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1화(1/343)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
1.
‘뭐지, 이 진도 2 정도의 지진 같은 떨림은.’
불쾌하다기엔 약하고, 신경 쓰이지 않는다기엔 강한 흔들림에 눈을 뜨려 애썼다. 그러나 따스한 이불 때문에 쉽지 않았다.
어제 분명 지식 논증에 대한 반박 논문을 읽다 잠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면 책상에 엎드려있어야 하는데, 전신을 감싸는 이불의 감촉은 대체…….
“동화야, 괜찮아?”
‘또 뭐지, 이 미성은.’
낯선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눈을 떠 앞을 바라보았다. 거기엔 한 소년의 얼굴이 있었다.
‘잘생겼네.’
토끼를 닮은, 묘한 분위기를 지닌 얼굴이다. 다시 보니 딱 잘생겼다기보다는 매력 있다는 게 더 적절한 감상… 잠깐.
누구세요?
내가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 그는 한숨을 푹 쉬더니 말했다.
“동화야, 이제 정신이 좀 들어?”
내 이름은 또 어떻게 알고.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누구?”
그는 잠시 당황한 듯 눈을 굴렸다. 그러나 이내 납득했는지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하긴, 기억 못 할 수도 있겠다. 나도 연습생이야. 채하민. 통성명은 처음이었나?”
아니, 그래서 누구신데요.
“연습생?”
그러자 그는 아까보다 더 당황해선 고개를 끄덕인다. 뭐가 의문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나랑 아는 사이라기엔 액면가가 너무 어려 보이는데. 잘 쳐줘 봐야 20대 초반. 스물아홉 살로 곧 서른 살이 되는 나한테 반말을 할 정도로 친밀한 사이면 내가 기억 못 할 리가 없다.
“응, 연습생. 동화야, 음, 오늘 데뷔조 선발 오디션 봤잖아. 내가 너 전 순서였는데 너 쓰러지길래 병원에…….”
채하민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소년은 나긋하게 뭐라 설명했지만, 안타깝게도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잠에서 깬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자, 정리해 보자,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을.
1. 나는 어제 분명히 논문이나 읽다가 잠에 빠져들었고, 그곳은 혼자 사는 투룸이다.
2. 주변을 둘러보니 이곳은 (누군진 모르겠지만) 채하민의 말대로 병원이다.
3. 채하민은 나와 같은 회사의 연습생이라고 했으니, 즉 나 역시 연예인이 되기 위한 전초 과정을 밟는 중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결론.
‘꿈이네.’
어제의 상황과 현재의 상황을 연속선상에 놓기엔 무리가 있다. 꿈이 아니라면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
연습생 생활을 하는 꿈이라니, 개꿈도 이런 개꿈이 없다.
내가 결론을 내리는 동시에 채하민도 설명을 마쳤다. 뭐라고 했는지는 귀담아듣지는 않았지만 꿈인데 뭐 어떤가. 이 녀석도 고작 내 뇌에서 일어난 전기 자극의 결과물에 불과할 테니까.
‘이 정도로 생생한 자각몽이 그냥 자다가도 가능한 일이었군.’
나는 새로운 발견에 만족하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너, 기억이, 안 나는 거야?”
채하민은 다시 걱정된다는 듯 말했다. 그러니까 기억을 잃었느냐는 물음이군.
내가 뭐라 변명하긴 귀찮아서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한숨을 푹 내쉬더니, 뭐라 중얼거렸다.
대충 들어보면, 데뷔니, 큰일이니, 얘기하고 있다.
“일단 의사 선생님한테 얘기하고 올게.”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 * *
‘이상하다.’
나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채하민과 나오고 나서의 과정은 대략 다음과 같다.
의사와 내 기억상실에 관해 꽤나 길게 상담했다. 애초에 없는 기억이니 기억상실은 헛소리였지만 언쟁하기도 싫고, 또 자각몽에서 꿈인 걸 밝히면 어떻게 되는지 확신도 없어서 닥치고 있었다.
이후 채하민을 따라 향한 곳은 내가 다닌다고 하는 회사였다. 병원이랑 꽤 가까운 곳이었는데 ‘GoD 엔터테인먼트’라는 간판이 눈에 띄었다.
하여튼 연습실에서 내 짐이라고 불리는 것들을 채하민이 챙겨주곤, 회사에 문의해 내 집이라 불리는 곳에 왔는데, 아니, 웬걸, 원래 내가 살던 투룸이지 않은가?
집에 들어서자 채하민은 내 핸드폰을 꺼내선 자기 번호를 찍고는, 일단은 자긴 회사로 돌아가 볼 테니 무슨 일 생기면 연락을 달라고 했다.
번호도 없던 것 보면 얘도 나랑 그리 친한 사이는 아니라는 설정 같은데, 챙기는 게 과하지 않나.
게다가 들어보니 나나 쟤나 동갑이란다. 그럼 챙길 이유는 또 뭐람.
그렇게 나는 집에 혼자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내가 심심해서 책상에 엎드렸다가 잠에 빠진 것이다.
‘자각몽이라는 게, 그 속에서 잠을 잘 수도 있는 건가……?’
이상하다. 그리고 잠을 자고 깨서야 머리가 말끔해진 건지 다른 이상한 점도 깨달았다.
지나치게 모든 감각이 생생하다. 예전에 읽은 책에 따르면 자각몽은 오감이 모두 생생하기엔 힘들고, 특정 감각이 생생해지면 다른 감각들은 흐릿해진다고 한다.
따라서 지금 내 상황은 모순적이다. 설마. 또는 혹시.
‘…꿈이 아닌가?’
그때였다. 소리와 함께 무슨 판때기가 눈앞에 나타난 건.
띠링―!
[퀘스트 발생 조건을 충족하였습니다.※조건 : 이것이 현실임을 인지할 것.
당신은 눈을 뜨자 기묘한 일을 겪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꿈이라 의심했지만, 이것은 분명한 현실입니다. 당황스러울 당신을 위해 튜토리얼을 겸한 퀘스트가 진행됩니다. 다음의 연계 퀘스트를 수행하십시오.
현실 인식 1
※완료 조건 : 거울을 보십시오.
※보상 : 현실 인식 2 진행]
이, 무슨, 양산형 판타지 같은 전개란 말인가!
정통 판타지를 지향하는 내가 아무리 꿈이라도 이딴 걸 꿀 리는 없으니 이건 현실이어야만 한다. 나는 내 무의식이 양산형에 오염되었음을 절대 인정하기 싫었다.
‘그러면 남은 건, 왜 이딴 일이 벌어졌냐는 것. 일단은… 저 퀘스트를 완수해 봐야겠군.’
나는 화장실로 들어가 거울 앞에 섰다. 그곳엔 내가 있었지만, 스물아홉 살의 나는 아니었다.
푸석푸석한 피부는 아이처럼 깨끗했고 동태 같았던 눈에도 생기가 감돌았다.
나빴던 시력도 괜찮아졌는지 안경 없이도 앞이 또렷하게 보였다.
약간 차가워 보이는 고양이상 얼굴. 하룻밤 만의 회춘이라기엔 과하다.
눈에 띄는 건 흉터 없는 깨끗한 뺨. 그러면 최소 스물한 살보다는 어리다는 뜻이니까, 스무 살, 아니면 열아홉 살 정도. 최소 9년은 과거라는 거군.
‘하, 그래, 인정하자.’
나는 9년 전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인정할 수 있었다.
‘양산형 판타지로… 내 무의식이 오염됐나 보다. 과거로 돌아가다니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이건 꿈이다.’
띠링―!
[※주의! 이건 꿈이 아닙니다. 지속적인 의심은 위험한 일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아니, 무슨.
과거로 돌아가는 게 현재 과학으로 불가능하다는 건 상식이 아닌가? 그리고 그 위험한 일이 뭔지는 알려줘야…….
[현재 시공간 전이의 여파가 남아있으며, 현실임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시공간의 균열이 더 격화됩니다. 최후의 경우엔 시공간 균열의 안정화를 위해 존재의 삭제가 진행될 수 있습니다.]‘납득할 수 없는 것 천지구만.’
하지만 아는 게 없으니 일단 수용하기로 했다. 아직 꿈같긴 해도 만에 하나 현실이면 어쩌나. 절대로 무서운 건 아니다.
나는 거울 속 어릴 때의 ‘나’를 바라보고 말했다.
“퀘스트 수행했어. 지금이 또 다른 세계인 거 인정할게.”
[퀘스트 완료! 현실 인식 2가 진행됩니다.당신은 놀라울 정도의 침착함과 이성적 사고로 상황을 인식했습니다. 그러나 받아들여야 할 것은 아직 많습니다. 현실 인식 2를 수행하세요.
현실 인식 2
※완료 조건 : 노트북을 켜 연습생 일지를 확인하세요.
※보상 : 현실 인식 3 발생]
흠, 과거가 아니라 또 다른 세계라고 말했는데 현실 인식이 완료됐다는 건… 여긴 평행 우주 같은 건가?
[주의! 아직 확신하긴 이릅니다.]‘…알고 있어, 나도.’
* * *
나는 이후로 퀘스트의 지시에 따라 이 시간대의 ‘나’에 대해 배워나갔다.
여기의 ‘지동화’는 기본적인 인적 사항이 나와 같았지만 몇 가지 큰 차이를 지니고 있다.
우선 현재 나이는 20세. 아홉 살이나 어린 육신이다. 천애 고아인 건 나랑 같았지만, 그냥 공부나 열심히 했던 나와는 달리 아이돌 연습생이었다.
연습생이 된 지는 3년으로, 괴랄한 네이밍 센스의 갓 엔터에서 트레이닝 중이다.
‘나’의 기록에 따르면 프로듀싱에 재능이 있으나 노래와 춤 실력은 보통이며, 또 연습생들 사이에선 꽤나 고된 따돌림을 겪고 있었다.
‘이 부분은 또 내 과거랑 비슷하네.’
따돌림의 사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딱히 합리적인 이유는 아닐 거다. 원래 따돌림이라는 게 자기과시의 욕구와 자신의 처지에 대한 분노를 우회적으로 표출하려는 시도니까.
연습생 일지를 보면 아마 ‘나’도 내 학창 시절처럼 다른 연습생들의 유치한 따돌림에 별로 개의치 않았던 것 같고.
하여튼 이게 ‘나’에 관해 알 수 있는 정보들이다.
‘정리 끝. 보상 주십시오.’
현실 인식 4는 보상이 ‘???’로 적혀있었다. 뭘 주려나.
띠링―!
[현실 인식 4를 완료하였습니다! 연계 퀘스트의 최종적인 보상을 지급합니다.보상 : 지식 동기화
당신은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시공간 안정화에 도달하였습니다. 보상으로 ‘지식 동기화’가 제공됩니다. 기묘한 감각을 거부하지 말고 받아들이세요!]
‘지식 동기화?’
무슨 개소리인가 의아해하고 있자, 문자 그대로 기묘한 감각이 흘러들어 왔다. 마치 뇌 속에 벌레들이 천천히 기어 다니는 듯한, 제길, 예상보다 불쾌하다.
나는 알림대로 감각을 받아들이기 위해 머리를 부여잡고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그리고 감각이 끝나는 순간 퓨즈가 끊기듯 의식이 암전되려 한다. 마치 과부하된 컴퓨터가 열을 식히…….
띠링―!
[메인 퀘스트, ‘조우!’ 발생메인 퀘스트는 당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는 단초를 제공해 줄 것입니다. 당신은 어째서 시공간 이동을 겪게 되었을까요? 단 한 번도 보고된 적 없는 사태에 당신은 호기심을 느꼈습니다. 다음의 조건을 충족해 퀘스트를 완수하세요!
메인 퀘스트 ‘조우!’
※완료 조건 : 채하민을 포함한 네 명의 인물과 친밀한 관계를 맺으세요! (나머지 세 명이 누구인지는 그 사람과 만나는 순간 알려드립니다.)
※보상 : ???]
* * *
다시 잠에서 깬 나는 침대에 앉아 퀘스트 창을 보고 한숨을 뱉었다.
‘얘, 날 다루는 법을 깨달은 것 같은데.’
지적 호기심을 언급하다니.
그리고 아까부터 의심했지만, 이 퀘스트 창을 작성하는 녀석은 내가 하는 생각을 읽을 수 있는 것 같군.
그걸 시험해 보려고 퀘스트 완료를 처음 두 번은 말로, 나머지 두 번은 마음속으로 요구했는데, 둘 다 비슷하게 피드백이 온 걸 보면… 조금 섬뜩하군.
일단 상호작용이 가능하니 지성체라는 건데, 혹시 대화도 가능하려나?
‘응답하라.’
[주의! 개인적인 대화는 시공간 균열을 확장할 가능성이 있어 금지입니다. 다만 퀘스트에 관한 질문은 가능합니다.]단호하긴. 그제야 나는 퀘스트의 완료 조건을 확인했다. …네 명이랑 친밀한 관계를 맺어라?
‘친밀한 관계를 맺었다는 건 어떻게 확인하고?’
[그건 당신의 주관적 판단에 달려있습니다.]그러니까 내가 상당 수준 친밀해졌다고 인식하기만 하면 되는 거군.
나는 침대에 다시 누워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지금 벌어진 이 상황을 이해하려면 결국 퀘스트를 따라 행동해야 하는 건가.
내 평범한 일상에 이게 무슨 일인가.
나는 하는 수 없이 핸드폰을 들고 채하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동화야, 몸은 좀 괜찮아? 기억은… 좀 돌아왔어?
…역시 오지랖이 넓은 것 같군. 목소리에 계속 걱정했다는 티가 묻어났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진 기억 안 나고, 일단 내가 연습생이라는 건.”
그러자 채하민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설명하려면 이야기가 좀 길어질 거 같은데, 만나서 할까?
의문문이지만 명령문이군. 어제 ‘나’한테 무슨 큰일이라도 있었나?
“…어디서?”
―내가 니 집 앞으로 갈게. 몸도 안 좋을 테니까. 한 30분 후에 집 앞 카페로 나와줄래?
“그래.”
통화를 종료하고 나는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하, 얘랑 친해지라고.
방구석에서 소설이나 쓰면서 대부분의 일은 온라인으로 처리했던 나한텐 너무 가혹한 처사다.
친밀은 무슨, 이렇게 외향적인 녀석이랑 대화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그나저나 지식 동기화는 또 뭐지.’
순간 아까의 그 불쾌한 감각을 떠올라 얼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채하민이 오기 전까지 몇 가지 실험을 진행해 봐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