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00)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100화(100/343)
100.
갓에이 팀이 모여 숙소로 돌아가는 차안에서, 윤성호는 매니저의 바로 옆자리에 앉았다.
이지현이 갓에이의 중심일 때는 모두들 이지현 눈치를 봤지만, 윤성호가 리더 권한을 얻으며 회사의 지지를 받는 지금은 달랐다. 아직은 어색하지만, 서로의 의견과 이야기를 들어주는 문화가 자리잡아 가고 있는 중이다.
윤성호가 직접 멤버들 한 명 한 명에게 다가가 설득하고 의견을 나누는 모습으로 솔선수범한 결과다.
바로 뒤에 앉은 호연이 고개만 차 쪽으로 내밀어 묻는다.
“동화, 지쳐 보이던데.”
“…그렇더라. 요즘 스케쥴이 조금 많다더라고. 연말 앞두고는 더 그렇다고.”
윤성호는 지동화의 얼굴을 생각했다. 정신력이 워낙 강해서 거의 티 나지 않았지만, 다른 멤버들이 없어서인지—석준은 있어도 눈치채지 못할 애니까— 경계가 느슨해져서 사이사이 지친 모습이 보이곤 했다.
사실 윤성호 본인도 그룹 멤버들 앞에서는 힘든 모습을 보이기 싫어하는 성격이니 이해 못 할 것도 아니긴 했다. 지동화를 보고 있으면, 절대로 가까운 사람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한다는 게 티가 난다. 그래서 그런지 왜 이렇게 걱정이 되는지.
그걸 듣고 있던 이지현이 조심스레 말을 얹는다.
“걔는 우리 기획사 있을 때도 엄청 그랬어. 힘든 거 숨기고……. 강한 척하고.”
윤성호는 일그러질 뻔한 표정을 숨겼다. 준이한테 듣기로는, 거의 따돌림을 주도했다던데.
윤성호는 의자를 약간 뒤로 눕혀, 이지현의 귀에 작게 속삭였다. 다른 멤버를 탓하는 것처럼 보여서는 안 되니까.
“너가 따돌림 주도했다는 얘기도 있던데.”
이지현은 그 말을 듣고는 약간 숙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다. 믿었던 아버지에게 도움의 손길을 거절당하고, 윤성호와 몇 날 며칠을 둘이 대화하며 설득당한 끝에 성격이 많이 누그러진 결과다. 물론 지동화의 말마따나 본성이 바뀌지는 않았겠지만, 최소한 자신이 잘못한 게 뭔지 정도는 인지할 수 있을 정도로는 성숙해졌다.
“…완전 틀린 말은 아닌데, 정확히는 걔가 모두를 따돌린 느낌이지. 물론 내 잘못이 맞긴 해.”
이지현은 그때를 회상해 본다. 자신이 무리의 우두머리처럼 행세했을 때, 그래서 눈에 뵈는 게 없을 때, 그런 자신이 보이지도 않는다는 듯이, 마치 기계처럼 선을 긋고 무시하던 지동화를.
지금과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로봇 같았고, 재수 없었던 그때와는 달리, 지금의 지동화는 더욱 인간다웠다.
“미안하면, 이번 기회에 사과해 보면 어때? 용서받지는 못하더라도… 혹시 모르잖아, 사이가 좋아질지.”
윤성호의 제안을 듣고, 이지현은 표정이 조금 더 어두워진다. 누군가에게 사과란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될 수도 있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과 별개로, 타인에게 그걸 시인하고 용서를 구하는 건 자존심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으니까. 그리고 아마도 지동화는 그걸 미련함이라고 평할 것이다.
* * *
복숭아 뮤직 어워드, 11월 말이나 12월 첫 주에 진행되는 행사. 방송 3사에서 진행하는 연말 가요 프로그램에서 시상이 폐지되며, 권위 있는 시상식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그렇기에, 신인상을 받는다면 이곳에서 받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한다.
따라서 이번 시상식의 목적은 퀘스트의 완수.
‘기지생, 퀘스트 보여 주십시오.’
띠링—!
[퀘스트 ‘찬란한 1년’!당신은 드디어 데뷔에 성공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이돌은 거기서 멈춰선 안 됩니다. 신인상을 타서 다음의 보상을 획득하세요.
완료 조건 : 대중의 인정을 받는 신인상을 획득하기.
보상 : 기지생의 단편적 정보, 가능성의 조각]
기지생이 자신의 정보를 걸고 낸 퀘스트.
내 희망이지만, 저 정보만으로도 기지생의 정체를 추론할 수 있다면 좋겠군.
이제 와서, 기지생이 ‘무엇’인지가 중요하지는 않지만.
나는 작업실에서 남들이 본다면 퀭하다고 평가할 눈으로, 옆에 아메리카노를 한 잔 올려둔 채로 작업하는 중이다.
‘양아치 같게.’
윤성호와 회의한 끝에 결정한 곡은 ‘Fighter’. 세상의 부조리와 맞서 싸우겠다는 미친 가사가 특징인 곡이다. 선정 사유 중 핵심은 랩이 나오는 벌스가 큼직하게 2개나 된다는 점.
소속사에서 옛날 아이돌 앨범의 타이틀로 밀었던 곡 중에 이런 게 있다는 건 참 놀라운 일이긴 하다.
문제가 있다면 곡이 별로여서 인기를 엄청 끌지는 못했다는 점. 대체 어떤 작곡가분이 쓴 곡인지는 모르겠으나, 옛날 곡인 걸 감안하고 보더라도, 촌스러운 감이 없잖아 있다.
특히, 후렴구의 웅장한 분위기와 비장한 사운드는 세상과 싸운다는 가사와 겹쳐서 약간… 야구 응원가 같은 느낌이 났다.
심장이 벅차오르는 감각의 곡은 내 취향은 아니고, 올드한 비트는 시대에 맞지 않으니, 대공사가 예정되어 있다.
그리고 공사의 컨셉은, 양아치.
나는 어제 있었던 윤성호와의 대화를 회상한다.
“동화야, 이거…… 괜찮을까?”
내가 ‘Fighter’를 고르자 윤성호가 불안한 듯 묻는다.
“솔직히 이런 말하기는 조금 그런데, 그 노래가 약간…….”
착한 성격의 윤성호는 차마 노래가 구리다고 말할 수는 없었는지 조용히 뜻을 표한다. 옆에 앉아 있던 호연이 그 말을 듣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구려.”
나는 별말 없이 가지고 온 노트북을 꺼내 들었다. 이현재의 도움을 받아 곡 작업을 할 수 있는 사양을 맞춘 녀석이다.
“자, 우선 비트 얘기부터.”
그때 나는 아무렇지 않게 눈앞에서 즉석으로 비트를 찍어 들려줬다. 원곡이 가지고 있던 웅장함을 음산함으로, 비장함을 위험함으로 바꿔서 요즘 힙합곡에서 볼 수 있던 양아치 같은 느낌의 비트로.
윤성호가 놀란 건 당연한 일이고, 감정 표현이 없는 줄 알았던 호연과 기죽어 있던 이지현 둘 다 좋은 반응을 보여줬다. 석준은 옆에서 내가 작업하는 걸 보면서 뭔가를 수첩에 끄적였는데, 아마도 작곡 공부 중인 듯싶다.
“와, 원곡이랑 비슷한 진행인데……. 이 곡이 양아치 같은 분위기랑 잘 어울리나 봐.”
라는 윤성호의 감탄을 들으며, 대강의 편곡 방향까지 확정할 수 있었다.
회상을 마친 나는 다시 작업실 컴퓨터를 노려 보며 커피를 마셨다. 피곤하군.
‘……오늘 내로 방향만 잡아 놓고 A&R팀에게 넘기면 되겠지. A&R팀이랑 같이 마지막 시작 편곡 방향도 잡아야 할 테니, 일정을…….’
육체의 힘듦은 정신만 멀쩡하다면 견딜 수 있다. 수면의 부족도 마찬가지. 채하민과 무리하지 않기로 약속했지만, 견딜 수 있다면 무리는 아닐 테니까 아직은 괜찮을 것이다.
‘양아치, 양아치의 본질은 무엇일까. 무엇이 양아치를 양아치이게끔 하는가.’
그보다도 나는 양아치스러움이 무엇일지 심오하게 고민하며, 작업을 이어나갔다.
* * *
석준은 지동화의 작업실에 들렀다.
‘형님께 커피를!’
블로센스에서 작곡을 배우고 있는 멤버 중 한 명이지만, 동화 형에 비하면 자신의 실력은 미약하다.
지동화가 작업을 할 때면 언제나 석준은 그를 도와주러 가곤 하지만, 막상 가고 나면 돕기보다는 배우게 되는 것이 다반사였다.
당장에 모모지 때만 하더라도 동화 형이 도와주지 않았으면 초반부는 위즈니 후속작들마냥 퀄리티가 떨어졌을 것이다.
‘오늘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석준이 래퍼가 되기로 한 계기는 유치했을지언정, 그 안에 담긴 열망은 진실했기에, 진심으로 지동화만큼이나 작곡을 잘하고 싶었다. 그래서 대학이고 자시고 포기한 것이기도 하다.
지동화의 작업실에 도착한 석준은 문을 똑똑 두드려 보았다. 피드백은 없음.
“형—님— 접—니다—”
석준은 다시 가만히 기다린다. 들리는 대답은 없음.
석준의 머릿속에서 지난번에 지동화가 쓰러졌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형님!”
벌컥.
문을 열고 들어간 곳에는 지동화가 책상 위에 고개를 떨어뜨린 상태였다.
“형님! 죽으면 안 됩니다! 아직 제가 쓴 첫 곡을 들려드리지도 못했는데!”
헐레벌떡 달려간 석준, 그는 지동화를 들쳐 안고 병원으로 바로 뛰려 했다.
그렇게 지동화를 안아 올리려는 그때, 지동화가 벌떡 일어나서는 석준의 머리를 통— 하고 밀었다. 갑작스런 습격에 석준이 짧은 비명을 질렀다.
“과속 금지.”
그렇게 말한 지동화는 다시 고개를 숙이고 잠에 빠져들었다. 블로센스 멤버 전원이 단 한 번도 지동화가 졸려 하는 모습을 본 적 없었다. 그렇기에 석준은 이게 지동화의 잠버릇이라는 사실조차 몰랐다.
석준은, 그저 멍하니 서있을 뿐이었다. 왜냐하면,
‘……자다 깨서도 이렇게 침착할 수가 있습니까, 형님!’
잠결에도 정확한 발음으로 사태를 파악한 지동화가 놀라워서.
그리고 석준은 자연스레 컴퓨터 쪽으로 시선이 돌아갔다.
‘양아치라는 개념 범주를 확정하기 위한 외연과 내포 성찰’이라는 도저히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는 문구가 적혀 있는 모니터.
그곳에는 한글 문서 기준 정확히 15페이지 가량의, 양아치란 무엇인지 사회적, 문화적, 언어적으로 분석한 글이 적혀 있었지만.—여담이지만 각주와 참고문헌도 작성돼 있었다.—
“이게 뭔 개—소리—”
석준은 읽을 수는 있었지만, 읽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현재가 와도 질문이 생길 글이었으니까. 석준은 잠든 지동화 쪽으로 다시 시선을 옮겼다.
“…정—말 특이한— 형님—입니다.”
석준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아마도 지동화가 깨어 있었다면 자아성찰이 부족하다고 한마디 들었을 것이다.
* * *
일주일에 두 번, 우리는 갓에이들과 만나게 됐다. 그 나머지 시간은 우리 무대 준비와 작업, 기타 스케쥴 등이 겹쳐서…… 솔직한 말로 끔찍한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아니, 벌써 편곡 본이 완성됐어? 우리 A&R팀분들보다 빠른 것 같은데?”
“다는 아니고… 1절까지만.”
윤성호의 표정은 한껏 걱정으로 물들었다. 약간 의아해지려 했다. 급하게 하느라 편곡이 별로일 상황을 걱정하는 건가.
나는 말 없이 연습실 중간에서 노트북으로 편곡 본을 틀었다. 원래 이런 건 결과로 들려줘야 하는 법이다.
모든 편곡을 듣고 나서, 윤성호가 멍하니 나를 보다가 박수를 친다. 그러고는 한껏 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합리적인 추론에 따르면, 자신에게 이 컨셉이 어울릴까 고민하는 듯싶다. 윤성호는 팬들 사이로 선한 이미지, 바른 생활 어른이, 교회 동문 같은 느낌으로 통하니까.
그래서 나는 윤성호에게 말한다.
“걱정할 필요 없어. 너가 제일 잘 소화할 테니까.”
내가 하는 말에 윤성호는 고개를 한 번 갸웃하고는 고맙다고 인사해 왔다. 그때, 연습실 문이 열리며, 이지현이 양손에 봉투를 가득 든 채 들어선다.
“머, 먹을 거 사 왔어!”
목소리가 파르르 떨리는데, 대체 왜 그런 걸까. 윤성호가 때려 팼을 것 같진 않은데.
아쉽지만 군것질을 좋아하는 타입은 아니기에, 나는 호연과 석준이 음식으로 달려드는 걸 보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이지현이 그때 안타까움의 한숨을 내쉰 건 우연일 것이라 확신한다.
* * *
오늘은 복숭아 뮤직 어워드, BMW가 진행되는 날. 오전 7시, 평소 일어나는 시간보다 1시간이나 늦은 시각.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직감할 수 있었다.
‘……몸이, 무겁군.’
고작 이 정도로 몸을 움직였다고, 고작 그 정도 고생을 했다고 몸이 이렇게 무겁다니.
“동화야, 잘 잤……어?”
채하민이 나랑 비슷하게 일어났다는 사실이 놀라운지 눈을 비비며 인사하다가 경악한다.
“와… 내 인생 버킷리스트 하나 이뤄졌네.”
평소라면 저런 농담에 웃어줬겠지만, 오늘은 도저히 날이 아니었다. 나는 무거운 몸을 끌고 일어나다가 다시 털썩, 침대 위에 앉고 말았다.
‘……망할. 채하민한테 또 혼나겠군.’
차라리 지금이라도 이실직고하는 게 나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