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02)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102화(102/343)
102.
방송 3사의 연말 가요 무대와는 달리, 다른 어떤 시상식과도 겹치지 않는 시기. 아이돌에 깊은 관심은 없더라도 그냥 한 번쯤은 볼 법한 BMW라서일까. 종강한 대학생들이 자취방에 모여 뒹굴거리다가 TV를 틀어 BMW를 보기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오늘 종강으로 덕질 전투력이 최대치를 찍은 지동화의 팬은 친구의 자취방에 침투해 TV를 점령했다.
“야, 씨. 니 집 TV는 어따 두고 여까지 와서 지랄인데.”
“엄마가 옆에 있으면 비명을 못 지르니까. 대학 친구한테는 처음으로 덕밍아웃한 거니까, 자비 좀.”
그녀는 단호했다. 안 그래도 현장에 가고 싶었는데 실패했다. 마음껏 소리를 지르기 위해서라도 치킨 한 마리를 사 들고 친구네 집에 올 수밖에 없었다.
TV 속에선 입장이 진행 중이었다. 신인 특성상 초반에 순서가 배정됐을 테니 곧 나올 터. 그녀는 재빨리 치킨을 세팅해 친구의 불만을 잠재우고, 핸드폰에 SNS를 켜둔 뒤, 겸허하게 무릎 꿇고 앉았다.
시험 기간이라는 족쇄에 묶였던 자신은 해방됐고, 이제 지동화라는 유토피아로 향할 시간이다.
잠시 광고가 이어지는 TV, 친구는 치킨을 먹으며 진지한 지동화의 팬에게 미쳤냐고 물으려다가 그 진지함이 정도를 넘어서서 입을 닫았다. 곧이어 광고가 끝나고 블로센스의 입장이 시작됐다. 치킨이나 물어뜯으며, 지동화의 팬이 현실 영업을 하지 않는 성격이라 블로센스가 뭔지도 몰랐던 친구는 TV를 봤다.
‘어우, 다들 잘생긴 거 봐라.’
그렇게 속 편히 생각하다가, 그녀는 마지막에 차에서 내린 지동화가 클로즈업될 때 한순간 숨을 들이삼켰다.
클로즈업된 지동화의 퇴폐적 얼굴. 치명상을 입을 뻔했다.
“……야, 쟤 뭐야. 개쩐다.”
친구는 지동화의 팬에게 조심스레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지동화의 팬은 숨조차 쉬는 걸 까먹을 정도로 화면에 집중했으니까. 그리고 3초 후, 화면은 여전히 TV에 고정한 채, 포효했다.
“이걸! 현장에서! 못 봤다고! 개! 같은! 내 인생!”
그러면서도 손은 재빨리 SNS에 글을 업로드했다. 덕질 N년 차, 자연스러운 엄지손가락의 움직임이다.
그걸 보며 한숨을 쉰 친구는 다시 TV로 눈을 옮겼다. 이번엔 걷다가 한편을 바라보며 눈물이 고인 채 미소 짓는 모습. 다시 숨을 삼킨다. 분위기가, 분위기가 압도적이었다. 내리는 눈 속에, 퇴폐적이면서 잘생긴 남성이 저러고 있는 장면이라니.
“아, 지동화는, 아이돌계의 희망이다. 모든 인간은 지동화 덕질을 하게 될 운명이다. 존나, 존나 별이다. X발, 우주가 지동화를 도울 예정이다.”
지동화의 팬은 주문을 외듯 중얼거린다. 종강한 대학생의 광기는, 참 대단한 구석이 있는 법이다.
그리고 이어진 인터뷰.
— 동화 씨! 혹시 가장 자신 있는 신체 부위가 어디신가요? 아이돌로서, 이건 자신 있다! 하는 신체 부위!
질문을 듣고 이해하기 힘든지 고개를 약간 갸웃하는 지동화의 모습에 그녀는 별안간 눈물을 흘릴 뻔한다. X나 귀여워서.
— 그나마, 두뇌입니다.
— 네?
— 제 두뇌가, 어느 정도는 내세울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쟤는, 약간 4차원 컨셉인가 봐?”
친구의 중얼거림과 헛웃음. 세상 그 누가 자신 있는 신체 부위를 물었는데 두뇌를 얘기한단 말인가.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뇌섹남이라는 걸까.
“응, 고도로 발달한 지능은 광기와 구별할 수 없으니까.”
그게 덕질 포인트라고, 그녀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야, 저거 인터넷에 짤로 좀 돌아다니겠다.”
“난 벌써 영업글 초안 쓰는 중인데.”
끝나자마자 집에 들어가서 사진 보정부터 할 예정이다. 여담이지만, 이렇게 생각한 이가 그들뿐만은 아니었기에, 지동화의 모습과 독특한 발언은 작은 기사로 나는 데까지 이른다는 후문이 있다.
* * *
본격적으로 막을 연 BMW. 올해 데뷔한 신인들은 고작해야 5팀이 무대를 배정받았다. 그것도 팀 개별 무대로는 2분 내외의 짧은 시간을.
시상식 한편에 배치된 출연자 대기석에서 나는 무대를 지켜보고 있다. 오프닝 무대는 올해 중순에 유행했다고 하는 경쟁 프로그램에서 우승한 이가 꾸민 무대였다. 프로그램은 보지 않았지만, 곡은 들어봤기에 가만히 무대를 감상했다.
물론 여전히 몸이 최상의 상태는 아니지만, 약을 먹은 덕분에 아마도 겉으로는 멀쩡해 보일 것 같다.
그 무대가 끝나자 MC들의 환영 인사와 함께, 그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을 수상이 시작됐다. 글로벌 어쩌구, 라는 상인데, 해외 영향력을 기준으로 선정했다고 하니, 조작이 쉬워 보였다. 아마 출연한 이들 중 누군가에게 체면을 차리려는 의도가 아닐까.
“그러고 보니까 동화가 작곡가 수상 목록에 이름이 있는 게 신기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곡 두 개도 내가 쓴 거긴 하다만, 준성의 곡을 쓴 영향이 후보에 이름을 올리는 데 톡톡한 기여를 한 것 같다. 다른분들의 작업물도 참 대단한 편이니, 내가 수상할 거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노력한 결실로서, 부디 신인상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을 뿐.
그렇게 무대를 감상하고 있을 때, 콜사인이 떨어졌다. ‘올해의 루키들’이라고 묶여 신인들의 합동 공연과 개별 공연이 함께 진행될 시간.
우리는 조심스레 무대 뒤편 대기실로 들어갔다. 이번 무대 순서 때문에, 나는 우선 교복을 받아들었다.
“와, 다시 봐도 동화 형이 교복 입은 모습은 적응이 안 돼요.”
이현재가 자기 무대의상으로 흰 실크 셔츠를 입곤 말했다. 늙어 보인다는 뜻인가. 개인적으로 교복을 입은 지 대략 10년 정도 돼서, 나도 낯설기 짝이 없다.
“형이 교복 입으니까…… 뭐라 그래야 하지, 소년 만화에 나오는 서클에서 브레인 역할 할 것 같다 그래야 하나.”
그건 양아치 같다는 뜻이니, 현재. 나는 예전에 양아치에 대해 깊이 있게 탐구했던 기억이 떠올라 약간 웃고 말았다.
“어쨌든, 무대에서 설렁설렁해버려요, 형. 지금 모습이면 그것도 컨셉이라고 봐줄 거 같은데요?”
아무렇지 않게 미친 소리를 하는 재주가 대단하구나, 현재. 차라리 시간을 역행하는 게 가능하다고 하지 그러…… 음, 가능하군.
어쨌든 걱정은 고맙지만, 시상식이라는 특성상 가요계에 관심 있는 이들이 많이 봐주는 무대에서 설렁설렁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최선을 다해서 설렁설렁하는 척을 해야 하는 무대긴 하지만.
* * *
사전에 촬영된 BMW VCR이 재생된다.
지동화와 석준이 백댄서 몇 명과 함께 교복을 입고 걸어온다. 지동화는 교복을 올바로 갖춰 입고 알 없는 안경을 썼고, 석준은 재킷은 가져다 버렸는지 후드집업을 걸쳤다.
그 건너편으로 갓에이 측 멤버들이 같은 교복을 입은 채 백댄서 세 명 정도를 끌고 왔다. 중간에서 마주치자 윤성호가 사탕을 입에 문 채 선하게 웃었다.
“우리 블로센스! 오랜만이네!”
지동화가 무표정으로 응수한다.
“조용하십시오, 갓에이 여러분. 인사할 사이입니까?”
“그것도 그렇네! 누가 올해의 루키인지 겨뤄야 할 테니까!”
그렇게 교회에 다닐 것 같이 선하게 웃던 윤성호는, 갑작스레 정색하고는 뒤로 고갯짓을 한다. 다른 멤버들과 백댄서들이 천천히 걸어 나와 일렬로 선다.
그에 지동화도 말없이 고개를 한 번 끄덕이자 백댄서들이 앞으로 걸어나온다.
화면 위로 ‘Figher’라는 문구가 떠오르고, 곧이어 무대로 화면이 전환된다.
지동화가 생명력과 맞바꿔 거의 새롭게 만들다시피 한 비트가 묵직하게 울려 퍼지고, 그 중심에 여전히 마주 보고 있는 블로센스와 갓에이의 멤버들이 한 씬에 잡힌다.
먼저 윤성호. 노래와 랩의 중간쯤으로 입을 연다.
어? 안녕하세요. 조언 따윈 됐으니 돈으로 주세요.
어? 아직 안 갔죠. 그런 말씀 들을 시간은 없어요.
첫 구절을 할 땐 선하게 웃으며 공손하게 두 손을 모아서 내밀었던 윤성호가, 아직 안 갔냐고 물어볼 때 표정을 싸늘하게 식힌 채 카메라를 노려본다. 지동화가 심도 있는 양아치학개론을 탐구한 끝에, 강력하게 주장해서 넣은 표정 연기다.
이어지는 석준의 랩 파트.
Maybe, Maybe, 이해 못 해, 누군 날 보고 미쳤대
Blah, Blah, 이해해, 산 아래에선 정상 보기 지쳤대
석준은 고개를 뒤로 위를 보다가 목이 아프다는 듯 능글맞게 뒷목을 주무른다.
I’m the Top, (on the Top), 여기 타, (올라타)
닮고 싶음 꽉 잡아, 내가 좀 거칠 거든, 퉤
여기서 제일 잘 나가는 놈은 나라는 식의 가사. 지동화는 개인적으로 가사도 싹 바꿔 버리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선배에 대한 예우가 아니라는 말이 나올 게 뻔히 보여서 말았다.
그런데도 석준은 평소의 모습과는 다르게 이곳저곳에 날티를 흩뿌리며 다른 세 명의 팀원과 함께 춤추다가 카메라를 잡아 뒤쪽으로 돌린다.
백댄서가 일렬로 두 줄 선 사이로, 지동화가 무표정하게 걸어 나온다. 여전히 퇴폐미가 묻어나는 표정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걸어 나올 때, 비트가 간소화되고, 그 위에 매력적인 음색의 목소리가 얹힌다.
누군가 또 왈왈, 그렇게 살다 세상에서 뒤쳐진, 단다
그래서 난 왈왈, 그럴 바에 세상이랑 싸우다 죽을, 란다
아무 감정도 없는 듯 완벽한 무표정으로 백댄서들의 중간에 선 지동화. 마치 교복이 아니라 정장을 입고 사람들을 이끄는 젊은 회장 같았다.
몰랐습니까, 우린 살아 like the 불나방
알겠습니까, 우린 그럴수록 화나 마치
지동화가 노래를 부르며 무표정을 귀찮다는 듯이 업신여기는 표정으로 바꿔 앞으로 걸어 나가 윤성호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준 뒤 그 옆에 선다.
마침내 대형이 완성된 순간,
We, are, Fighter.
라는 짧은 문장이 어절마다 뚝뚝 떨어지고, 둔탁한 비트와 신나는 신스음이 흐른다. 원래라면 웅장하고 장엄했을 비트는, 지동화의 손길을 거쳐 양아치 행진가로 탈바꿈했다.
기존의 비트의 틀만 빌린 채 색깔을 바꾸는 작업은 귀찮고 번거로웠지만, 지동화와 A&R팀은 함께 밤을 새워 완성했다.
윤성호를 센터로 한 대형에서 자유분방한 느낌의 춤을 선보이는 건, 딱딱 맞춘 춤을 추는 것만큼이나 많은 연습을 필요로 했다.
이어서 이지현과 호연의 랩 파트가 4마디씩 이어지고, 모두들 자리에 쭈그려 앉았을 때 윤성호가 혼자 일어난다. 순수한 미소와 함께 뒷목을 긁적인다.
누가 날 더 잘 안다고 입을 여나요, 시끄러우니 부디 Shut the (Um—)
내가 날 더 잘 아니까 신경 끄세요, 쓰실 거라면 부디, Gimme that (Money—)
그리고 카메라가 윤성호의 어깨까지 클로즈업했을 때, 지동화가 옆에서 손끝으로 윤성호의 머리를 툭 치고 카메라를 빼앗는다. 그 뒤로 석준이 지동화의 목을 감싸 안고 함께 나오려 애쓰자 다시 귀찮다는 듯이 손을 쳐낸다.
지동화가 엔딩 화면에서 입술을 혀로 한 번 핥아 축이고 마지막 파트를 노래한다.
We, are, (Um—)
단 두 단어만 뱉고 뒤돌자, 다른 멤버들이 카메라 쟁탈전을 시작하고 지동화는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는 컷씬으로, 첫 번째 유닛 무대가 마무리됐다.
* * *
무대를 막 마치고 내려왔을 때, 다리에 힘이 풀릴 뻔했지만, 일단 버텼다. 잠시 비틀댄 나를 옆에서 윤성호가 부축해 주며 작은 비명을 내질렀다.
“왜, 왜 그래. 혹시 다쳤어, 동화?”
윤성호의 조심스러운 물음에도 나는 별달리 반응을 보일 수가 없었다.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힘이 없었으니까.
“형—님, 잠시 쉬시는 게 어떻습니까.”
옆에서 석준이 달려와서 나를 업을 기세로 움직였지만, 나는 그저 녀석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걸어갈 뿐이다.
아직 마지막 시작의 무대가 남은 상황. 쓰러질 수는 없으니, 어떻게든 꾸역꾸역 버텨야만 한다.
“괜찮으니까, 우선 대기실로.”
의상 갈아입는 시간까지 계산하면 그리 여유롭지 않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