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84)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84화(84/373)
“이렇게 되면 나가리 아니야?”
“음.”
요즘 같은 날씨에는 어울리지 않는 남방풍 옷을 입은 여자가 낡은 신관 복을 입은 중년 사내에게 귓속말했다.
남에게 자신들의 대화가 들리지 않도록 마나로 살짝 막을 치며 속삭이는 말에 사내가 작게 침음을 흘리며 곤란한 얼굴로 턱수염을 문질렀다.
“의외긴 하군. 그녀가 완전히 새로운 파티에 들어갈 줄이야.”
“그러게. 눈독을 들이던 우리만 새 된 거잖아. 그치?”
제멋대로에 다혈질인 데다 남이 하는 말에 듣는 척도 하지 않는 불성실한 태도의 사람이나 실력만큼은 확실한 터라 고삐만 채울 수 있다면 누구보다도 확실한 전력.
그렇기에 이곳 접경지 가비오렌에 오래 있던 파티들은 대부분 그녀를 노리고 공작을 펼치고 있었는데.
‘갑자기 튀어나온 신생 파티에 레이첼, 그녀가 가입했다라.’
“무슨 대화 중인지는 모르나 끼어들어도 되겠지? 키킥.”
쥐를 닮은 것으로 보아 서족(鼠族)의 혼혈로 보이는 사내가 살짝 굽은 등을 긁으며 마나 장막 안으로 쑥 들어옴에 여인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뭐야, 진짜. 나랑 빈센트랑 대화 중이잖아.”
여인이 살짝 짜증을 섞어 하는 말에 서족 사내가 키득거렸다.
“보나 마나 폭력중독자에 대한 잡담 아니겠어? 나도 좀 끼자고.”
“레이렌, 키쵸도 대화에 낄 자격이 있다. 그도 레이첼 영입을 위해 같이 움직였으니.”
빈센트가 자신을 두둔하는 말을 하자 키쵸라 불린 서족 사내가 어깨를 과장스레 으쓱거리자 레이렌이 투덜거렸다.
“그래서 뭐, 할 말이라도 있어?”
“아니, 키키. 좀 이상해서 그렇지. 폭력중독자를 부추겨 주머니를 탈탈 털어버린 게 얼마 전이지 않나?”
“흐음, 그렇긴 하지. 그래서 그녀가 푼돈이라도 벌려고 잠시 거점지에 내려왔을 때 꼬시기로 한 거잖아.”
레이렌의 말에 빈센트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워낙 단독 토벌을 즐기는 레이첼인지라 보급을 위해 잠시 나올 때를 제외하면 늘 토벌 중이니 일부러 접점을 늘리기 위하여 약간의 함정을 판 것인데.
자신들이 보낸 초대는 전부 거절하며 이곳에 와서도 자잘한 토벌만 하던 그녀가 어느 순간 얼굴이 곱상하게 생긴 귀족 사내의 파티와 함께있다라.
‘뭔가 이상하군.’
빈센트 자신과 레이렌, 키쵸가 그녀의 주머니를 노리고 한 공작 덕에 술과 도박에 빠져 빈털터리가 된 레이첼이라지만, 단순히 돈이 궁하여 누군가의 파티에 들어갈 사람이었다면 벌써 몇 번은 들어갔을 터.
“이왕이면 여자들만 있는 우리 파티에 들어오는 게 편했을 텐데. 저 귀족 도련님… 마음에 안 들어.”
“키킥, 거기보다는 우리 파티가 더 재미있지. 다들 화끈하니까.”
레이렌과 키쵸가 티격태격 나누는 말에 빈센트는 자신의 턱수염을 만지며 입을 열었다.
“우리 파티도 나쁘지 않다. 기본에 충실하지. 그런데 저 파티는 약간 아쉽긴 하군.”
키는 크되 위협적인 외모라고 하기는 부족한, 순한 얼굴의 귀족 도련님.
그리고 그 귀족 도련님보다 어딘지 모르게 더 건방져 보이는 수상한 로브 사내.
거기에 기본적으로 소심함 트레잇이 붙기 쉬워 이런 접경지에서는 보기 힘든 토끼족 소녀와 더불어 인형 같은 무표정함이 더욱 눈에 띄는 가녀린 여인은 무어란 말인가.
성격은 지랄 맞지만 실력과 더불어 외모까지 눈에 띄는 레이첼을 빼면 몇이나 손에 피를 묻혀 봤을까.
토끼족 소녀가? 아니면 바람에도 휘청거릴 것 같은 소녀가?
로브를 입은 사내에겐 마나의 흔적이 거의 보이지 않으니 일반인이나 다름없을 텐데, 그렇다면 보좌관 정도일 터.
레이첼을 포함해 눈에 띄는 외모를 가진 여인들을 모아 파티를 만든 저 귀족 사내의 의도란 뻔한 게 아니겠는가.
“저런 파티에 레이첼은 아쉽긴 하군.”
빈센트의 말에 비딱하게 서서 벽에 기대있던 레이렌이 웃었다.
“그렇지? 우리 파티에 딱 맞는데.”
“킥, 뭐 그럼 다들 동의하는 것으로 알고 진행할게.”
레이첼을 저런 도련님 파티에 두는 건 아쉽지. 어떤 조건으로 그녀를 가입시켰는지는 모르겠지만.
“파티가 와해되면 다시 기회가 올 터. 최전방에 파티를 배정하면 되겠군.”
레이첼 외엔 제대로 된 실전 경험도 없어 보이는 애송이 파티.
조금만 몰아세워도 될 터. 키쵸가 키득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파티 인원 체크, 이름 적고.
제로의 외모가 달라진 걸 이렇게 써먹게 될 줄이야.
아무래도 처음 미궁에서 만났을 때는 외모가 평범하고 친절한 시골 청년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뭐 덕분에 어그로 잘 끌고 있지.’
토벌 의뢰소까지 오는 길에 쏟아진 욕은 나도 들었다. 그게 순해 빠진 제로가 아닌 오만 트레잇을 두르고 있는 나였다면 얼마나 더했을지.
나는 고개를 한 번 저어내곤 의뢰서를 전부 작성해 제출한 뒤 몸을 돌렸는데 조금 떨어진 곳에서 루나와 제로가 대화를 하고 있었다.
“마음이 없는 거짓말을 하고 와서 그런지 심장이 아픕니다…….”
“아니야. 잘했구, 신경 쓰지 마. 마음 같아선 내가 하려구 했는데.”
“아닙니다, 선배님. 그래도 제가 하는 게 보기에 좀 더 낫습니다.”
뭘 하고 온 거야?
제로는 못 먹을 걸 주워 먹은 듯 살짝 안색이 창백하다.
리프도 뭔가 제로를 달래듯 어깨를 두드리고 있고 레이첼은 구석의 의자에 앉아서 졸고 있네.
“무슨 대화를 그리하고 있어?”
“아, 그게…….”
나는 제로가 입을 열자마자 남이 보기 전에 툭 쳤다.
컨셉 유지 해라. 나 대신 어디서 가출한 귀족 도련님 역할을 맡고 있는 제로는 내 손짓에 냉큼 입을 다물었고 그에 루나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냥 아델리안 님 기다리며 잡담했어요. 신청서는 다 쓰셨구요?”
나는 곁눈으로 졸고 있는 레이첼을 살짝 견제하거나 고까운 눈으로 바라보며 지나가는 다른 용병들을 보다가 작게 웃었다.
“후방 지원으로 적어 뒀지.”
내가 적은 그대로 보내줄 리는 만무하지만.
레이첼을 견제할 겸 우리 파티에 대한 실력도 테스트할 겸 전방으로 보낼 게 뻔하다.
‘바라는 바지.’
나는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꼬우며 나를 바라보는 리프와 배시시 웃는 루나를 바라보았다.
“맛있는 거 먹을까?”
―균형 잡힌 음식은 마나 심장의 소모를 줄여줍니다.
“저저저 먹고 싶은 거 있구요. 뿔돼지.”
루나가 살짝 손들고 장난스럽게 과장된 모습으로 말하는데 레이첼이 눈을 번쩍 뜬다.
“나도 뿔돼지!”
그거 예전에 케인이 먹을 때 빼앗아 먹은 기억이 난다.
맛있긴 하던데 그게 자다 일어날 만큼인가. 나는 익숙하게 손등으로 턱 가를 훔치는 레이첼과 그런 그녀를 모른척하는 제로를 보며 웃어버렸다.
* * *
“그럼 가는 길에 뿔돼지 좀 사고, 또 뭐 먹고 싶은데?”
내가 주문한 대로 철부지 귀족 도련님을 연기 중인 제로만 뒤에 살짝 떨어져 고고한 모습으로 팔짱 끼고 있는 가운데 나는 레이첼과 대화했다.
“나는 뿔돼지랑 말랑 슬라임 절임이랑.”
그건 또 뭔데.
내가 루나를 흘긋 보니 그런 음식이 있긴 한지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 말랑 슬라임 절임. 그리고?”
“저는 모둠 샐러드 먹구 싶어요.”
―뿔돼지 고기는 넉넉하게 5kg 정도 사고 슬라임 절임에 모둠 샐러드 재료.
리프가 자신의 손바닥만 한 칠판에 애들이 먹고 싶다는 음식 재료를 적는데 밖이 소란스럽다.
“비켜라. 모두 길을 비켜!”
“곧 라인하르트 님이 지나가신다. 길을 비워!”
먼 곳에서부터 들리는 고함과 말발굽 소리.
두 사람이 말을 타고 미리 대로를 비우기 위해 고래고래 소리치며 달려나간다.
“무슨 일이야?”
“그 소문이 사실인가.”
나는 발끝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진동에 그대로 토벌 의뢰소 밖으로 나가 대로로 시선을 돌렸다.
약 열 기 정도 되는 기마대. 그 선두에는 남들보다 머리 하나는 클 것 같은 사내가 거칠게 말을 달리고 있었다.
“히랴!”
쩍 하고 마편을 휘두르니 땅 울림이 더 커진다.
주위의 작은 돌들이 흩날리며 사방으로 튀고 대로 옆으로 사람들이 더욱 움츠려 피함에 나는 내 앞을 스쳐 지나가는 순간 사용자의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라인하르트 라 아이슈텔른―부러지지 않는 검]대표 Traits : [투지(S)] [강철(SS)]
히든 Traits : [신성력(D)] [연금(C)]
맞네, 라인하르트.
분명 60대 후반 정도 된 걸로 아는데 얼핏 보기엔 그보다 훨씬 젊은 외모였다. 경지가 높은 기사라서 그런가.
무엇이 저리 급한 거지?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는 척 아공간을 열어 방금 본 라인하르트의 트레잇을 양피지를 꺼내 한글로 적은 후 보관했다.
“그게 진짠가 보네.”
레이첼이 다가와 심드렁하게 말함에 나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뭐가?”
“원래 불법이라고는 하지만 이 근처에 화전민 마을이 곳곳에 있거든.”
종종 몬스터보다 귀족에게 내는 세금이 더 무서울 수 있으니.
“그런데 얼마 전부터 오지에 틀어박힌 곳들 중에 연락이 안 되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하더라고.”
이곳은 접경지고 하는 일은 토벌이니 관리를 위해서 몇 달에 한 번씩은 불법으로 조성된 마을이라도 연락을 한단 이야기였다.
“아무리 토벌단을 운영하더라도 접경지니까 튀어나온 몬스터덕에 몰살되거나 흩어지는 마을이 종종 있기는 했는데 요즘 너무 늘어서 결국 확인차 파견 보낸 게 얼마 전인데.”
레이첼 자신도 파견 의뢰가 들어와서 고민하다가 나와의 내기 때문에 가지 않았다 덧붙이다가 고개를 숙여 작게 속삭였다.
“듣기로는 몇몇 마을이 아주 끔찍하게 몰살되었다더라.”
피로 우물을 채우고 뼈로 탑을 쌓아 가죽으로 깃을 세웠다던가.
그에 나는 눈가를 조금 찌푸렸다.
“어디 멍청한 흑마법사라도 나왔나 봐. 그러니 저자가 저렇게 꽁지에 불붙은 듯 토벌하러 나가지.”
엉덩이도 무거운 작자인데 하며 레이첼은 씩 웃었지만.
흑마법사라…….
“도련님…….”
“내 생각도 그래.”
루나가 다가와 넌지시 운을 띄움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흑마법사가 그렇게 눈에 띄게 일 처리를 할 확률은 낮다. 그러니 레이첼도 멍청한 흑마법사라 일컬었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필히 악신교단이겠지.
그들은 교단이다 보니 자신들이 믿는 신을 알리기 위해서인지는 몰라도 일 처리를 깨끗하게 하지 않는다.
볼 테면 보고 찾을 테면 찾아봐라는 식의 행동.
그런데도 쉬이 꽁무니가 잡히지 않는 건 아마도 그 뒷배를 봐주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란 증거겠지.
“아직 확실하지는 않으니까.”
악신교단의 짓이라면 라인하르트가 지금 저렇게 달려가더라도 의미 없을 것이다. 악의가 가득한 광경만을 보고 돌아오겠지.
“…저희, 강해지구 있잖아요. 그렇죠? 도련님에게 도움될 수 있죠?”
“당연하지.”
내가 잠시 굳은 얼굴을 한 탓일까. 루나가 슬며시 하는 말에 나는 작게 웃곤 그 귀를 당기듯 쓰다듬었다.
그에 레이첼이 나와 루나를 보다가 다리를 벌려 키를 낮추더니 제 머리도 나에게 쑥 내민다.
“뭔데.”
“한번 해봐.”
그에 레이첼의 붉은 머리도 쓰다듬다 말꼬리처럼 묶여 내려온 머리카락도 쓰다듬는데 이번엔 리프가 나를 무심히 바라본다.
“리프도.”
―골렘은 본디 한 번씩 조율하고 먼지를 털어주어야 하는 법입니다, 관리자님. ‘관리자’님.
그래 내가 관리…해야지…….
리프의 머리카락까지 헤집고 나니 혼자 귀족 도련님인 척 서 있는 것도 지친 듯 제로가 슥 따라 나온다.
너까진 안 돼.
나는 손을 걷으며 입을 열었다.
“장 보러 가자.”
“제가 짐을, 아니… 짐은 그럼 레이첼이 들자.”
제로가 반사적으로 입을 열다 내 눈치를 보더니 레이첼을 부려 먹기 시작했다.
후배가 늘더니 이제 남을 부릴 줄도 알고.
자기가 왜 짐을 들어야 하냐며 성질을 내는 레이첼의 눈앞에 뿔돼지 고기 5kg을 리프가 적어 보여주니 잠잠해진다.
그 모습에 다들 웃으며 시장 쪽으로 걷는데 나는 그들을 뒤따르다 말고 이제는 다시 사람들이 지나는 대로를 흘긋 바라보았다.
‘라인하르트.’
사이클롭스의 습격을 몸으로 막아내고 망가진 영웅.
나는 이노센트 사가를 진행하다 만났던 NPC 라인하르트를 떠올렸다.
의족과 의수를 달고 술병을 들고 있던 부러진 검.
‘이번엔 다르지.’
나는 얼른 오라 손짓하는 루나와 리프의 사이로 걸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