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75)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75화(75/373)
눈치도 빠른 데다 종종 남의 속내를 읽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드는 행동을 하기도 하고 마치 이 세상에서 모르는 건 없다는 듯 구는 아델리안.
그가 가장 무방비해지는 시간이 잠이 든 순간인 걸 본인은 알고 있을지.
‘아마두 우릴 믿구 계신 거겠지만.’
루나는 마법 천막 안쪽에 늘 피우던 모닥불 대신 아델리안이 난로라 부르던, 그 망할 땅 요정에게서 빼앗은 아티팩트를 노려보다 살짝 숨을 죽이고 천막 밖으로 나왔다.
“토끼 선배님, 차 드십시오.”
외형이 변해도 제로는 제로라. 공손하게 건네는 차를 고맙다 말하며 받은 뒤 루나는 통나무 앉아 방금 피워 이제 막 불씨가 커지는 모닥불을 바라보았다.
“뒤척임도 없구 호흡두 고르시니 깊게 잠드셨어.”
“오랜만에 저희끼리 대화하네요, 선배님들.”
[무슨 일로 보자고 하셨습니까.]루나는 아델리안이 준 작은 칠판에 적힌 아기자기하고 동글동글한 글씨체를 보고 웃었다.
보기에는 무표정하며 딱딱한 성격일 거 같던 리프라 약간 의외였다.
“내일 접경지 가비오렌에 도착하면 케인이랑 헤어지니까 그전에 우리끼리 한번 대화나 할까 하구 모이자 그랬어, 내가.”
원래 소심함이 트레잇으로 붙어 있던 그녀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아마도 발부스의 계략으로 드래곤을 만나고 그로 인해 아델리안의 모든 방어 아티팩트가 소실된 이후.
정령의 숲으로 왔던 그쯤이었을까. 루나는 아델리안을 지키기 위해 더욱 강해지고 싶었고 나약한 자신을 알게 모르게 채찍질한 결과, 어느 순간부터 말끝을 흐리는 빈도가 줄며 늘 살짝 숙여 바닥을 보던 시선이 위로 올랐다.
아델리안을 위해.
‘도련님이 날 지켜주시면 안 돼.’
메이드인 자신이 지켜야지.
“솔직히 말해서 우리 중에 제일 강한 건 케인인데 내일부터는 따루 행동해야 하니까. 의지를 다잡자 하는 그런 의미루?”
소위 말하는 내 아래로 다 집합이란 걸 한 건데. 루나를 포함해 이들 중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아는 이들이 단 한 명도 없었기에 다들 고개를 끄덕거렸다.
“맞습니다, 선배님. 이제 케인 선배님이 없으니까 저희가 좀 더 마음을 모아야 합니다.”
키가 한 뼘은 더 커진 몸으로 양손을 모아 고개를 끄덕거리는 제로를 보다가 루나가 마찬가지로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맞아요.] 하고 필담을 하는 리프에게 미소 지었다.
“특히 케인이 잘해야 해. 알구 있지?”
네가 어떻게 행동하냐에 따라 아델리안이 천사가 될 수도 있고 악마가 될 수도 있다는 얼굴로 루나가 물음에 케인이 살짝 미간을 모았다.
“무슨 말인지 알고 있다.”
“절대, 절대절대절대. 인간이 혐오스럽다구 막 경멸하는 눈으로 바라보거나 길에서 지나가다 잠시 몸이 닿았다구 도련님은 못 듣는 크기로 죽여버릴까 이런 말 하면 안 된다구.”
여기서는 루나만큼이나 귀가 좋은 이들이 많을지도 모르니까.
“맞습니다. 특히 여성보다는 남자에게 아주 가차 없는 눈빛 보내시는데 그러시면 안 됩니다.”
마을을 불태우던 그들도 흑마법사도 뒷골목의 거렁뱅이와 인간 사냥꾼, 팔아넘긴 촌장과 노예 감독관은 물론, 그 외에도 수없이 많은 배신 중 대다수는 어린아이에게도 가차 없는 성인 남성이었던지라 묘하게 서늘했던 반응을 아델리안 빼고 다 알고 있었는지 이때다 싶어 케인몰이가 시작되었다.
―맞습니다. 케인 님은 인간을 기준으로 성인 남성 개체에 특히 예민한 반응을 보입니다.
“알았다. 조심하도록 하지.”
적당히 하라는 듯 케인이 손을 들어 가볍게 흔드니 다들 작게 웃곤 차를 한 모금씩 마셨다.
“도련님 걱정은 하지 말구, 도련님께서 네게 명하신 일을 열심히 하도록 해.”
“맞습니다. 저도 이제 한 손 거들 수 있으니 토끼 선배님을 잘 보필해 아델리안 님을 모시겠습니다.”
―전투 모드 대신 보호 모드로 있겠습니다.
케인은 루나와 제로, 리프가 지금 말하는 의도가 무엇인지 여실하게 느꼈다.
‘모르면 병신이지.’
아델리안이 내준 임무에 꼭 성공하라. 그리고 최대한 빨리 돌아오라.
자신들을 믿고 뒤는 생각하지 말고.
케인이 드물게 피식 웃자 루나도 살짝 눈꼬리를 휘었다.
“망치면 절대 안 돼.”
“그래.”
케인이 대답하며 몸을 일으켰다. 접경지 가비오렌에 도착하기 전날 밤이었다.
* * *
“B1A9 39127.”
“일련 번호 확인했습니다. 비밀번호 적어 주세요.”
나는 알카이도가 알려준 일련번호와 비밀번호로 가비오렌의 은행에 익명으로 보관되어 있던 작은 아공간 주머니와 세이렌을 꺼냈다.
던전에서 얻은 한 쌍의 세이렌 프로토타입.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연구 분석하여 만들어낸 세이렌 A버전.
내가 알카이도에게 요구한 건 지구에서 쓰던 핸드폰처럼 세이렌 하나로 다른 세이렌이 몇 개가 있건 서로 연락 가능한 종류였지만.
‘시범 생산이라서 그런가.’
나는 등록한 세이렌 프로토타입 하나에만 반응한다는 세이렌A를 쥐고 은행 밖으로 나갔다.
“루나랑 제로는?”
―이곳의 분위기를 가볍게 알아본다며 잠시 이탈하였습니다.
나는 리프의 말에 알겠다는 듯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서는 들고나온 세이렌A를 케인에게 던졌다.
만두처럼 생겨서 말랑한 슬라임 같은, 겉보기엔 세이렌 프로토타입과 비슷하지만 색이 조금 다른 그것을 케인이 가볍게 낚아채더니 날 바라본다.
“이건.”
“세이렌 하나가 완성되었거든. 그걸로 진행 상황 보고해.”
애초에 단독 행동은 내가 심부름시킬 때 외에는 거의 한 적 없는데 최소한의 안전장치 하나 없이 보낼까 봐.
중간에 나나 케인, 둘 중 어느 쪽에서라도 일이 틀어지는 순간 합류해야 하는데 그냥 보내면 어느 세월에 찾아서 합류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케인은 자존심이 강해서 불합리한 일을 당해도 입 다물고 있을 놈이니.’
어찌 보면 반 군대나 다름없는 곳으로 들어가는 것이라 약간의 불합리한 일은 참작하지만 내가 나서야 하는 순간이 생길지도 모르니.
별일 없다면 2~3일에 한 번. 긴박한 상황에 들어가면 자주 의견교환을 해야 할지 모른다.
“쓰는 법 잊은 건 아니지?”
내가 프로토를 잡고 물음에 케인의 시선이 나를 훑는다.
<그럴 리가.>
나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곤 갈색의 평범한 가죽 주머니로 보이는 아공간 아티팩트도 건넸다.
“평소에 그거에 넣어 다니면 될 거야. 아공간에 넣어도 네게 귀속된 세이렌이라 주머니가 몸에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한 대화를 원하면 되긴 할 거고.”
그만큼 집중력이 좋아야겠지만 그건 뭐 케인이니까.
“볼일 다 보구 나오셨네요.”
“저랑 토끼 선배랑 그나마 음식이 맛있어 보이는 여관 찾았습니다, 아델리안 님.”
잠시 뛰어다녔는지 헤어밴드처럼 아래로 살짝 묶은 귀를 풀어내는 루나와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키는 제로의 말에 나는 안내하라는 듯 고갯짓했다.
“확실히 접경지라 그런지 전체적으루 음식이 거칠어요.”
“대부분은 용병이 이용하는지 분위기도 좀 험해 보이는 곳이 많습니다.”
뭐 그렇겠지. 지금 우리 파티는 인식 저하 배지를 소매나 옷 아래쪽에 달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인상을 흐리게, 기억에 남지 않게. 평범해 보이는 얼굴로 보이게 하는 마법.
아무래도 몬스터 접경지는 사람이 쉽게 죽어 나가는 곳이기도 하고 일반적인 마을이나 도시가 아니라 군사적 목적으로 만들어진 곳이라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거칠었다.
그런 곳은 아무래도 시비 걸리기 쉽다는 기본적 인식도 있고 루나나 리프의 외모가 뛰어나다 보니 미리 분란을 차단하자는 마음에서 가뮈르에게 받아온 거였다.
“생각보다 마을에 가까워요.”
“루나는 그럼 어떻게 생각했는데?”
제로와 루나가 안내한 식당 겸 여관을 찾아 말을 끌고 걸어가며 물음에 루나가 살짝 웃었다.
“막 목책 세워져 있구 몬스터 울음소리도 들리구?”
“저도 선배님과 비슷한 상상 했습니다.”
그들의 말에 내가 아직 저택에 있을 때 이 세계를 알기 위해 이것저것 읽었던 것과 원작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그런 곳은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야 있지. 이곳은 한 번의 토벌을 마치고 쉬는 곳이라고 보면 돼.”
내 말에 다들 아,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데 리프가 하얗고 부드러워 보이는 손을 내밀며 말했다.
―말은 마구간에 제가 묶고 가겠습니다, 관리자님.
나는 리프에게 동전을 쥐여 주며 말먹이 추가를 부탁한 뒤 여관으로 들어갔다.
“아니, 진짜라니까! 이따만 한 오거가!”
“참 나… 자네는 소형 몬스터 토벌에만 신청서 넣은 걸 내가 아는데.”
“이번에 정산 금액이…….”
“딱 한탕만 더 뛰고 고향에 가려고.”
안은 왁자지껄했다.
여러 음식이 섞인 냄새와 체취, 먼지 냄새가 뒤엉킨 공기.
나는 나무로 된 창이 밖으로 살짝 들려 있는 테이블을 찾아 앉아선 내 맞은편에 앉은 케인과 옆에 앉는 루나에게 내 몸을 가리라고 눈짓했다.
‘나 너무 깔끔 떠나?’
코덱스를 몰래 꺼내 클린을 테이블에 거니 훨씬 보기 좋다 여기며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현대에서 살던 기억도 기억이지만 아델리안으로도 귀족으로 살았지, 마법으로 늘 정화나 클린 달고 살았지.
이곳보다 차라리 노숙할 때가 더 청결했으니 좀 익숙해진 뒤라면 몰라도 지금 식사를 앞두고 좀 깨끗하게 먹고 싶은 건 죄가 아니다. 암, 그렇고말고.
“그래서 남들과 같은 천막 쓸 수 있을 것 같나.”
“그때는 그때고.”
그런 내 행동을 보며 케인이 묻는 말에 나는 으쓱거렸다.
군대에서는 씻어도 발 냄새 나는 후임이랑 같이 잘만 살았으니.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막상 닥치면 다 잘하게 되어 있는 법.
대충 정식 세트 시켜 놓고 나는 입을 열었다.
“보통 접경지로 오는 부류는 셋이야.”
하나는 일반 용병. 이들은 보통 이런 전진 기지 역할을 하는 마을에서 먹고 쉬면서 마음에 드는 토벌 의뢰가 나오면 등록하고 참여한다.
돈은 토벌에 가기 전 선금으로 조금 받고 다녀와서 받는 형식. 중간에 죽으면 위로금 명목으로 지정해 둔 은행으로 의뢰 금과 사망 위로금이 들어가는 것이다.
둘. 기간제 계약형 용병. 일정 이상의 신용, 혹은 그것이 필요 없을 정도의 무력이 있으면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이다.
말 그대로 3개월 이상 계약하고 토벌은 자신이 지원하는 게 아닌 군부에서 내린 명령대로 움직여야 하는 게 특징.
그리고 셋. 이건 뭐 귀족이나 파견받은 이들.
대부분 군대에서 출세 욕심이 있거나 좌천 받아 오지만 간혹 정의감과 일반 평민들을 위해 오는 예도 있었다.
“케인, 넌 군부에 직접 지원하는 거야. 실력 테스트 후 적성 검사를 한 뒤 배치될 건데.”
나는 미지근한 맹물 맛 맥주로 목을 축이며 말을 이었다.
“네가 할 일은 실적을 내며 동시에 기회가 된다면 라인하르트 변경백과 인맥을 쌓아둬.”
“남자겠네요?”
“그렇지?”
내 입에서 라인하르트라는 이름이 나오자마자 루나가 묻더니 내 대답에 제로와 루나가 시선을 피한다.
왜지?
“알았다. 기회가 생긴다면.”
“뭐 변경백이라는 지위와 이곳에서도 장군이라는 직책 덕에 쉬워 보이지 않는 건 알지만 너라면 의외로 간단해.”
그 남자는 강한 이를 좋아하거든.
내가 웃으며 하는 말에 루나가 케인의 어깨를 토닥인다. 저렇게 응원도 해주고 아주 보기 좋아.
짜디짠 소시지의 간을 퍽퍽한 빵으로 밸런스 맞춰 씹어냈다. 다 같이 먹는 일은 이제 당분간 없을 텐데 이왕이면 맛있는 걸 먹고 싶었지만 별수 없나.
“이곳에서의 일 끝나면 아주 좋은 데서 회포를 풀자.”
“그래.”
나는 케인과 악수하고 헤어졌다. 케인이 배지를 떼고 나와는 다른 쪽으로 걸어가자마자 사람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돌아가는 게 여실히 보인다.
[케인 레이너스―나아가는 자(+)]대표 Traits : [불망(SS)] [천재(SS)] [외형(SS)] [신체(SS)] [마나제어(A+)] [디스펠(B+)]
히든 Traits : [강인함(SS)] [만능(S)] [갈망(A+)] [기적(B)]
불망 외 모든 트레잇이 상승했다. 이유는 아마 비공정 안에서 있었던 리프와의 전투. 비공정 밖에서 있었던 체이서와의 전투 때문일 것이다.
‘불망.’
나는 저 트레잇이 처음엔 케인이 잊지 않음을 암시한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받은 고통, 복수를 위한 집념. 꺾이지 않는 의지.
하지만 반대로 보자면 케인은 누군가에게 잊히지 않을 자격을 지닌 것일지도 모르겠다.
원작에서는 저 외모와 업적을 가지고도 결국 파티원이 아닌 일반 사람들, 그들의 기억에서 잊힌 영웅이 되었으니까.
‘이번엔 다르지.’
나는 크게 숨을 흩어 뱉고선 몸을 돌려 다시 여관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누나가 거기서 왜 나와?’
언제 들어온 것인지 구석에서 술을 홀짝이는 붉은 머리의 무투가.
레이첼을 보고 입을 쩍 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