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83)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83화(83/373)
케인이 접경지 심부로 떠난 지가 3일 정도 지났다. 그사이 비가 한 번 오더니 기온이 훅 떨어진 게 곧 가을인가 싶은 요즘이다.
‘그럼 원작보다 좀 이른 것 같단 말이지.’
나는 체온 유지 및 미약한 중독 저항 인첸트가 포함된 작은 아공간 반지 덕에 잘 몰랐으나 요즘 주위 용병들의 옷이 길어지고 두터워진 걸 보면 날이 제법 쌀쌀해진 모양.
원작의 내용이 제법 방대하기도 했고 아무리 과몰입 오타쿠라 주기적으로 다시 읽었다지만 글자 하나하나 다 기억하는 건 아니라서 애매했는데.
기온이 내려갔다는 것과 맞물려 떠오른 기억이 분명 겨울쯤 사이클롭스가 강하했다고 읽은 것 같다.
그 덕에 안쪽 협곡에 있는 전진 기지가 무너지고 도로가 끊기는 바람에 식량 부족과 기온 저하로 사망자가 늘었다고.
그에 라인하르트가 더욱 흑화하여 나중에 이곳에 대대적으로 방벽과 더불어 요새가 생기는 계기가 되었다고 했던가.
접경지를 따라 길게 건설하는 방벽은 처음에야 그곳에서 튀어나오는 몬스터를 막아주는 좋은 선택으로 보였지만 후반에 일어날 악신교단의 침공 덕에 오히려 악수가 되어버리니까.
악신교단을 피해 몬스터 접경지 안에라도 들어가려 했던 이들은 몬스터를 막기 위해 세워진 방벽을 뚫고 넘어갈 수가 없었다. 그걸 나중에는 통곡의 벽이라고 불렀더랬다.
그러니 이번엔 통곡의 벽이 생기지 않게 사이클롭스를 잡아내고 겸사겸사 케인의 스펙업도 하면 될 터.
“일단 가져온 토벌 의뢰서는 총 3가지구요.”
루나가 가져온 종이 3장을 테이블에 놓았다.
코볼트 부락 토벌, 슬라임 같은 부정형 몬스터가 기어 나오는 토굴 정리. 다른 하나는 트윈 헤드 오우거로 추정되는 대형 몬스터 협동 토벌이라.
마지막은 꽤 위험한 몬스터다 보니 목숨값과 더불어 의뢰금이 엄청나게 높지만 과연 몇이나 이 협동 토벌에 참여할까.
“오우거만 해두 마나를 쓰지 못하는 일반 용병은 수천 명이 덤벼봐야 시간문제지, 전부 몰살될 텐데. 트윈헤드면 마나를 쓸 줄 아는 용병이래두 위험하겠어요.”
“그 정도로 위험합니까?”
루나의 말에 제로가 의아한 듯 입을 열었다.
“미궁에서 저희가 있던 방으로 떨어진 모험가들 중 몇몇은 자신이 오우거 슬레이어라며 으스댔는데.”
“그건 아마 허세일 거야.”
일반 오우거만 해도 마나를 두르지 않은 공격은 가죽에 상처를 내지 못한다.
수백 수천 번을 일반 사람이 때려봐야 내장이나 좀 상할까. 그것마저도 말 그대로 괴물 같은 회복력으로 돌아올 테고.
그나마 유일하게 단점으로 지목되는 것은 머리가 나쁘다 정도인데 그것도 트윈헤드 오우거라면 아주 약간, 정말 약간 상쇄되는 약점이다.
내가 괜히 이곳에 떨어져 한 일 중에 몬스터 도감 같은 여러 백과사전을 읽은 게 아니지.
적어도 내가 상대하는 것들이 어느 정도 강한지 알아야 뭐라도 생각을 짜낼 수 있는 법.
―그럼 관리자님. 저희는 1번과 2번 의뢰 중 어떤 것을 받을 예정입니까.
“무조건 3번이지.”
나는 나머지 두 장은 밀어낸 뒤 오우거 협동 토벌 의뢰서를 들었다.
“왜 무조건 3번입니까?”
나는 앉아서 입 벌리고 조는 레이첼의 입 안에 손가락을 넣었다 뺐다 하는 리프를 구경하며 대답했다.
“우리 파티의 실적은 제법 쌓이기도 했고 이제 자잘한 실적보다는 얼마나 통제에 협조적인지 알리는 게 좋을 거 같거든.”
거기에 레이첼이 합류한 덕에 우리 파티의 무력은 수직 상승. 물론 레이첼은 유희 중이니 자신이 정한 힘 이상은 당장 내지 않을 것이다.
아마 기껏해야 오러 유저에서 마스터 정도겠지만. 당장은 그것만으로도 괜찮아. 거기에 사실 나라는 존재 덕에 애매하게 리미터가 풀려 있기도 하고.
드래곤의 유희는 원래 한낮의 꿈같은 것이라 자신이 정한 운명을 그대로 따라간다.
심한 경우 일부러 드래곤으로서의 기억을 지우고 살아가다 죽음 이후 드래곤으로 되살아 날 정도.
그러니 레이첼이 오러 유저까지만 힘의 제한을 두고 유희를 시작했다면 원래는 거기에서 그쳤을 테지만.
레이첼이 드래곤인지 알고 있는 나 때문에 언제든 자신이 유희에서 쓸 힘의 리미터를 풀 수 있는 조건이 생긴 셈.
‘이번 유희는 컨셉을 달리해야 할 거야.’
나는 고개를 조금 기울이고 웃었다.
“우리 쪽에는 레이첼이 붙었으니까. 그걸 어필하며 합동 토벌단에 들어간다고 신청해.”
그럼 보나 마나 전방으로 내몰릴 것이다. 레이첼은 힘만 센 바보에 괴력녀로 소문난 데다 남들과 잘 지냈으면 애초에 노답 파티원도 아니었을 터.
알게 모르게 적을 만들어 뒀을 테니 엿 먹으라는 의미로 전방에 자리를 마련해 줄 테지. 보통 오우거 정도 되는 대형종은 오러 유저라 하더라도 절대 단독으로는 잡지 못하니까.
중형은 개체에 따라 다르지만 대형종으로 넘어가면 살아 있는 동안은 몸속의 마정석을 다룰 줄 아는 놈들이 대다수.
살아 있는 동안은 몸속의 마정석을 이용해 겉가죽을 질기게 만들고 마나 저항력을 높이는 법을 본능적으로 깨우친다.
그러면 일반적인 날붙이는 아예 들어가지 않고 상대하는 이들도 똑같이 마나를 사용할 줄 알아야 그나마 피륙에라도 상처를 낼 수 있으니 상대하기 위한 최저 조건이 오러 유저인 셈.
“레이첼 일어나 봐.”
나는 테이블 밑에서 레이첼의 발을 톡톡 차 깨우며 턱을 괴고 입을 열었다.
“우리 파티 정도면 트윈 오우거를 파티 단독으로 잡을 수 있을까?”
우리 파티는 절대 약하지 않다. 다만 약하지 않다는 것과 강하다는 조금 느낌이 다르지.
내가 파악한 우리 파티의 전력으로 트윈 오우거 사냥은 가능한 상태지만.
드래곤의 판단이 듣고 싶거든.
“에? 쓰읍. 오우거?”
레이첼이 손등으로 턱을 훔치며 풀린 눈으로 나를 본다.
“그래, 오우거.”
레이첼의 눈동자가 점차 또렷해지더니 나부터 시작해 루나와 제로. 리프까지 슥 훑어본다.
“어디까지 드러내느냐에 따라 다르지.”
길쭉한 손가락이 나를 콕, 허공에서 짚었다.
“그 코덱스 안에 든 고클래스 마법을 쓴다면 가능.”
그리고 다음엔 리프.
“몸 안의 마정석? 마나 동력원의 소모율을 올려 오러 유저 이상의 출력을 낸다면 가능.”
“그렇다면 우리가 모든 전력을 쏟지 않고 공략한다면?”
그에 레이첼이 볼이 튀어나오게 얼굴을 괴고 심드렁하게 말했다.
“가능하긴 할 거야. 다만… 공격력이 부족해서 아주 오래 걸리겠지.”
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나는 유틸적인 면모가 강하고 리프는 탱거. 루나 또한 게임으로 치면 덱스를 올린 회피탱 및 서브딜러에 가까운 데다 제로는.
‘좋은 말로 하면 만능. 나쁜 말로 하면 잡캐.’
다방면으로 활용하거나 상성을 맞출 수 있지만 극딜러, 즉 누커가 부족하다.
그래서 레이첼을 끌어들이긴 했지만 레이첼은 따지자면 물리 공격력이 강한 무투가 타입이니 오우거와는 상성이 좀 아쉽지.
날붙이를 들어주면 상황이 좀 다르긴 한데.
‘패는 손맛이 좋다고 맨손으로 몬스터를 잡는 유희 중인데 그럴 리는 없겠지.’
아무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 한다 해도 그건 유희의 설정을 크게 바꾸지 않는 선에서 들어줄 게 뻔하다.
“별수 없네, 다 같이 잡는 수밖에.”
그러면서 적당히 두각을 내야만 사이클롭스 토벌 때 어느 정도 발언권을 가질 수 있을 터.
나는 히죽거리며 웃었다.
“이제 슬 얼굴을 팔아볼까?”
* * *
제로는 어색한 듯 살짝 찡그려 웃었다. 도플갱어의 종족 특성일까 아니면 자신의 성격 탓일까.
누군가의 관심과 시선이 너무나도 거추장스러운데 그걸 또 피할 수가 없는 게 문제라고 해야 하겠지.
‘그냥 평범한 인간처럼 지내고 싶은데.’
자신의 고용주가 그렇게 두지 않는 게 문제.
“얼른 고개 안 드냐.”
지금도, 그 자신은 로브를 뒤집어쓴 채로 얼굴을 가리고 있으면서 제로는 질 좋은 옷을 입히고 머리 스타일부터 새로 꾸며 얼굴마담으로 내세우는 것이 영락없는 악당이다.
“아, 좀 봐주시면 안 됩니까?”
“어, 안돼.”
그동안은 필요 없는 분란과 누군가 아델리안을 알아보는 불상사 등을 막기 위해 인식 교란 배지로 인상을 흐리게 만들었지만 이제는 슬 인지도와 명성을 제대로 얻어야 한다든가.
그래서 아델리안만 배지와 더불어 후드를 뒤집어쓰고 활동하는 대신 나머지는 배지를 빼기로 합의했다. 이미 실력은 알음알음 알려졌으니 발언권과 더불어 영향력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했지.
‘그런데 왜 제가 얼굴마담이 되어야 합니까…….’
수상한 로브 입은 자를 빼면 제로외엔 전부 미인들 뿐.
키가 작고 귀여운 소녀 타입의 루나 선배. 늘씬하다 못해 슬랜더한 체형에 인형 같은 무표정함이 오히려 도발적인 리프 후배.
그리고 제로 자신과 비등한, 180cm가 넘는 장신에 보기 좋은 근육질, 거기에 호쾌해 보이는 쾌활한 레이첼까지.
아무래도 몬스터들과 드잡이하는 용병들 사이에서는 독보적인 외모다 못해 이 근방 지역 전부를 뒤져도 몇 나오지 않을 미인을 제로가 독차지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으니…….
‘누가 봐도 지금 입 모양으로 밤길 조심하라는 거 같은데.’
지금 숙소에서 나와 토벌 의뢰소로 가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받은 살해 위협만 두 자리 숫자.
모든 어그로를 제로에게 몰아주겠단 아델리안의 계획이 너무나 성공적임에 제로는 울고 싶어졌다.
“작전명 뭐다?”
“제로는 알고 보니 재벌가 막둥이였다구…….”
아델리안과 루나의 대화에 제로가 조금 조이는 것 같은 셔츠의 목덜미를 살짝 늘리며 허허 웃었다.
‘애초에 재벌가라는 게 뭡니까, 아델리안 님.’
그 재벌가라는 것은 혹 누군가의 악의를 먹고 사는 존재입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살기가 등을 콕콕 찌르고 뒤통수에 눈이 달린 것도 아닌데 대놓고 입으로 욕하는 게 보입니다.
제로는 경련이 날 것 같은 입가를 꾹 누르다 말고 결국 입을 열었다.
“저 아델리안 님, 윽 아니 그, 어. 저 잠시 화장실 좀 다녀 오겠습, 아니… 올게.”
작전상 지금 이 파티의 리더는 제로, 아델리안은 제로가 고용한 마법사. 특징은 얼굴에 상처가 있어 외모 콤플렉스로 늘상 로브를 쓰고 있음… 상태라 제로는 버릇처럼 존대하다가 아델리안에게 발을 밟힌 뒤 어물거리며 슬슬 뒤로 빠졌다.
‘아무래도 해결하지 않고 숙소로 돌아갔다간 오늘 밤이 시끄러울 것 같으니.’
아델리안은 듣지 못할 테지만 팀을 모아 숙소를 습격하니 마니 전리품으로 여자를 나누니 마니 하는 귀에 역겨운 소리와 더불어 살기가 남자인 자신과 아델리안에게 쏟아지고 있으니.
“조용히 해결하구 와.”
마찬가지로 아주 조그맣게, 한참 협동 토벌 참가서를 작성 중인 아델리안 몰래 루나가 중얼거린 말에 제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사소한 일을 하나하나 보고 할 필요는 없지.
숨을 쉴 때마다 보고하는 것과 매한가지니까.
아델리안이 원하는 것을 취하기 위해. 그 길을 걷는 것에 있어 돌조각 하나 길 밖으로 주워 버리는 것은 주인이 알아차리기 전에 하는 것이 종자의 덕목.
천천히 토벌 의뢰소의 뒷골목으로 나오자마자 저를 둘러싸는 그림자에 제로가 나직하게 웃었다.
“무슨 일입니까.”
가까이 서니 코를 찌르는 찌든 내. 먼지와 땀, 그리고 마수의 피.
거기에 섞인 다른 종류의 혈향.
비록 한 사람의 존재 자체를 통째로 집어삼킨 적은 없으나 익숙한 그것은 살아 있는 생명체가 흘린 피.
“이봐, 도련님. 혼자만 그렇게 즐기면 쓰나.”
“셋이나 데리고 다니면 어디 밤에 남아나겠어?”
“아, 모르지. 그 로브 입은 녀석, 벗겨놓으면 계집일지 어찌 아나?”
그렇게 예쁜 계집들도 당당하게 데리고 다니면서 로브를 뒤집어 씌웠으면 또 모른다는 말에 제로가 피식 웃었다.
이걸 루나 선배가 들었으면 큰일…….
‘당장 그 입을 뭉개주면 좋겠구.’
벽 너머로 희미하게 들린 목소리에 제로가 크게 웃었다.
“도련님 너무 무서워서 정신이 나갔나 본데. 왜 혼자 웃어. 어?”
“뭐야, 지린내. 바닥이 흥건한데 아직 아무것도 안 했는데 벌써 지리면 곤란해.”
제로는 부드럽게 웃던 눈 그대로 제 앞에 선 세 명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당신이 저질러 놓고 무슨 소리십니까.”
“어?”
피어오르는 지린내에 비죽비죽 웃으며 비꼬던 사내가 아래를 바라보았다. 언제부터인지 축축하게 젖은 자신의 바지에 영문을 알 수 없는 표정.
그리고 제 앞에 선 동료의 목덜미에 오돌오돌 돋은 소름까지.
그제야 그들은 자신의 몸이 덜덜 떨리고 있음을 알아채고 골목의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유난히 빛이 나는 것 같은 녹색의 보석안과 눈을 마주했다.
마치 뱀 앞의 쥐새끼처럼.
“잡… 잡아 먹…….”
“그럴 리가요. 저는 먹지 않습니다. 당신들만 절 내버려두면.”
모든 것을 삼키고 자의식을 지우고 하나의 인간을 이 세상에서 영혼까지 녹여서 새로운 종족으로 되살려 영혼에 뿌리박은 그대로 내뱉는 행위를.
“지금의 저는 하지 않습니다. 아시겠습니까.”
나라는 존재가 분명 모든 기억과 감정을 오롯하게 지녔음에도 내가 아니게 되는 게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오늘 밤 예정대로 찾아오십시오.”
순하디순한 얼굴로 웃으나 아가리를 벌린 뱀의 송곳니 바로 아래에 서 있는 것처럼 세 명의 사내들은 힘겹게 고개를 저었다.
“그럼 토벌 때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제 수족이 되어 주시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