향이라면야.”
자신은 인간도 괜찮으니 어서 반려로 데려가라는 말에 결국 나는 정보나 더 내어 보라 윽박질렀다.
“제멋대로에 술과 폭력을 좋아하는 데다 난폭하며, 자신이 주먹으로는 지상 최강이라 자부하는 드래곤 로드지. 아 지금은 인간이로군.”
드래곤 로드?
나는 잠시 기억을 되짚었다.
원작에서는 사실 레이첼이 드래곤이라는 사실이 꽤 후반에 밝혀진 편이었다.
레피드가 말한 대로 인간 무투가로 유희 중이라 그런지 마법을 쓰는 모습이 후반까지는 나오지 않았으니까.
‘그러고 보니… 초반에 레이첼이 등장할 때. 돌이끼가 이리 보고 저리 봐도 인간이었다. 완벽한 인간이었다 하고 강조한 이유가…….’
원작이 알고 보니 소설이 아니라 수필, 혹은 위인전기 같은 거였으니까…….
돌이끼 입장에선 드래곤인 걸 알아봤어도 알아봤다고 못 했던 거로구만.
초반 그 문장 덕에 후반에 얼마나 싸웠나. 설정 붕괴네 뭐네…….
원작에서도 이노센트 사가에서도 레이첼이 드래곤으로 변하는 순간은 단 한 번.
마지막 전투.
그전까진 아무리 케인이 위험에 빠지고 거의 죽기 직전까지 몰려도 레이첼은 충실히 뇌 없는 무투가 그 자체의 모습을 보이나, 마지막 전투에선 작가 공인 지상 최강의 생명체, 드래곤 중에서도 가장 강하다는 레드 드래곤의 위엄을 뽐낸다.
‘그럼 뭐 하냐고 마지막 전투인데 그게.’
나는 그것을 한 번이라도 더 앞당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레이첼에 대해 조금씩이라도 계획을 세우기 위해 이것저것 캐물으려 한 건데.
‘드래곤 로드였다고?’
뜻밖의 사실에 없던 혼란이 피어난 기분이다.
왜냐하면, 레이첼은 드래곤이 거의 멸족하는 순간에도 케인의 곁에 있었으니까. 인간으로서.
“드래곤 로드면 뭐, 의무 같은 건 없나? 예를 들자면 드래곤들이 갑자기 죽어간다거나. 아니면 그냥 이름만 있는 지위 같은 건가?”
내 말에 거의 목이 부러질 듯 꾸벅꾸벅 불 앞에서 졸던 레피드가 씁 소리를 내며 입을 열었다.
“의무? 있지. 이름만 있는 지위일 리가. 드래곤 로드는 가장 강한 드래곤에게 주어지는 자리다. 고귀한 자리니만큼 의무도 많지.”
감기려는 눈에 힘을 주듯 부릅뜬 레피드가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예를 들자면 헤츨링의 보호 혹은 네가 말한 것의 답을 하자면. 종족의 수호 같은 것도 있겠군. 그리고 중간계의 혼란을… 뭐 이 부분은 접어 두고도 말이야.”
레피드의 말에 나의 의문은 더욱 깊어졌다. 드래곤 로드라는 레이첼은… 어째서 드래곤의 멸족에도 나서지 않았나.
그리고 중간계라면 분명 이곳을 말할 텐데, 악신교단이 날뛰어 대륙이 혼란에 물들었을 때 왜 케인에게도, 동료들에게도 드래곤임을 거의 끝까지 숨겼을까.
‘당장 알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염두에는 둬야지.
나는 의구심을 일단 마음 깊은 곳에 잠시 묻어둔 채 이제는 거의 식어버린 찻물을 목으로 넘겼다.
* * *
“잠두 같이 자야 해요, 도련님?”
루나가 손을 들어 내 귓가에 댄 뒤 소곤소곤하는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덕분에 내일 말이 있던 곳으로 이동시켜준다니까. 하룻밤 정도는 내어주자.”
루나의 살벌한 눈초리가 느껴지지 않는지 침낭을 신기한 듯 바라보다 기어들어가 애벌레가 된 레피드를 흘긋 보며 대답하니 루나가 입술을 비죽거린다.
“유희라는 것을 할 때 죽이면 마정석은 안 나오는 건가.”
케인까지 곁으로 와 속삭이고.
“드래곤 고기… 어떠십니까, 아델리안 님.”
제로까지 살짝 의욕 도는 게.
나랑 레피드가 대화하는 동안 너희 셋 뭐 짰냐?
나는 케인은 정강이를, 제로는 꿀밤 정도로 응징한 뒤 어서 곱게 자라며 한마디 했다.
자리에 누운 후 타닥거리는 모닥불 소리를 듣고 있자니 뭔가 하루가 엄청나게 길었구나 싶다.
나는 중간에 리커버리 덕에 체력이 돌아왔는지 잠이 안 와 상념에 잠겨 있지만 루나나 제로는 많이 피곤했는지 숨소리가 고르다.
‘자려고 마음먹은 뒤 눈 감고 있으면 잠이야 들겠지만.’
바로 그리하기엔 아쉬운 시간이지.
나는 뒤척이는 척 케인과 루나 등이 있는 방향으로 몸을 조금 돌려 사용자의 눈을 켰다.
‘오늘 최고의 수확.’
[케인 레이너스―나아가는 자+]대표 Traits : [불망(SS)] [천재(S+)] [외형(S+)] [신체(SS)] [마나 제어(A)] [디스펠(B)]
히든 Traits : [강인함(S+)] [만능(A+)] [갈망(A)] [기적(C)]
하, 미쳤다 정말. 저 눈부신 트레잇 좀 봐라.
마음 같아선 어디 현수막이라도 걸고 싶은 찬란함.
천재와 외형, 강인함은 등급 업 직전이고 신체는 S+에서 SS로, 거기에 만능은 A로 한 단계 오르자마자 +가 붙었으며 갈망은 C에서 A로 올랐다.
그뿐인가. 남들은 두 개, 세 개 정도나 드러나는 대표 트레잇이 원래도 4개였는데 거기에 두 개나 더 붙었고 그 2개 다 사기 트레잇이니.
이거 주인공 아닌 사람은 서러워서 살아? 어?
나는 어쩐지 배알이 살살 아파짐에 미간을 좁혔다.
[아델리안 수호 크루거―만금의 소유자+]대표 Traits : [금력(SSS)] [오만(S+)]
히든 Traits : [부유감(B+)] [사용자의 눈(SSS)]
레이첼. 나에게 뭐 변명이라도 해봐, 어?
나는 죽기 직전까지 갔다 살아 돌아와도 변하는 게 없는 게 말이 되나.
금력이랑 타이틀은 도박으로 발부스의 아티팩트를 빼앗아서 변한 걸 테고, 그때 그에게 허세 부린 것과 레피드 등에게 세게 나간 것 덕에 오만이 올라갔나 본데.
부유감이야 사용자의 눈을 계속 써서 떨어진 거고. 왜 더 늘어난 게 없어 왜.
죽을 뻔한 건 난데, 꿀은 케인이 빨고 말이지.
물론 짐작은 간다.
아델리안은 진짜 내가 아니니까.
그래서 부유감이 붙어 있고 사용자의 눈이 있는 거지. 대신 추가 트레잇은 없는 게 맞을 수도 있다.
결국 이 몸은 강수호가 아니니까.
‘그런데… 혹시 부유감이 최하로 내려가 사라진다면?’
내가 이곳을 살짝 한쪽 발만 걸친 말 그대로 ‘다른 세상’이 아닌 정말 내가 살아 있는 곳이라고 여기게 되는 순간이 오면.
난 어찌 될까.
정말 아델리안 그 자체가 되어 이곳에 남는 걸까.
혹은…….
‘어차피 그 순간이 되기 전엔 모를 일이지만.’
루나와 제로의 트레잇도 확인해야 하는데.
잠시 생각한다는 것이 꽤 오래 지난 듯 살살 눈이 감겨온다. 그에 나는 버티지 않고 그냥 쏟아지는 잠에 몸을 맡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