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03)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103화(103/343)
103.
나는, 숨을, 몰아, 쉬었다.
마침내 ‘마지막 시작 : the First Last’의 자랑스러운 새 편곡 버전 무대까지 마치고 내려오는 길.
약 기운이 슬슬 떨어져 가는지, 이성의 명령을 육체 따위가 따르려 들지 않았다. 이런 걸 보면, 플라톤이 틀린 건 아닐까, 싶다. 이성이 육체를 조절하니 뭐니.
나는 무대 한 편으로 쓰러지듯 가서 구조물을 지지대 삼아 버텼다. 망할 육체, 이번엔 꼭 류이든과 함께 운동이라는 걸 본격적으로 해봐야 할 것 같다.
“어, 도, 동화, 아니, 동화야!”
채하민이 그런 나를 보고 헐레벌떡 달려와서는 상태가 괜찮은지 점검해 준다. 이번엔 정말로 쓰러질 것 같다는 강렬한 예감이 찾아왔다.
“잠시 자도 돼. 내가 들쳐 업으면 되고, 우리 후보로 오른 상은 2부에 시상하니까.”
류이든이 내 뒤에서 등을 토닥이며 말해줬다.
“그러면, 저 잠시 쓰러지겠습니다.”
또렷한 음성으로 한 음절씩 정확히 뱉은 순간, 눈이 감겼다.
* * *
그걸 본 류이든은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정작 자라고 한 사람이 본인이긴 했지만, 잠이라는 게 의지대로 잘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이게 가능한 일인가?”
게다가 누가 쓰러지기 전에 또렷한 목소리로 쓰러질 걸 예고하고 쓰러진담.
“아마, 정신으로 버티다가 힘 놓자마자 실 끊기듯 잠든 거 아닐까요?”
류이든이 지동화를 들쳐 업고 있을 때, 이현재가 옆으로 와 그럴듯한 추론을 제시했다. 그러니까, 지동화는 자신의 몸을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그리고 자신의 정신을 실처럼 활용하고 있던 거라는 설명이었다.
물론, 문장의 언어적 이해가 가능하다고 해서 납득이 가능한 건 아니었다.
“그게 말이 된다고?”
류이든의 어이없는 질문에,
“동화가 예전에 그런 말 하긴 했어, 형. 자기는 쓰러질 것 같아도 정신력만 있으면 견딜 수는 있다고.”
채하민은 룸메이트로서 지동화의 얘기를 들을 기회가 많았기에 답할 수 있었다.
“술이 센 것도 그것 때문인가?”
대체 이놈은, 정신력으로 왜 그렇게까지.
류이든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고개를 젓고 대기실로 달려갔다. 아무래도 2부 시작하기 전에 약이라도 한 번 더 먹거나 수액이라도 한 번 더 맞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서.
* * *
아이돌 팬이 현장을 뛸 때 가장 필요한 덕목은 세 가지 정도다. 체력, 목청, 그리고 시력.
루미너스는 매와 같은 눈으로 가수 대기석에 들어오는 블로센스를 포착하여 영상을 찍거나 사진을 촬영했다.
“……어, 근데 동화가 없는데?”
루미너스가 모인 좌석에, 울려 퍼진 목소리가 점차 불길처럼 번져나갔다.
“혹시 부상?”
“근데, 그런 것 치곤 무대에서 너무 잘했는데. 다친 순간도 못 봤어.”
이게 집단적 독백인 걸까. 서로 잘 모르는 사이고, 그저 혼잣말을 소리 내 중얼거릴 뿐인데 대화가 되고 있었다.
“……뭐지.”
그런 그들의 목소리는, 블로센스 팬 커뮤니티로 빠르게 전달됐다. 대강 ‘동화 무대 끝나고 사라짐’이라는 내용을 달고.
그런 글에는 늘 그렇듯, 팬들끼리 모여 있는 곳이라 부정적인 글은 없었지만, 무수히 많은 추측성 댓글이 달렸다. 그중에서도 가장 목소리가 높았던 건 부상에 관한 것이었다. 합리적이고, 그럴듯했으니까.
그리고 한편, 이현재는 그 모든 걸 잠시 핸드폰을 보며 살펴보고 있었다. 카메라에 잡혔다가는 시상식에 집중하지 않는 가수라고 욕먹을 테니, 누구도 볼 수 없도록 잠시 화장실을 간다는 핑계를 대고.
“…와, 어떻게 부상이라는 추측만 있을까.”
그 누구도 동화 형이 지쳐서 쓰러졌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동화 형이 얼마나 열심히, 자신의 현재 상태를 팬분들께 티 내지 않으려고 노력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진짜, 멋진데, 안 멋져도 좋을 것 같구 그러네. 우리 과외 쌤.’
멋지고, 존경스럽고, 닮고 싶다. 그런데 동시에 그러지 말아줬으면 하는 바람도 든다. 이현재는 현재 병원에서 링거를 맞고 있을 지동화를 떠올리며, 감탄과 안타까움이 반반인 한숨을 내쉬었다.
* * *
번쩍, 눈이 떠졌다. 기분이 더러울 정도로 개운하군.
“깨셨습니까.”
강승원 매니저 님이 곁을 지켰나 보다.
“…네, 죄송합니다, 팀장님.”
“아닙니다. 아침에도 말했지만, 저희가 먼저 나서서 몸 상태도 점검했어야 하는 건데, 동화 씨가 워낙 똑똑하시니 의무를 방기했습니다.”
기지생이라면 모를까, 내가 아플지 아닐지 어찌 알 수 있을까. 교통사고가 날 걸 알 수 있을 리 없는 것처럼.
“시상식, 아직 합니까. 한다면,”
“조금 더 누워 계셔도 괜찮습니다. 2부 시작 때 들어가는 게 그림도 자연스러울 테니. 그리고 들어가고 10분 정도 후에 바로 송 라이터 부문 시상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들어가기 전에 헤어 세팅만 다시 하겠습니다.”
나는 그 말에 다시 침대에 누워 생각을 정돈했다.
교통사고가 날 줄 몰랐다고 해서, 교통사고를 당해 일하지 못한 것에 책임을 지지 않을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갑자기 몸에 탈이 날지 미처 알지 못했다고 해서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비록 우리 팀이 더, 훨씬 잘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 나온 행위라도, 그 결과가 무엇이든 책임을 져야 하는 법이다.
어떻게 해야, 멤버들에게 지은 죄를 해소할 수 있을까.
나는 아주 골똘히, 생각했다.
* * *
…고 해서 언제나 답을 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여전히 죄책감을 가진 채 다시 시상식장에 도착했다.
2부가 시작되기 전,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온몸을 꽉 붙든다. 표정을 가다듬고 가수석으로 가 앉자, 멤버들이 티 나지 않게 걱정된다는 눈빛만 쏘아 온다.
“괜찮아.”
내 짧은 대답에 채하민이 속이 답답하다는 듯 약간 툭툭 치더니 자기 옆자리 의자를 톡톡 친다. 4살 때 잘못하면 부모님이 저런 식으로 목화를 불렀었는데, 비슷한 모양새다.
“우리한테는 몰래몰래 힘든 척해도 괜찮아, 동화야.”
옆에 앉혀 놓고 시작하는 말에 담긴 속뜻이 걱정이라는 걸 안다. 나는 약하게 마주 웃어줄 뿐이다.
시상식은 2부가 시작했으니, 이제 중반부라고 부를 수 있다.
“동화야, 한 십 분 후에 베스트 송 라이터? 상인가 수상한다니까 준비해. 카메라에 찍힐 거야.”
류이든의 말에 나는 옷매무새를 단정히 했다. 후보에 오른 이름 중 훌륭한 분들이 많았으니 기대도 하지 않을 테지만, 예의는 차려야 할 터다.
“준성 씨, 이번에는 어떤 상을 수상할 차례죠?”
“올 한 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은 곡을 작곡한 분께 주어지는 영광, 베스트 송 라이터 상을 수상할 시간입니다.”
잠시 MC들의 대화가 이어질 때 고갤 들고 눈을 잠시 감고 정신을 말끔히 하고 있었는데, 소소한 함성 소리가 퍼졌다.
그리고 그 즉시 류이든이 내 허벅지를 짧게 잡았다. 음, 혹시 카메라인가.
나는 고개를 내려 전광판을 봤다. 무표정으로 위쪽을 바라보고 있는 내 얼굴.
곧바로 나를 찍고 있는 카메라 쪽을 보고 미소 지었다. 아이돌 경력이 서바이벌 기간 포함 1년, 이 정도는 익숙하다.
……왜 아직 내 얼굴.
보통 이런 건 2초 정도지 않나.
나는 당황한다. 예상치 못한 사태는 오랜만이라, 나는 침착하게 해야할 행동을 정해야 한다.
“아! 이번 베스트 송 라이터 상 후보입니다. 포즈 한번 취해 주시죠!”
준성이 신난 목소리로 소리치자,
“아! 귀여운 거 하나만!”
루카치가 이어받았다. 루미너스님들이 지르고 있던 소리가 점점 더 커져 갔다.
류이든 같은 놈들. 참고로 개 같다는 뜻이다.
이런 기대 속에서 하지 못한다고 할 수는 없는 법. 나는 채하민이 예전에 했던 애교를 기억해 냈다.
천천히 손을 들고, 한 입 베어 문다.
베어 무는 순간에 집중해서 손을 오므려 하트로 바꿨다.
나는 그 해괴한 짓거리를 수치로 인해 사망하지 않고 끝까지 해냈다는 만족감에 미소 지었다.
그런데, 류이든이 킥킥거리는 소리가 살금살금 귓속으로 기어들어 온다. 아마도 다른 멤버들도 이런저런 이유로 겉으로 표만 못할 뿐 즐거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짐승들, 너희들이 인간의 사회생활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으냐.
그러나 수치를 견디기 힘들었던 나는 곧바로 고개를 숙였는데, 옆에서 웃음이 조금 더 커졌다.
“동화야, 아직 너 찍히는 중이야.”
재빨리 고개를 들어보니, 놀란 표정의 내가 귀는 한껏 붉어진 채로 눈에 당황이 서려 있었다.
나는 다시 미소 지으며 카메라에 손을 흔들어줬다. 그리고 전환되는 화면.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얼굴을 쓸어내릴 뻔했다. 망할 메이크업. 망할 연예계. 망할 아이돌.
* * *
그리고 이어지는 베스트 송 라이터 상 시간. 나는 고작 준성의 ‘Sorry’ 하나 작곡한 성적으로 여기에 이름을 올렸기에, 비록 상을 타지는 못했다.
“네, 올해, 베스트 송 라이터 상 수상자, 축하드립니다!”
“핫도그 씨!”
이름이 저 모양이라 그렇지, 실력은 좋으신 분이다. 블루잭의 이번 활동곡을 만들고, 경력도 6년 정도 된 훌륭한 작곡가니까. 내가 알기론—보통 내가 기억하는 사항이면 틀리지는 않는다.— 2년 전에 다른 곳에서도 상을 한 번 타신 것으로 안다.
나는 박수를 치고 이어질 수상 소감을 기다렸다.
“어, 제가 사실 오늘 상을 받을 거라고는 기대를 못 했습니다. 너무 훌륭한 다른 후보분들이 있으셔서.”
라는 예의 차리는 말이 들리길래 나는 관심을 끌까 고민했다. 안 그래도 정신이 혼미한데, 상투적인 말에 신경 쓸 힘은 없다.
“특히 같이 후보에 올랐던 ‘Sorry’를 작곡하신 젊은 작곡가분을 보며 자극도 많이 받았고, 같이 작업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아, 저 양반은 놀랍게도, 작곡가면서 아이돌 판에 관심이 없고, 노래만 듣기로 유명한 분이다.
애초에 ‘Sorry’ 작곡가가 나인 것도 달리 홍보하지 않기도 했으니, 모르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니까, 저분은 지금 동화 너가 본업이 작곡가인 줄 알고 있는 거지?”
채하민의 질문 같은 혼잣말.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감사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 쪽을 보고 계시진 않지만, 감사는 감사다.
“이제, 신인상 발표만 남은 거지?”
속삭이듯 울리는 소리.
우리는 고개를 숙이고 모여서 곧 있을 신인상 발표, 정말 만에 하나 우리가 되지 않더라도 당황하지 말자고, 받으시는 분을 축복해 주자고 서로의 어깨를 주물러줬다.
물론, 우리가 갖고 있는 통계청인 이현재 왈, BMW 수상 기준상, 신인상 가능성은 97%라고는 하지만. 참고로 3%는 천재지변이나 멤버 간 불화 루머, 혹은 기타 부정적 상황으로 인한 시상 취소의 가능성이었다.
개인적으로도, 멤버들과 함께 이 영광을 누리기 위해 1년간 최선을 다했기에, 부디 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내가 이런 말하긴 참 뭣하지만, 이현재는 참…… 기지생 같은 놈이다..
띠링—!
[부르셨습니까?]당신은 딱 기다리십시오. 97%의 확률로 당신의 존재를 알아내 줄 테니.
기지생과의 짧은 대화를 끝으로 곧이어 신인상 발표 순서가 다가왔다.
“이번에 수상할 상은 너무나 뜻깊은 상이죠?”
“데뷔하고 나서, 단 한 번만 받을 수 있는 상! 모든 신인분들께 뜻깊은 상이죠!”
“올해 가요계에 새로 도전한…….”
흘려들으면 되는 소리가 쭉 이어졌고, 마침내.
“올해의 신인은, 바로!”
“블로센스입니다!”
“와아아아!”
모두들 벌떡 일어났다. 나는 약간 지친 관계로 느릿하게 일어나 멤버들의 격한 머리 쓰다듬음을 당했다.
……왜 나만 난리냐, 이것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