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98)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98화(98/373)
테이트리아.
이 대륙에 존재하는 나라 중 가장 거대하고 강력한 제국.
인간들의 나라이자 아인족 배척의 최선봉에 서 있는 나라.
3대 이내에 아인족의 피가 섞이지 않은 인간만을 순수한 혈통으로 보며 귀족의 조건 중 하나로 둘 정도로 고집스러운 곳.
습격을 염려한 탓인지 게이트는 왕도의 안이 아닌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얼마나 말로 달렸을까, 점차 사람들이 늘어나고 많은 짐을 실은 마차나 봇짐을 든 상인들, 그리고 우리처럼 말을 타고 이동하는 사람들이 보이는 가운데 나는 말머리를 조금 비틀었다.
일일이 검문받으며 한 명 한 명 모든 이들의 신분을 확인하는 일반 검문소 대신 귀족 전용 검문소 앞에서 나는 말에서 내려 루나를 바라보았다.
“루나, 미안.”
“아니에요, 도련님! 절대루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솔직히 내 파티에 인간이 어디 있나.
루나는 물론이고 제로에 리프, 레이첼은 아예 종족부터 인간이 아니고.
나랑 케인은 트레잇이 인간이라고 하기엔 서로 다른 의미로 난리 났다.
그렇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루나만이 아인족이기에 어쩔 수 없이 가문의 문장을 박은 케이프를 어깨에 걸쳐 주었다.
그나마 쇠로 된 초커보다는 그게 나을 테니까.
“들어가자.”
나는 괜한 시선을 받기 싫어 크루거 가문의 가주 반지를 가리기 위해 장갑을 내어 끼며 걸음을 움직였다.
알카이도가 뭐라고 했더라.
<도련님. 본가로 돌아오지 않고 바로 가신다는 게 무슨 말씀입니까? 매우 시급한 일입니다.>
“설명해.”
라인하르트와의 대화가 끝난 후 세이렌을 통해 들었던 내용은 꽤 당혹스러웠다.
분명 내가 알기로 원작에서 가디아가 악신교단에 그런 식으로 공격받은 적은 없었단 말이지.
‘도플갱어 이슈라.’
그리고 원작에서도 그런 에피소드는 없었다. 비슷한 사건이야 존재했지만 최소한 같은 얼굴을 한 두 사람이 공식석상에서 동시에 튀어나온 적은 단 한 번도.
‘무엇이 이유가 되어 나비효과가 일어난 걸까.’
크루거 가문의 패를 한번 보여주는 것으로 검문을 통과한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는 척 돈을 꺼내 레이첼에게 건넸다.
“어? 나에게 줘도 돼?”
“케인과 제로는 나와 이동해야 하고 루나의 손에서 나온 돈을 받아줄 고급 숙소는 없으니까.”
리프의 목소리는 관리자 등록을 하지 않는 한 들을 수 없고 말이지.
케인은 낚시 미끼로, 제로는 혹시 모를 도플갱어 탐색을 위해 대동해야 한다.
그럼 남는 건… 레이첼 뿐이지.
내 미묘한 눈빛에 레이첼이 으르렁거렸다.
“그 건방진 눈빛 뭐지?”
“레이첼.”
“…요?”
아니, 도대체 루나가 레이첼을 어떻게 잡고 있는 거지?
“술 마시고 노름한다고 다 쓰지 말고.”
“걱정 말구 다녀오세요, 도련님.”
나는 배시시 웃는 루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레이첼에겐 술과 도박용으로 골드 좀 더 쥐여 준 뒤 리프를 바라보았다.
“조금 늦을 수도 있으니 개인적으로 필요한 게 있으면 나 없을 때 사 둬.”
―비공정이 추락한 이후의 역사가 궁금합니다. 서점에 다녀오겠습니다.
케인에게 넘겨주었던 세이렌을 잠시 받아 루나에게 준 뒤, 나와 케인, 제로는 가디아가 다니는 황립 아카데미로 걸음을 옮겼다.
원래라면 사이클롭스를 토벌한 후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남해 군도로 갈 예정이었는데.
‘뭐, 썩 나쁘진 않아.’
케인과 마주치게 했을 때의 가디아를 확인하고 싶기도 했으니까.
루나는 원래 가디아의 하녀가 되어 케인과 만났어야 했지만 첫 단추부터 어긋났었다.
리프는 망가지고 부서져 비공정마저 쇠락한 이후 땅속에 반쯤 파묻혀 있던 상태로 케인에게 발견되어 케인만이 사용자로 등록했었지만 지금은 나와 공동으로 등록된 상태.
레이첼은 지금보다 좀 더 나이를 먹어 더욱 강해지고 무감각해진 케인을 보고 지금까지 본 인간들 중 가장 흥미로워 따라다녔다고 했지만 이번엔 두 번째라고 했지.
결국 이러나저러나 첫 만남이 다 틀어졌으니 감정 또한…….
‘아니, 애초에 원작에서 사실 연인다운 일은 없었긴 하지만.’
나는 구르는 돌이끼를 생각하며 살짝 분노했다가 리프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그렇게 묘사한 이유가 있겠지.
차라리 웹툰을 그렸으면 작화빨이라도 받았을 텐데 작문 D… 열 받으니 말을 말자.
여하간 그런 의미에서 가디아는 조금 남다른 부분이 있었으니까.
‘누가 봐도 첫눈에 반해 케인에게 집착했으니.’
나는 내 곁에서 말없이 따라오는 케인을 바라보았다. 미남계 쓰기 딱 좋은 얼굴이니 어떻게든 되겠지.
정문으로 걸으며 손에 들어낸 크루거 가문의 패를 보이니 그 누구도 막지 않는다.
거대한 정원을 지나 가장 큰 건물로 들어가니 중앙에 하얀 대리석으로 만든 행정실이 보였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머리를 단정하게 묶고 안경을 쓴 여인, 직원인가? 나는 고개를 모로 비딱하게 세워 느리게 웃었다.
“가디아 수련 크루거에게 전달해.”
네 동생이 왔다고.
* * *
어차피 누가 진짜 가디아인지 알아보지 못하는 옹이 눈들이 할 짓이란 뻔하지 않은가.
그 가짜와 자신을 각자 다른 방에 가두고 감시하는 것.
가디아는 소파에 앉아 방금 우린 찻잔 위를 손으로 매만졌다.
마법 혹은 특수한 트레잇일 거라 생각했다. 들어본 일은 없으나 새로운 마법은 매년 나오며 대륙은 넓으니 특수한 트레잇은 어디에나 존재하는 법이니.
그런데 어찌하여 신관을 불러 한 트레잇 확인에 가디아 자신과 같은 트레잇이 나온단 말인가.
“빙하와 궁술. 종류가 같습니다. 등급은 한쪽이 살짝 높긴 하나 그것만으론…….”
“애초에 아카데미에 입학할 시 제출하는 서류에 적힌 트레잇은 등급까지는 적지 않기 때문에 의미가 없습니다.”
일반 평민이라면 모를까. 귀족들 사이에서 트레잇이란 먼저 말해 주지 않는 한 짐작은 해도 직접 물어보는 것은 실례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디아는 자신이 오롯한 자신임을 증명하기 위해 트레잇을 공개했으나 그마저도 쓸모없어졌으니.
‘죽일까.’
이래서 전설 속 도플갱어의 괴담이 생긴 것인가.
자신과 같은 얼굴이나 타인인 것에 대한 혐오와 증오.
내가 나인 것이 당연한데 증명해야 하는 분노.
마지막 남은 방법은 황실에서만 이용하는 친자 확인용 마법 정도.
이것은 황실에서만 사용하는 마법이기에 요청한다 해도 받아줄 거란 확신은 없는 데다.
‘아버지가 안다면.’
저 자신이 아무리 진짜 가디아라 말한다 해도 한번 의심받는 순간 정말로 가주직은 물 건너갈지도 모르는 상황.
하도 씹어 입 안의 혀가 너덜거리는 기분에 포션을 섞은 차를 한 모금 마시는 순간 밖에서 누군가 뛰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문 앞에서 숨을 고르더니 들리는 노크 소리.
“들어와.”
“아, 아가씨.”
가디아는 얼마나 급히 달려왔는지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힌 채로 자신을 바라보며 입을 여는 리제를 마주 보았다.
“본가에서 도련님이 오셨다고 합니다.”
그녀의 말에 가디아의 한쪽 눈썹이 움찔거렸다.
“아델리안이?”
‘그 반푼이 자식이 어떻게 알고.’
가디아는 순간 미간을 확 좁혔다.
“네가 말했니?”
“아, 아닙니다! 정말이에요, 아가씨.”
리제가 아니라면 이 아카데미 내에 크루거의 눈이 있다는 소리.
‘설마 아버지의 귀에까지 들어간 건 아니겠지.’
가디아의 얼굴이 평소보다 더욱 차갑게 굳어짐에 리제가 눈치를 보며 말을 이었다.
“아가씨… 그래도 아델리안 도련님은 혈육이니 알아보실 겁니다. 어느 분이 정말 진짜 아가씨인지.”
“10년 가까이 내 곁에 있던 너도 확신하지 못하는데 고작 그 아이가?”
가디아의 서릿발 같은 목소리에 리제의 어깨가 더욱 둥글게 좁아지며 고개를 숙였다.
“저, 저는 이만 나가볼게요. 구분을 위해 푸른색 리본을 묶고 오셔야 합니다.”
고작 그 반푼이에게 기대를 걸어야 하는 자신이, 미치도록 한심할 지경.
하지만 당장 그 가짜를 죽여버리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가디아는 포션이 섞인 차를 전부 마신 뒤 거울로 향했다.
절대로 자신이 이번 일로 흔들리거나 괴로워한 흔적이 드러나지 않도록.
얕잡아 보이지 않도록. 그 망나니 동생을 언젠가는 누르고 자신이 크루거 가문의 가주가 되어야 하기에.
머리칼 한 줌을 땋아 푸른 리본으로 묶은 뒤 완벽하게 고아한 모습 그대로 서 있다가 열리는 문으로 나섰다.
* * *
“어째서 인식 저하 배지를 하라는 거지.”
“다 이유가 있어. 그러니 하고 있어. 그리고 내가 갑자기 빼더라도 놀라지 말고.”
나는 케인의 소매 쪽에 커프스 링크처럼 박아 둔 배지를 흘긋 곁눈으로 보다가 귀빈 대접용으로 나온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제로는 어때?”
“아직 느낌은 오지 않습니다.”
예상컨대 도플갱어는 아닐 테지만 혹시 모르니.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응접실의 문이 열린다.
“오래 기다리진 않았나 모르겠군. 나는 황립 아카데미의 마법 교수 리안나라고 하네.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참관하러 왔지.”
꼬장꼬장한 분위기. 나도 모르게 허리 펴고 바로 앉으며 웃었다.
“아델리안이라고 합니다.”
나의 선량한 미소에 리안나의 눈꼬리가 조금 올라간다.
“가디아가 곧 도착할 텐데, 정말 구분할 수 있겠나.”
“피가 물보다 진하다는 말을 들어보셨는지 모르겠네.”
나는 자신 있다는 듯 히죽거리며 웃었다.
이윽고 응접실의 문이 한 번 더 열리며 가디아가, 아니.
가디아들이 들어온다.
입은 옷도 아카데미 제복으로 같고 한쪽 머리만 땋은 것도 같다.
머리에 묶은 리본 색만 푸른색, 흰색으로 다르지, 그 외형은 소름 끼치게 동일하다.
차가운 눈, 표정. 숨기려고 하나 일렁거리는 혐오감까지도.
“누나 오랜만.”
내가 한쪽 손을 들어 인사하자 둘 다 나를 무시한 채 조금 떨어져 앉는다.
“이렇게 보니 정말 똑같이 생겼네.”
“기분 나쁘군.”
“고작 그런 말을 하러 온 것인가.”
적당히 말을 던져보니 나오는 반응도 가디아라면 할법한 반응이라 오히려 웃겼다.
이런 상황에서도 똑같단 말이지.
“누나, 생각나? 우리 어릴 때 말이야…….”
“나지 않는다.”
“무엇이건 그건 없는 일이다.”
“아, 안 속네.”
나는 책상을 두드리며 웃었다.
이것으로 확실하네. 어느 쪽이 가짜이건 자신이 진실로 가디아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뭐 사실 구분은 쉽지.’
사용자의 눈만 켜봐도 알 것이다.
자기 자신은 가디아라고 믿고 있을지언정 사용자의 눈에는 진실한 이름이 나올 테니.
‘하지만 뭐… 굳이 부유감 떨어지게 그럴 필요가 있나.’
더 좋은 방법이 있는데.
“그래서 어떻게 구분하겠다는 거지.”
“너 따위가.”
“자신 없으면 지금이라도 돌아가지 그래.”
“설마 이런 일로 아버지께 말씀드린 건 아니겠지.”
쌍둥이처럼 말하고 표정 지으며 서로를 바라본 뒤 당장에라도 찔러 죽이고 싶은 얼굴을 하는 가디아.
일이 더 커지기 전에 정리할까.
“뭐 고작 이런 걸로 아버지에게 말하겠어? 지금은 내가 가주인데.”
내가 해결해야지 하며 감시자로 이곳에 있는 리안나에게 들리지 않게 소근거리니 가주라는 말에 가디아들의 미간이 확 좁아 든다.
“제로?”
“역시 아닙니다.”
“뭐 그럼 시간 끌 필요 없겠네.”
나는 태연스럽게 말하며 내 곁에 미동도 없이 서 있던 케인의 소매에서 배지를 뜯어냄과 동시에 두 명의 가디아 쪽으로 케인을 밀었다.
“손잡아 봐.”
“거절한다.”
“…….”
내키지 않는 듯 제법 강하게 민 다음에야 한 발짝 앞으로 다가서는 케인.
그 모습에 푸른색의 리본을 맨 가디아가 미간을 좁히며 옅은 혐오감을 드러냈고 흰색 리본을 맨 가디아는 점점 안색이 새파랗게 질리기 시작했다.
“누님이 남성을 싫어하는 것 정도는 알지만 케인은 특별하거든. 손을 잡으면 어느 쪽이 누님인지 알 수 있다니까. 꾹 참고 단 1초만 닿아봐, 한번.”
내 말에 케인이 나를 노려보는 게 느껴졌지만 모른 체하고 웃는데 푸른 리본의 가디아가 더러운 것을 만지는 얼굴로 손을 들었다.
“정말 알 수 있단 말인가?”
“그래. 단 한 번이면 돼.”
“그렇다면…….”
푸른 리본의 가디아가 천천히 내키지 않는 손을 움직여 케인을 만지려는 순간.
흰색 리본의 가디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허공에 얼음송곳을 생성해 띄운다.
“당장, 죽어.”
그리고 케인에게 쇄도하는 얼음송곳.
한쪽에 서 있던 리안나가 공격을 시도한 가디아의 어깨를 잡았다.
“이게 무슨 짓이지!”
그리고 리안나가 방어 마법을 시전하기도 전에 그것을 손날로 쳐내며 케인이 뒤로 물러났고 나는 입꼬리를 올렸다.
‘찾았다. 가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