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77)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77화(77/373)
드래곤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오만하며 독선적이고 수백 수천 년을 살았음에도 생각이 짧아 보이는 지상 최강의 생명체.
가끔 그런 생각을 했다. 그렇게나 오래 살았으면서 이렇게 뻔한 수에 넘어가고 눈에 보이는 함정을 다 밟고 다니네?
그런데 다른 관점에서 보면 그런 거지. 몸이 너무 좋으면 머리가 일을 안 해.
눈앞에 가시밭길이 있고 그 너머에 내가 원하는 게 있으면 보통은 돌아갈 길이 없는지 확인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아주 튼튼한 신발을 신어 가시밭길을 걸어도 안전하다면 굳이 돌아갈 필요가 없는 거지.
남이 보기에는 미친 짓 같고 멍청한 행동 같아도 내 발바닥이 안전할 것을 내가 안다면 가시밭길을 가로질러 가는 것이다.
‘레이첼도 그런 거지.’
애초에 ‘마법을 절대로 쓰지 않는 무투가’라는 유희를 나왔으니 그것에 맞춰 노는 것이다.
게임을 좀 해본 사람은 알 텐데 컨셉질이 저래서 무서운 거다.
뻔히 말려드는 걸 알아도 재미로 따라가게 되니까.
“도련님… 뒤에서 자꾸 누가 노려보구 그래요.”
“괜찮아. 신경 쓰지 마.”
제로와 리프에게 숙소로 구할 집 구하기를 맡기고 나는 루나와 같이 의뢰 사무소에 와서 게시판에 붙은 토벌 의뢰서를 하나씩 읽기 시작했다.
대규모 토벌은 아직 없고. 산맥을 따라 이어진 접경지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발생하는 몬스터 출몰 때문에 걸린 소규모 토벌 의뢰서만 가득했다.
“이렇게 많은 의뢰서가 있구 사람들이 토벌하는 데두 몬스터가 계속 나오다니 이상해요.”
“아무래도 산맥 너머까지 인간이 밀고 들어간 적은 없으니까.”
지금 대륙에서 인간의 세력이 강세라고는 해도 드넓은 산맥을 넘어가 몬스터들을 대규모로 잡으며 영토를 넓히기엔 무리인 시점이다.
챠비드같이 아직 이쪽에서 다 쓰지도 못한 땅이 곳곳에 남아 있었고 유적 등의 신비도 널린 상태.
산맥 너머까지 진출해야 하는 원동력이 없는 것이다.
관리의 어려움은 둘째치고 그만한 장점이 없으니 산맥과 맞닿은 나라에서 하는 일이라곤 몬스터들이 내륙으로 넘어오지 않도록 주기적 토벌하는 것. 그것뿐이지.
“도련님. 뒤통수가 물리적으루 아픈 기분이 들어요…….”
“괜찮아, 괜찮아.”
나도 그렇긴 한데. 눈빛에 마나를 실어서 쏘아보나. 콕콕 쑤시는 기분이다.
―너. 언제까지 날 무시할 거야? 어?
“처음은 분위기도 볼 겸 몬스터가 확실하게 파악된 곳이 어때?”
정황상 몬스터가 나타난 곳의 피해를 더 막기 위해 일단 토벌 신청한 의뢰서가 아닌 정확하게 규모 등이 파악된 상세 의뢰서를 톡톡 두드리며 말하자 루나가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요. 일단은 쉬운 것부터 해봐요.”
배시시 웃는 루나의 등을 살짝 밀며 신청서를 작성해 보라 이른 뒤 나는 슬금슬금 루나의 귀로도 들리지 않을 만큼 멀리 떨어진 구석에서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왜 자꾸 아는 척하는데?”
“아는 척? 아는 처억?”
말도 짧아지고 아주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왔다? 하는 식으로 시비를 걸어댐에 나는 태연하게 창문으로 밖이나 내다보며 입을 열었다.
“나에게 관심 있어? 왜 자꾸 말 거는데. 참 나 보는 눈은 있네.”
“…무슨 소릴 하는 거지, 인간 꼬맹이?”
버벅거리는 레이첼의 몸짓에 길게 늘어뜨린 포니테일이 붉은 천처럼 흔들린다.
“유희 처음 나온 것도 아니고, 지금 그 몸은 인간 아니야? 인간이 인간보고 인간 꼬맹이라고 하면 너무 대놓고 숨겨진 정체가 있단 소리잖아.”
내가 혀를 차며 하는 말에 레이첼의 아름다운 얼굴이 확 구겨진다.
“거기에 유희 나왔으면 나온 곳의 풍습이나 그런 건 좀 따르지그래. 누가 이 나잇대 남자를 꼬맹이라고 불러? 너나 나나 지금 겉으로는 나이가 비슷하거든.”
“아, 그럼 꼬맹인데 꼬맹이라고 하지, 뭐라고 불러.”
여하간 애도 아니고 누가 뇌없첼아니랄까 봐. 주먹으로 몬스터 피떡 만들 때가 제일 즐겁지 아주. 머리도 안 쓰고.
“아델리안 님이라고 불러.”
내가 웃으며 속삭인 말에 레이첼이 기가 찬다는 듯 하. 허 하고 이상한 숨소리를 낸다.
“님? 니임?”
“아니면 아델리안으로 부르든가. 친구 하지, 뭐.”
내가 기습적으로 한 손을 내밀어 레이첼의 손을 잡고 흔들자 붉은 눈을 동그랗게 뜬다.
“너 진짜 겁 없구나?”
“앙심 안 품는다며. 인간 무투가 레이첼로 대하는데 뭐가 그리 억울해? 설마 나에게 대접받고 싶어?”
아주 그냥 벌벌 떨어줘? 살려달라 애원하며 드래곤의 자비를 빌어봐?
내 속삭임에 레이첼이 날 바라보다가 크게 웃었다.
그 파안대소에 어느새 토벌 의뢰 수속을 마친 듯한 루나가 놀라 다가와선 악수하고 있는 내 손과 레이첼의 손을 보다가 슬쩍 케이크 자르듯 손날로 갈라 떨어트린다.
“도련님. 누구예요?”
“방금 사귄 친구.”
그렇지? 하듯 눈짓하자 레이첼이 씩 웃으며 루나를 내려보더니 나에게로 시선을 바꿔 던진다.
“맞아. 인간 레이첼의 친구지.”
“근데 아까 전엔 왜 저희 도련님을 노려보신 거죠?”
레이첼의 말에 루나가 의심을 지우지 않고 내 앞을 슬 막으며 하는 말에 내가 루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얹었다.
“내가 너무 잘생겨서 한번 본 거래.”
“뭐?”
“그렇지? 설마 뒤통수를 한번 주먹으로 쳐보고 싶어서 보고 있었던 건 아니잖아. 그렇지?”
내가 히죽거리며 하는 말에 레이첼이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저거 내 뒤통수 때려보고 싶었구만.
“그럼 무슨 대화하구 계셨는데요.”
“뭐 앞으로 토벌 때 만나면 서로 돕자 그런 거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레이첼을 보며 너무 뚱한 루나를 달래듯 귀를 톡톡 당겼다.
원래 원작에서는 가디아가 루나를 시녀로 데리고 있다가 가디아와 함께 케인의 파티에 합류하니 포지션 자체가 메이드로 굳어져서 이런 대드는 모습을 볼 수 없었는데.
많이 밝아지고 당당해졌네.
마음 같아선 루나의 트레잇을 확인해 보고 싶었지만 레이첼이 바로 옆에 있으니 혹시 몰라 애써 마음을 누르며 입을 열었다.
“잠시 대화 좀 더 나누고 있을 테니 제로와 리프를 찾아서 이곳으로 데려와, 루나.”
“…얼른 다녀올게요.”
마음에 안 들어도 내 말에 싫다고는 안 하는 루나를 보며 손을 흔들어 주곤 묘한 표정의 레이첼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왜 그런 얼굴이야?”
“겉보기엔 아주 건방지고 멍청하고 아무 생각 없이 사는 놈 같아 보였는데 의외로 신의를 받고 사나 봐?”
어딜 아닌 척 욕을 바가지로 퍼주네.
“다 인덕이지. 그래서 앞으로 아는 척 정도는 하고 여기서 지내면 될 거 같은데, 어때?”
내가 흘리듯 한 말에 레이첼이 한쪽 눈썹을 치켜든다.
“내가 잠시 마을에 들린 거지, 원래는 토벌하느라 바쁘거든? 앞으로 나 볼일 없을 거다.”
“아, 정말? 우리 파티도 토벌에 참여할 거라 그럼 더 자주 볼 수 있는 거 아닌가?”
내가 뭣 모르는 척 말하니 레이첼이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아직 격의 차이를 느낄 정도로 실력을 쌓지 못했구나? 너희 파티를 다 합쳐도 나보다 약해. 토벌 의뢰 자체가 겹칠 수가 없어.”
“아, 정말? 그런데 내가 보이게는 우리 파티도 장난이 아니거든. 애초에 네가 한 마리 잡을 때 우리는 사람이 많으니 더 잡을 수 있잖아.”
내가 일부러 오만함 트레잇을 누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웃으니 레이첼이 움찔거린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트레잇. 드래곤 전용 100% 확률 어그로 아니냐.
“주제를 모르네, 주제를. 그렇게 격의 차이를 알고 싶으면 내기할까?”
나는 슥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애써 억누르며 아무것도 모르는 멍청한 느낌의 말투로 되물었다.
“내기?”
레이첼이 나를 슥 훑어본다.
“너 돈 있지.”
“많지.”
주먹질하는 것만 좋아하는 누구와는 다르게. 애초에 레이첼이 갤러리에서 뇌없첼이라고 불리는 큰 이유는 대책 없는 무대포임과 동시에 근본 없는 경제 관념 덕이 아니었나.
레이첼 정도의 강자가 허름한 여관에서 밍밍한 맥주를 먹을 이유가 뭐 있겠어.
돈을 막 쓰다가 주머니에 먼지만 날려서 그런 거지.
“토벌 의뢰에서 누가 더 많이 잡나 내기할까? 너희 파티와 나. 이렇게 둘이서 말이지. 내가 이기면 금화 10개. 어때?”
의기양양하게 웃는 레이첼.
저거 봐라. 저 바보는 고작 금화 10개로 내게 인생, 아니 용생을 저당 잡히려고 한다.
“그럼 반대로 레이첼이 아닌 내가 이기면?”
“그럴 리는 없지.”
애초에 자신이 이길 테니 내 조건은 들을 생각도 하지 않는 저 뻔뻔함.
역시 드래곤이다.
“내가 이기면 맹세나 하나 하는 건 어때?”
“…무슨 이상한 짓을 시키려고. 말도 안 되는 맹세 같은 건 안 할 거야. 적어도 국가 단위에서 쓰는 공용 계약서 정도는 되면 생각해 볼까.”
까다롭게 구네.
나는 어찌 더 구슬리지 하고 생각하다 번뜩 스치는 생각에 씩 웃었다.
“좋아. 국가에서나 쓰는 그런 걸로 한정할게. 어때?”
보통 이곳에서 국가에 대한 맹세나 계약서는 단조로운 편이다. 애초에 귀족에게 시키는 맹세가 얼마나 구속력이 빡빡하겠는가.
기껏해야 영지를 잘 지키고 황실에 충성하고 그런 건데 그런 걸 내가 레이첼에게 시켜서 좋아질 게 뭐 있겠어.
내가 개인적으로 이득 볼 만한 맹세 문구를 국가에서 통용되는 계약서나 맹세 문구에서 찾는 게 힘들 거라고 생각했으니 조건을 걸었겠지만.
“역시 네가 질 거 같으니 대충 정하는구나?”
“그럴 리가. 대신 나는 이곳의 분위기나 토벌 난이도 이런 건 아직 모르니까 내기에 쓸 토벌은 내가 정할게. 이건 괜찮지?”
내 말에 그러든가 하며 자신의 긴 머리카락을 손등으로 한번 바깥쪽으로 쓸어 털어낸 레이첼이 몸을 돌렸다.
* * *
“전 반대에요.”
“케인 선배님이 간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렇게 바로 정 없이 그러시는 거 아닙니다.”
―제가 부족하다면 더 노력하겠습니다. 관리자님 제 마나 심장의 출력을 더 올리면 됩니다.
루나가 데려오며 어찌 설명한 것인지, 루나는 토끼가 아닌 오리라도 된 듯 입술이 나와 있고 제로도 순둥하기 그지없는 녀석이 반대부터 하질 않나.
리프도 마나 심장의 출력을 올리면 그만큼 여유 가동시간이 짧아질 수도 있는 걸 알면서 저리 말한다.
“나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게다가 중요한 건 나는 레이첼에 대해 아직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단 것이다.
제로와 리프가 봐뒀다는 집을 확인하러 가는 와중에 뚱한 이 녀석들을 보며 나는 웃었다.
그새 케인과 정들어서 다른 이가 들어온다니 싫은 티를 내는 게 아이같이 순수해 보이기도 하고.
“뭐가 그리 마음에 안 들어?”
루나에게 어깨동무하며 묻자 루나가 자신의 귀로 뺨을 슥슥 문지르며 흘긋 눈동자만 움직여 나를 본다.
“그 여자분은 도련님을 막 대하는 거 같아요.”
“그거야 내가 너희에게나 도련님이고 고용주고 관리자지. 레이첼과는 아무것도 아니잖아.”
아직은.
“일단 제 생각에 아델리안 님. 저희의 전력은 아무리 케인 선배님이 이탈했다 해도 충분히 강한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위도 토끼 선배님과 리프 후배로도 충분하고요.”
―고블린 따위는 마나를 다 쓰지 않는 한 제게 아무런 상처도 낼 수 없습니다.
알지, 알지. 아는데.
‘정확한 시기는 모르지만 조만간 초대형 몬스터가 한번 내려올 때가 되었거든.’
나중에 케인이 이곳에 왔을 때 만났던 총사령관. 라인하르트. 그는 과거에 만난 몬스터 때문에 의족과 의수를 달고 있었으며 성격 또한 괴팍해진 상태였지만.
‘아직은 멀쩡하단 말이지.’
귀족, 그것도 백작이나 되는 이가 파벌 싸움에 진 것도 아닌데 접경지까지 와서 솔선수범으로 몬스터를 잡을 만큼 인격적으로 된 이를 돕고 그 김에 내 이득도 챙길 예정이니까.
그 초대형 몬스터를 노릴 때 레이첼을 내가 부리려면 지금부터 준비해서 파티에 넣어두는 게 편하다.
“내가 다 생각이 있어서 그래. 성격은 좀 그래도 실력은 좋고 배신할 사람은 아니야.”
“도련님께서 그리 말씀하시면… 알았어요. 저두 마음을 열어볼게요.”
“일단 알겠습니다.”
―네.
유희 중이니 먼저 드래곤이라 밝힐 수도 없고. 일단 실력이 확실한 건 사실이니까.
나는 애들을 살살 달래며 미리 봐둔 숙소로 들어섰다.
“앞으로 토벌 의뢰를 자주 확인해 줘. 내가 원하는 의뢰가 나오면 바로 알 수 있게.”
“어떤 의뢰요?”
루나의 질문에 나는 살짝 재미있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오밤중에 들리는 어린아이의 웃음소리의 원인을 찾는 의뢰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