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71)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71화(71/373)
“미궁의 주인은 왜 당신들을 가뒀을까요?”
별빛 샘으로 들어온 지 얼마나 지났을까. 처음엔 자신이 어떻게 죽었는지도 몰랐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제로는 자신의 숨골을 노리고 찔러 들어오는 단검을 쳐내며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도플갱어라서?”
제로의 말에 가뮈르가 온화하게 웃으며 손끝으로는 제로의 쇄골을 잡아 으스러뜨리며 입을 열었다.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합니다.”
제로가 죽으면 씨앗으로 되돌아간다. 그럼 제로의 씨앗을 가뮈르와 바하디가 주워 별빛 샘에 담그는 것이다.
그럼 길면 반나절, 짧으면 두어 시간 만에 다시 부활 하는 거지.
“당신이 느끼는 고통은 허상입니다. 계속 말하잖아요, 제로. 평범한 도플갱어처럼 굴지 마세요.”
가뮈르는 익숙하게 제로가 비명을 지르기 직전 그의 입을 손으로 막으며 말을 이었다.
“너무 오래 갇혀 있어서 제대로 깨닫지 못하나 봅니다. 도플갱어, 그것도 종주라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왜 거기 가둬 놔야 했는지.”
집중하세요.
온화한 목소리지만 그 안에 담긴 냉정함.
가뮈르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제로가 숨을 몰아쉬었다. 으스러진 쇄골은 부족하게나마 복구된 몸으로.
“이번에는 제 피를 드릴게요, 제로.”
바하디가 건네는 작은 컵에 담긴 선혈을 제로가 한입에 털어 마시고 소매로 입술을 닦는 모습에 가뮈르가 입을 열었다.
“다른 도플갱어들과는 달리 당신은 포식한 만큼 강해지는 걸 이제는 알겠지만. 권하지는 않겠습니다. 지금처럼 최소한의 정보만 삼키십시오.”
그러나 그중 입에도 대지 말아야 사람이 있음을 제로가 떠올렸다.
“특히 검은 머리의 그 사내.”
가뮈르는 케인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저어하는 건지 혹은.
“그분의 것은 피 한 방울이라도 입에 대지 마세요. 정말 극에 몰리지 않는다면 영원히.”
혹은 경원하는 것인지.
“이유는, 제 기억의 일부를 삼킨 당신이라면 알겠죠.”
이곳에 있는 내내 식사 대신 엘프의 피와 살을 마셔서일까. 죽었다 다시 살아날수록 원래의 모습과 한 발자국씩 멀어진 제로의 보석안이 흔들렸다.
* * *
“아델리안 님! 정말 보고 싶었습니다. 얼른 나가죠, 우리! 밖으로요. 예?”
아니, 이게 뭐야.
“지긋지긋합니다. 저 이제 진짜 한 손 정도는 거들 수 있습니다. 저 여기서 수프 한 그릇도 못 얻어먹고 살았습니다. 밥도 안 줘요.”
“아, 그건 선 넘네.”
밥은 중요하지.
얼떨떨한 와중에도 나도 모르게 대답했다. 아, 역시 한국인은 밥심인가… 밥에 진심인 건가.
“일단, 그전에 설명 좀 해보시죠.”
내가 내 뒤로 숨는 제로를 밀어내며 하는 말에 바하디가 인형 같은 얼굴로 리프를 흘긋 바라보다 대답했다.
“어떤 설명 말씀이십니까?”
“왜 우리가 숲 한가운데서 나왔는지. 거기에 습격자들이 한 바가지던데 당신들은 뭘 했는지. 그리고.”
나는 은색에 가까운 잿빛 머리에 얼굴이 아주 미끈하게 잘 빠진 데다 키까지 커진 덕에 그나마 변하지 않은 건 살짝 보석처럼 변한 녹색 눈동자와 말투.
그리고 목소리 아니었으면 못 알아봤을 제로의 귀를 잡고 흔들었다.
“이놈은 왜 이렇게 되었는지.”
엘프들, 아이템만 강화하는 줄 알았더니 유닛도 승급해 주나?
내 빈정거리는 말에 바하디는 침묵했고 제로는 아프다고 우는 소리를 흘린다.
체이서와의 전투 후 정령의 숲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실소를 흘렸다.
솔직히 연기가 피어오르고 건물이 무너지고 숲이 망가진 그 정도로의 모습을 예상한 건 아니지만.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웃으며 길을 걷는 요정족들을 보니.
‘열이 받아서 말이지.’
거기에 원래 가뮈르의 저택이 있던 곳으로 갔더니 저택이 그대로 있더라고.
아니, 그럼 우리가 나온 그 숲의 입구는 뭐란 말인가. 대충 짐작은 가지만 뜯어낼 것은 뜯어내야 하는 법.
“우릴 아주 대놓고 이용하셨겠다. 그럼 대가를 치르셔야지. 우리 덕에 턱 아래까지 온 비수를 낚아챈 것도 모자라 되돌려 상대방을 찔렀는데 말이야.”
내 말에 가뮈르가 넝쿨 의자에 앉아 온화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대가 원하는 그때, 단 한 번.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대장로님?”
그 말에 바하디가 놀란 듯 고개를 돌리며 그를 불렀다.
“그거 장로회에서 상의는 된 건가? 아무리 대장로라도 그런 권한 없지 않아?”
내 말에 가뮈르는 파문이 일지 않는 호수같이 잔잔한 음색으로 대답했다.
“대장로에게는 그런 권한이 없으나 아크펜시온의 이름에는 그만한 힘이 있습니다. 마지막 남은 엘프 왕족의 이름으로 약속드리죠.”
“그 무슨!”
자신의 말에 바하디가 드물게 거친 음색으로 소리함에 가뮈르가 한 손을 들어 제지한 후 말을 이었다.
“그 정도면 만족하시겠습니까.”
그 기묘한 공기.
나는 웃는 얼굴을 지우지 않던 그대로 입을 열었다.
“우리끼리 대화 좀 할까?”
마치 큰 호구 하나 물었다는 듯 손을 비비며 하는 말에 바하디는 한쪽 눈을 찡그렸으나 그녀에게는 지금 힘이 없지.
“무슨 일 있으면 부르시구요.”
너희도 나가 있으란 말에 루나가 나만 이곳에 두고 나가기 불안했던 듯 속삭이는 그 목소리에 가볍게 끄덕인 뒤 나는 둘만 남은 방 안에서 가뮈르를 마주 보고 앉았다.
“소리는?”
“새어나가지 않게 조치를 취했습니다. 적어도 이 숲 안에서 저희의 말을 들을 수 있는 이는 없을 겁니다.”
분명 웃고 있는데, 입에서는 나도 놀랄 만큼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당신, 뭘 알고 있는 거야?”
“당신들이 그곳에서 큰 피해 없이 되돌아올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믿고 일을 저질렀다. 이런 대답을 원하시는 건 아니겠군요.”
부드러운 그 목소리를 누군가는 아주 듣기 좋다 여길 테지만 지금의 내 귀엔 소음같이 느껴진다.
“내가 원하는 답을 해.”
그렇게 빙 둘리지 말고.
내 짜증이 섞인 말에 가뮈르는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아주 약간입니다. 마치 책의 내용을 몰래 확인한 듯 빠르게 넘긴 몇 페이지 중 눈에 들어온 한 두 문장만을 기억하는 것처럼.”
순간 관자놀이 근처에서 맥이 뛴 것처럼 연한 두통이 인다.
알고 비유를 하는 것일까 모르고 하는 것일까.
“뭐, 예를 들자면?”
내가 일부러 태연한 듯 의자에 편히 기대 한쪽 다리 위로 다른 발목을 올리며 까닥거리는데 가뮈르의 보석안이 옅게 빛을 흩뿌리는 것처럼 나를 응시했다.
“조각난 파편을 눈에 박아 넣고 살았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되 어떤 의미인지는 몰랐으나.”
가뮈르의 몸이 조금 내 쪽으로 기울며 목소리가 은밀해진다.
“이제는 압니다. 아델리안. 자신을 믿으시길. 그리고… 신, 혹은 신의 격에 다다른 이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들을 수 있으니.”
마치 우리 둘만의 비밀이라는 것처럼 나직하게 울리는 그 목소리에 나는 숨을 삼켰다.
“절대 그의 모든 이름을 입에 올리지 마세요.”
누군가가 듣고 찾을지도 모르니까.
* * *
“그래서 저건 왜 저렇게 된 건데?”
“아니… 대놓고 저거라고 하시면…….”
나는 볼멘소리로 웅얼거리는 제로를 무시하며 소스가 묻은 포크로 제로를 콕콕 찍듯 말하자 엄지손가락만 한 밤콩을 자르던 바하디가 대답했다.
“원래의 모습에 가까워진 거예요.”
아니, 도플갱어에 원래의 모습이 어디 있어.
둥근 핵을 말하는 건 아닐 테고.
내 의문을 눈으로 읽기라도 한 듯 가뮈르가 대신 대답했다.
“원래 그가 취하고 있던 외형은 수많은 정보 섭취로 만들어낸, 무난하며 경계심을 갖지 않도록 꾸며진 모습입니다.”
그러니까 원래 그 평범한 외모는 사냥용으로 만들어진 얼굴이고. 지금 저 잿빛 머리에 녹색 보석안을 가진 미끈한 얼굴이 원래의 얼굴이다라.
“누군가의 삶을 통째로 삼키지 않은 도플갱어는 매우 희귀합니다. 그 어떤 정보의 오염도 없었다는 소리니 앞으로도 순수성을 유지하는 게 도움이 될 겁니다.”
나는 내 눈치를 보는 듯 흘끔흘끔 눈동자만 움직이고 있는 제로를 바라보았다.
[제로―도플갱어의 시작과 끝]대표 Traits : [복제(SS)] [요리(S+)] [천변만화(A)] [마력지체(C+)]
히든 Traits : [위엄(C-)] [폭식(C)]
복제의 등급이 크게 올랐으며 천변만화와 마력지체가 개화되었고 히든 트레잇으론 폭식이 생겼다.
아마 원래 있던 상냥함과 학구열은 새로 생긴 트레잇에 밀려 트레잇 창에만 보이지 않은 채 간직은 하고 있을 터.
그냥 보자면 별문제 없는 트레잇 상태지만.
‘뉘앙스가 미묘하지?’
저 폭식이란 트레잇과 가뮈르의 말을 조합하자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음식이 아닌 다른 무언가와 관련된 트레잇일지도 모른다.
애초에 제로는 먹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게 종의 본능에 아로새겨진 이유라면?
‘사람의 생체 정보를 얻지 못하니 그 허기의 반동으로 음식을 좋아한다든지.’
나는 포크를 까닥 흔들다 방울토마토를 쿡 찍었다.
“몇 번 죽었다 살아나면서 원래 가지고 있던 특성이 개화함과 동시에 원래의 외형을 찾아간다는 거야, 뭐 그러려니 하지만.”
알이 실한 토마토를 이로 짓씹으며 나는 투덜거렸다.
“쓸데없이 눈에 띄잖아.”
“원래 화려할수록 강한 법입니다.”
하여간 아이템 하나를 더 안 주려고 저런다.
“자신 있나 봐?”
“예전보단 쓸 만하실 겁니다.”
나는 그 말에 한쪽 입꼬리만 올렸다.
“그래 보이긴 하는데, 저런 걸 밖에 풀어 놔도 되나?”
좀 시무룩하게 자신의 얼굴을 쭈물거리는 제로를 흘긋 눈짓하며 말하자 가뮈르는 그 특유의 염화미소로 대답한다.
“당신을 믿습니다.”
나를 믿는다라.
한 번씩 들었던 의문이 있었다.
도플갱어 무리들은 왜 그 미궁에 갇혀 있었을까? 타인을 잡아먹고 그 사람이 된다는 도플갱어라…….
그게 이 판타지 세상에서 그렇게나 위협적인 걸까. 어느 곳에 혼란은 가져오더라도 초월적인 무력을 지닌 것도 아닌데.
하지만 지금 생각하자면 그건 도플갱어들을 가둔 게 아니었다. 단지 제로만을 위한 감옥이었지.
천변만화. 제로의 휘하에 종속된 다른 도플갱어의 힘을 빌리거나 제로 스스로가 흡수한 생체 정보에 깃든 힘을 빌려 사용할 수 있다.
마력지체. 지금 제로의 저 몸은 누군가의 생체 정보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게 아닌 마나 그 자체로 만들어진 육신.
그래서 저번 드래곤 피어 때도 루나는 기절했던 그 순간 케인보다 약하고 아무 능력도 없던 제로가 케인과 비슷하게 움직였던 이유.
모든 마법적 현상을 일부 순응, 혹은 역전 및 무시가 가능한 트레잇.
‘거기에 도플갱어의 군주라 일정 조건하에 도플갱어를 만들 수 있으며 폭식이란 트레잇.’
제로는 누군가를 그대로 삼킨 뒤 복제해 자신에게 종속된 도플갱어로 다시 탄생시킬 수 있다.
다만 단 한 번도 통째로 생체 정보를 삼킨 적 없는 상태라 불가능한 거지만 단 한 번이라도 삼킨다면.
게다가 그 사람이 악인이라 그 기억 등에 제로의 상냥함이 오염되어 트레잇이 사라진다면.
무한하게 삼키고 복제하고 더욱 정신이 오염되어 경계선을 넘게 될지도 모른다.
게다가 도플갱어의 종주인 제로는 그들과 일부 감응하여 지휘 가능한 데다 마나만 넉넉하다면 죽어도 다시 살릴 수 있으니 까딱 잘못하면 악신교단과 연결된 다섯 개의 랜덤 인카운터 메인 스트림.
수인족과의 전쟁, 전염병, 몬스터 웨이브, 제국의 황위 찬탈 내전, 그리고 언데드의 준동.
여기에 도플갱어의 대륙 습격이 추가될지도 모르는 일.
“어… 왜 그리 보십니까?”
저 멍청한 얼굴로 웃으며 내 눈치를 보는 제로를 까딱 잘못 굴리면 망하는 수가 생기겠지만.
‘케인이 해결해 줄 거야.’
가뮈르는 나를 믿는다 했지만 나는 케인을 믿는다.
원래 잘 쓰면 독도 약이라고 했으니 제로도 마찬가지. 잘만 쓰면 악신교단에 크게 먹일 수 있는데 최악의 상황만 그릴 필요가 있을까.
‘거기에 제로가 사인한 신의 계약서도 내 손에 있고.’
생각의 정리가 끝난 나는 시원하게 와인을 원샷 한 뒤 바하디에게 입을 열었다.
“그래도 억울해. 뭐라도 하나 챙겨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