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68)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68화(68/373)
“역시 당장 타고 다니는 건 무리네.”
―오랜 시간 동안 관리자 없이 운영된 결과 핵인 바닷빛 진주의 마력이 바닥나 있는 상태입니다.
나는 귀가 아닌 뇌로 듣는 것 같은 리프의 텔레파시에 한숨을 쉬었다.
다른 관리자급 골렘은 어디 있나 했더니 수면 중.
리프의 마나 심장이 비활성화된 것도 비공정의 핵, 바닷빛 진주의 마력 부족으로 인한 절약 모드라서 그렇고.
그런 말이 있다. 집은 사람이 살면서 관리하지 않으면 금방 폐허로 변한다고. 비공정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중간중간 바닷빛 진주를 마력 보충 모드로 바꿔줘야 하는 관리자가 없으니 연료의 보충 없이 쓰기만 한 거고.
게다가 시간은 좀 지났나. 절약 모드로 변경되어 가동시간 표기가 안 되지만 적어도 천 년 이상이었을 텐데.
나는 바닷빛 진주를 충전 모드로 바꾼 후 턱을 괴고 입을 열었다.
“비공정을 운행할 최저 동력이 모이는 예상 시간은?”
―예상 소요 시간 약 140일. 140일입니다.
말이나 워프게이트 대신 판타지 세계에서 날틀 타고 날아다닐 꿈에 부풀었는데…….
“마정석으로 마나를 보충하면?”
―마나의 종류가 다르므로 약간의 단축 효과는 있겠으나 비효율적입니다.
효율만 높다면 돈도 많겠다 쏟아 부어볼 생각이었지만 애매하네.
‘어쩔 수 없지.’
비공정이 메인 디쉬는 아니었으니까.
나는 의자에 길게 기대 홀로그램을 터치했다.
처음엔 악신교단의 침입자들을 전부 랜덤 텔레포트로 날린 후 우리도 제로와 합류하려 했지만.
‘가뮈르의 저택과 비공정을 잇는 지하가 무너졌을 줄이야.’
아마 악신교단 짓이겠지. 그 치들은 도움이 안 된다. 가동 가능한 양산형 골렘으로 굴을 파고 있으나 2차 붕괴의 위험 덕에 최소 3일은 걸리는 상황.
그렇다고 텔레포트로 나가자니 비공정에 등록된 좌표를 믿을 수가 있어야지. 저거 천 년은 더 지났을 텐데.
결국, 당장 나가지도 못하는 상황이니 이곳에서 지금 할 수 있는 건 다 하고 나가자고 의견이 모였다.
나는 그 김에 비공정의 무기고에서 반출 가능 목록을 뒤지며 입을 열었다.
“케인, 정식 관리자 시험은 잘 되어가?”
임시 관리자로 등록된 이상 정식 관리자로 당연히 승격해야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었는데 의외로 그 방법은 구식이라고 할 수 있었다.
비공정의 운행법, 수리법과 들어가는 물자의 계산. 항로를 조율하는 법에 비공정 내 시설의 종류와 가동 방법.
그런 거 같이 공부할 게 산더미라 나는 당당하게 케인에게 떠넘겼다.
평소 몸이 좋아서 티가 안 나지만 케인의 트레잇에는 천재도 있으니까. 얼굴 잘났어, 몸 좋아, 머리도 좋아.
소설 주인공이니까 가능하겠지 했던 놈이 내 옆에 실제로 살아 움직이는 게 좀 어이가 없다.
‘누구는 매일 뛰고 달려도 달리기 트레잇 하나 안 생기는데.’
게다가 어차피 관리자가 되면 운행이나 수리 및 항로 같은 것도 다 골렘에게 시킬 텐데 왜 저런 시험이…….
뭐 케인이 정식 관리자가 되면 케인이 날 지정해 주면 그만이긴 하다만.
“찾았다.”
반출 가능 목록을 처음부터 끝까지 뒤져도 없길래 임시 관리자 등급으로는 반출 불가능한 목록까지 한참 뒤져서야 발견한 아이템.
등록된 명칭은 ‘반마법 무중력 방어 골렘 소형’이지만 이노센트 사가의 유저들끼리는 이렇게 불렀지.
‘아이기스, 혹은 이지스.’
무적의 방패. 에픽 등급의 유일한 보조 방어구.
비슷한 성능의 방어구는 몇 개 더 있지만 초소형은 이것뿐이다.
고작 주먹만 한 크기의 둥근 금속 구슬 같아 보이지만 나열된 설명만 해도 홀로그램 한 뼘 분량.
축약하자면 사용자의 몸을 상시 보호 및 일정 대미지 이하의 물리, 마법 공격 무효 혹은 반탄.
저주 및 주술 같은 유사 마법 공격에 대한 내성 및 출력에 따라 보조 사출 무기로 활용 가능 등.
게다가 사용자가 원할 시 일시적으로 보호 대상 교체가 가능하다.
급하면 루나나 케인에게 붙여 치명상을 면하게 해줄 수 있다는 소리.
물론 아이기스의 최우선 사항은 사용자니까 한 번 정도 사용하면 다시 돌아오는 식이지만 그게 어디야.
“시험은 끝났다. 그런데 강수호가 누구지.”
어?
나는 나에게 다가오며 황금색 눈으로 압박하는 케인을 올려보았다.
임시 사용자 등록 때 너무 급해서 아델리안 대신 강수호로 입력했구나, 내가.
순간적으로 갈등했다.
이렇게 된 거 그냥 다 밝혀?
말아?
혹시 변수가 엉망진창으로 섞인다면? 애초에 레이첼이 아델리안으로 날 이곳에 보낸 이유가 있을 텐데?
“그거 나야. 아델리안 수호 크루거. 미들 네임이다.”
다행히도 나는 뭔가 구린 흑막 느낌의 연기를 종종 연습해서일까 표정 변화 없이 웃으며 대답했고 케인은 무표정하게 끄덕거린 뒤 손끝을 움직였다.
―반갑습니다, 강수호 님. 정식 관리자가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비공정 관리에 대한 기본적인 제반 사항이 뇌리로 쏟아진다. 강제로 지식을 쑤셔 박는 느낌.
고통은 없지만 기분은 나빴다. 게다가 정식 관리자가 되었음에도 열람 제한이 걸린 문건이라니.
아마도 이 비공정이 날던 시대의 문서 같다. 리프에게 물어도 자신은 전투용 지휘관 개체라 역사는 모른다고 하고.
대부분은 보안을 위해 일정 시간이 지나야 풀리는 형식이었지만 개중 몇 개는 열람 조건 달성이 뭔지도 비공개라…….
‘당장 이걸 파고들 시간은 없으니까.’
이 비공정 안에서 몇 년간 나가지 않을 생각이라면 모를까.
나는 정식 관리자가 되자마자 아이기스의 반출을 요청했고 또 다른 관리자인 케인이 승인함에 리프가 가지러 간다.
“편하네.”
아마 서로 견제하란 의미로 정식 관리자 과반수 이상의 승인을 받아야 반출할 수 있게 만들었겠지만.
나와 케인이 정식 관리자인 이상 아무 효력도 없는 방식이네. 나는 리프를 기다리며 한쪽에 잠든 루나를 깨웠다.
“밥 먹고 자.”
“네에…….”
리프와 격하게 치고받은 게 체력 소모가 컸는지 눈을 비비며 졸음을 못 쫓아내는 루나의 손에 당근 하나 쥐여 준 뒤 나는 다시 눈을 홀로그램으로 돌렸다.
리프의 마나 심장, 이거는 바닷빛 진주가 있는 비공정이 아닌, 외부 활동 때 쓰는 배터리니까 활성화로 바꾸고.
재생력은 공급받는 마나 출력에 따라 조절되는 모양이니 내가 손댈 것 없네.
행동 패턴을 기본에서 자율로 바꾸고 전투 패턴을 수호 대신 탱커로 변경.
아마 케인이 주웠을 때는 바닷빛 심장을 잃은 비공정은 아예 시스템이 나가버렸을 테고 그래서 리프가 자유로 풀려났겠지만, 지금은 비공정도 바닷빛 심장도 이곳에 있으니 이렇게 일일이 수작업으로 해주는 수밖에.
―주인님. 여기 반 물리, 반 마법 무중력 방어 골렘 소형입니다.
리프의 무표정한 얼굴이 조금 바뀌었나. 아주 약간 입꼬리가 올라간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여전히 인형 같은 얼굴로 나에게 주먹만 한 금속 구슬을 건네는 리프에게 나는 입을 열었다.
“호칭은 주인님 대신 아델리안으로 할게.”
―네, 관리자님.
아니. 관리자님 말고 이름.
나는 몇 번 시도하다가 입력이 안 되는 것 같은 리프의 모습에 이번엔 케인으로 다시 시도했다.
“저쪽은 케인.”
―네, 케인님. 입력되었습니다.
뭐야, 케인은 되잖아.
케인은 케인인데 난 왜 관리자야.
다시 해봐도 바뀌지 않는 호칭에 나는 그냥 포기한 뒤 아이기스를 쥐었다.
‘사용자 등록.’
뇌를 깃털로 살짝 훑은 것 같은 간지러움, 그 뒤로 아이기스의 둥근 표면이 반짝거린다.
그렇게 사용자 등록을 마친 후 나는 아이기스를 살짝 허공에 놓았다.
둥근 금속 구슬의 겉면으로 푸른색 실선이 지그재그로 나더니 살짝씩 금속으로 된 겉면이 열리듯 튀어나오다 닫힌다.
그리곤 내 주위를 한 바퀴 빙그르르 돌더니 비전투 상황임을 감지해 스텔스 모드라도 된 듯 투명하게 허공에 녹아들었다.
‘이걸로 한시름 놓았나.’
이제 어지간한 마법이나 물리 공격은 물론 저주나 아인족이 쓰는 비형식 마법인 주술까지 어느 정도 방비가 되었다.
아이기스 외 다른 물건도 더 빼갈 게 있나 보지만 대부분 골렘용인 데다 바닷빛 심장의 방전 덕에 충전도 되어 있지 않다.
수천 기의 양산형 골렘과 골렘 공장. 거기에 기갑 골렘의 존재와 수면 중이라고는 하나 지휘관 골렘의 존재.
지금은 지하에 파묻혀 있지만 원래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비공정.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전쟁용이거든.’
가뮈르에게 물어도 확실한 대답은 나오지 않을 거란 예감이 든다. 그랬다면 이 유적의 정체를 예상하고 이미 발굴했어야 하니까.
“나라라도 하나 세울 생각인가.”
케인이 다가와 하는 말에 나는 고개만 돌려 무슨 소리냐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지금은 저 핵이 충전 모드로 전환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다지만. 1년 정도 후에는 기본 가동은 가능하지.”
“그런데?”
“이 큰 건물을 하늘 위로 띄운 뒤 양산형 골렘만 생산해 떨궈도 일반인들에겐 엄청난 재앙이 될 거다.”
거기에 수인족과의 연결 고리와 더불어 봉인되었다고는 하나 드래곤을 저택에 앉혀 놨지.
살짝 눈을 가늘게 뜨고 묻는 모습에 나는 약간의 장난기가 돌아 일부러 의자를 돌려 턱을 괸 뒤 입꼬리만 올려 웃었다.
“그래서, 내가 뭐 만약 대륙의 적이라도 될 거라 하면. 넌 어쩔 건데?”
나를 죽이기라도 하려고? 하듯 웃는 낯으로 바라보니 케인보다 먼저 루나가 입을 연다.
“전 도련님이 뭘 하시든 그게 맞을 거라구 생각해요.”
다 죽을 만하니까 죽는 거죠? 하며 태연하게 늘어진 귀를 만지며 하는 말에 무표정한 리프도 텔레파시를 뿌린다.
―지금 충전 모드로 바꾼 핵의 설정을 조금 변경하여 골렘 생산 시설을 가동하게 시킬 수 있습니다, 관리자님.
그녀들의 말에도 케인은 침묵하다가 이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거짓이군.”
“모르잖아. 가정해 봐.”
사람이 한순간에 손바닥 뒤집듯 마음 바꾸고 할 수도 있는 거지.
내 태연한 모습에 케인의 황금색 눈이 무심하게 나를 바라본다. 짜식. 잘생겼어, 아주.
저런 별거 아닌 동작에도 누가 주인공 아니랄까 봐, 외형 트레잇이 열일 중이었다.
“굳이 내가 대륙을 위해야 하는 이유가 있나.”
어?
내가 잠시 할 말을 잃은 새 케인이 드물게 입꼬리를 올린다.
마치 화보의 한순간 같은 게 리프는 글을 쓰지 말고 케인 얼굴만 작화(S)로 그려 팔았어도 모든 일이 해결되었을 거 같다.
“네가 그러고 싶다면, 나는 네 검이니 그리하겠지.”
케인의 말에 난 웃어버렸다.
아아, 확실히 거창한 대의를 가지고 움직이진 않았지 너는.
처음엔 단순한 복수심이었지.
처음엔 복수심으로, 그다음은 그 일을 하는 것은 자신뿐이라서. 대가를 바라지도 명성을 바라지도 않고.
그냥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인 것처럼.
그랬지 너는.
나는 원작의 케인이 얼마나 처절하게 잃고 망가지며 그들과 싸웠는지 알고 있다.
여론전에 밀려 오히려 원흉으로 몰리고 다치고 지치고, 그래도 끝까지 멈추지 않고 6명의 동료와 함께 결국은…….
나는 더 감상에 젖기 전에 얼른 입을 열었다.
“알면, 어? 수련 안 해? 네가 조금만 더 강했어 봐. 아무리 공간이 좁아도 그 이상한 놈 잡아서 심문했을 거 아니냐.”
―맞는 말씀입니다. 관리자님.
루나는 리프의 말이 들리지도 않을 텐데 눈치로 알아챈 건지 고개를 끄덕인다.
“케인은 이렇게 또 편이 없구.”
내가 장난스레 갈구는 말에 케인은 고개를 한번 저어내곤 상대 안 하겠다는 듯 등 돌려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