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01)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101화(101/343)
101.
“뭐라고, 동화야?”
채하민은 표정이 굳고, 놀라고, 냉정해지고, 불안해지는 여러 과정을 거치고 나서, 힘겹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몸살이, 난 것 같아.”
“허, 아으, 어떡해.”
채하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려다가 자기 이불을 밟고 미끄러져선 침대 위에 다이빙한다.
미친놈. 내 몸이 아무리 멀쩡하지 않더라도 이성적 사고는 제대로 할 수 있어서 그런지, 입에서 욕은 안 나왔지만, 속으로는 가능했다. 이런 걸 보면 종교나 많은 과거 사상들에서 말하는 영혼과 육신의 이분법은 어느 정도 맞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물리주의자들이 듣는다면 이 역시……
“동화야! 또 이상한 생각!”
나는 채하민의 말에 생각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최선을 다했지만, 몸이 내 뜻대로 움직이는 것 같지가 않았다.
그걸 보는 채하민은 다시 자리에서 ‘조심스레’ 일어나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팀장님들 중 한 분께 무조건 연락이 닿겠군.’
7시에 노동하실 어느 분일지 모를 팀장님께는 죄송스러운 일이다.
* * *
강승원 매니지먼트 팀장, 누구도 속을 썩이지 않는 블로센스 덕분에 최근엔 큰 문제가 없었는데, 오늘 굳건한 기둥 같던 지동화가 쓰러졌다고 한다.
그는 여러 군데 전화를 돌리며, 최근 지동화에 관한 정보를 모두 수집한 결과, 한 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지동화는 쉬라고 강요한 시간조차 쉬지 않았다는 걸.
채하민이나 류이든에게 몰래 부탁해서 쉬는지 감시해 달라고 부탁도 했었는데, 어떻게 교묘히 모든 감시를 피해서 일을 할 수 있었단 말인가.
오전 10시 응급실에서 링거를 맞으며 자고 있는 지동화가 보였다.
조심스레 옆에 앉은 류이든에게 다가가 물어보는 강승원.
“이든 씨, 의사 선생님께선 과로라 하십니까?”
“…하, 피로 때문에 면역력이 떨어진 상태에 환절기가 겹쳐서 몸살에 걸렸대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젠 감금 말고는 답이 없는 것 같아요.”
지난번에 쓰러졌을 때부터 운영됐던 지동화 감시조는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일을 조금 많이 한다 싶을 때면 수시로 찾아가서 쉬게 하고, 자게 만들었는데도 불구하고.
류이든은 자고 있는 지동화를 내려다보며 속으로만 생각했다.
‘얘는…… 똑똑한 게 맞는 거지?’
분명히 ‘혼자’ 고민하지 말라는 채하민의 말을 지켜서, 수시로 멤버들을 불러 편곡된 걸 들려주고 의견을 교류했다. 거기에 석준을 불러 편곡까지 함께 했으며, A&R팀에게도 적절히 도움을 받았다.
또한, ‘일하다가 쓰러질 정도로 무리하지 않는다’라고 분명히 약속해서 ‘무리하기 직전’까지 일을 하는 와중에 몸살이 터졌을 뿐, ‘무리하지는’ 않았다.
약속은 하나도 어기지 않고 몸에 문제만 생긴 상황. 아주, 몹시 괘씸했다.
‘일밖에 모르는 등신……?’
대체 왜 이렇게까지 일을 하는 걸까. 왜 이번 무대 편곡을 하면서도 다음 앨범을 걱정하면서 수시로 곡 작업을 하는 걸까. 분명 이 지경이 될 정도면 피곤하다는 자각이 있었을 텐데 왜 멈추지 않았을까.
류이든을 포함한 모든 멤버들의 머리가 약간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라고는 하지만, 오늘이 시상식 날이며, 1차적인 연습의 결과물이 발표되는 날이기 때문에, 심란해할 수만은 없었다. 무대 위 리허설이 예정되어 있으니까.
* * *
오전 10시, 나는 수액을 모두 맞고 견딜 만해졌다.
‘……미쳤군.’
멤버들이 내 몸을 십자가에 묶고 불을 붙인 데도 할 말이 없는 짓을 해버렸다.
분명히, 내 잘못이니까.
나는 시상식장으로 가는 차에 올라, 대체 왜 이런 일이 벌었는지 생각했다.
‘……몇 번 피곤하다곤 생각했지만, 확실히 견딜만 했는데.’
차 안의 분위기는 무겁다. 그나마 다행인 건 멤버들이 나를 보는 시선에 ‘탓’이 아닌 ‘걱정’이 담겨 있다는 것.
‘지난번에 쓰러진 일 때문에 더 신경 썼는데도…….’
물론 이번엔 지난번과 달리 환절기라는 특수성 때문에 피치 못 할 사정이 있기는 했지만, 쓰러졌다는 사실 자체엔 변함이 없다. 내 몸 관리 하나 제대로 못 해서 멤버들에게 민폐나 끼치다니, 부정적인 생각이 자꾸만 떠올랐다.
“……동화야, 몸은 좀 괜찮아?”
내 옆자리에 앉은 채하민이 조심스레 묻는다. 나는 그 목소리에 더 미안함을 느낄 뿐이었다.
“…응, 지금은 많이 괜찮아.”
조수석에 탄 류이든이 의자를 뒤로 쫙 눕힌다.
“아니, 너는 진짜. 시상식 끝나면 우리가 감금할 줄 알아라. 일도 못 하게 노트북도 뺏고 방에 책만 넣어줄 거야.”
농담이겠지만, 책이라도 주는 자비에 감사해야겠지.
“농담 아닌데.”
그리고 류이든은 다시 의자를 끌어올린다. 이번엔 운전대를 잡은 강승원 팀장님이 입을 열었다.
“컨디션 관리 못 한 건 저희 쪽 책임이 큽니다. 다만, 다음부턴 동화 씨도 부디 자신의 몸을 소중히 다뤄주십시오.”
나는 고개가 저절로 수그러들었다. 그러자 왜 그 모든 일을 겪고도 내가 내 몸을 혹사했는지 그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멤버들과 함께 고민하고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고 있어도, 이 그룹을, 지금의 멤버들을 잃는 게 더 두려워서 그랬을지도.
마치 내가 존경했던 부모를 잃었던 것처럼, 내가 사랑해마지 않는 동생을 떠나보냈던 것처럼, 우리 그룹이 실패해서 해산하지 않기를 바라는 걸지도 모른다.
‘……그래 놓고는 정작 가장 중요한 순간에 컨디션 관리도 못 하는 등신 새끼가 됐군. 나가 죽으라는 소리를 들어도 할 말 없겠어.’
나는 고개를 약간 들어 채하민을 바라봤다. 녀석은 내 쪽을 조심 조심 곁눈질로 쳐다보며 걱정하고 있었다.
아마도 모두들 그렇겠지.
나를 단순한 동료 이상으로, 어떤 정서적 결속으로 연결된 존재로 보며, 걱정해 주고 있겠지.
그러므로 더는 실망시킬 수 없다.
사실, 아직 몸이 조금은 무겁지만, 최소한 오늘 시상식이 끝나기 전까지는, 내가 쓰러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내 이성이 허락하지 않을 테니까.
* * *
최대한 체력을 아끼기 위해 작은 동작으로 리허설을 마치고 나서, 나는 모두 정장 스타일의 옷으로 갈아입었다.
다들 정장을 입긴 했는데 그중에서도 내 옷은 유독 검정색이었는데, 피부가 하얘서 그렇게 정했다나.
옷을 다 입고, 나는 깊은 심호흡을 내뱉고 소파에 앉았다. 이제 조금 후면, 차에서 내려 방금 도착한 척을 해야 할 시간이다. 이 직업은 표정 하나하나가 평가의 대상이 되니, 힘든 척할 수 없다.
“형은…… 어떻게 움직일 수가 있는지 참.”
이현재가 질린다는 목소리를 낸다. 정신력은 많은 문제의 해결책이 되어준다.
“그러니까. 제발! 몸 좀 사려 가면서 일해!”
채하민이 한껏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와서는 내 어깨를 살포시 잡아 흔드는 척하며 작게 소리친다.
이번엔 분명 몸을 사리려 노력했지만, 제대로 못 했으니 할 말이 없다. 나는 그저 고개 숙일 뿐이다.
“……미안.”
채하민은 내가 바로 사과하자 눈을 큼직하게 떴다. 누가 봐도 나 지금 놀랐다는 표정. 이럴 의도가 아니었다는 생각에 당황한 것 같다.
“그, 어, 근데! 미안해하라는 게 아니라! 아, 아프고 싶었던 것도 아니고.”
안절부절못하는 채하민의 뒤로 류이든이 다가오더니 어깨를 두 손으로 잡고 뒤로 밀어버린다.
“오늘 일은, 너 낫고 나면, 다 같이 모여서 얘기하는 걸로.”
그러고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손날로 내 머리를 때리려다가, 한숨을 푹 내쉬며 손을 내린다.
“어우, 머리는 또 좋아서 때릴 수도 없네.”
그게 아니라, 세팅된 머리라 건드리면 안 되는 겁니다, 리더님.
* * *
약한 눈이 몽글몽글 내리는 겨울의 초입.
이번에 복숭아 뮤직 어워드의 MC로는 솔로 활동으로 성공을 거둔 준성과 레미니아의 리즈, 그리고 블루잭의 리더인 루카치까지, 총 셋으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철학과생이 쏘아 올린 작은 공의 여파로 리즈가 형장의 이슬로 스러져서, 준성과 루카치만 MC를 맡게 되었다. 대신 여성 MC 자리에는 사이사이 게스트들이 한 파트씩 들어갈 예정이다.
준성과 루카치, 타인의 눈에는 경쟁 관계인 둘이지만, 리더로 데뷔 초 때부터 관계를 맺은 덕분에 절친한 친구 사이라고 한다.
둘은 출연자 입장을 진행하다가, 잠시 광고 시간을 이용해 대화를 나눴다.
“성아, 다음이 너희 후배들 차례 맞냐?”
준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동화 씨랑 친구 먹고 작곡 의뢰하고 싶은데, 받아주시려나 모르겠네.”
“야, 안 돼. 동화 후배가 어? 일을 얼마나 열심히 하는데. 만약에 더 했다가는 죽어.”
물론 준성 본인은 이미 곡을 받은 상태였지만.
그렇게 소소한 대화를 나누던 중, 들어오는 스탠바이 사인. 카메라 감독님의 사인에 맞춰 루카치가 입을 연다.
“네, 광고 끝나자마자 다른 팀이 한 분 들어오시는데요?”
“어? 저 차, 우리 회사 차랑 똑같은데?”
“설마 그분들이신가요?”
“마지막도 처음으로 바꾸고 싶은 마성의 남자들?”
그에 맞춰 이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던 루미너스들의 환호가 울려 퍼진다. 전장의 함성 같은 우렁참. 신인상을 받을 날만을 기다린 전사들의 목소리다.
차가 멈추고, 멤버들이 내리며 레드카펫 위를 걷는다. 약간 긴장한 듯 어색한 움직임이 보였다.
류이든부터 차례차례 내리고 나서, 마지막으로 지동화가 내리는 순간, 시상식장이 얼어붙기 시작한다.
내리는 눈 사이로, 하얀 피부와 까만 머리, 그리고 격식 있는 정장을 입은 지동화. 차가운 공기에 눈가가 약간 붉어졌다.
그의 표정은 퇴폐적으로 보일 정도로 어딘가 지쳐 있었고, 나른했다.
아프고 약을 먹은 여파 탓이었지만, 차가운 인상과 흑백의 대조, 그리고 그 주변에 흩날리는 흰 눈까지 뒤섞이자, 무수히 많은 서사가 함축된 것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MC 멘트를 할 차례인 준성도 잠시 당황해서 달라진 지동화의 분위기를 관찰해 버릴 지경이었다.
지동화가 무표정으로 걷는다. 사실 최선을 다해 몸을 움직이느라 그런 것일 뿐이지만. 그저 무표정으로 정면만을 바라보며 걸었다.
아까 전의 붉은 눈가, 거기에 더해 건조한 날씨 탓에 눈물까지 조금 고였다. 그 상태로 지동화는 옆에서 자신을 부르는 이를 보며 살풋 미소 지었다.
그 팬은 그 눈빛, 그 눈가, 그 눈물, 그 미소에 이미 실연을 겪은 기분으로 대포 카메라의 셔터를 눌렀다. 만약 지동화가 아프지 않았다면 없었을, 희대의 사진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네! 블로센스분들이 와주셨습니다. 포토존으로 가고 있는 모습인데요?”
찰나의 시간 동안 말을 멈췄던 준성은 다시 자연스레 멘트를 이어나갔다.
지동화가 포토존에 들어섰을 때였다.
덜컹! 하는 소리와 함께 세트가 살짝 흔들리며, 순간 지동화의 시선이 바닥을 향했다.
그리고 마침 눈송이 하나가 지동화의 코끝에 앉았다. 지동화가 다시 정면을 바라보며, 손가락 끝으로 톡, 하고 눈송이를 치워낸다.
지동화 시상식 움짤 중, 가장 많은 공유를 당할 예정인 움짤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지동화의 새하얀 피부와 수트핏이 뒤섞이며 조성된 퇴폐적인 분위기는, 마니아들이라면 환장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포토 타임이 끝나자 엠씨들 옆으로 자리를 옮겨 짧은 인터뷰가 진행됐다.
준성이 멤버들에게 한 마디씩 질문하는데, 예상보다 다음 팀이 늦게 들어오는 바람에 애드립 사인이 떨어졌다.
준성은 그냥 떠오르는 질문을 아무렇게나 뱉었다. 물론 애드립 대처 능력이 뛰어난 지동화와 류이든 중에서, 지동화를 골랐다.
“동화 씨! 혹시 가장 자신 있는 신체 부위가 어디신가요? 아이돌로서, 이건 자신있다! 하는 신체 부위!”
그러나 아쉽게도 지동화는 현재 약 기운에 약간 나른한 상태. 정신력으로 견디고는 있지만, 질문의 의도를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지동화는 잠시 멈칫하더니 마이크를 받아 입을 열었다.
“그나마, 두뇌입니다.”
“네?”
“제 두뇌가, 어느 정도는 내세울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침내, 뇌 주름마저 잘생긴 미남이라는 별명이 만들어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