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04)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104화(104/343)
104.
무대 위로 올라간 우리, 나를 제외한 모두가 울어댔다. 1위 수상 소감 때가 떠오르는 모양새다.
류이든이 대표로 상을 받았는데, 격한 울음을 흘리고 있었다. 내 손을 잡고 마이크로 약간 당기는 게 대신 해달라는 뉘앙스를 풍겼다.
나는 침착하게 마이크를 잡았다. 지난번과 같은 헛소리를 다시 반복할 수는 없다.
“…가장 감사하고, 사랑하며, 중요한 분들의 이름을 처음에 언급해야 하는지, 마지막에 언급해야 하는지 헷갈리곤 합니다.”
나는 침착하게 모든 멤버들이 모여서 다 함께 작성한 문구를 읽기 시작했다.
“아직 확신은 없지만, 가장 사랑하는 분들의 이름을 조심스레 먼저 불러봅니다.”
한 호흡 쉬고.
“우리 루미너스 님들. 모자란 우리를 늘 사랑해 주셔서, 그리고 늘 응원해 주셔서,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를 은혜를 뼈에 새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침내, 마침표 하나.
멤버들과 이뤄낸, 첫 번째 결실 하나.
더는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명백한 증거 하나.
나는 어느 정도 류이든이 진정한 걸 확인하고 한 걸음 물러선다.
“신인상은, 결국 앞으로 더 잘 해나가라는 격려라 생각합니다. 연습생 때부터 바라왔던 상, 이 상에 담긴 격려를 잊지 않는 블로센스가 되겠습니다.”
강아지 놈의 물기 어린 목소리. 이후 이어지는 회사분들과 가족에 대한 언급. 나는 마이크를 다시 잡기는 뭣해서, 입모양만으로 ‘목화’라고 짧게 말했다. 아마 알아보겠지.
이런 건 귀신같이 눈치채는 동생이니까.
그렇게 가족들 얘기까지 끝나고 이현재가 마지막 한 마디를 남긴다.
“마지막으로, 저희가 가장 사랑하는 루미너스! 정말로 감사하고, 앞으로도 멋진 모습 보여드릴 수 있는, 꽃돌이들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가수석으로 옮길 때 신인상 트로피를 한 명씩 번갈아 들어보며 감격한다.
“……진짜, 좋다. 꿈 같아.”
류이든. 우리 중에서 상황 변화에 침착하게 대처하는 편인데, 멍하게 중얼거리는 걸 보면 감회가 새롭나 보다.
“…나 연습생 때, 진짜, 꿈에 신인상 받는 꿈 꿨거든.”
“저도, 연습생 4년 차 때 꿈에서.”
이현재가 말을 이어받다가 갑자기 다시 눈물을 흘린다. 감정이 제대로 제어되지 않는 듯싶다.
그러자 공감 능력이 남보다 우수한 채하민과 석준이 따라 울었고, 나는 그 꼴을 보며 헛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이리 감정 조절을 어려워해서야 어쩐담.
나는 이현재의 등을 쓸어주었다.
“형, 진짜. 진짜 고마워요.”
울먹이면서 내 손을 꼬옥 부여잡는 이현재. 등을 쓰다듬어주는 게 뭐가 그리 고마운지는 모르겠지만, 받아주지 못할 것도 없다.
* * *
시상식이 끝나고 인근의 한 고깃집.
“블로센스의 신인상 수상을 축하합니다!”
라는 외침과 함께 곳곳에서 잔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스태프님들과 멤버들이 모여 회식이 진행됐다. 나의 경우 ‘몸이 안 좋으면 들어가야 한다.’라는 강승원 매니저님의 강력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제 발로 따라왔다.
고집이라면 고집이겠지만, 마침표를 찍는 자리에 내가 없다는 게, 나중에 생각했을 때는 더 가슴 아플 것 같아 따라왔다. 이런 감정적인 논리로 움직이는 건 오랜만이라 낯설기는 했다.
“음, 동화야, 절대 술은 마시면 안 돼! 집 안 들어가는 것도 엄청 봐준 거야!”
알코올중독자를 치료하는 뉘앙스로 말하지 말아주렴, 하민.
멤버들은 들뜸과 걱정 사이 어딘가쯤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오늘 신인상의 감격에 대해 소담하게 얘기를 나누던 중, 류이든이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여튼, 우리의 복덩이이자 은인인 동화 형이 몸을 조금 더 사렸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어.”
바로 내 일. 다행히 내가 견딜 만한 수준으로 탈이 났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대형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맞아요. 저 오늘 아침에 세상 무너지는 줄 알았다구요. 형, 진짜 너무 고맙구, 감사한데, 조금만 덜 열심히 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이현재는 고마움을 강조하며 내게 조언했고.
“저—도, 형님이 아픈 건— 싫습—니다. 제가— 빨—리 작곡 배워서 형님— 돕겠습니다.”
석준은 자신이 성장할 것을 다짐했다.
유일하게 별말 없는 채하민은 내가 고깃집에 따라왔을 때부터 잔소리를 했기에 할 말이 남아있지 않은 것 같았다. 다만 눈빛으로 동의할 뿐이다.
나는 멤버들의 걱정스런 눈빛이,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다. 평소답지 않고, 감상적인 생각이지만, 타인의 걱정과 관심이라는 건, 은근히 달콤한 향을 풍긴다.
그래서 옅게 미소가 배어 나왔다.
“미안해.”
류이든은 웃으면서 고기를 한 점 집어 내 접시에 올려줬다.
“물론, 동화, 너가 잘못한 건 없긴 하지. 너는 그냥 일 열심히 한 거고, 이번엔 몸에 탈이 예상치 못하게 난 거니까. 지난번처럼 순수한 과로 상태는 아니었잖아?”
음, 뒤에 한 말은 맞긴 하다. 내 잘못이 있는지 없는지는 긴가민가하지만.
“그래도, 동화야. 나는 진짜로, 너가 고생하는 거 볼 때마다 고맙고, 같이 해주고 싶고, 조금은 쉬었으면 좋겠고…….”
채하민의 입에서 무수히 많은 문장이 죽죽 늘어진다. 채하민의 말이 끝나자 류이든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 익은 고기를 한 점 더 내 접시에 올린다. 아까 전부터 나한테만 고기를 주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우리 블로센스가 신인상을 탈 수 있었던 주요한 원인이 동화, 너가 노력해서라는 건 맞지. 나도 그건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있고, 아마 다 그럴 거야.”
그에 다른 멤버들이 고개를 격하게 흔든다. 반면에 나만 고개를 젓는다.
“…다같이 했지.”
진심으로 이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양심의 가책도 느껴지지 않는다. 류이든이 또 고기를 내 접시에 올리며 말했다. 제발, 고기 이제 그만.
“다들 고생한 건 맞지만, 너가 유독 고생한 건 아무도 부정 못 해, 이놈아.”
물론 고생한 거야, 맞지만. 그래도 하고 싶은 고생이었고, 지키고 싶은 것을 위한 고생이었기에 그 과정도 충분히 즐거웠다.
“……어쨌든, 오늘처럼 아픈 일은, 다신 없도록 할게.”
“아플 수야 있지, 동화야! 조금만 쉬어! 아픈 게 너 잘못도 아니고! 조금만 설렁설렁 일해줘!”
채하민의 절절한 외침. 예전에 쓰러졌을 때 채하민이 울면서 화냈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채하민이 지금은 울지 않는 걸 보니, 그때만큼 화나지는 않은 것 같다.
……놀랍군. 그땐 중요한 일을 앞두고 아팠던 것도 아닌데, 지금보다 그때 더 화를 내다니. 아마도 이번엔 일어서지도 못할 만큼 아픈 게 아니라서, 그리고 올곧이 내가 무리한 건 아니라서 그런 것 같다.
기분이, 묘하다. 마치 내가 처음으로 무대에 서고 나서 느꼈던 감각처럼, 누군가가 나를 위해 준다는 감각이 이렇게 날선듯 쏟아지는 기분은, 묘했다.
그러자, 왜 그리 노력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저도, 신인상 정말 받고 싶었습니다.”
단순히 기지생의 퀘스트 때문이 아니라, 너희들과 더 나은 가능성을 경험할 수 있을 테니까. 그 마음 하나로 그 오랜 밤을 지새울 수 있었던 것이다.
“부끄러우면 존댓말하는 건 대체 언제쯤 고쳐질까.”
류이든의 중얼거림은 가볍게 무시하자.
어쨌든, 아까 전에 얘기했듯, 마침내 얻어낸 마침표 하나가 신인상이다.
“도리어, 내가 고마울 때가 더 많… 습니다. 힘들 때, 너희들 생각하면 안 힘들고 그랬습…니다.”
그러므로 힘겹게 입을 열어 감사를 표할 수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감사하다는 말이 이렇게 낯간지러웠던가.
“……형님!”
석준의 급발진, 갑자기 울컥했는지 눈물을 한 줄기 흘리고는 테이블 건너편의 나를 껴안으려 달려들었다.
나는 채하민과 석준의 과속으로 단련된 반응속도로 젓가락을 들어 뒤쪽으로 석준의 머리를 약하게 톡 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쨌든. 말했듯이 다시는 안 아플게. 만약에 아프면, 이번엔 정말 감금당하도록 할게.”
나는 급히 화장실로 자리를 옮겼다.
물론 뒤에서, 류이든이 녹음에 성공했다고 기뻐하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하기로 했다.
* * *
블로센스 관련 일처리로 뒤늦게 회식 자리에 도착한 기획2팀의 팀장, 장해진.
그녀는 기쁜 소식을 들고 달려왔다.
“어? 동화는 어디 갔어?”
이제는 시간이 꽤나 흘러, 공식적인 회의가 아니면 반말을 할 정도로 가까워졌다.
“아, 동화는 지금 수치사하러 갔습니다, 팀장님.”
류이든의 능글맞은 소리에 무슨 얘긴지 빠르게 깨달은 장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무슨 일이세요, 팀장님?”
“아, 별 거는 아니고 동화가 SNS에 실시간 트렌드 떴거든.”
뭔 말인지 못 알아들은 채하민과 석준과는 달리, 블로센스 공식 서치 요정 이현재가 화들짝 놀라더니 박수를 쳤다. 류이든도 놀라며 따라 박수를 쳤고.
석준과 채하민은 서로 귓속말을 하며 아마 좋은 것 같다고 의견을 확정한 뒤 따라 박수를 쳤다.
“아니, 근데 왜요? 동화가 뭐 했나?”
질문에 장해진이 웃었다.
“오늘따라 퇴폐적으로 보였는지, 시상식에 지독하게 얽혔다가 헤어졌을 것 같은 저 전남친 같은 애는 누구냐는 말이 엄청 많았거든. 거기다가 수상 소감도, 약간 화제가 됐고.”
장해진은 잠시 의자에 앉아 핸드폰으로 화면을 보여준다.
거기엔 지동화가 눈물 먹은 퇴폐적 얼굴로 화면을 보는 움짤, 수상 소감 부분 캡처본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대강의 과정은 단순했다. 1차적으로는 지동화의 병약한 비주얼이 묘하게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 후에는 지동화와 이현재의 처음과 마지막 부분 수상 소감이 화제가 됐다.
팬들을 가장 사랑하는데, 처음에 불러야 할지 마지막에 불러야 할지 헷갈린다고 하다가, 결국에는 처음과 끝에 모두 부르는 부분이 묘하게 설레고 울컥한다며 실시간 트렌드에 오른 것이다.
“…와, 그거 서문 누구 아이디어였지?”
“동화 형이요.”
소설가 경력을 날로 먹을 지동화가 아니었다는 게 이렇게 밝혀졌다.
“우리 할머니가 맞다니까. 동화가 은인이 맞아, 진짜.”
이렇게 또 채하민의 마음속에서 민간신앙에 대한 신뢰도가 상승했다.
직후, 지동화가 화장실에서 나왔다. 손을 닦고 나왔는지, 늘 가지고 다니는 손수건으로 손을 닦으면서.
그런 지동화의 은근히 우아한 모습을 멍하니 보던 멤버들은 모두 일제히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지동화가 다가오길 기다렸다.
“……뭡니까.”
손수건을 접어 안주머니에 집어넣다가 멈칫한 지동화가 경계심을 띤 눈빛으로 모두를 돌아봤다.
“자, 모두, 우리 은인에게 박수!”
류이든의 외침에 멤버들과 장해진, 그리고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있던 다른 스태프들까지 모두 한마음으로 박수를 쳤다.
그들의 목표는 하나, 바로 지동화에게 수치심을 주는 것.
자리에 앉으려던 지동화는 빠르게 상황을 확인했다.
장해진 팀장이 들고 있는 핸드폰과 묘하게 상기된 표정, 은인이라는 단어와 박수를 스캔했다. 즉, 자신이 또 자신도 모르는 사이 화제 비스무리한 것에 올랐다는 의미.
지동화는 미소 짓더니, 그대로 뒤돌아 다시 화장실로 걸어갔다.
태생적인 아웃사이더, 다수의 인간보다는 홀로가 편한 인간에게 과한 기대는 쌍욕보다도 부담스러울 수 있으니까.
“앞으로 동화 볼 때마다 은인이라고 얘기해 주면 익숙해지지 않을까?”
류이든이 미소 지으며 사악한 계획을 얘기하자, 뒤돌아 걷던 지동화가 다시 장해진 쪽으로 다가왔다.
“…저, 블로센스 탈퇴 가능합니까.”
모두가 그 농담에 파안대소를 터뜨렸지만, 지동화만 무표정으로 류이든에게 다가가 살짝 멱살을 잡으려다가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