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9)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9화(9/373)
“더러워…….”
몇 번을 씻어도 몸에 벌레가 기어 다녔던 거 같은 그 잔여감이 지워지지 않는다.
어머니를 잡아먹고 태어난 동생. 그 동생이 남자란 이유만으로 비호 하는 아버지.
가디아의 시선이 느리게 아래로 흘러내렸다.
자신의 발끝 대신 보이는 우윳빛 흉부.
활시위를 당기거나 이동할 때 거추장스럽기만 한 신체적 특징은 아카데미에서 늘 남자들의 시선을 모았다.
‘더러워.’
랭커가 된 지금과는 달리 입학 초기부터 쏟아진 음습한 시선과 뒤에서 따라붙는 끈적한 말투.
결국 그런 쪽의 일에 학을 뗀 가디아에게 오늘 있었던 일은 벼락을 맞은 것보다 더 강렬하게 뇌에 새겨졌다.
붉어져 할딱이면서 나오던 아델리안과 방 안에 들어갔을 때 보이던 침구 더미 속 두 사람의 인영.
그리고 유독 자신의 시선을 잡아당긴 검은색 머리.
빠드득!
‘이건 말이 안 돼.’
그렇게 막 나갔어도 결국엔 자신을 두려워하던 동생이었다.
힘없는 이들 앞에서나 폭군이었지, 아버지와 자신을 감히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하던 팔푼이.
그런데 자신에게 또박또박 대답하고 오히려 주도권을 잡아 말한다?
‘이상해. 석연치 않아.’
분명 아버지의 편지에는 아델리안의 트레잇이 별 볼 것 없는 것으로 정해졌다 적혀 있었지만 무능력자인 것이 완벽하게 판정 난 그가 저렇게 당당해졌다고?
‘설마…….’
속인 걸까.
‘사실은 특별한 트레잇이 나왔다면?’
그래서 그거 하나 믿고 자신의 앞에서 저리 당당하다면?
가디아의 눈이 가늘게 변했다.
“알아봐야겠어.”
자신이 알고 있는 게 사실이 맞는지.
가디아는 아카데미로 돌아가기 전 아델리안의 트레잇을 감별한 신관을 만나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 * *
“잘 들어. 중요한 건 네 몸의 회복이야.”
나는 푸딩을 한입 떠먹곤 스푼을 흔들다 케인을 가리켰다.
“넌 앞으로 하루 5끼 이상 먹어줘야겠어.”
“새로운 방식의 고문이군.”
“노노, 어딜 은혜로운 고용주님이 하는 말에 말대답이야 대답은. 하여튼 넌 한참 더 자라야 해. 정확하겐 몸을 성장시켜야 하지.”
원작과 게임에선 암살자 집단으로 끌려가 암살 교육을 받는 바람에 몸을 날렵하게 유지했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비실비실 수수깡 같은 몸 해봐야 멋없지. 남자는 근육이다, 케인아.
너도 나중에 다 고맙다고 할 거야, 나보고.
애초에 그렇게 못 먹고 후반에나 챙겨 먹었어도 공식 프로필에서 188을 찍은 케인이니 성장 가능성은 충분해.
“당분간 먹고 쉬는 데만 집중해서 기초 체력을 만든 뒤에 난 널 기사단에 집어넣을 생각이야. 물론 정식 서임을 한단 소리는 아니지.”
달짝지근한 푸딩이 술술 잘도 넘어간다.
“난 너에게 최고의 영약을, 포션을 제공한다. 하지만 선생질은 못 해. 난 육체적으로 강하진 않으니까. 그렇다고 외부에서 교사를 초빙해 널 가르치긴 힘들어. 왜인 줄은 알지?”
“귀족의 자식도 아닌 이를 가르칠 고급 교사는 없지. 저잣거리 용병이나 혹은 괴짜가 아니라면.”
“그래, 이 빌어먹을 크루거 가문은 이름 하나 대단해서 소위 말해 급이 안 되는 사람의 출입은 불가해. 그건 아무리 내가 가주 대행이라 해도 하루 이틀도 아닌 여러 날을 본성에 머물게 할 수는 없지. 너처럼 내 휘하에 들어올 게 아닌 이상.”
당장은 시종으로 등록한 케인을 보며 약간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꾹 삼켰다.
난 내 입으로 내가 고작 가주 대행이라는 것이나 가문의 실권 따윈 없다거나 망나니에 무능력자라고 말은 해도 되지만 절대 나약함을 내색해선 안 된다.
말로는 약하네 어쩌네 떠들어도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는 것처럼 굴어야 한다.
저놈은 짐승이고 약한 자는 물어 뜯어버릴 수 있는 맹수니까.
내가 저놈을 끌고 가며 주도권을 쥐어야지 내가 휘둘려서는 안 되니까.
그러니 난 뻔뻔하게 케인을 험지로 몰고 궁지로 몰아야만 했다.
“그러니 네가 단련법이나 검술 같은 것을 배울 방법은 낙하산뿐이지. 그리고 당연히 그들은 널 탐탁지 않아 할 거야. 원래도 날 싫어하는데 내 명으로 들어온 생초짜라니.”
“알 만하군. 하지만 그 정도도 버티지 못하고 굴할 바엔 지금 죽는 게 낫다.”
누가 ‘전’ 불굴 트레잇 가진 놈 아니랄까 봐…….
검은 한번 접히면 아무리 다시 편다 해도 접은 흔적은 그대로 남기 때문에 쓸 수 없다 했던가.
하지만 케인은 한번 나에게 굴했어도 케인이었다.
아마 원래 겪었을 온갖 고난을 끌고 와 겪게 한다고 해도 다시는 굽히지 않겠지.
“죽진 말고. 네가 죽으면 손해란 말이야.”
난 괜히 가볍게 말하곤 턱을 괴며 웃었다.
“그래도 나름 명가의 기사들이니 널 정말 죽이진 않을 거야. 그냥 딱 죽고 싶을 만큼 굴리겠지.”
“언제나와 같은 일상이네.”
짜식…….
저 말이 사실이란 걸 아는 난 괜히 시선 돌리곤 일어났다.
“일단은 내 전속 시종으로 등록해 뒀어. 그러니 네 방은 내 옆방이야. 오른쪽은 루나, 왼쪽은 너.”
밤에 목마르다고 하면 둘 중 하나는 바로 튀어 와라?
* * *
케인이야 사실 뭘 시켜도 잘할 놈이고.
문제는 나다.
곳곳에 흩어진 고대급 유물 아이템이 어디 있는지, 어찌 얻는지 알면 뭐 해.
지금의 나만 보면 거기까지 못 갈 게 뻔한데.
원래 아델리안의 체력 같은 걸 고려하면 케인을 따라다녀야 하는 여정 자체가 단명으로 향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나는 케인을 방으로 보낸 뒤 침대에 엎드려 종이와 깃 펜을 들고 고민했다.
“당장 돈으로 구할 수 있을 만한 게 뭐 있지.”
요정의 신발은 아직 소유자가 요정계에 있어서 구경도 못 해볼 시간 선이고… 바람 비늘의 망토는 거리가 너무 멀다.
두 개의 글자 위에 엑스 표를 그린 뒤 툭툭 치며 다시 생각에 잠겼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나, 케인, 루나로 시작해야 해.’
케인과 함께 돌아다닐 곳은 미궁과 인신 공양한 장소, 이런 곳이 많을 텐데 일반인을 고용할 수는 없고 용병은 곤란하다.
난 결국 내 능력이 달리니까 그것을 보강하기 위해 아티팩트를 몸에 두를 수밖에 없는데…….
레벨 낮은 지갑 전사가 현질한 고급 무기 끼고 다니는 데다 PK가 가능해. 게다가 파티원 다 세상 물정 잘 모르거나 소통 장애야.
나 같아도 물건을 들고 도망간다든가 어디에 팔아먹는다. 아니면 PK 한 방 거하게 노리지.
그나마 하급 용병은 우리가 뒤통수 맞으면 반항이라도 해볼 각이 나오겠지만.
입이 무겁고 신용도도 높은 등급의 용병은 그만큼 강하니 성장이 끝나지 않은 케인과 루나가 그 사람의 욕심에 뒤통수 맞는 순간 전멸도 불가능한 건 아니다.
가문의 이름으로 고용한다 해도 우리가 가는 곳이 좀 험해야지. 그냥 함정이나 몬스터에 죽었다고 하면 어찌 알아. 내 시체는 루팅 할 거도 많을 예정이란 말이야.
신의 계약서도 원래 얻기 힘든 거라 낭비할 수 없다.
“일단은 경매장에 가봐야겠어…….”
그리고 승마도 연습해야 한다. 원래의 아델리안이라면 교양으로 그럭저럭 탈 테지만 난 경험이 없으니.
말의 정비 같은 건 루나에게 좀 배우라 할까. 당장은 가용 가능한 유닛은 루나 뿐이니 어쩔 수 없다.
이번엔 광전사 트리 대신 잡캐로 키우는 수밖에.
나는 종이에 깃펜으로 ‘이동 수단 : 말? 만능 잡캐.’ 하고 적고 그 옆에 루나를 그린 뒤 동그라미와 작대기 직직 그어 나도 그렸다.
객관적인 자기 평가가 필요한 시간이지.
난 플레이어이되 논 플레이어나 다름없다. 게임으로 치면 길잡이 겸 해설이나 하면서 정작 전투원으로는 픽업 되지 않는 허수.
‘그럼에도 내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냥 돈이나 대 주며 안전한 곳에서 팝콘이나 뜯으면 나도 얼마나 좋을까.
‘응 아니야.’
나는 버스 기사고 케인은 버스가 될 것이다.
그리고 난 나를 위협하는 모든 것들을 버스로 다 치고 달릴 것이다.
나는 토끼 귀 달린 작대기 인간 하나와 그냥 작대기 인간 하나가 그려진 종이 옆에 대형 버스를 하나 그렸다.
가디아는 가시 범퍼, 레이첼은 개조 엔진. 루나는 정비공에 다른 히로인은 스텔스, 하이빔 등이 가능하니까…….
‘이거 만능 버스 아니냐.’
좀비 아포칼립스로 떨어져도 살아남을 것 같은 웅장함이다…….
“그나저나 이거, 엄청나네.”
대충 생각을 정리한 나는 마음껏 팔다리를 늘리며 천장에 그려진 벽화를 눈으로 따라 그리다 낮게 중얼거렸다.
차르륵―
사방이 고요하니 반지를 돌리는 소리가 청아하게 울려 퍼진다.
몇 번이고 손끝만을 이용해 반지를 회전시키며 동시에 머릿속에 강제로 들어왔다 나가는 아공간의 정보를 읽었다.
“여섯 개.”
크루거의 반지에 새겨진 12개의 문양 중 6개가 골드로 가득 차 있다.
게다가 나머지는 각자 다른 물품으로 하나씩 차 있었는데 그중 단 한 문양만이 비어있었다.
그 크기를 짐작하기 어려운 내가 보이에도 반지의 문양 하나당 배정된 아공간의 크기는 적지 않은데 그 많은 금화라니.
얼마나 오랜 세월 대륙에서 빨아 먹은 금화일까.
그런데 이 많은 돈과 온갖 희귀한 물품을 마음껏 손댈 수 있게 해놓고 단 한 칸의 아공간은 비어있다?
‘얼마나 귀중한 물건이길래 그것만큼은 빼고 준 거지?’
“도련님. 알카이도 입니다.”
무엇일지 가늠해 보던 와중에 저 끝 방문 뒤에서 알카이도의 목소리가 흘러들어 온다.
‘알카이도만 만나면 뭔가 귀찮은 일이 생기던데.’
그에 반사적으로 살짝 찌푸린 나는 한숨을 쉬고 목을 가다듬은 뒤 입을 열었다.
“들어와.”
침대에 일어나 신경질적으로 머리칼을 쓸어 넘기곤 나는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알카이도의 회색 머리통을 노려보았다.
“무슨 일이지?”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할론이 가문에 대한 업무를 처리하고 있던데 도련님께서 명하신 일입니까.”
“당연한 거 아니야? 아니면 뭐 할론이 알아서 서류를 훔쳐선 도장 찍고 있을까 봐?”
살살 웃음 섞어 하는 내 말에 알카이도의 이마에서 핏줄이 솟아오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도련님. 대륙 각지에서 본성까지 올라온 서류는 장난감이 아닙니다. 크루거 가문의 휘하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과 안건 중 본성으로 오는 것은 가장 시급하거나 그만큼 중요한 서류임을 뜻합니다.”
“짧게, 알카이도.”
“도련님께서 직접 서류를 읽으시고 결재하십시오. 그리고 저번에 대륙 공지로 내린 사항은 반려해 주시길 간언드립니다.”
그래, 알카이도. 슬 한따까리할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잘 되었다.
“그걸 내가 왜?”
“금화 대신 크레딧으로 상단을 운영하는 것은 그만큼 휘하 상단에 소속감을 줄 뿐만 아니라 대륙의 상권 및…….”
“아, 대충 알아들었어. 결국 이러나저러나 우리 가문의 무기잖아, 그거. 안 그래? 같은 액수의 금화라도 가끔 더 퍼주고 덜 퍼주면서 충성 줄 세우기도 하고 실체가 없는 크레딧을 상금으로 아이디어를 빼먹거나 부리기도 하고 그렇지?”
나는 알카이도의 말을 중간에 자르곤 빈정거리듯 웃으며 말을 이었다.
“금화는 제국의 금화냐, 작은 왕국의 금화냐에 따라 그 가치가 변동되지만 크레딧은 그 가치가 금화보다 크게 유동적이진 않으니까 더 안전하다 어쩌고. 이런 식으로 나에게 말하려는 거잖아, 알카이도. 그런데 말이야. 너무 고였어.”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나는 천천히 알카이도의 트레잇 창을 열어 그의 트레잇을 확인했다.
[알카이도 헤이먼―철혈의 집사]대표 Traits : [충성(A)] [냉정(C)]
히든 Traits : [흥정(C)] [결벽증(A)]
‘내 말에 살짝 당황했나. 냉정이 한 단계 변했네.’
중요한 건 냉정이 아니고, 나는 알카이도의 트레잇 중 맨 앞에 있는 충성을 한 번 더 확인하곤 웃었다.
“크레딧을 기축 통화로 만들자는 예전 가주님의 아이디어는 훌륭했지. 그러니 지금까지 우리가 원하는 흐름대로 흘러왔고. 그런데 말이지 알카이도. 만약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것도 아주 크게?”
“그럴 리 없습니다. 지금 대륙은 그 어느 때보다 안정기에 가깝습니다.”
“겉보기엔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정말 전쟁이 난다면? 해로도 육로도 마냥 안심할 수 없고 상인들이 나라를 건너 움직이지 못하고 황실이나 각 왕실이 물건의 유통을 제한하고 징발하면?”
“그건…….”
알카이도는 아둔하지 않다. 그는 내 말의 요지를 파악했는지 조금 경악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크루거 상단은 단 하나의 집단이 아니야, 알카이도. 수많은 점이 모여 하나로 보일 뿐이지. 그리고 그 점들이 서로 연결되지 않는 일이 생긴다면.”
수많은 모래 알갱이에 물을 부어 뭉쳐 하나로 보이게 만들어 놓아도 결국 접착제로 쓰인 물이 증발하면 스치는 바람에도 조금씩 무너져 흩날리는 법이다.
“뭐 몸통 같은 본성이야 무사하겠지만 손끝 정도 되는 작은 상단들은 우수수 무너지고 말 거야. 크레딧은 본성에서만 금화로 바꿔 주는데 본성에 오지도 못하고 손에 쥔 금화도 없이 묶여버리면 말이지.”
“…그건 만에 하나 대륙을 아우르는 전쟁이 일어났을 때를 가장했을 때 일입니다.”
“절대는 없어, 알카이도. 하여튼 나도 무조건 우기는 건 아니고 적당히만 좀 풀잔 말이지. 10년, 20년 바꾸자는 게 아니야. 시험 삼아서 딱 1년, 1년 어때?”
만약 알카이도의 충성이 카이만을 향한 것이라면 절대 납득하지 않을 일이지만. 알카이도의 충성 트레잇은 그 주인이 따로 있었다.
“…좋습니다, 도련님. 도련님의 억지를 신하된 도리로써 어찌 반대만 하겠습니까. 단 1년이라면 저도 받아들이겠습니다.”
바로 크루거 가문 그 자체인 내가 이리 강경하니 혹시 자신이 모르는 정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한걸음 뒤로 물러난 거겠지.
단 1년이라 말한 것도 주요한 이유였을 것이다.
“좋아. 그럼 나가 봐.”
나는 승리의 기쁨을 누리며 의기양양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