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90)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90화(90/373)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혹시 저 같은 무지랭이도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부르십쇼. 한 번은 무보수로 도와드리겠습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흙먼지와 땀, 핏기 등에 더러워진 손을 마찬가지로 더러워진 옷에 슥슥 닦은 뒤 악수를 청하는 이들.
전부 다는 아니지만 자신의 이름이나 목각 패를 건네며 목숨 빚 한 번은 갚겠다는 사람들을 보며 웃고선 그나마 멀쩡한 마차를 수리하여 부상자들을 태우기 시작했다.
오우거에 고블린 무리까지 더해서 이루어진 습격이었기에 말은 이미 도륙 난 지 오래. 그러니 일단은 오우거 사체를 두고 움직이기로 했다.
비록 죽었더라도 며칠 정도는 그 체취 등으로 뜯어먹힐 가능성은 적다니 나중에 도축 반이 오겠지.
“이번 일, 절대로 그냥 넘어가시면 안 됩니다.”
“저기, 어떻게 하실 건지…….”
귀찮은 일은 질색이라 은근슬쩍 다시 로브를 쓴 덕에 나 대신 레이첼과 제로에게 사람들이 몰려 한마디씩 더하기 시작했다.
잘못된 정보로 입은 피해 보상을 위해 누군가는 항의해야 하는데 그 대상을 우리 파티로 잡은 모양이지.
이해는 한다. 대부분 소규모 파티로 이루어진 용병이거나 개인 용병들이 토벌단에 지원했고 아니면 접경지에서 유명한 삼 대장.
빈센트, 레이렌. 그리고 키쵸의 무리들이었으니까.
삼 대장에 속한 이들이야 그들의 단장이 항의할 테지만 어디를 가나 힘없는 사람들은 뭉쳐야 목소리라도 낼 수 있는 법이다.
“그, 저기. 음.”
슬금슬금 제로의 손을 잡고 돈이라도 한 푼 찔러주면서 말 좀 잘해 달라느니 하는 통에 제로가 연신 나를 보기 시작했다.
조금만 네가 감당하고 있어라, 제로. 내 신분을 밝힐 예정이긴 하지만 여기서부터 사람들에게 내가 둘러싸일 필요는 없지.
나는 계속 고맙다는 인사와 더불어 잘 좀 처리해 달라는 애원에 둘러싸인 제로를 모른 체하며 루나와 대화를 이어 갔다.
“일단 복귀한 뒤 바로 토벌 의뢰 책임자와 삼 대장들과 자리를 잡아야겠어.”
“네, 당연하죠. 하마터면 도련님까지 위험에 빠질 뻔 했다구요. 절대 이대루 넘어갈 생각 없어요.”
어… 광분 높아진 거 아니지?
나는 내 말에는 생글생글 웃으며 대답하면서도 묘하게 눈빛이 스산한 데다 귀가 날카롭게 쫑긋한 루나를 보다가 얼른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에 살살 눈빛이 풀리더니 기분 좋은 듯 귀가 축 처져 말랑해지는 게, 어느 정도 수습이 되었나.
“그래, 감히 내 계획을 망친 대가는 톡톡히 받아내야지.”
내가 악당처럼 목소리를 깔며 말함에 갑자기 루나와 리프, 레이첼까지 작게 웃는다.
“뭔데?”
그에 내가 슬 몇 셋을 바라보니 셋 다 눈을 슬 피하는데.
“아, 아니 든든하구 그래서요.”
―관리자님만 믿고 있습니다.
“너 인마. 인간치고는 머리가 잘 돌아가는 거 같은데 삐끗할 때도 있구나?”
인간치고라니. 인간치고라니?
이 소리를 뇌없첼에게 듣다니 약간 자존심이 상한다.
“원래 사람이 아무리 계획을 열심히 세워도 하늘의 운이 따라주지 않으면 소용없는 법.”
그에 내가 투덜거리며 말하자 레이첼이 무언가 생각하듯 하다 입을 열었다.
“하긴, 그것도 그렇지. 내 의지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일이 있는 법이니까.”
“그런 복선 같은 대사 하지 마라.”
“어엉?”
아차, 나도 모르게.
너무 대놓고 의미심장한 혼잣말을 하기에 가만있을 수가 없었다.
“빨리 가서 밥 먹자고.”
“헐, 완전 좋아. 얼른 가자!”
밥 이야기에 신나서 앞으로 먼저 가더니 길을 막은 나무둥치들을 치우기 시작한다.
안 그래도 레이첼은 숨겨진 무언가가 많은 캐릭터인데 자꾸 늘리지 마. 힌트 줄 거 아니면 그런 대사 치지 말라고!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고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 항의는 해야겠지만. 이게 제가 한다고 될지.”
“믿습니다! 믿어요!”
다른 용병들의 관심을 제로라는 제물로 돌린 덕에 여유롭게 걸어가는 내 곁으로 루나가 슬쩍 다가온다.
“그나저나 도련님.”
“무슨 일이지?”
슬 몇 나를 올려보는 루나의 분홍색 눈에 걱정이 맴돈다.
“이목을 끌기 싫구, 정체를 밝히기 싫어 제로를 앞에 내세우셨잖아요. 괜찮으세요?”
내가 직접 토벌 관계자와 삼 대장들과 대화한다는 소리는 당연히 내가 누군지 밝히겠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니 그게 걱정이 되는 건가.
하긴, 이번 일은 굉장히 운이 좋았다. 만약 우리 파티가 강하지 않았더라면.
이곳에서 몰살당했겠지.
루나와 제로. 그리고 리프와 레이첼 모두 오러 유저 이상인 데다 나는 코덱스에 저 클래스 마법이 아닌 고클래스 마법까지 들고 있었으니.
여차하면 우리 파티만은 살아날 수 있었겠지만.
‘과연 우리 파티가 없었다면 이곳에서 몇이나 살아남았을까.’
단언컨대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원작에서 이곳이 사이클롭스에 무너진 이유에 아마 오늘의 일도 포함이 될 게 분명하다.
이곳에서 상당수의 용병이 희생되어 전력 감소는 물론인 데다 아직 이유를 확실하게 알 수는 없지만 정보 또한 잘못되었으니.
한 번 시작된 불신의 씨앗은 점차 싹 틀 수밖에 없는 법.
이번 한 번만 운 나쁘게 정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할 이가 몇이나 있으랴.
목숨을 내걸고 하는 위험한 일인 만큼 정보와 신용의 값어치는 상상을 초월하는 법.
그런데 이곳에 불신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제대로 수습 안 했다간 용병들 모두에게 퍼질 테고 정규 토벌단이 아닌 토벌 의뢰로 먹고사는 이들이 대거 빠져나갈지도 모르지.
‘아무리 생각해도 좀 수상하단 말이야.’
처음에는 단순하게 사이클롭스만을 생각하고 온 곳인데 뭔가 느낌이 이상하다.
‘만약 이 일도 전부 악신교단이 수작을 부린 일이라면.’
이번에도 내가 가만둘 수는 없지.
나는 머릿속으로 이번 일을 정리하며 느리게 웃었다.
* * *
“좁고 낡은 데다 조악한 방이네.”
나는 건들거리는 걸음으로 가장 안쪽 의자로 걸어가며 손끝으로 장식품과 깃발을 툭툭 쳤다.
어디 인식 저하 배지를 벗은 내 오만을 제대로 맛봐라.
단번에 눈들이 아주 그냥…….
나는 나도 모르게 눈을 깔기 전에 얼른 모른 체하며 가장 좋은 자리에 앉아 손끝으로 탁자를 한 번 쓸어낸 뒤 후, 하고 먼지를 불어 날렸다.
“그…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아델리안 수호 크루거 님.”
얼굴에 칼자국이 큼지막하게 나 있는 정규 원정대 책임자와 그 대원들이 허리 굽혀 인사하지만 나는 못 들은 척 무시하며 옷을 뒤져 담배를 꺼냈다.
“루나.”
양심에 찔리지만 이게 다 주도권도 잡고 일을 해결하기 위한 발판이니 어쩔 수 없지.
자, 대한민국 드라마와 영화에서 누적된 양아치 설정의 맛을 보아라.
“네. 도련님.”
하늘하늘한 메이드 복을 차려입은 루나가 깃털 부채를 흔들어댄다.
그리고 리프는 내가 미리 건네준 작은 아공간 반지에서 와인잔을 꺼내 미리 들고 있던 술을 따라 내 앞에 놓기 시작했다.
그에 나는 양발을 탁자 위에 올려 의자에 기댄 뒤 담배를 입에 물었고 곧 제로가 한쪽 무릎을 꿇고 공손한 태도로 담배에 불을 붙였다.
누가 봐도 자기밖에 모르는 전형적인 귀족 망나니.
“그래서 나머지 관계자들은 언제 온다고?”
물론 지금도 체력이 제일 안 좋은 내가 담배까지 피울 생각은 없으므로 대충 손가락에 들고 분위기만 잡으며 고압적으로 목소리를 내니 토벌대 대원들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사실 저들과 나는 상하관계가 아니라 이번 트윈헤드 오우거 사건의 관계자로서 대화하기 위해 나온 것이나.
‘나는 지금 철없는 망나니 귀족으로 갑질해야 하는 컨셉이니까.’
레이첼은 싫다고 싫다고 하는 걸 3일 동안 고기와 술을 원하는 만큼 제공하는 조건으로 화려한 무투복을 입고 단장한 뒤 경호원처럼 서 있다.
딱 봐도 알겠지. 레이첼의 외모 때문에 고용해서 곁에 장식품처럼 세워 놨다는 걸.
“서 있으니 고개가 아프네. 나보다 키 큰 거 자랑하고 싶나 봐? 하하, 웃어. 웃으라고 한 농담인데.”
“하하… 그, 일단 앉겠습니다.”
장유유서의 민족으로 양심이 쑤시지만 이곳은 나이보다 중요한 게 신분이다.
사고 뒷수습을 위해 파견된 이들이다 보니 다들 평민인 듯 어색한 얼굴로 의자에 앉는데 문이 벌컥 열렸다.
“우리도 복구 준비로 바쁜데 오라 가라 그래?”
“키히. 원래 접경지에서는 죽음이 늘 함께하는 것 아닌가?”
초장부터 헛소리하는 까무잡잡한 피부의 여자와 등이 굽은 사내.
‘저들이 이곳 접경지 삼 대장 중 레이렌과 키쵸인가.’
나는 한쪽 입꼬리를 비틀 듯 올려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제 오시나?”
“아?”
“쿠흐?”
나는 피우지도 않고 손가락에 걸어 들고만 있던 담배를 제로에게 넘긴 뒤 리프가 따라둔 와인잔을 들고 가볍게 흔들어 디켄딩하며 입을 열었다.
“뭐 해, 앉아. 보상안에 대해 말하러 온 게 아닌가?”
아니면 꺼지시고 하듯 다른 손으로 훠이훠이 손짓하자 레이렌과 키쵸의 얼굴이 살짝 구겨진다.
뭔가 이게 아닌데 하는 느낌이지만 어쩌겠어.
지금은 내가 갑인데.
정보의 혼선으로 손해를 입은 것도 내 파티. 결국 오우거를 잡아낸 것도 내 파티.
거기에 하마터면 내가 죽을 뻔했잖아. 제국에서도 몇 안 되는 대공의 지위에 앉아 있는 카이만의 아들이자 소문으로는 대륙의 상권을 반 이상 틀어쥐고 있다는 크루거 가문의 후계자.
“아델리안 수호 크루거. 그게 나야. 이번에 내가 입은 피해를 어떻게 보상하려고 그렇게 목이 뻣뻣해?”
향 좋은 와인을 한 모금 마시며 히죽거리니 처음엔 바로 무슨 말인지 뇌리에 꽂히지 않는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던 레이렌과 키쵸의 안색이 이내 허옇게 질리기 시작한다.
“키? 그, 어. 음 크루거 가문의… 도련님이라고 하셨습니까?”
“아니, 그 크루거 가문의 도련님께서 어떻게 이렇게 볼품없고 위험한 접경지에… 오셨어요…….”
둘의 질문에 묵묵히 앉아 있던 정규 토벌단원의 얼굴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이 그 말이다.’ 하는 표정으로 변한다.
저 사람 거짓말은 못 하고 살겠네.
그에 나는 일부러 어이가 없다는 듯 웃으며 되물었다.
“이 대륙에 내가 못 가는 곳이 있나?”
“그럴 리가요, 도련님. 그 어떤 곳두 도련님을 막을 곳은 없어요.”
내 말에 루나가 살랑살랑 부채를 흔들며 상냥하게 웃는다.
그에 나는 가진 능력은 쥐뿔도 없으면서 가문의 휘광에 기대 사는 쓰레기처럼 최대한 재수 없는 얼굴로 으쓱였다.
“날 너무 기다리게 하네.”
“늦어서 미안합니다.”
그리고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낡은 신관복을 입은, 조금 지친 얼굴을 한 중년 사내가 들어온다.
빈센트. 이렇게 보니 반갑네.
나는 게임에서 종종 파티에 넣기도 했던 빈센트를 실제로 눈에 담으며 느리게 웃었다.
“조금만 더 늦었으면 그냥 되돌아갈 뻔했지 뭐야. 그러면 그대들이 꽤 곤란해졌을걸.”
“어째서입니까?”
“잘못된 정보로 생긴 피해와 더불어 내 시간을 낭비한 대가까지 한 번에 보상했어야 할 테니까.”
“크루거 가문의 도련님이야.”
이제 모든 관계자가 모였으니 시작해야지.
나는 테이블에 올리고 있던 발을 내리며 귀찮은 듯 하품을 했다.
미리 약속한 사인.
그에 제로가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도련님 대신 제가 진행하겠습니다. 저희 쪽에서 원하는 보상은 다음과 같습니다.”
품 안에서 서류를 꺼내 한 장씩 나누는 제로. 그것에 적힌 것들을 읽은 이들이 반발하기 시작했다.
“키히? 이건 말도 안 돼. 우리도 피해자의 입장이야!”
“아니, 왜 내가 배상금을 내야 하지?”
“아무리 저희 쪽 정찰대원의 실수라고는 하나 이 금액은 과합니다…….”
금세 회의실 안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일부러 빡빡하게 잡은 데다 온갖 트집을 다 넣어 만든 배상 안이니 당연하지.
나는 와인을 홀짝거리며 천연덕스레 입을 열었다.
“뭐가 문제지?”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가 문제입니다.”
나는 침착하게 대화를 시도하는 빈센트를 보며 이죽거렸다.
“잘못된 정보로 내 시간을 낭비하게 하고 내 놀이를 망쳤으며 돈 받고 고용된 것들이 제대로 전투를 해보지도 않고 도망가다 잡혀 죽은 주제에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 중 책임 없는 피해자는 나뿐인데?”
“하지만 우리도…….”
“감히 내 장난감들을 망가뜨릴 뻔했잖아.”
나는 턱 끝을 살짝 들고 아래를 바라보듯 시선을 두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나에게, 어떻게 보상할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