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07)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107화(107/343)
107.
1월 1일 신년, 어제를 기점으로 마지막 연말 무대까지 마쳤기에 늦잠을 자 보았다. 무려 오전 11시. 집에 와서 밤새도록 책을 읽고 나서 맞이하는 늦은 아침은 묘한 정취가 있다.
나는 목화에게 핸드폰으로 새해가 된 기념 전화를 하려 핸드폰을 들었다가 무수히 쏟아지는 메시지 목록에 당황했다.
……뭐가 이렇게 많아.
살면서 처음 겪는 문자의 파도에 약간 정신이 아찔해졌다. 알림은 목화만 켜 두었기에 업무에 방해는 되지 않았지만, 일일이 확인하기에는 지나치게 귀찮으므로, 아래쪽에 있는 목화의 이름만 우선 눌렀다.
— 형! 생일 축하해! (목화가 생일 축하한다고 소리치며 비싸지 않은 폭죽 하나를 터뜨리는 영상. 김현진이 찍어준 듯 영상이 끝날 때 무렵 축하한다고 말해 준다.)
— 내가 직접 가서 축하해 주고 싶은데 오늘 밤까지 연습 일정이 있어 가지고 못 간다…. 너무 미안해 형 ㅠㅠ 형이랑 맞는 첫 생일이라 엄청 축하해 주고 싶었는데 내가 진짜 너무 억울하고 슬프고 형이랑 집에서 같이 놀려고 계획도 엄청 (후략)
아, 생일. 음, 그래, 생일이었군.
나는 목화가 보낸 장문의 문자를 한 글자 한 글자 읽으면서 그제야 1월 1일이 나의 생일이라는 사실을 직시한다.
1월 1일이 생일인 건 알고 있었으나, 지난 10년 동안 누군가에게 문자로 생일을 축하받은 경험은 거의 없는 관계로 터져 나가는 문자 목록과 날짜 사이의 관계를 추론하지는 못했다.
음, 조금은 신기한 기분이다.
인간이 태어난 날에 축하하는 풍습은 수많은 전제 조건 아래 성립한 풍습이다. 기독교의 확립 이전 서구에서는, 사람이 태어난 날에는 악령이 찾아온다고 믿었기에 그들을 쫓아내기 위해 초를 꽂아 밤에 불을 밝힌 뒤, 그 사람이 악령에게 잡혀가지 않도록 다른 사람들이 모여 시끌벅적하게 떠들었다고 한다. 이 밖에도 역법이 있는 문화권은 다들 저마다의 이유로, 생일을 축하하거나, 혹은 생일을 부정적으로 이해했다.
…같이 역사적인 사실만 알고 있을 뿐, 어렸을 때를 제외하고는 누군가에게 생일을 축하받은 기억이 너무나 오랫동안 없었으니까.
나는 우선 일어나 창밖을 잠시 내려다본다. 눈이 내려 하얗게 물든 세상. 내 탄생화인 스노드롭은 이런 눈 속에서 태어나기에 희망이라는 꽃말을 얻었다고 한다. 곧 봄이 찾아온다는 증거로서.
그 말처럼 나는 누군가의 희망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 최소한 목화에게는 절망 속에서도 기댈 수 있는, 희망이 되어줄 수 있어야 할 텐데.
그런 의미 없는 생각이 많아지는 감상적인 풍경에, 나는 정신을 깨울 겸 부엌으로 나섰다.
생각해 보면, 현대 사회의 생일 축하 풍습은 이상한 측면이 있다. 모든 인간의 삶은 죽음으로의 여정이므로, 죽어간다는 것과 의미가 같다. 생일은 그 여정에 세워진 이정표이자, 죽음까지는 아직 다다르지 않았다는 근거다. 그러므로 생일 파티는 단순히 ‘태어남’을 축하하는 자리가 아니라, ‘죽지 않음’을 안도하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사랑하는 이들끼리 모여, 서로 여전히 살아 있음에 감사함을 느끼는.
……음, 이 생각도 조금 낡았군. 어렸을 때 목화 생일을 챙기며 해온 생각이라 그런지 논리가 부족한 것 같다. 나중에 손을 보든 해야겠어.
‘커피 한 잔만 내려야겠군.’
오늘 좀 늦잠을 잤다지만 집이 텅 비어있군. 평소라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채하민이 와서는 ‘이상한 생각 했지!’라고 얘기하며 사고를 중간에 끊었을 텐데.
아무래도 이상하군. 채하민이 아직 11시밖에 안 된 휴일에 침대 밖에 나가 있다니.
혹시, 장해진 팀장님의 호출이라도 있었는데 내가 자느라 못 간 건가.
여러 가지 가설을 세우며, 어째서 모두 동시에 사라졌을지를 추측하다가, 그저 모든 것이 귀찮아져서 접어 뒀다. 지금은, 이 조용한 공간의 나른한 분위기 속에서 책이나 읽고 싶군.
이번에 고른 책은…… 띠링—!
[공지가 하나 있겠습니다!]‘뭡니까, 기지생. 그쪽은 책도 없습니까.’
감히 이 평화를 깨부수다니. 나랑 같은 감성을 어느 정도는 공유하고 있을 텐데.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사이렌 소리가 울리면서 귓가를 괴롭힌다. 뭐 하는 짓입니까, 기지생. 나는 타인의 독서 시간을 괴롭히는 취미를 가질 정도로 돼먹지 못한 인간은 아닌데 말이야.
[퀘스트! ‘하드 모드 진입! 살아있는 한 점점 더 강해지리니!’ 발생당신은 첫 번째 메인 퀘스트를 마치고 개변된 가능성을 세계에 안착시켰습니다! (사실 제가 94.53% 정도 작업하긴 했습니다!) 그 결과 하드 모드의 개방 조건을 충족하여 다음과 같은 제약이 부과됩니다!
제약 : 속칭 ‘기지생’과의 대화 금지. (예외 : 제가 심심하면 말 걸 수도 있답니다!)
이 제약은 당신이 저의 정체를 알게 된 관계로 형성된 시공간 균열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또한 당신이 가능성을 개변해 주신 덕분에 지금부터 미리 정해진 것은 많지 않으니 도움을 드리기도 어렵습니다.
안타깝게도 저는 세월의 흐름에 본래의 성격을 상당 부분 잃었지만, 부디 당신은 지켜나가길!]
무슨, 이런, 대체, 당신은 왜 이렇게 경박해진 겁니까. 말투부터 능글맞기 짝이 없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러면, 이것으로 당신과의 마지막 대화입니까.”
[그렇습니다!]“예외 조항은, 언제쯤 심심해질 예정입니까.”
……솔직히 말하면, 당신과 나눈 실없는 대화에 위로받을 때가 있으니까.
[지동화, 정신 차려! 나한테 반하면 안 돼!]진지하게 말하는데 받아주는 꼴하고는, 부디 나는 저렇게 자라지 않기를 기원하며 입을 열었다.
“…어서 꺼져주십시오.”
한숨을 푹 내쉬며 말하자, 곧바로 알림이 오기에 확인해 보았다.
[저런! 다른 사람이!]……망할.
“어, 그 동화야, 그, 미, 미안, 깜짝 파티, 파티라서.”
어디선지 모르게 살금살금 걸어들어오던 채하민이 얼어붙은 채 나를 바라본다. 손에 큰 고구마 케이크를 들고서는. 음, 근데 깜짝 파티라기엔 네가 가장 놀란 것 같은데, 하민.
“…하민.”
젠장, 집에 아무도 없다고 편하게 목소리를 낸 게 이런 패착으로 이어질 줄이야. 나른한 기운에 몸을 맡긴 대가가 상당히 컸다. 지동화, 생각해라. 이 상황에서 가장 쉬운 해결책은?
띠링—!
[시간 정지라도 해드릴까요?]닥치십시오, 기지생. 당신 때문에 이 사단이 난 것 아닙니까.
“어서 촛불 끄게, 이리 줘, 하민.”
나는 입꼬리를 한껏 끌어올려, 멤버들에게도 몇 번 보여준 적 없는 활짝 핀 미소로 채하민을 바라보며 답한다. 그래, 이게 최선이군.
그러자 채하민 뒤쪽에서–숨소리가 류이든으로 추정되는데– ‘헉!’ 하고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들렸다. 뭐 하는 거야, 이놈들.
채하민이 그제야 정신을 차렸는지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보다가 평소의 해맑은 모습으로 돌아간다.
“어우, 얘들아, 어떡하지, 동화가 급발진하는 바람에 노래 부를 타이밍을 놓쳤는데.”
류이든이 빠르게 분위기 파악하고는 앞으로 걸어 나온다. ……그나저나 어울리지도 않게 웬 안경이람.
“형—님, 다시 모—른 척— 좀 하고 있어—주십시오.”
석준의 헛소리에 곳곳에서 조금씩의 웃음이 들려온다. 내가 모른 척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 단련되어 있으므로, 곧바로 고개를 아래로 내려 책에 시선을 집중한다.
그러자 후다닥 어딘가로 급히 움직이는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생일 축하 노래가 거실에 퍼져나갔다.
나는 놀란 척하려고 했지만, 순간 너무 우스워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모든 멤버들의 생일을 직접 챙겨줬는데도 불구하고, 왜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지는 못했을까. 지금 상황이 웃기고, 와중에 아침에 기본적인 추론조차 못한 멍청함이 우스웠다. 역시, 머리가 똑똑하지는 못한 놈이다.
“형, 집중해야죠!”
맑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다가 잠시 쉬는 틈에 이현재가 소리친다. 나는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와 앞의 것들이 노래를 부르는 것에 집중한다.
그러면서도 다들 얼굴에 웃음을 띤 채 나를 바라본다. 대체… 저 웃음은, 어떻게 가능할까. 우리가 만난 지는 고작 1년도 되지 않고, 나라는 인간은 그저 최선을 다한 인간이었을 뿐인데, 어떻게 저리 호감이 담긴 눈으로 나를 바라볼 수 있을까.
“동화야, 빨리 불어! 촛농!”
“형—님! 소—원, 소원 비셔야 합니다!”
미신이 판을 치는 사회군. 참 마음이 아픈 이야기다.
그럼에도 나는 약간 미소 지으며 눈을 감는다. 소원이라는 단어는, 더럽게 낯설다. 예전 감사제 때도 한 번 생각한 적이 있지만, 무언가를 바란다는 건 정말…….
그러므로, 나의 비관이 허락하는 한도만큼만 빌어보도록 하자.
‘내년에도, 1월 1일에 이들에게 축하를 받을 수 있기를.’
이 정도라면 괜찮지 않을까.
* * *
케이크를 먹었다. 아쉽게도 멤버들이 좋아하는 초콜릿 케이크 같은 지나치게 단맛이 나는 케이크를 나는 달리 좋아하지 않는다. 참고 먹을 수야 있지만, 채하민의 버섯과 비슷한 것이다.
“어우, 우리 동화 잘 먹는 거 봐, 내가 다 배부르네.”
애아빠 같은 헛소리를 중얼거리는 류이든을 무시하고 평소에 먹는 것보단 많이 먹었다. 욕심의 증거 같아서 부끄럽지만, 이때 아니면 또 언제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을까.
“그래서 동화 형—님, 소원 뭐 비—셨습니까.”
석준의 질문에 나는 입을 열지 않았다. 감사제 때도 과속 공룡과 토끼에 치여 의자에 밀려 떨어진 적이 있으니.
“어, 동화 부끄러워한다.”
“귀도 안 붉어졌는데 하민 형은 어떻게 알아요?”
“내가 또 동화 판독기잖아, 현재야. 거의 표정 분석기거든.”
“역시 룸메 경력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니까?”
나는 케이크의 마지막 조각을 모두 입에 넣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동화 형, 엄청 우아하구 그러네요.”
조용, 현재. 아까 전에 받았던 정서적인 고취감을 너희들 손으로 직접 파괴해 주는 게 그리 달갑지는 않단 말이다.
“…고마워.”
그리고 다시 침묵의 수렁에 빠져든다.
“아니, 그, 어, 고마워하면 안 되는데, 아직.”
채하민이 멋쩍게 웃는다. ‘아직’?
“하민 형님, 아직 말하면!”
류이든이 빠르게 석준에게 어깨동무를 한다.
그리고 나는 그 모든 걸 바라보며, 조용히 상황을 추측한다. ‘아직’ 고마워하면 안 되고, ‘아직’ 말할 수 없는 일. 생일이라는 날의 특수성과 그 생일에 행해지는 선물이라는 관습적 행사의 존재. 모든 것을 고려할 때, 추측할 수 있는 건,
‘……나, 오늘 작업실 가면 안 되는 건가.’
몇 주 전, 작업실에 헤드셋이 음향 관련해서 문제가 생긴 적이 있다. 제작사에 문의해 보니 A/S가 안 된다기에 회사에 널린 저가 헤드셋을 하나 설치해서 듣고 있는 중이고. 사비로 구매하려 하니. 장해진 팀장이 와서, 구매는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하기에 회사에서 해주려니 했는데.
“…그, 그래도 지금 감사할 일은 있죠!”
이현재가 내 눈치를 보더니 이미 다 들켰다고 생각했는지 빠르게 화제를 전환한다.
“그렇지, 그렇지! 동화, 너한테 선물로 시계를 하나 준비했지!”
류이든도 내 표정을 보곤 눈치챘는지 빠르게 시선을 돌리려 한다. 그래, 이 정도 모르는 척이야 일도 아니지. 목화를 통해 충분히 단련되어 있다.
“우리끼리 돈 모아서 산 거라 비싼 건 아니지만….”
멋쩍게 웃으며 시계를 건네는 류이든. 나는 곧바로 받아 팔목에 찬다.
시간은 1시 1분. 기묘한 우연이다.
* * *
시끌벅적했던 생일이 지나고 작업실에 다시 틀어박힌 나는, 멤버들이 준 시계를 차고, 멤버들이 준 헤드셋으로 음악을 듣고 있다.
하드 모드라는 건 진짜인지 가끔 실없이 대화를 걸던 기지생의 알림창은 잠잠하다. 나 역시, 먼 시간이 흘러 기지생의 자리에 들어서겠지. 그때 이 세상의 가능성은 얼마나 변해 있을까.
조금은 두려워지는 기분이다.
하지만, 지금 현재만으로도 살아갈 가치는 충분하다. 정해지지 않은 미래를 스스로 개척한다는, 당연한 상식이 이제야 당연해졌으니, 라이프니츠를 엿 먹일 방법부터 궁리해 봐야겠다.
그리고 그렇게 현재에 집중해서 살아가겠다고 다짐하는 순간, 작업실의 문이 열리며 류이든이 들어온다.
“동화 형, 우리 다음 주에 양궁장 간대.”
……양궁? 동물권의 형성으로 인해 사냥을 대체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