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8)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8화(8/373)
정신 나갈 거 같아!
나는 루나와 케인을 낚아채듯 당겨 내 침대에 밀어 넣곤 그 위로 시트를 던지듯 씌웠다.
“이 안에서 나오면 죽는다.”
내가 죽는다. 내가!
“들어갈게.”
“아니, 들어오지 마! 기다려!”
나는 침대 위에서 데굴 굴러 눈이 뱅글 돌아가는 루나와 이게 뭔 짓이냐 눈으로 욕하는 케인의 얼굴이 안 보이게 시트로 둥지를 만들어 엎어놓곤 전력 질주해 문을 부술 듯 열고 나갔다.
“헉… 헉…….”
“위험하게, 내가 문에 맞을 뻔했잖아. 너 뭐하다가…….”
나는 숨이 차 몇 번이고 숨을 몰아쉰 뒤 몸에 열이 올라 손부채질을 하며 으릉거리듯 입을 열었다.
“우리 이야기 다 끝난 거 아니야?”
“…카이만 대공께선 여름 별장에 없던데. 네가 거기 있다고…….”
“있으시려나? 라고 말했지 거기 있다고 한 적 없는데? 그거 따지러 온 거야?”
“하, 일단 들어가서 말해. 지금 복도에서 할 말은 아닌 거 같아.”
“어딜 들어가. 나 지금 바쁘다고.”
가디아가 날 밀고 문을 열기 위해 뻗은 손목을 낚아채 당겼다.
아니, 당기려고 했는데…….
술 먹고 행패만 부리던 아델리안과 활시위를 잡아당기는 가디아의 힘이 이렇게나 차이 날 줄이야!
손목을 잡아낸 내 손을 달고 그대로 문을 열고 들어가는 가디아에게 이끌려 나도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제발! 이불 속에 있기를!’
내 기도를 신이 들었을까.
이불 더미 위로는 검은 케인의 머리칼이, 아래로는 루나의 다리와 메이드복의 치맛자락이 나와 있었다.
“대낮부터…….”
아, 내 이미지… 아니, 원래도 망나니였지만 내 이미지…….
“둘이나…….”
경악에 찬 가디아의 눈빛에 나는 처음으로 시선이 아래로 떨어지는 걸 막을 수가 없다……
“바, 바쁘다고 그랬잖아. 나가!”
“역시 남자란… 역겨워.”
그 감정 없이 새하얗던 얼굴이 새빨개져서 나가는 가디아.
너는… 너는 케인이랑 나중에 안 할 거 같아? 내가 다시 적금을 꼴아 박는 한이 있더라도 하렘 DLC 내달라고 할 거라고!
나는 도망가듯 뛰어가는 가디아를 보다가 문을 천천히 닫곤 걸어 잠갔다.
…그래, 내 수치심과 목의 안전을 맞바꿨으면 내가 이득이지.
이득…이지?
그런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날 거 같지?
“도련님… 괜찮아요?”
어느새 이불 더미에서 나온 루나가 분홍색 눈으로 바라봄에 나는 으쓱이곤 몸을 돌렸다.
“뭐 대충? 아마 괜찮을 거야. 그나저나 케인 배고플 텐데.”
자네?
가디아도 망측함에 도망갔으니 애 뭐라도 먹이려고 이불을 걷었는데 케인이 기절이라도 한 듯 누워 있다.
얕게 오르락내리락하는 가슴이 아니었으면 죽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만큼 피폐한 몰골이다.
“깨울…까요?”
“냅둬. 일어나면 먹이지 뭐.”
저렇게 까무룩 잠든 것도 결국 내가 안 재워서 그런 거니까.
나는 들어 올렸던 이불을 그대로 다시 덮었다.
* * *
신의 계약서에 사인을 마치니 아름다운 선율과 함께 진줏빛 오오라가 피어오른다.
코끝에선 달콤한 향이 감돌고 반투명한 천사가 내려와 장밋빛 고운 입술을 달싹였다.
―신의 이름으로 이 계약은 유효하리라
“앞으로 잘 부탁한다.”
“예… 저도 잘 부탁합니다…….”
나는 죽어가는 얼굴의 할론을 보며 감출 수 없는 기쁨에 크게 웃곤 가문의 반지를 매만져 잔뜩 쌓인 서류를 꺼냈다.
“네가 읽어보고 별것 없으면 사인하고. 이건 정말 내가 죽어도 물어봐야 할 거 같은 내용의 서류만 나에게 가져오는 거야.”
그동안 밀린 서류의 양에 더욱 핏기가 빠지는 할론을 보며 짐짓 진지하게 표정을 굳혔다.
“만약 네가 가져왔는데 내가 보기엔 별거 아니다?”
나는 막 사인이 끝나 따끈따끈한 신의 계약서를 흔들었다.
“여기 명시된 대로 1년 더 연장 근무한다 알았지? 5년만 죽었다 생각하고 서류 볼 거 6년, 7년 늘어나면 누구 잘못이다?”
“제, 제 잘못입니다…….”
처음엔 일부러 10년을 부른 뒤 선심 쓰는 척 5년까지 깎아 준 덕에 감히 거부하지 못하는 할론을 보며 나는 기지개를 켰다.
어차피 내가 영영 크루거 가문의 가주를 할 게 아니니 몇 년 정도 신규 사업 밀리는 거야 나도, 하다못해 카이만도 신경 안 쓸 터.
사실 정말 급한 사업 있으면 카이만이 알아서 하겠지. 힘을 기르기 위해 잠적했다지만 다 방법이 있을 테니까.
“좋아, 그럼 나가 봐. 아, 이걸로 밥이라도 한 끼 사 먹고.”
나는 아공간에서 계약금 기분이라도 내라고 금화 하나를 꺼내 할론에게 퉁겨 준 후 잘 가라 손을 흔들어 줬다.
“저 남자도 네 세 치 혀에 말린 피해자로군.”
“무슨 소리야 피해자라니. 나처럼 선량한 고용주가 어디 있지?”
“마, 맞아요. 도련님은 먹을 거 잘 챙겨주신다구요…….”
내 옷 중에 검은색이 있었나?
꼭 지같은 검은색 튜닉에 바지도 검은색으로 차려입은 케인은 좀 파리하게 질린 안색과 말라붙은 몸을 제외하면 꽤 멀쩡해 보였다.
나는 미래의 낭군 대신 내 편을 들어준 루나가 기특해서 머리를 쓰다듬어 준 뒤 먹을 것을 가져오라 신호하곤 케인에게 맞은 편에 앉으라 턱짓했다.
“생각보다 일찍 일어났네. 며칠은 잘 줄 알았더니. 그나저나 자고 나니 얼굴이 피었다? 내가 침대 양보한 거 알지? 내 덕분이야 그거.”
“시들었던 것도 그쪽 덕분인 거 잘 기억하고 있지.”
“너 소통 장애 주제에 말 잘한다?”
“소통 장애라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짜증나네?’
게임 할 때 대화 좀 걸려고 인간족 NPC만 누르면 ‘인간과는 대화하고 싶지 않아.’만 띄우던 놈이?
나는 어쩐지 울컥하는 기분에 살짝 케인을 노려보다가 그래도 강수호였을 때 나이로 치면 훨씬 어른인 내가 참기로 했다.
“너 일어난 김에 지금 준비한 식사 가지고 오라 연락했으니. 일단 배 좀 채우고 우리 대화나 해볼까? 말 잘하는 케인 레이너스.”
“나도 물을 말이 있으니 그러도록 하지, 선량한 고용주 아델리안.”
한마디를 안 진다.
그래도 평정심, 평정심. 나는 무언가 많이 알고 있는 꿍꿍이를 알 수 없는 놈이다.
만화에서 종종 등장하는 뭔가 분위기 잡는 실눈 캐릭터 같은 존재다.
속으로 되뇐 다음 양손을 깍지껴 턱을 괸 그대로 웃으며 말을 던졌다.
“앞으로 오래 볼 사이인데 좀 친해지는 게 어떨까 우리?”
나중에 가디아가 내 목을 노리려 하면 좀 말려 줄 정도로 친해져 보자, 어?
“구태여 친해질 필요가 있을까. 너도나도 계약에 명시된 것만 준수하면 될 거 같은데.”
“무슨 그런 섭섭한 소릴. 다 더불어 사는 세상에, 사람 관계는 스몰 톡부터 시작되는 거 몰라?”
“모른다.”
와, 저거 지금 내가 한 대 때리면 강인함이랑 신체 때문에 내 손이 더 아프겠지?
“알아둬, 알아둬. 다 생활의 지혜고 피와 살이 되는 정보야. 세상 너 혼자 사는 거 아니잖아?”
그래도 미소를 지우지 않고 건네는 말에 대놓고 다른 곳을 보는 케인.
이 자식…….
어딜 보나 싶어 고개를 돌리니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거대한 책장이 보인다.
이 넓은 방의 한쪽 면을 반이나 채운 그것은 벽을 파고 넣었는지 요철 없는 모습을 자랑하고 있었는데.
딱 봐도 은은하게 돈 냄새가 나는 모양새로 보아 아델리안의 허세를 위해 만들어진 것 같다.
저 가득 들어찬 책을 읽어보긴 했을까.
난 으쓱하곤 케인에게 입을 열었다.
“읽고 싶은 게 있다면 그리해도 좋아.”
“그러지.”
한 번의 사양 없이 대답하는 케인 놈이 이상하게 얄미워서 지그시 보는데 때맞춰 문이 열리며 루나와 다른 시종들이 음식을 가지고 들어온다.
나와 루나가 먹을 빵과 샐러드, 과일 해산물 요리 서너 가지와 찌고 굽고 졸인 각각의 육류.
그리고 케인이 먹을 포션 섞인 묽은 수프 한 대접.
“맛있게 많이 먹어.”
“으아어아… 죄, 죄송해요……. 빈속에 다른 것이 들어가면 탈이 날 수도 있다구 그래서…….”
“그래도 푸딩 정돈 괜찮을 거 같다길래 네 것까지 가져왔지.”
우리만 진수성찬이라 미안하네, 주인공 놈아.
나는 장난스레 웃곤 부드러운 빵을 천천히 반으로 나누어 하얗게 결이 일어나는 모습을 보여 준 뒤, 누구의 것과는 다르게 진한 스프에 푹 찍어 입에 넣었다.
으음~ 미슐랭~
내가 입에서 번지는 진한 맛과 고소함에 감탄하는데 날 바라보던 케인이 여상스런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이해할 수 없군.”
“뭐가?”
예상한 반응이 아닌데?
나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던져 놓고 수프를 천천히 떠먹는 케인을 갈고리 띄우며 바라보았다.
저거 갈고리 수집가 되려고 저러나. 무슨 의미인지 파악이 안 되네.
하기야 원작만 놓고 보면 지금 나와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가 예상할 수 없던 일이긴 하다.
그렇지만 사실 내가 이렇게 장난치며 놀려도 콧방귀도 끼지 않고 그냥 날 무시하며 식사할 거로 생각했는데 말이야.
내가 의도를 이해했지 못했든지 간에 저 ‘인간 불신형 소통 장애’ 케인이 나에게 무언가 말을 던진 거 자체가 나를 왠지 기분 묘하게 만들었다.
억지로 비슷한 느낌의 과거를 가져온다면…….
나만 보면 짖던 떠돌이 개가 소시지로 아무리 유혹해도 늘 도망만 가더니 어느 순간 날 알아보고 짖음을 멈춘 그때 정도?
“와아… 포도주 고기 조림도 맛있어요, 도련님.”
내가 잠시 식사를 멈추고 상념에 빠져서일까.
힘을 안 주면 내려오는 드롭이어라 귀찮았는지 자신의 머리 위로 귀를 살짝 묶은 루나가 케인 눈치를 보다 속닥거린다.
“아, 그래?”
나는 루나의 앞 접시에 놓인, 졸인 당근을 냉큼 포크로 찍어 빼앗아 먹었다.
“앗… 아… 아아아아…….”
아껴둔 건데… 하는 웅얼거림이 들리지만 알게 뭐야. 이거 맛있네.
거하게 식사를 마친 후 케인에겐 약초를 우린 차, 나와 루나는 베리차 한 잔씩 손에 들고 계약서를 테이블에 올렸다.
“아깐 내가 좀 사정이 있어서 말이야. 우리의 대업이 최소한의 대화도 없이 이루어진 거 같아서. 뭐 혹시 추가나 변경하고 싶은 게 있는지 다시 잘 읽어봐. 물론 사인은 이미 해서 바꿀 수는 없지만.”
기분상 들어주는 척은 할 수 있지. 척은.
“계약서의 내용은 아무래도 좋아. 나에게 중요한 건 네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다. 내 동생이 살아 있다는 말. 그렇다면 어디에 있는지도 넌 알겠지.”
케인은 계약서를 뒤집어 내 쪽으로 밀어내며 나와 눈을 마주함에 나는 의뭉스럽게 웃었다.
“그게 당장 그렇게 중요해?”
“중요해.”
“너도 사실은 혹시나 하고 의심하고 있었잖아. 제발이라며 염원하고 있었잖아. 그냥 네 염원이 통했겠지 하고 여겨. 그 아이가 당장 어디에 있는지 중요해? 아니, 안 중요해, 케인. 네게 중요한 건 내가 널 언제 어디서 어떻게 정확히 구체적으로 무엇을 도와주느냐는 말을 했어야지.”
표정을 알 수 없는 케인을 얼굴을 느리게 훑어보며 나는 연신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중요해. 내가 네게 어떠한 것을 요구받아도 버틸 수 있는 끈이 될 테니.”
아니, 넌 동생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를 때도 그 어떤 험한 일, 역겨운 일이 널 짓눌려도 끝까지 버텼어.
“지금 말해 주면 넌 갈 거잖나. 그렇지?”
“그 아이 혼자 둘 수 없어. 다녀오게만 해주면 난 네게…….”
“넌, 너를 못 믿는구나.”
토막을 자르는 내 말에 케인이 입을 다물었다.
“네가 그 아이를 구할 때까지 아주 오래 걸릴 수 있다고 생각해? 어쩌면 영영? 내가 돕는다 해도, 그래서 강해진다 해도 너 하나의 힘으론 쉽지 않을 거라 생각해?”
난 소리를 내 웃곤 식어가는 베리차를 한 모금 마셨다.
“네가 널 못 믿어도 난 널 믿어.”
“나를 믿지 못한다는 게 아니다. 나는 널 믿지 못하는 것일 뿐.”
“계약서엔 내가 얼마나 지원할지는 안 적혀 있지. 그래서 너라면 내가 한순간의 유희로 너와 계약을 하고 질리면 적당한 허점이 있는 계약서로 빠져나간 뒤 너를 버릴지도 모른다고 계산했을 거라 생각해.”
슬쩍 스친 표정을 보니 대충 비슷하게 생각한 모양인데.
애초에 내가 명확하게 표시하지 않았던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지금 가용 가능한 금화가 몇 개인지 나도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 아델리안의 모든 전력을 다하라고 명시했지.
하지만 그 말을 비틀면.
결국 내 전력은 여기까지야라고 할 수 있는 몇 가지 근거만 만든 뒤엔, 케인은 더 이상의 도움은 받지 못하고 그대로 나에게 묶여버리게 되니까.
하지만.
“하지만 난 말이지 널 몰아붙여서 가장 강한 자로 만든 뒤 널 이용해서 내가 하고 싶은 걸 다 할 생각이야. 그런데 내가 왜 널 중간에 포기해야 하지?”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 찻잔을 꽉 움켜쥔 채로 말한 덕에 아릿한 손을 내리며 케인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러니 너도 날 믿어. 케인.”
내가 반드시 널 살리고, 해피엔딩을 보고,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은 서비스 컷도 볼 거야. 전설의 모든 히로인 임신 엔딩을 이노센트 사가에 내 달라고 할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