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06)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106화(106/343)
106.
“음, 약간 무섭네요. 알아내시면 시공간이 많이 흐트러져서 말이죠. 물론 당신께서 사는 세상에 문제가 발생하진 않겠지만! 제가 최근에 시공간 균열과 세계 사이의 영향을 단절해 내는 법을 개발했거든요.”
기지생이 팔을 들어올려 눈물을 닦는 시늉을 한다. ㅠㅡㅠ라는 표정과 함께. 왜 내 주변엔 미친 생물들 천지인 건지.
그렇게 잠시 울던 기지생은 공중에 떠 있는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리더니 소리쳤다.
“괜찮습니다! 어차피 고생은 제가 하는 것! 빨리 빨리 단서를 드리도록 하죠.”
그 순간 공간이 변질되더니, 작은 방과 같은 형태가 됐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두 개의 의자가 마주 보고 있다.
“인간에게, 감정이란 대체 무엇일까요.”
변함없는 기계음의 목소리. 그러나 어쩐지 진지한 음색이었다.
모니터가 기묘하게 움직이더니 의자 위에 앉은 형태가 되었다.
“…가치의 기원.”
나도 의자에 앉으면서 답했다. 감정의 정의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그 기능만은 명확하다. 대상의 가치가 발생하게 되는 근원. 대상에 대한 감정은 대상의 가치를 결정 짓는다.
“그래서, 우선 첫 번째 단서. 안타깝게도 저는 감정을 잃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지생의 기계 손이 손을 두드리자 테이블 위에 차가 한 잔 놓였다. 예의상 한 모금 마신다.
세상에나, 데자와잖아.
“감정이 없다면 어떤 대상도 가치를 갖지 못합니다. 쓰레기나, 제 자신이나 비슷한 가치를 지닙니다. 정확히는 무가치합니다.”
기지생은 잔을 들어 올려 모니터에 부었다. 데자와는 당연하게도 모니터의 표면을 따라 그저 흘러내렸다. 미친 존재.
“저와 같은, 인간의 개념으로 절대자라 부를 만한 다른 늙은이들은 놀랍게도 저들끼리 소통함으로써, 감정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해 댑니다. 여담이지만 ‘놀랍게도’라는 건 제 감정이 아니라 이성적 추론으로 지금쯤 놀랄 만하다고 결론을 내린 겁니다.”
즉, 자신은 반사회적인 은둔형 외톨이라는 뜻이군. 좋은 정보다.
“어쨌든, 그 망할 존재들이 인간이었던 제게, 당신은 너무 많은 걸 알았다는 클리셰적인 멘트와 함께 이곳으로 끌고 왔습니다. 제가 40대였을 때 일이죠.”
기지생은 마침내 모든 데자와를 흘려보내고 ^—^라는 표정을 모니터에 올렸다.
“그리고 이후 저는 한 가지 실험에 몰두했습니다.”
모니터가 몇 개 더 떠오르더니 하나의 화면을 구성한다. 하나의 연표.
“아직 감정이 남았던 저는, 세상의 가능성을 탐구했습니다. 이젠 아시겠지만, 인간은 자신의 의지대로 행위하면서도 정해진 가능성을 따라갑니다. 그리고 실현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이 소진되면, 다시 반복됩니다.”
연표에는 무수히 많은 선이 묶이고 묶여 결과적으로는 하나의 선이 되었다. 그리고 이 연표가 동그랗게 말리더니, 최초의 선과 마지막 선이 연결됐다. 반복되는 시간.
“모든 건 정해진 셈이나 다름없고, 세상은 그저 그 정해진 길을 영원히 반복할 뿐입니다. 모든 가능성이 실현되면 다시 처음으로. 결국 니체는 옳았고, 그 양반은 제 옆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나는 정신을 집중한다. 많은 정보가 들어오는 중이었지만, 단 하나도 놓치지 않는다. 지적 호기심이란 이토록 유혹적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 수는 없는 일일까. 그것이 궁금했습니다. 저와 같은 외부자가, ‘툭’ 하고 치기만 한다면 많은 것이 바뀔 수도 있을 것이라고.”
기지생이 >_<를 화면에 띄운다.
“당시까지는 감정이 남아있던 저는 그 목표만을 정하고, 이뤄냈습니다. 즉, 당신에게 동생과 화해하는 가능성은 부재했지만, 제가 만들었습니다. 이게 세 번째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나로군.
“……질문 가능합니까.”
“안 됩니다. 마지막 힌트를 받고 빨리 잠에서 깨어나시죠. 이미 ‘단편적인’ 범주는 벗어났지 않습니까.”
그러나, 나는 이미 한 가지 추측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확신에 가까운 것에.
“……마지막 단서는 뭡니까.”
“음! 드디어!”
테이블 위 찻잔이 저절로 가로 미끄러지더니 중간에 나무판이 서서히 생겨나기 시작했다.
장기판.
“한 판 두시죠!”
나는 어이없는 미소를 흘리고 말았다. 이제는 숨길 생각이 없군.
나는 내 장기말을 확인하고 먼저 수를 올렸다. 곧바로 이어지는 기지생의 한 수. 하나의 수를 두는 데 걸리는 시간은 나와 기지생 모두 정확히 7초였다.
“7초는 모든 경우의 수를 검토하기 위한 최적의 시간입니다.”
물론, 3초면 파악 가능하지만, 검산 과정은 언제나 중요하니까.
기지생의 한 수. 이어지는 나의 한 수. 서로의 기물이 먹히지만, 절대로 사지로 뛰어들지는 않는다.
툭. 툭. 장기말을 들었다 놓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린다.
“장기는 경우의 수가,”
기지생의 말.
“꽤나 적은 축에 속합니다.”
그리고 그걸 이어받는 나의 말.
“만일 상대방과 나, 모두 이후의 경우의 수를 계산할 수 있다면 대국은 끝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보통은 제한 시간 내의 점수제로 합니다.”
“……하지만, 기지생. 점수도 같아질 대국을 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경우의 수 결과, 이대로 최적의 수만을 둔다는 가정 하에, ‘나’는 동일한 점수로 무승부가 나게 된다.
“한 가지 의미가 있긴 합니다.”
나는 대국을 이어나가며 이어질 말을 기다린다.
최종적으로 대국 위, 기물들을 어찌 움직여도 장군을 낼 수 없는 순간이 찾아왔을 때.
기지생은 모니터를 ^O^로 바꾸고는 한 마디만을 남긴다.
“반가웠습니다, 지동화 씨.”
“…저 역시 고마웠습니다, 기지생, 아니.”
나는 남은 데자와를 마저 마시며 답한다.
“지동화 씨.”
묵직하게 내려앉는 침묵. 공간에 작은 균열이 발생한다.
“망할, 야근 확정이군요.”
—_—라는 표정과 함께 목소리도 기계음이 아닌, 실제 기지생의 목소리로 돌아온다. 내가 조금 더 늙는다면, 저런 목소리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그럼 이만. 아마 또 뵐 일은 없을 것 같지만, 제게 감정을 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나는 아득해지는 정신을 느끼며 힘겹게 한 마디를 남겼다.
“…당신과 저는, 다른 존재입니까.”
“그게 하고 싶으셨던 질문입니까?”
기지생의 모니터가 지직거리더니, 서바이벌이 끝나고 보았던 나의 얼굴이 화면에 떠오른다.
“답을 드리자면, 같은 존재입니다. 이미 알고 계시지 않았습니까.”
미소 짓는 ‘나’는, 분명히 감정을 지니고 있었다.
“당신은 언젠가, 필연적으로 제가 될 테니까. 아니, 사실 이미 저는 당신인 것과 같으니까. 그러므로, 당신의 실시간적인 변화는 저에게도 반영됩니다. 그래서 가족과 친구라는 게, 그리 따스하다는 사실을, 다시 알게 되었습니다.”
공간이 서서히 부서져 간다.
“정리하자면, 모든 후회 끝에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을지 고심하다가, 결국엔 세상의 뒷면을 들여다본 저는.”
부서져 가는 공간 속에서 ‘지동화’의 얼굴은 더 환한 표정이 되었다.
“당신, 아니, 바로 저를 바꿔낼 수 있었습니다.”
‘지동화’의 얼굴이 서서히 어려지더니, 나와 같은 나이대로 변한다.
“저 역시 감사합니다. 인간의 의지로 정해진 가능성을 바꿔낸 저, 혹은.”
짧은 들숨.
“당신에게.”
이윽고 공간이 완전히 무너져내렸다.
* * *
나도 참 더럽게 미련하군.
잠에서 깨어난 순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후회할 거라면, 어째서 목화를 찾아가지 않고 시간을 되돌렸단 말인가.
망할, 속 시원하게 비판도 못 하겠다. 그 정도로 용기가 없는 인간이, 잘도.
나는 채하민이 깨지 않도록 조심스레 화장실로 들어가 거울 앞에 섰다.
상처 없는 얼굴. 내가 내 안에 들어 있는 시간선을 뒤틀어냈다는 증거.
21살의 나는 거울을 보다가, 너무 보기가 싫어 땅에 집어 던졌다. 그 거울의 파편이 내 얼굴에 새겼던 흔적은 허물을 벗은 뱀처럼 멀쩡해졌다.
…망할, 세계. 그때부터 내게는 비극만이 허용되어 있었군.
나는, 기지생이 ‘나’라는 걸 알아냈던 순간을 되새겨 본다.
기지생이 했던 시공간의 비밀을 알아내자 절대자에게 끌려갔다는 이야기.
그렇다면 어째서 나는 예전에 시공간의 비밀에 관해 약간이라도 알게 되었을 때 끌려가지 않았을까.
결론은 단순했다.
나는 이미 끌려가 있었으니까.
나는 상처가 새겨져 있던 자리를 조심스레 만져보고, 화장실에서 나가 커피를 한 잔 내렸다.
떠오르는 태양의 햇빛을 쐬며, 나는 생각했다.
‘…망할 기지생.’
나인 주제에 미친 짓거리를 아무렇지 않게 해대다니.
자신의 동업자를 협박했던 것, 회사의 규칙을 자기 멋대로 해석해서 일을 벌였던 짓, 모두 내가 한 일이었다.
띠링—!
[광기라니, 계획입니다! 애초에 그 늙은이들이 멋대로 저를 데려왔을 때부터 저는 엿 먹일 생각이었습니다! 더욱이 평생을 후회 속에서 홀로 연구만 하면……]그만. 나는 글을 중간에 읽다가 눈을 감았다.
더는 내가 그런 식으로 말하는 꼴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에.
[흑역사라는 단어는 부적절하고, 흑미래가 부끄러우십니까!]“제발 그만, 기지생.”
[동화, 라고 불러주셔도 귀엽게 봐 드릴 수 있습니다!]“제발, 그만. 나로 인한 수치는 더 이상 느끼고 싶지 않습니다, 기지생.”
끼익.
“기지생—이 누굽—니까, 동화— 형님?”
고개만 조심스레 빼꼼 내민 석준. 아직 잠이 덜 깼는지 눈을 비비고 있다.
“…그냥 미친 존재야.”
나는 그저 그 말만 하고 조용히 커피를 한 잔 마셨다. 내 얼굴에 침 뱉기라도 뱉어야 속이 시원할 것 같으니. 석준은 그에 고개를 한 번 갸웃하고는 다시 눈을 비비며 화장실로 쏙 들어갔다.
[참고로, 저는 방금까지 지구 기준 27만 년 정도 세계를 정지하고 가능성 안정화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제가 누군지 알아버리는 바람에 생긴 균열은 거의 다 막아냈습니다.]……음, 나라고 생각하니 이젠 미안한 마음이 덜 드는군.
‘고생 많았습니다. 이제 조용히 해주십시오.’
[그러지 않아도, 한동안은 또 뵙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당신도 나중에 카이로스라는 늙은이를 만나면 애증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뭐라는 겁니까, 미친 생명체.
* * *
그날 이후 , 다시 연말 무대 준비가 시작되었다. 이전처럼 바쁘게 돌아가는 일정. 그러나 달라진 것이 하나 있었다.
작업실에서 연말 무대를 위해 조금 더 위험한 분위기가 풍기게 ‘마지막 시작’을 편곡하고 있을 때였다.
“동화야, 나 왔어!”
채하민이 손에 책을 한 권 들고—놀라운 일이다.— 찾아와선 소파에 앉았다. 멤버들과의 약속, ‘무리하지 않기’를 지키기 위해, 작업 시간이 5시간을 넘어가면 멤버들이 데리러 와달라고 부탁했다. 핸드폰이나 시계 알람은, 헤드셋을 끼고 있다 보면 잘 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다. 달라진 것 하나, 나는 현재 스스로 작업 시간을 제약했다. 정신력만으로 육체의 나약함을 모두 이겨내기는 어려웠으니까.
나는 하던 작업만 마치고, 의자를 채하민 쪽으로 돌렸다. 손에 들린 책은…… ‘타로 상징 완전 정복’.
……이건, 또 무슨, 민간신앙이. 고대 연금술, 헤르메스학, 점성술, 거기에 기독교 색채까지 뒤섞인 혼종.
“……하민, 뭐 읽어.”
“아, 이거? 지난번에 말했지. 내가 배워 보려고 한 번 사봤어!”
대체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읽으랄 때 전부 마다했으면서 읽는다는 게.
“내가 나중에 너 점도 봐줄게, 동화야. 할머니만큼 신통해질 테니까.”
“……그래.”
너의 할머님만큼 용해지고 싶다면 사주를 배우는 게 합리적이지 않을까,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뭐라도 배우려 노력하는 토끼 놈은 처음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