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72)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72화(72/373)
흐응, 흥.
낮은 허밍 소리. 손가락으로 은청색 실타래 같은 머리카락을 한 줌 잡고 백단목 빗으로 천천히 빗어내린다.
몽실몽실하고 부드러워 보이는 갈색 머리칼과 갈색 눈을 한 소녀. 베르뷔트는 제 앞에 앉아 유순한 태도로 손길을 받는 가디아를 거울로 바라보며 웃었다.
“생각해 보셔요. 모든 인간은 권리만 누리는 세상을요.”
농사는 견인족이나 우족들이 짓고 어업은 인어들이, 과수원은 엘프들이 하며 대장간은 드워프가 시종으론 노움들이. 그리고 귀족의 경호는 드래곤이 하는 세상.
“현실성 없구나.”
“아니죠, 언니. 아닌걸요. 언젠가 내려올 현실이죠. 그날 보셨잖아요?”
저희의 신이 내린 기적에 더러운 아인족들이 무릎을 꿇는 모습을.
베르뷔트가 설탕 시럽에 굴린 젤리 같은 혀로 입맛을 다시듯 입술을 핥다 웃었다.
“저는 언니가 좋은데, 같이 믿음 활동을 하고 싶은데 무엇이 언니의 믿음을 흐리고 있나요. 네? 태어나기를 우리 인간은 가장 완벽한 종족으로 태어났잖아요.”
단지 이 세상에 온 것만으로도 존중받아야 마땅할.
아무런 능력도 없는 인간이라도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도 고귀하며 가디아처럼 모든 면에서 높은 등급을 받은 이는 더욱 가치를 인정받아야 하는 게 마땅한.
다른 종족은 단지 인간을 위해 탄생했으니 그들을 이용해 안식과 행복을 누리는 게 어째서 차별주의자인지.
그들을 감히 인간과 같은 세상에서 소멸시키지 않고 살아가게 해주는 것 자체가 그들의 신이 내린 축복인데.
이미 크나큰 자비를 베풀었음에도 더 가지려고 짖어대는 더러운 피들을 언제쯤 자신들의 위치를 깨닫게 해줄 수 있을지.
베르뷔트는 달콤한 한숨을 쉬며 한 손을 뺨에 대고 고개를 기울였다.
“속상해요.”
나중에 살아 있는 신. 그 신이 완전해지는 그 날.
이 세상은 정화되고 외모와 지능, 트레잇이 뛰어난 선택 받은 인간들은 그 신의 영토에서 정화되는 대륙을 지켜보며 새로운 시작의 날이 열릴 텐데.
베르뷔트 자신의 기준에 더없이 완벽한 가디아가 성신교에 아직도 귀의하지 않으니 이 어찌한단 말인가.
“나도 말씀 공부는 하고 있단다.”
가디아는 애써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처음엔 세상 물정 모르는 베르뷔트가 이상한 종교에 세뇌된 것 같아 구해 주려 했지만.
‘위험해.’
그 종교는 가디아의 생각보다 너무나 거대해 이제 함부로 발을 빼려 했다간 어찌 될지 모르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가디아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빗겨주는 베르뷔트의 손에 부디 자신의 피부에 돋은 소름이 걸리지 않길 바라며 말했고 베르뷔트는 빗에 걸린 은청색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주머니에 넣으며 웃었다.
“언니를 알아주는 건 성신교뿐일 거예요. 그걸 알고 계세요.”
저희의 신은 고난에도 굴하지 않는 인간을 좋아한답니다.
그러니 약간의 심술은 부려도 절 용서해 주실 거죠?
베르뷔트는 가디아의 머리카락을 챙긴 제 주머니를 매만지며 상큼하게 웃었다.
* * *
“오랜만에 다 모였네. 새로 파티원도 늘었고 하니 친목회나 가져볼까?”
결국 바하디와 가뮈르를 압박해서 케인의 무기를 강화 받아 왔더니 기분이 좋다.
바하디가 이 정도 되는 아티팩트면 고유 이름을 붙이는 게 영성을 깨울 확률이 높다고 하기에 ‘스카’라고 이름도 붙였다.
케인의 무기 ‘스카’도 강화되었겠다, 리프도 합류했겠다, 제로도 캐쉬로 외변권 먹인 것처럼 스킨 새로 끼웠겠다.
‘좋네, 좋아.’
이런 날이면 파티해도 되는 거 아닌가.
물론 그동안 쌓인 정신적 피로도 있고 식사는 가뮈르의 저택에서 든든히 먹었으니 군것질거리와 차만 가득한 티 파티 느낌이지만.
―제 음성은 관리자 등록이 완료된 케인 님과 아델리안 관리자님만 들리는데 어찌할까요.
무표정하게 나에게 묻는 골렘, 리프에게 나는 칠판과 펜을 건넸다.
수화보다는 저게 더 빠르겠지 싶어서.
“그래두 표정 보면 얼추 생각을 알 수 있던데.”
이상하리만치 리프와 의사소통이 잘 되던 루나가 고개를 기울이며 하는 말에 나는 손을 흔들었다.
“루나 너는 리프랑 잘 맞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제로랑은 대화 안 될걸.”
내 말에 제로가 순한 얼굴로 리프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다 입을 연다.
“어… 저분이 저희 탱커 되십니까?”
“그래. 말 나온 김에 제로 너는 가뮈르와 바하디에게 뭘 배웠어?”
간단하게 설명 듣긴 했지만 눈으로 보진 않았으니.
내 말에 제로가 급격하게 콧대가 높아진 얼굴로 씩 웃었다.
“저 이제 짐짝 아닙니다, 아델리안 님.”
“너 짐짝이라고 말 한 적 없는데?”
“그렇지만 늘 도움이 되고 싶었습니다. 저는 잘하는 게 없었으니까요.”
미궁에서 나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햇병아리나 다름없는 걸 아는데 내가 큰 기대 했을 리가.
사실상 제로는 다른 도플갱어들을 편하게 잡아두기 위한 인질에 가까웠고 그 역할만 해도 충분했지만, 본인은 아니었나 보다.
“해봐.”
푹신한 의자에 파묻히듯 앉아선 손으론 허공에 돌아다니던 아이기스를 잡아 만지작거리며 하는 말에 제로가 자신 있게 일어났다.
“일단, 제 휘하의 동족들이 가진 능력 일부를 저도 쓸 수 있습니다. 물론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말입니다.”
그러면서 손가락을 하나둘씩 꼽으며 말을 덧붙였다.
“지금 느껴지는 힘으로는 도끼를 잘 다룰 수 있을 것 같고 몸 움직임이 편해지는 것 같고요.”
먼 곳까지 잘 볼 수 있다, 감지 능력을 빌릴 수 있다, 검술과 조련술을 잠깐 쓸 수 있다.
‘정말 만능 잡캐가 되어가고 있구나, 제로.’
나는 흡족하게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와 동시에 아이기스를 루나에게 붙이는 연습을 시작했다.
“그리고 마법에 약간 내성이 생겼다고 해야 하나? 이건 설명을 들었는데 좀 어렵습니다.”
“그건 대충 바하디에게 들었어. 적대적 마법 현상은 감소 적용되고 우호적 마법 현상은 증폭되는 정도로 생각하면 편할 거야.”
내 말에 제로가 ‘아, 그렇구나’ 하고 환하게 웃는데 말없이 듣고 있던 케인이 입을 열었다.
“검술을 쓸 수 있다고?”
“아닙니다. 제 착각이었던 거 같습니다.”
케인의 말에 제로가 정신이 번쩍 든 눈으로 냉큼 대답함에 케인이 미간을 좁힌다.
“얘 괴롭히지 마. 그리고 제로는 당분간 리프랑 같이 대련이라도 해보는 게 좋겠다. 실전처럼.”
리프는 망가져도 자체 수복이 가능한 데다 골렘이다 보니 실제 전투 시에는 몰라도 대련일 때는 통각을 꺼둘 수도 있는 모양.
그러니 누군가를 공격하는 것에 익숙지 않은 제로의 대련 상대로 궁합이 좋을 것이다.
“케인은 두구 나랑 손발을 맞춰 보는 것도 좋을 거 같아.”
루나의 말에 제로가 고개를 끄덕거린다.
나는 이번에 제로에게 아이기스를 붙이는 연습을 하며 친목회를 다시 진행했다.
역시 친해지려면 게임이지.
발부스의 아티팩트를 모두 삼킨 나라서, 아공간에 있던 딜러 아티팩트를 꺼내자 리프를 제외한 다른 이들의 눈이 살짝 가늘어진다.
“왜 그런 눈으로 봐?”
“그거 그 노망난 도박쟁이가 쓰던 도박 아티팩드죠, 도련님?”
루나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테이블에 놓고 씩 웃었다.
“원래 단합회나 친목회 이런 거 할 때는 게임이지. 그리고 게임은 뭐다? 벌칙이 있어야 재미있다.”
내가 아주 상냥하게 웃으며 하는 말에 제로가 자신의 목을 슥 가린다.
“설마 벌칙이라는 게…….”
“여기 제로, 너랑 리프는 목이 잘려도 다시 살아날 수 있지만 루나랑 케인은 아니다.”
아니, 내 이미지가 어떻길래 벌칙이란 말에 목 댕겅을 생각하는 거지.
“벌칙은, 녹즙 마시기.”
아주 인도적인 벌칙이지 입은 쓰지만 몸에는 좋은!
“그게 목이 잘리는 것과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 거지.”
“목 대신 혀가… 미각이 파괴되구요…….”
녹즙 맛을 아는 루나와 케인은 표정이 굳고 그 맛을 모르는 제로와 리프는 고개를 기울인다.
“그게 뭐길래 선배님들 그러십니까?”
―녹즙이란 게 무엇입니까. 관리자님.
제로와 리프의 말에 나와 케인이 동시에 말했다.
“입에는 쓰고 몸에는 좋은 거.”
“인간이 먹을 수 없는 것.”
야, 그건 아니다. 그렇게 치면 이미 몇 번이나 먹은 루나랑 너는 인간 아니냐? 하다못해 루나는 토끼족이라고 쳐도 본인은 인간 아닌가 봐?
내가 노려보자 케인이 마주 노려본다.
“그럼 다들 이기면 되겠네.”
내가 먼저 파산한다면 녹즙을 나에게 먹일 기회지. 하듯 내가 히죽거리며 말하자 루나는 창백해지고 케인은 말없이 테이블 앞에 앉는다.
“도련님… 도련님은 드시면 기절하실지두 몰라요.”
“흑기사 없이 가는 거야, 다들.”
원형 테이블에 다들 둘러앉아 전의를 불태운다. 일단 제로는 날 한번 이겨보고 싶은 눈치고 루나는 최소한 나를 꼴찌로 만들지 않겠다는 표정이다.
케인은 무표정하지만 보나 마나 ‘어디 너도 한번 녹즙 맛을 봐라’ 하는 마음가짐일 테고 리프는 믿는 구석이 있는 얼굴인데.
“리프, 미각 설정 끄기 없기다.”
내 말에 리프가 살짝 눈썹을 내렸다. 어딜 꼼수를.
“패 돌리자.”
히죽거리며 딜러 아티팩트를 활성화시킨 뒤 발부스와 했던 이노센트판 블랙잭을 시작한다.
돈 대신 자본은 각자 사탕 20개씩.
‘그래도 어? 발부스랑 그렇게 크게 한판 해봤는데 내가 꼴찌 하겠어?’
“어, 이거 맛있게 보입니다.”
아니다. 제로는 19개.
사탕을 입 안에서 굴리는지 한쪽 볼이 튀어나온 제로를 리프가 곁눈으로 보다 제로가 다른 곳을 볼 때 슬쩍 하나를 빼내 자기 입에 넣는다.
아니, 누가 리프를 벌써 못된 짓에 물들인 거지?
일단 제로 18개.
케인이 말해 주려는 듯 입을 여는데 내가 발을 밟으며 딜러 아티팩트가 순서대로 주는 카드를 받았다.
여럿이 하다 보니 죽거나 사는 것, 블러핑도 눈치 보면서 해야 한다.
일단 케인은 초반에 감을 잡기 전에 한두 번 털어먹는 것으로 잡고 리프는 골렘이다 보니 표정으로는 모르겠다.
루나와 제로는 아주 얼굴이 도화지네, 도화지야.
나는 확실할 때 크게 걸어 패턴을 보여주다 블러핑 섞어 낮은 패일 때도 몇 번 사탕을 딴 뒤 애매하면 눈치를 보지 않고 죽는 방식으로 사탕을 불려 나갔다.
케인은 처음엔 정석적으로 카드 패를 바꾸고 배팅하더니 나중엔 진짜 발부스 때 나 말고 케인을 앉힐 걸 그랬나 할 정도로 발군의 실력을 자랑했다.
루나는 몇 번 크게 잃고 소소하게 따서 겨우 본전치기. 리프는 뜻밖에 뜬금없이 배팅하는 바람에 크게 잃고 크게 얻는지라 등락이 심했다.
하지만 몇 판 돌고 나니 역시 최약자는 제로. 나름 표정 관리하면 뭘 하나 티가 다 나는데, 블러핑 몇 번 실패하여 사탕이 확 줄어든 데다 결정적으로.
“사탕이 모자르구, 제로.”
“에? 왜지. 저 하나만 먹었는데 말입니다. 선배님… 하나만 빌려주시면 안 됩니까?”
제로와 리프가 사탕을 주워 먹은 덕에 1개가 모자라 강제 파산.
“제로, 몸에 좋은 거 먹겠다. 그렇지?”
“몸에 좋은 거면 뭐 져도 아주 벌칙은 아닌 거 아닙니까? 선배님들… 얼굴이 왜…….”
나는 웃으며 그동안은 이리저리 돌아다니느라 제조 못 했던 녹즙을 정령의 숲에 며칠 있던 통에 구해 둔 재료로 즉석에서 만들기 시작했다.
일단 창문 열고, 섞을 때는 숨 참고. 기포 올라오다 터질 때 눈에 가스 안 들어가게 조심하고.
루나는 이미 양손으로 자신의 귀를 손수건처럼 코에 대고 눌리고 있고 케인은 한 발짝 뒤로 물러난다.
표―
기포 터지는 소리와 함께 질척한 점액질, 마치 썩은 늪지대에서 막 채취한 발효된 슬라임 점액 같은 것을 컵에 담아 제로에게 건넸더니 안 그래도 희멀건 한 얼굴이 더 새하얗게 질린다.
“이게… 먹을 수 있는 종류입니까?”
“몸에 좋아. 그렇지?”
나는 케인과 루나를 보며 웃었고 둘은 일단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효과는 확실히 봤을 테니 거짓말은 못 하지 저 둘.
제로는 나와 녹즙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울 거 같은 얼굴로 입술을 달싹임에 나는 애원하며 매달리기 전에 냉큼 잘랐다.
“한마디 할 때마다 한 잔 늘어난다.”
내 말에 흔들리는 제로의 눈동자. 아직 녹즙의 진정한 맛은 모르는지라 그래도 제법 빠르게 마음을 정한 듯 비장한 얼굴로 컵을 꽉 쥐고 단숨에 마신다.
쭉쭉 들어간다. 쭉쭉.
그리고 그대로.
쾅!
제로는 기절했다. 토하는 시늉을 하거나 우는 소리도 없이 단숨에 마시더니 뒤로 넘어가는 모습에 아무도 잡아주지 않아 그대로 바닥에 곤두박질.
“나는 그렇다 쳐도 너희는 아무도 안 잡아줘?”
“저걸로 다칠 신체가 아니다.”
―동의합니다.
“기절하는 시늉인 줄 알았구…….”
매정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관리자께서 직접 제조하신 이것은 암살 물질입니까.
리프가 궁금한 듯 쓰러진 제로를 들어 소파에 걸쳐놓은 뒤 바닥에 굴러다니는 컵을 들어 손가락으로 한 방울 찍어 입에 넣는다.
―미각 차단을 요구합니다. 미각 차단을 요구합니다.
리프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바르르 떨어냄에 나는 크게 웃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