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09)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109화(109/343)
109.
우리들만의 토론장으로도 활용되는 내 작업실. 멤버들은 최근 근육통을 호소하는 일이 늘었다.
물론 나는 예상 문제집만 받아들었을 뿐이고, 두통은커녕 아무 문제도 없었다.
고장 100문제 정답 외우기가 어려울 리가. 이래서는 퀴즈 대회라는 게 가능이나 할지 모르겠다. 다들 너무 쉽게 맞히면 그건 퀴즈 대회가 아니라 스피드 퀴즈일 텐데.
“아, 저 요즘 다리에 알 배기는 것 같구, 그래요. 달리기 연습도 은근히…….”
“나도, 씨름 은근 힘들더라.”
특히 양궁에 선출된 류이든과 채하민이 두 종목을 준비하는 덕분에 반쯤 죽어 나가는 중이다.
“아, 근데 예언이 형한테 들어보니까, 팬분들 고생 많이 하실 거래.”
나는 이미 전부 외운 종이를 다시 확인하고 있다가 흠칫했다.
저건 또 무슨 소리인가 싶어서.
“그 대회 들어가면 팬분들 밥도 굶고 한다더라!”
……그건 또 무슨.
“촬영 시간 동안 감금당해서 밥 먹으러 못 나간데.”
…세상에나, 망할 방송사 놈들이 또. 왜 남의 집 귀한 애들을 굶긴단 말인가.
심지어 감금이라는 단어를 쓸 정도면 얼마나 비인도적인 환경에서 팬분들이 계시는지 감도 오지 않는다. 거주 이전의 자유는 헌법에서도 보장하는 것인데, 고작 촬영 좀 하겠다고 감히.
내 표정이 무서웠는지 이현재가 흠칫해선 내 어깨에 조심스레 손을 올렸다. 화 좀 풀라는 건가.
“그래서 우리 소속사에서 점심 지원해준다고는 하는데,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실 텐데 괜찮을까 몰라.”
그렇게 류이든이 말을 마친 순간, 나와 채하민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한 끼 내가 살게.”
“내가 돌릴게!”
그리고 눈이 마주친다.
“…내가 낼게. 저작권비 받은 거 있어.”
“에이, 동화야. 나는 용돈에서 쓰는 건데?”
맙소사, 도련님은 달라도 다르군. 다른 멤버들도 그 말에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생각해 보면 아직 첫 정산이 진행되지도 않았는데, 저작권비가 아니면 돈을 가외로 벌어들인 것이 없으니 용돈 말고는 답이 없긴 하다.
“……내가 내는 게 낫지 않을까.”
“이럴 때라도 우리 팀에 기여하고 싶은 거지! 동화, 너가 작곡하느라 고생하는 걸 두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 그렇게 번 돈을 쓰는 걸 어떻게 봐.”
그렇게 서로 돈을 내겠다는 논쟁이 짧게 벌어졌다. 예상보다 채하민이 강력하게, 네가 고생해서 번 돈은 아껴 보자고 주장했다.
보다 못 한 류이든의 중재.
“그만, 얘들아.”
석준은 그저 하품하고 있고, 이현재는 질린다는 표정이다.
“예전에, 리더 정할 때도 이런 일이 있었던 것 같아요…….”
멤버들을 사이에 두고 누가 리더를 해야하는지에 관해 나와 류이든이 창과 방패 같은 공방을 펼쳤던 날.
“근데 그냥 둘이 반반 내면 되지 않아?”
“으음, 그래도 동화가 고생해서 번 돈인데…….”
아주 난리군. 고생해서 번 돈으로 목화나 멤버들 선물이랑 내가 읽을 책 사는 것 말고는 쓸데도 없는데 말이지.
“하민, 그러면 내가 애피타이저랑 디저트, 네가 메인 디시.”
나는 채하민을 바라본다.
“그렇게 하면 어떄.”
전채랑 디저트 정도면 사게 해주지 않을까.
* * *
아이돌 체육 대회 촬영일.
블로센스에게 배정된 팬석에 루미너스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망할 돌림픽이라고 욕을 하면서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이중심리였다.
딱딱한 의자. 개 같은 추위. 통제되는 거동. 이 모든 것에 대비하기 위해 담요나 방석 등 여러 물품을 바리바리 싸들고 왔다. 이 망할 체육대회는 팬들을 감금하면서도 물 한 잔, 식사 한 끼조차 제공해 주지 않는다.
보이콧을 하자는 말은 끝없이 나오지만, 언제나 흐지부지되고 만다. 어떤 이에겐 이러한 고통 정도야 감수하는 게 합리적일 수도 있기도 하고.
그리고 시작된 본격적인 촬영. 입장식부터 준비 운동까지 쓸데없이 길고 길었지만.
“애들 체육복 자태 좀 보세요.”
별안간 울려 퍼지는 흐느낌은 전염이라도 되듯 루미너스들의 심금을 울린다. 이현재부터 류이든까지 모두들 체육복을 입고 있는 게, 체대생 그 자체라서. 특히 류이든이 그랬다. 그 피지컬에 체육복은 사기적인 조합이었으니까. 또한 채하민이나 석준 역시 피지컬이 뒷받침되었기에 훌륭했고, 반면 이현재와 지동화는 피지컬은 부족할지언정, 그래서 더욱 상상을 부추기는 감이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한 루미너스는 중얼거렸다.
“저런 선배나 후배가 있을 리가 없잖아.”
어느 대학생의 중얼거림은 피식하는 웃음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아침부터 대기하느라 밥을 먹지 못한 팬들은 야금야금 챙겨온 간식을 먹으려 꺼내고 있을 때.
블로센스가 팬석으로 올라왔다. 무거운 상자를 들고서.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자기 돌을 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기에, 숨을 들이키고 꾹 참는다.
“여러분! 밥 못 드셨죠!”
올 것이 왔다. 역조공 시간.
“네!”
라는 거대한 대답 속에 블로센스 멤버들이 첫 번째 상자를 꺼내며 말한다.
“우선 애피타이저 먼저 드릴게요!”
그리고 잠시 어색한 침묵.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는 표정과 무슨 의미인지 이해해서 도리어 더 의아한 표정이 뒤섞인다.
“제가 직접 고른, 훈제 연어 샐러드와 햄을 올린 카나페입니다. 입맛을 돋우기에 적합한 것으로 직접 골랐습니다.”
지동화의 이어지는 설명. 카나페의 경우 멤버들이 직접 만든 것이니 큰 기대는 하지 말아 달라는 첨언까지 덧붙는다.
한 팬이 조용히 물어봤다.
“……그니까 지금 우리 코스 요리 먹는 거야, 동화야?”
“네, 그렇습니다.”
미소 지으며 답하는 지동화. 옆에서 이현재도 입을 연다.
“카나페, 동화 형 레시피 따라서 멤버들이 오늘 4시쯤 일어나서 만들었어요.”
이후 하나씩 배부되는 애피타이저용 도시락.
샐러드와 카나페 두 조각을 손에 받아든 팬들은 조용히 할 말을 잃었다.
“……니체가 이렇게 돈이 많았었나?”
“나름 많은 편이긴 해도 이렇게까지 많았나?”
물론 지동화 사비지만, 아직은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짧은 식사. 샐러드와 카나페를 먹는 건 순식간이었다. 물론 카나페의 경우 직접 만든 거라 먹기 아깝다는 말이 많았지만.
“자, 여러분, 이제 메인 디시 드셔야죠!”
채하민이 자랑스럽게 소리치며 박스를 꺼냈다.
한 팩씩 돌아가는 나름대로 큼직한 도시락. 도시락 위에는 편지가 한 통씩 같이 전해졌다.
편지를 받고 소중히 품에 넣은 뒤, 편지가 사라지자 드러난 뚜껑 윗부분. 한 팬은 거기에 그려진 로고를 보고, 놀라는 소리를 냈다.
“이거, 동화 추천 비너슈니첼 집 아니에요? 여기 포장이 아마 안 될 텐데.”
진성 지동화 프사였던 그녀는 아주 당연히 지동화 픽 비너슈니첼도 먹어본 경험이 있었다. 물론, 포장을 해온 것은 지동화가 직접 통화로 정중하게 부탁해 허락받은 일이었지만, 아직은 몰랐다.
“비너슈니첼 드시는 법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루미너스 님들.”
지동화가 예의 바른 목소리로 레몬이나 잼 등을 어떻게 활용해서 먹어야 하는지를 차근차근 설명해 나간다.
“맛있게 드세요, 여러분! 같이 드실 음료는 맥주를 준비하기는 좀 그래서 사과 주스로 정했어요!”
해맑게 웃는 웃음에 정화되면서, 다시 또 다른 상자가 꺼내진다.
“그리고, 이건— 다— 드신 후에 드실 디—저트입니다—”
한 조각씩 포장된 케이크. 지동화가 단 걸 자주 먹는 목화에게 물어서 알아낸 맛집이다.
이쯤 되자 모든 걸 받아든 루미너스들이 자신이 온 곳이 덕질하러 온 곳인지 아니면 밥을 먹으러 온 곳인지 헷갈렸다.
그리고 블로센스와 짧은 대화를 나누며 밥을 먹다가, 한 루미너스가 비너슈니첼을 썰면서 중얼거렸다.
“이게 현실이…… 맞나 모르겠네. 개쩐다, 진짜.”
와그작, 한 입 베어 문 튀김은 갓 튀긴 것같이 느껴질 정도였다.
“이거 멘션 올리면 인기 좀 끌겠다, 그죠?”
“……하, 근데 또 신인이 이 급이니, 니체가 이 정도 급이었니, 지원이 말이 되니, 소리 나올 거 생각하면 걱정되기도 하고요.”
그러나 그런 고민은 뒤로 미뤄도 괜찮다 싶을 정도로 음식은 맛있었다.
* * *
식사 시간이 끝나고 나는 우리 팀이 있는 쪽으로 내려가 예언 씨 옆에 양반다리로 앉았다.
“와, 작곡가님, 점심 엄청 빵빵하던데요. 멤버들 사비라면서요?”
“…맞습니다. 선배님.”
“사실 우리야 데뷔한 지 좀 돼서 돈 모아서 회사 지원 말고 추가로 사긴 했는데.”
“놀랍게도 저희 팀원 중에 돈을 벌지 않아도 상속만으로 이후 생계가 보장된 친구가 있습니다.”
예언은 고개를 끄덕인다.
“하민 씨는 확실히 귀티가 나죠.”
나는 딱히 할 말이 없어서 가만히 있었다.
“…음, 근데 동화 씨는 혹시 작곡가 일은 계속하실 건가요?”
“아마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물론, 우리 팀을 위한 곡과 목화를 위한 곡이 일 순위겠지만.
“와, 아직 라이징 시기를 제대로 안 겪어 보셔서 그런가, 엄청 바빠지실 텐데. 물론 저는 남는 곡도 괜찮지만!”
틈새를 노려 곡 달라고 부탁하는 예언. 뭐라 답할지 애매한 소리다.
“그건 형 말이 맞지.”
류이든이 예언과 대화하고 있는 내 옆에 와서 앉으며 답한다.
“작곡할 시간도 많지 않을 정도로 바쁘긴 할걸, 동화. 우리 곡 만드는 것만도 엄청 빠듯하긴 할 거야. 나도 들은 거긴 하지만.”
“그거야 내가 밤을 새우면 해결될 문제,”
라고 말하고 있을 때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 달려오는 소리.
“동화야!”
채하민이 내 어깨를 뒤에서 부여잡더니 흔들어댄다.
“또! 또! 아주 몸 생각은 하나도 안 하고! 작업을 하지 말라는 건 아닌데, 제발! 동화야!”
나는 익숙한 일이었기에 그저 채하민이 흔드는 것에 몸을 맡겼다. 진자 운동을 하는 쇠구슬처럼.
“…하, 민 나, 지금, 대화, 중인, 데.”
그걸 본 예언이 맑게 웃는다.
“거의 종이인형이네요, 작곡가님. 비율이나 골격만 보면 튼튼할 거 같은데.”
원래 모든 것은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 그렇습니다.
“그나저나, 블로센스는 달리기가 첫 경기죠?”
“맞습니다. 현재가 지금 몸 푸는 중입니다.”
“현재면… 1등 할 수도 있겠네.”
음, 잘 모르겠다. 인간의 육체만 보고 운동 능력을 가늠하는 재주는 없어서.
그렇게 채하민에게 흔들리는 시간이 지나고, 이현재의 100m 달리기 시간이 찾아왔다.
“근데 현재는 달리기 잘해, 이든 형?”
채하민의 질문에 류이든이 고개를 끄덕였다.
“쟤도 동화 다음가는 사기 캐릭터라서…….”
출발선에서 몸을 풀다가 곧 준비 신호가 퍼진다. 스타팅 자세를 잡는 이현재.
셋, 둘, 하나.
찔러 오는 출발 신호에 맞춰 이현재가 출발,
……음, 어디 갔지. 분명히 아까 전까지만 해도 저기 있었는데 말이지. 잠시 눈을 감고 있던 사이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곳곳에서 ‘와, 쟤 뭐야’라는 감탄이 터지고 그 속에서 이현재가 선두로 멀찍이 달려갔다.
“……쟤, 육상 했어?”
내가 어이없어하자, 류이든이 웃음을 짧게 터뜨린다.
“우리 팀에서 황금 밸런스 꼽으면 현재 아닐까.”
…음, 이러면 내가 너무 날로 먹는 거 아닌가 싶긴 한데.
꽤나 짧은 시간 만에 결승선을 1등으로 통과하며 본선으로 진출한 이현재. 우리는 그쪽으로 달려갔다.
“우리 현재!”
그애 맞춰 달려오는 이현재, 얼추 가까이 다가왔을 때는 점프해서 안기려 달려들었…… 잠깐, 현재. 그 방향은 내 쪽인데.
예언이 인정한 공식 종이 인형에게 너무 가혹한 처사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자연스레 뒤쪽으로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