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7)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7화(7/373)
하늘은 맑고 꽃향기는 싱그럽다. 날이 매우 좋다.
사람이 정말 궁지에 몰리면 어찌 되는 줄 아는가?
“오늘따라 차가 맛있네. 그렇지 누나?”
아주 차분해지며 될 대로 돼라지 하고 오히려 마음이 평안…….
‘망할…….’
해지긴 개뿔!
난리 났다 난리 났어.
어제 알카이도의 말을 듣자마자 케인에게로 달려가 짤짤 흔들며 어서 계약하자고! 소리 지르고 계약한 뒤 케인을 숨기려고 했는데…….
“내일 아가씨께서 오시는데, 설마 아무런 준비도 명하지 않고 놀기만 하실 것은 아니시겠죠.”
“놀건대? 놀면 안 돼?”
“예. 아가씨의 귀환은 도련님께서 가주 대행이 되신 이후 첫 번째 공식 일정입니다. 이것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신다면, 제가 특별히 카이만 대공 저하를 찾아가 한마디 읍소할지도 모르지요. 도련님께서 새로운 장난감에 너무 몰두한다고 말입니다.”
어차피 카이만에게 찾아가 뭐라 말해도 대행을 바꾸진 않겠지만.
내가 지금 당장 케인에게 달려가면 그게 내 집착이나 약점으로 비쳐 나중에 케인을 서포트할 때 사사건건 걸림돌이 될 수도 있겠네 싶어 결국 가지 못했다.
그리고 해가 뜨기 무섭게 쳐들어온 가디아는…….
“누나……?”
얼음을 깎아 만든 것 같은 하얀 얼굴. 분명 무표정함에도 어디서 벌레가 말을 걸지? 하는 경멸이 여과 없이 비친다.
분명 원작에선 주인공에 대한 일편단심과 자비로운 미드덕인지 다른 남자들은 전부 벌레 취급 한다는 설정마저도 좋아 죽는 팬들이 많았는데 눈앞에서 보니까…….
‘와 정신적 타격 너무 큰데?’
눈 까는 건 자존심 상한다. 눈을 아래로 깔긴 싫어!
나는 혐오가 어린 파란색 눈동자에서 슬쩍 옆으로 눈을 돌려 바람에 살랑이는 은청색 머리칼로 시선 처리했다.
“아 그럼 뭐라 불러. 왜 나도 아가씨~ 하고 불러줘야 해?”
“그냥 부르지 마. 말하지 마. 숨 쉬지 마. 죽어.”
“싫은데? 내가 왜 누나의 말을…….”
순간 얼음송곳이 허공에 만들어지더니 그 뾰족한 끝으로 날 노림에 말끝을 흐리며 웃음으로 때우곤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아오, 진짜 누가 성격 파탄 나서 소통 불가 뜬 캐릭터 아니랄까 봐.
“그건…….”
가디아의 눈이 찻잔을 들어 올린 내 왼손으로 향한다.
난 마치 드라마에 나오는 부잣집 사모님이 그러하듯 손을 올려 살랑살랑 흔들며 가문의 반지를 자랑했다.
“아, 이거? 햐, 아버지가 어찌나 사정사정하시던지. 나만 믿는다며 이걸 딱 끼워 주시는데.”
“…내놔.”
살짝 맛이 간 눈인데?
나는 순간 서늘해진 목덜미에 입꼬리를 바르르 떨며 웃었다.
나는 호랑이 무서운지 모르는 범 새끼다. 나는 카이만을 믿고 나대는 망나니 동생이다.
“누나, 내가 이런 말까진 안 하려고 했는데. 이건 가주나 가주 대행만 가질 수 있는 반지인 거 알지? 사적으론 내 누나지만 공적으로 누나는 내 하급 사람이야. 알아?”
내 말에 살짝 뒤집어지려던 가디아의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뭐?”
“말이 짧다고 가디아.”
절대 밀리면 안 돼.
나중에 같은 파티로 돌아다녀야 하지만 어차피 가디아는 내가 아델리안인 이상 호감도 못 올린다고 보고 질러야 한다.
작중 히로인 중 유일한 인간이었던 가디아다.
인간 불신 케인이 그녀를 파티로 받아준 이유는 맹목적인 따름도 따름이지만, 자신의 주군에게 충성해야 한다는 계급 사회의 귀족 교육을 강하게 받았기 때문이야.
지금은 케인을 만나기 전이라 사랑에 눈이 뒤집히지도 않았으니 기분 나쁘다거나 가문을 가지고 싶어 내 목을 날릴 정도로 막 나가진 못할 터.
어디서 소식 듣고 감옥에 있는 내 장난감으로 알려진 케인을 궁금해하기 전에 도발하고 밀어서 쫓아내는 게 상책이다.
나는 손등을 보이게 손을 든 상태로 반짝반짝하는 크루거의 반지를 연신 가디아의 시선 끝에서 흔들어 댔다.
“그래서… 가주 대행으로서 업무는 제대로 보고 있는 건가요.”
눈으론 이미 날 찌르고도 남았는데? …안 되겠다. 무슨 수라도 써야지.
자꾸 깔리려는 눈에 힘을 주곤 사용자의 눈을 발동시켰다.
[가디아 수련 크루거―경멸하는 빙하 궁수]대표 Traits : [빙하(A)] [궁술(B)]
히든 Traits : [민첩(A)] [미식(D)]
난 가디아의 얼굴을 트레잇 창으로 가린 후 겨우 숨 돌린 뒤 그 너머의 소녀에게 환하게 웃어줬다.
“그걸 왜 가디아가 신경 써. 넘긴 건 아버지인데.”
“…내가 더 잘할 수 있어. 너보다…요.”
“아 그럼 아버지가 누나에게 넘겼겠지.”
“난… 인정 못 해. 가주님을 뵙고 항의하겠어. 너 따위가 가질 게 아니라고.”
“그 가주님 여기 있어. 지금은 내가 가주야.”
빈정거리듯 던진 말에 트레잇 창 너머로도 느껴질 만큼 살기가 범람한다.
윽, 더 깐족거리면 안 되겠는데.
“카이만 대공을 뵙고 오겠어.”
“뭐 그러던가. 여름 별장에 있으시려나?”
의자가 뒤로 넘어갈 만큼 거칠게 일어난 가디아가 성큼성큼 걸어나간다.
“하… 진짜.”
나는 식은땀이 흥건한 손을 보며 숨을 골랐다.
부유감 트레잇이 있었는데도 이 정도라니.
가디아 성격에 약간의 고민은 있을지언정 바로 카이만을 찾아가서 따지려 들 것이다.
그것을 예상하고 여름 별장이라고 거짓 정보를 던졌으니 포탈을 이용한다 해도 최소 반나절에서 하루는 자리를 비울 터.
가디아가 돌아오기 전에 케인을 찾아 숨겨야 해. 둘이 만나면 일이 어떻게 망가질지 모른다.
나는 시간제한이 걸린 퀘스트를 받은 기분이었다.
‘당장 그 방법이라도…….’
“도련님.”
조바심에 입술을 질근 거리며 발걸음을 옮기는데 앞에서 나오는 알카이도.
나는 조바심에 짜증이 일었지만 애써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누나도 차 한잔 잘 대접해서 보냈는데 뭐 다른 문제라도?”
“언제까지 업무를 미루실 생각이십니까.”
영원히지, 이 아저씨야. 그거에 묶였다간 이 성에서 못 나간다.
나는 일부러 짜증을 참지 않고 드러내며 입을 열었다.
“알카이도는 좀 현명한 줄 알았는데 아닌가 봐? 생각을 해봐. 나보다 더 똑똑하고 창의적인 트레잇을 지닌 사람들이 일하고 나는 그들을 부리기만 하는 게 더 낫지 않겠어?”
어차피 갈수록 메인 스트림에 얽히면서 대륙 전체가 망가질 수도 있는데 내가 크루거 가문에 기운 뺄 이유가 없지.
아, 딱 하나, 나중에 문제 생기는 부분만 풀면 되겠네.
나는 난봉꾼처럼 휘적휘적 걸어 알카이도의 가슴팍을 툭툭 쳤다.
“좋아, 알카이도가 이렇게나 말하는데 안 들어주면 또 내가 크루거 가문의 주인이 아니겠지.”
나는 반지의 문양을 손끝으로 휘릭 돌려 가문에 관련된 물품이 담긴 아공간 문양을 맨 위로 올렸다.
그리고 본능이 알려주는 대로 허공에 손을 넣어 내용이 텅 빈 서류용지 한 장과 깃 펜을 꺼내 슥슥 내용을 적어 알카이도에게 읽어 보라는 듯 손가락 사이에 끼워 건넸다.
“도련님 이 내용은…….”
내가 바보 같니? 다 생각이 있어 그래. 알카이도 너는 모르는 대업이 있다.
“이것은 가문에 해가 될 수 있는 내용입니다.”
“글쎄. 난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 이제 크루거 가문 휘하의 모든 상단은 크루거 크레딧 대신 현금으로 물건을 계산한다.”
몇 개의 왕국과 제국. 그곳에서 발행하는 금화는 다 제각각이라 크루거 상단에선 자기들끼리 통용하는 크레딧으로 주고받았다.
이것은 워낙 크루거 가문이 대륙 곳곳에 상단을 뻗치는 데다 그 경제적 힘이 막강해서 가능했지만…….
게임 후반으로 가면 그게 문제가 된다.
전쟁과 전염병 등으로 대륙이 혼란에 빠져 제아무리 강대한 크루거 가문의 상단이라도 작은 곳부터 망하기 시작하는데, 자기들끼리만 통용되던 크레딧을 받아 줄 리가…….
물건을 구해야 하는 데 현금이 없어 망하고 그게 도미노로 일이 커져 완전히 맛이 가버린다.
수십 수백만에 달하는 크레딧만 손에 쥐고 죽어버리는 것이다.
“도련님 이건 말도 안……!
“자, 이게 공식적으로 내가 내린 첫 업무자 결제야. 어때, 일했으니 되었지? 물론 그 어떤 항의도 난 받지 않겠어.”
난 알카이도가 뭐라 더 덧붙이기 전에 다시 종이를 빼앗아 서류의 맨 아래 서명란에 반지의 문양을 꾹 눌러 서명했다.
마력 한 줌 없어도 발동 가능한 혈계 마법으로 인해 전 대륙에 퍼진 일정 규모 이상의 크루거 상단엔 방금 문서와 똑같은 내용이 전달되었을 터.
카이만도 자주 한 적 없는 전체 명령을 냉큼 해버리곤 난 얄밉게 웃으며 분노로 부들부들 떠는 알카이도를 뒤로 한 채 감옥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안녕, 케인. 잘 있었고?”
나는 감옥 문을 열기 전에 ‘나는 악당이다, 나는 악당이다, 나는 악당이다’를 세 번 속으로 외친 뒤 문을 활짝 열고 오만하게 웃었다.
“너…….”
이 자식 얼굴 보자마자 거절하려고?
어림도 없지!
나는 나에게 무언가 말하려 입을 여는 케인의 말을 살짝 잘라냈다.
“원래 네 생일까지 시간이 두 달 보다 좀 적게 남은 것으로 아는데 케인. 난 더 못 기다려.”
“…무슨 소리지.”
나중에 후폭풍? 지금 가디아가 돌아와 케인을 발견하는 게 더 가까운 멸망이다.
나는 최대한 뭔가 꿍꿍이가 있고 야비하고 흑막답게, 하지만 신의 계약서를 팔랑거려 거래만큼은 확실한 이미지를 노리며 말했다.
“네 동생이 살아있어, 케인. 무슨 짓을 해서라도 강해질 이유… 충분하지 않아?”
내 말에 순간 눈을 부릅뜬 케인의 한쪽 눈꼬리가 찢어지며 안 그래도 흉흉한 얼굴에 피눈물까지 흘러내린다.
와, 꿈에 나올까 봐 무서워…….
“…계약하지. 당장.”
나중에 진상을 알게 되면 어떻게 터질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더 시급한 게 있으니까.
가디아와 만난 후 바로 온 덕에 루나가 없었던지라 나는 손수 케인의 줄을 풀어 준 뒤 입에 아공간에서 꺼낸 포션을 흘려 넣었다.
급하다 급해. 가디아 언제 돌아올지 몰라. 운 좋다면 내일 아니면, 지금 당장에라도 저 감옥 문을 열고 들어 올지도 모른다.
“사인해.”
나는 깃펜을 꺼내 내가 먼저 신의 계약서에 사인한 뒤 케인에게 넘겼다.
그리고 사인을 마치자마자.
디리링―
성스러운 오로라가 사방을 둘러싸며 천상의 음악이 들리는데… 신의 계약서 이펙트는 게임 하면서 봤으니까 필요 없어!
“일단 씻자. 씻고 나서 이야기해.”
다 필요 없고 지금 스피드가 생명이다.
나는 오로라고 나발이고 포션덕에 아주 완전히는 아니라도 기력을 회복한 케인을 잡아끌고 내 방으로 올라갔다.
“앗! 다녀오셨어요, 도련님……? 에?”
“아니, 무슨…….”
“아, 잔말 말고 씻어! 식사 가져오라 할 테니까.”
아니, 무슨 비상금도 아니고 나도 못 찾게 먼 곳에 숨기자니 걱정되고 코앞에 둬도 걱정되고.
무슨 로또 당첨된 종이 들고 일요일에 안절부절못하는 기분이 이런 걸까.
일단 무슨 일이 터져도 내가 바로 알아야 수습 가능할 거 같아서.
갈고리를 머리 위에 띄우는 거 같은 루나를 뒤로하고 케인을 욕실로 밀었다.
“일단 저놈 좀 씻는 동안 먹을 거 좀 챙겨와 줘, 루나. 부드러운 음식으로.”
“아! 네에, 도련님!”
‘아차 그리고 트레잇.’
난 무언가 말하려 입을 버끔거리는 케인을 욕실로 밀어 넣으며 문을 닫기 직전에 아까까진 급해 확인 못 한 트레잇 창을 띄웠다.
[케인 레이너스―불씨가 타오른 생존자]대표 Traits : [???] [천재(S)] [외형(B)] [신체(C)]―비각인
히든 Traits : [불운(F)] [강인함(A)]―비각인
아니, 저 모양 저 꼴인데 외형이 B까지밖에 안 떨어진 건 뭐야. 신체는 저 정도 굶기고 안 재웠는데 포션 한 방에 C?
거기에 불굴은 사라졌는데 새로 생긴 저건 뭐지. 뭐길래 물음표야. 제일 앞에 있는 트레잇인데 왜 확인을 못하냐고!
나는 양손으로 머리를 벅벅 긁어 흩어내다 한숨을 쉬며 억지로 진정했다.
불운이 좀 떨어진 건 아마도 나와 계약해서일 확률이 높다. 어지간한 불운은 금전으로 해결 가능하니까.
거기에 저놈이 몸 추스르고 수련을 시작하면?
힘과 돈으로 해결 안 되는 불운은 적으니까 저 F도 당장 떨어질 터.
그리고 저 물음표 트레잇이 너무너무나 거슬리지만 당장 사용자의 눈으로도 확인 안 되는 걸 어찌할 수는 없으니까.
적어도 성인이 되는 날엔 확정되겠지.
나는 이제야 힘이 좀 풀리는 기분에 의자에 앉아 늘어졌다.
“아이고, 아이고…….”
왜 이리 삭신이 쑤시지 너무 긴장하고 오늘 움직여서 그런가…. 루나에게 안마 좀 해달라고 하면 해줄까?
“저 왔어요, 도련님.”
“어 왔냐, 루나… 푸딩?”
먹기 편한 부드러운 걸 가져오랬더니 푸딩만 잔뜩 가져온 건… 그냥 너가 먹고 싶어서니?
나는 어째 태클 걸 기운도 없음에 대충 테이블에 올려두란 손짓을 하다가 욕실에서 가운만 입고 나오는 케인 때문에 얼른 루나의 눈을 가렸다.
“입을 옷이 없더군. 입고 있던 것을 다시 입기엔 씻은 의미가 없고.”
“…기다려. 일단 내 옷이라도 줄 테니까.”
나는 한번 씻었다고 얼굴이 좀 멀쩡해진 케인을 보며 주인공 버프란 게 존재하는 거 같단 생각을 하곤 일어나는데 누군가 내 방문을 두드린다.
“뭐야. 알카이도야? 바쁘니까 이따…….”
“나야. 다시 대화 좀 해.”
가디아가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