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92)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92화(92/373)
“보고하도록.”
묵직하게 가라앉은 음색. 불이 일렁이는 것 같은 암녹색 눈동자. 은회색 머리의 거구.
라인하르트 총사령관. 그의 물음에 이곳에 모인 정규 토벌단 단장들이 각자 한마디씩 보고를 시작했다.
“대장님. 물자는 살짝 부족한 상태입니다.”
“사령관. 부사령관이 자꾸 여 단원들을 부담스럽게 하고 있어.”
단순한 물자의 보고부터 무능한 상사에 대한 고발까지.
늘 듣던 보고와는 달리 제3 토벌단 라일라의 보고에 라인하르트의 고개가 움직였다.
“대장님. 백작급 사이클롭스를 발견했습니다. 곧 깨어날 예정입니다. 대장이 왔으니 당장 모든 단장들을 소집할 것을 요청합니다.”
근육질의 여인. 라일라가 목덜미의 흉터를 긁으며 하는 말에 라인하르트가 되물었다.
“사이클롭스라고 했나.”
“그리고 또 하나. 이번에 들어온 1777기에 뛰어난 놈이 하나 있습니다. 너무 뛰어나 오히려 수상할 정도로.”
몬스터 접경지에서 오래 있었던 라인하르트마저 역겹다 생각할 정도로 잔인한 인신 공양과 괴담이나 다름없는 실종된 정찰 대원이 나타나 한 거짓 보고.
거기에 수상할 만큼 뛰어난 대원과 더불어 오랜 세월 관찰조차 되지 않던 백작급 몬스터까지.
많은 오러의 축척 덕에 고작 4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꽤 오랜 시간을 이곳에서 사람들을 위해 일했던 라인하르트는 묘한 느낌에 미간을 좁혔다.
수십 년간 어찌 보면 비슷한 일상이었으니, 몬스터 웨이브가 생기지 않게 주기적으로 대규모 토벌을 진행하고 소규모 토벌을 주위 접경지에 뿌리며 몬스터를 잡고 그것을 팔아 유지하고.
그리 많지 않은 지원금마저 중간에서 빼돌리는 이들이 늘어나면 자신이 아직 건재함을 알리기 위해 수도에 다녀와서 다시 토벌, 또 토벌.
그러나 근래는 조금 다른 일들이 하나둘씩 생기고 있었다.
변화.
그것이 가져올 미래가 라인하르트는 달갑지 않았다. 이 삭막한 접경지에서 일어날 변화란 늘 나쁜 일과 가까웠으니.
“봉화를 올려 빠른 토벌대 복귀를 신호하라. 이제부터 복귀하는 토벌대는 제12 토벌대를 제외하고선 토벌 의뢰를 진행하지 않고 대기한다. 그리고.”
짙은 회색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1777기라고 했나. 그 아이를 내 앞으로 데리고 오도록. 당장.”
* * *
같은 기수라고는 해도 같이 토벌을 나가지 않는 한, 아니 같이 나갔다 해도 그 누구도 케인의 실력을 제대로 본 이가 없었다.
그래서일까 그에게는 적이 많았다.
체력의 한계를 알기 위해 단 한 명만이 남을 때까지 끊임없이 원을 그리며 달리던 지옥의 달리기에서도, 케인을 제외한 마지막 동기가 구토하며 근육 경련으로 쓰러지는 그 순간에도 케인은 땀 정도만 흘리고 있었고.
편을 나누어 이긴 사람이 계속 이어 대련하던 겨루기에서도 케인이 올킬을 냈으며, 케인과 같은 조가 되어 나간 아이들은 끊임없이 그의 강함을 칭송했으나.
사람이란 그렇지. 자신이 본 일이 아니면, 겪은 일이 아니면 믿지 못하고 오히려 다시 검증하려고 한다.
왜냐면 세상에는 상식이란 게 존재하니까. 이제 막 성인이 된 것처럼 보이는 이가 지닐 수 있는 강함이란 상식적으로 한계가 있으니까.
‘그리고 보통 사람들은 그런 놈들을 머저리라고 부르지.’
한번 토벌 같이 다녀왔다는 죄로 케인 호출 당번이 되어버린 제이가 양손으로 얼굴을 비볐다.
“죽였니?”
“아니.”
제이는 피 한 방울 튀지 않은 케인을 보며 한숨을 쉬곤 이리 오라 손짓했다.
“총사령관께서 부르신다. 따라와.”
어떻게 해둔 것인지 앓는 소리도 없이 바닥에 쓰러진 놈들을 제이는 모른 체하며 케인과 이동했다.
생긴 건 나라를 팔아먹는다 해도 이유가 있겠지 하게 만드는 주제에 성질머리는 위아래가 없다.
완벽한 군대는 아니라고 하나 엄연히 정규 토벌단도 하극상은 처벌 가능한데 겁도 없지.
그런데도 케인이 아직 이곳에 남아 있을 수 있던 이유는 단 한 가지.
너무나도 강하므로.
‘절대로 케인이 이번 사이클롭스 토벌에 빠지면 안 돼.’
부디 라인하르트 대장이 케인을 말뚝 박게 해주기를!
제이가 속으로 기도하며 라인하르트의 집무실 문에 노크를 하기 위해 손을 올린 순간, 케인이 제이의 손목을 잡았다.
“이 뒤부터는 안내가 필요 없을 것 같은데.”
한발 뒤늦은 소름.
문 너머로 뿜어지는 그 희미한 기세. 마치 자신의 바닥까지 훑어 분석 당하는 것 같은 그 불쾌함에 제이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난 사이 케인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끼익―
전진 기지의 보수에 쓸 시간보다는 몬스터 토벌이 우선이라는 듯 기름칠이 덜 된 경첩에서 소리가 나며 문이 천천히 닫혔다.
방 안에 촛불 하나 켜지 않은 채 커튼을 달지 않은 창문만이 유일한 빛의 통로.
그곳에는 창문을 등지고 앉은 거구의 사내와 그 옆에 비스듬히 서 조금 흘러내린 안경을 추어올리는 여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케인은 또렷하게 자신을 노려보는 그 암녹색 눈을 마주 보며 예법에 따라 경례했다.
“제1777기 기수…….”
“네놈, 정체가 뭐냐.”
케인이 토벌단의 예법에 따라 자신을 소개하기도 전에 라인하르트가 입을 열었다.
그동안 이 접경지에서 못해도 수만 명은 봐 왔던 라인하르트였다.
비록 가문에서 내쳐지거나 벌을 받고 쫓겨났더라도 그 혈통을 타고 내려오는 혈계 전승 트레잇의 강함부터, 혹은 타고난 신분은 미천하나 자신의 힘만으로 오롯하게 강해진 이들까지.
그 수많은 사람 중에 이 나이에 이토록 강한 자가 존재했나. 분명 지금은 자신보다 아래임이 분명하나 이 정도 강한 자가 당장 10년만 지난다면 얼마나 강해질 것인가.
너무나 일찍 꽃펴 지금이 최전성기일지도 모르나 그게 아니라면?
그리고 이 정도로 강하며 젊은 사내가 굳이 이곳에 있는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의심을 안 하려고 해도 안 할 수가 없군.’
라인하르트처럼 인간에 대한 수호만을 목적으로 왔다기에는 저 눈이 아니라 외치고 있기에.
“이미 정답을 정해 놓고 물으시는 것 같습니다만.”
케인의 말에 라인하르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내 옆에 있는 이는 참과 거짓을 가릴 수 있는 트레잇을 보유한 이다. 몇 가지 질문에 대답하면 네 말을 들어보도록 하지.”
“동의하나요? 나는 상대의 동의를 받아야만 트레잇을 쓸 수 있어요.”
케인은 조금이라도 수상한 모습을 보였다간 자신의 목을 벨 것 같은 라인하르트를 보며 피식 웃었다.
“시작하시죠.”
* * *
“그래서 결론은?”
내가 사과를 와작 깨물며 묻는 말에 세이렌을 통해 케인이 대답했다.
<모든 검증을 통과했으니 사이클롭스 토벌에 참가할 것이다.>
하긴 검증에 검증을 더하더라도 케인이 수상할 테지만 지금 같은 시기에는 내칠 수가 없을 것이다.
내가 장담하는데 지금 이 접경지에서 케인의 무력은 못해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테다.
국가직이라고는 해도 말 그대로 토벌단이다. 체계적으로 훈련하고 십여 년간 맹세와 긍지로 굴러가는 기사단이 아닌, 애초에 돈도 권력도 포기하고 순수하게 봉사 정신으로 모인 몇 명을 제외하면 기밀 유지 서약을 하고 고용된 용병에 가깝지.
그러니 적당히 강한 사람은 제법 있어도 특출나게 강한 이는 몇 명 없는 것이다.
조금만 높은 등급의 몬스터가 튀어나와도 총사령관인 라인하르트가 직접 발로 뛰어 토벌하러 다니는 걸 보면 말 다 했지.
그런데 사이클롭스가 떴는데 좀 수상하다고 케인을 내친다?
‘어림도 없지.’
제국 왕실에 파견을 요청한다 해도 그쪽에서는 어차피 접경지니 근처 영지에 도달 직전까지 엉덩이 무겁게 비비고 있을 게 뻔하다.
케인과의 대화를 마치고 먹은 사과심을 치우는데 루나와 제로가 들어온다.
“도련님. 기다리구 계시던 토벌 의뢰가 떴어요.”
“쟤가 기다리던 게 뭔데?”
그에 레이첼이 하품하다 말고 눈을 반짝이며 나와 루나를 바라보는 것이, 요즘 나랑 지내며 겪는 일들이 재미있었나 본데.
“아델리안 님. 사이클롭스 토벌 의뢰가 정식으로 걸렸습니다. 참가는 자율이나 참가하지 않는 용병은 전부 접경지 가비오렌에서 퇴각하라는 공문입니다.”
혹시 토벌이 실패하게 되면 이 근방이 쑥대밭이 될 게 뻔하니까 아예 참여하지 않는 이들은 뒤로 빼는 거군.
‘역시 영웅이라 불리는 이들은 다른가 보네.’
나라면 강제 징집이라도 했을 것이다. 여기가 뚫리면 사이클롭스가 어디까지 밀고 갈지 모르니까.
하긴 그 정도로 강직한 부분이 있으니 자신을 희생해서 막았겠지.
―관리자님 외출하시겠습니까.
“사이클롭스? 이번에도 우리 참가할 거지?”
레이첼이 주먹을 우득 소리를 내며 기분 좋게 일어난다. 나는 리프가 건네는 로브를 입으며 느리게 웃었다.
“참가? 내가 안 한다고 하면 저쪽에서 바짓가랑이를 붙잡아서라도 말릴걸.”
나는 호언장담하며 문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안 되겠소.”
“그게 무슨 소리?”
저릿저릿하네.
나는 느슨하게 앉아 라인하르트가 내뿜는 기세를 모른 척하며 웃었다.
사이클롭스 토벌 신청을 넣었더니 내 신분이 탄로가 난 지 오래라 바로 거절당했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이미 부사령관이 찍어준 자유 토벌 참가서가 있는 몸이거늘.
그러니 크루거 가문의 후계자가 사이클롭스 토벌에서 죽으면 일이 커져도 너무 커지니까 그걸 거절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부사령관 이상은 되어야 한단 말이었다.
그러니 지금 라인하르트까지 마주하고 있는 거고.
카이만의 귀에 들어가기 전에 알카이도가 최대한 막아준다 했으니 지금이 절호의 기회다.
이번 일만 제대로 마무리되면 당분간은 무리해서 일을 크게 벌일 필요가 없어지니.
나는 모른 척 웃으며 라인하르트를 바라보았다.
“이건 어린애 장난이 아니니까. 나는 단순한 호기심으로 끼어드는 자를 받아 줄 생각이 없소.”
“장난 아닌데. 내 파티는 강하기도 하니까 분명 도움될걸.”
건들거리는 내 반말에 라인하르트의 뒤에 서 있던 토벌단장으로 보이는 이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
누군가 참지 못하고 한마디 하려는데 라인하르트가 막아내듯 한 손을 올리며 다시 입을 연다.
“몇 번이라도 말해 주지. 나는 당신의 참가를 받아줄 의향이 없소.”
“아니, 종이 한 장도 맞들면 낫다는데. 왜 그리 거절만 하고 그러시지?”
내가 히죽거리며 말하자 라인하르트의 미간이 살짝 좁아 든다.
“그 반지, 크루거 가문의 가주 반지지. 그 말은 지금 아델리안 수호 크루거. 귀하의 신분이 가주 대행이란 소리일 테고.”
“그런데?”
“그런 이가 이곳에서 개죽음당하면 그 피해는 오롯하게 크루거 가문이 먹여 살리는 백성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
나는 챠르륵 소리를 내며 크루거 반지를 돌렸다.
아주 예전부터 말했지만. 내가 목표로 잡은 연기 컨셉은 망나니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능력자? 이런 거다.
“라인하르트 총사령관님. 당신은 날 뺄 수가 없어.”
나는 평소에 입던 낡은 무투복 대신 얼마 전 회의 때처럼 깔끔한 무투복을 입고 내 호위처럼 서 있는 레이첼을 흘긋 바라보았다.
“정규 토벌단원이 아닌 이들 중 개인으로 가장 강한 레이첼도.”
그리고 품속에서 꺼낸 한 달간 내 밑으로 들어오기로 했던 빈센트와 레이렌, 키쵸의 계약서를 꺼내 흔들었다.
“단체 중에는 가장 세력이 크고 강한 빈센트와 레이렌, 키쵸도.”
나는 오만하게 다리를 꼬아 앉으며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케인마저도.”
다 내 손아귀에 있거든.
“이래도 날 뺄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