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1)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11화(11/343)
11.
무대 다음 날, 나는 함께 팀으로 선발된 이들과 함께 연습실을 찾았다.
확정된 팀원은 나, 이현재, 류이든, 박우진, 그리고 예전의 그 싸가지없던 어린 자식 이인방 중 한 명인 김현진이다.
물론 김현진은 옆에서 지켜보기만 했지만, 첫인상은 이미 망한 거나 다름없다.
나랑 사이 데면데면한 애 두 명,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애 한 명, 그리고 기계덩어리 한 개라니.
이런 걸 드림 팀이라 부르던가. 악몽도 분명히 ‘드림’이니까.
그래도 일단 류이든이 있으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뭐가 되긴 될 거다. 류이든이 연습생 중에서 22살로 가장 나이가 많아 나와 채하민이 오기 전에 분위기를 휘어잡는 역할을 했다고 하니.
우리 팀은 첫 번째 회의를 위해 연습실에 들어섰다. 그때 이현재가 나한테 들어가기 전에 잠시 대화를 하자고 나를 잡아끌었다.
‘아, 사회성 수치가 모자랄 것 같군.’
그런데 이현재가 기껏 나를 데려와 놓곤 아무 말도 하질 않는다.
“…왜?”
“…형,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왜 저 뽑으신 거예요?”
‘네가 그나마 조용해 보여서.’
하, 진짜 그냥 뱉어버릴까 고민되는데.
“…말했잖아.”
“노래 실력 때문이라는 거 진짜였어요?”
너도 그때 감동한 표정 지었을 텐데. 거짓이라고 생각하는 말에 감동하는 타입이야?
“…어.”
“…그게, 저, 좀 자신이 없어서.”
“자신?”
“저 지난번 무대 위에서… 너무 떨어서 거의 노래 못 했거든요. 아마, 그, 이번에도…….”
흠, 그래서 10등을 한 거군. 그러니까 지나치게 떨리는 바람에 내 기대를 충족해 줄 자신이 없다는 걸 공지하러 부른 건가.
대체 어쩌라는 건지 진정으로 모르겠다. 기대한 것도 내가 멋대로 한 건데 그게 무슨 천인공노할 짓이라도 된다는 듯이 반응하면 어쩐단 말인가.
귀찮아서 무시하고 싶은데 그랬다간 더 기가 죽을 것 같고, 그랬다간 경연에서 질 테고, 그랬다간 내가 퀘스트를 완수하지 못해 이 개같은 상황에 빠진 이유조차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객관적인 사실만 알려주도록 하자.
“그러니까 내 기대에 못 미칠까 걱정된다는 건가?”
“…네.”
“…남의 기대를 충족하는 게 네 의무는 아니지.”
“…네?”
“기대는 남이 멋대로 한 건데, 부담을 느낄 바에야 그냥 신경 끄고 제 할 일 하는 게 낫다고.”
“…그게, 마음대로, 잘, 안 돼요.”
사이사이 끊어 말하는 이현재는 무언가 생각하기 싫은 것을 떠올린 모양새로 기죽은 듯 중얼거렸다.
흠, 부모나 주변 지인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했다가 상처 입은 경험이 있나 보군. 만약 그렇다면 스트레스가 심각해 보이는데도 벗어나지 못하는 걸 보니 높은 확률로 부모나 가족이다.
하여튼 심리 공부를 책으로 해서 자격증도 없는 내가 괜히 도움이랍시고 뭐라 말했다간 부작용이 있을지 모르니 내 삶의 신조나 대강 알려주자.
“음, 네 세상이 존재하기 위해선 네가 우선으로 필요해.”
이 당연한 걸 몰라서 말로 하는 것도 우습긴 하지만.
“…네?”
“무언가 맛있다는 것도, 내가 여기 존재한다는 것도 네가 확인하기 전까진 확신할 수 없는 것처럼, 네가 바라보는 세상이 존재하기 위해선 네가 우선 필요하다고.”
이현재는 이렇게까지 말해줬는데도 알아듣지 못했다는 표정이다. 꼭 직설적으로 말해야 알아듣는군.
“네가 사는 세상에서 단 하나 중요한 걸 골라야 한다면 그건 너지, 다른 사람의 기대 같은 게 아니야. 남을 아예 신경 쓰지 않을 순 없겠지. 다만 우선순위는 너한테 둬야 해.”
그제야 이현재는 이해가 됐는지 고개를 작게 끄덕인다.
3일 치 사회성을 끌어다 이현재가 기죽지 않게 노력했으니 부디 정신 차리고 자신감 좀 되찾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야 내가 왜 이 갑작스러운 현상을 겪었는지 그 진실에 한발 더 다가갈 것 아닌가.
그러고 내가 고개를 돌리자, 거기엔 카메라와 함께 류이든이 서있었다.
‘조졌군.’
류이든의 성격상.
“동화, 너무 멋있다.”
무조건.
“한국대 철학과 갈 머리, 뛰어난 작곡 실력, 심지어 따스한 마음까지.”
놀릴 텐데. 아니, 뭔 따스한 마음이야. 퀘스트를 깨고 싶은 추악한 욕망이지.
“확실히 신이 실수한 게 맞다니까.”
나는 조용히 중얼거린다.
“…대체 왜 거기에.”
“하도 안 들어오길래 뭐 하나 궁금해서 와봤는데, 이런 명장면을 놓칠 뻔했네.”
* * *
일단 회의 자체는 스무스하게 시작했다. 2차 경연은 커버곡 대결. 곡은 제비뽑기로 랜덤하게 정한다고 하니 시작부터 의견 차가 발생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류이든이 나름대로 진행 비스무리한 것도 매끄럽게 해줬고.
“그럼 이제 어떤 곡을 커버할지 뽑아볼까요?”
그 말을 하고 류이든은 제비뽑기 통을 들곤 나를 쳐다본다.
“우리 마음씨 고운 겨울 꽃 씨께서 우리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뽑아주세요!”
“…류이든 씨, 밤길이 두려워지지 않습니까.”
류이든의 멍청한 말에 내가 고상하게 답해주는 우문현답의 실사판에 이현재는 약간 고개를 숙이고 웃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 처한 게 따지고 보면 너 때문인데 돕진 못할망정, 웃어? 아니, 그리고 분명 우리 데면데면한 사이 아니었습니까? 왜 갑자기 친밀감을 느끼십니까?
하, 됐다. 그냥 뽑자.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아무거나 한 장 뽑아 펼쳤다. 우선 카메라에 보여야 한다길래 내 쪽에서는 보이지 않게 펼쳐 들었는데, 반대편 반응이 미적지근했다.
“와, 이거 어떡하지?”
류이든이 고개를 약간 오른편으로 까딱였다.
“대체 어떤 곡이길래 반응이 이렇습니까?”
나는 종이를 내 쪽으로 돌려 보았다.
‘레미니아 ―지니(GENIE)’
아, 모르는 걸 보니 여자 아이돌 곡이군. 여자 아이돌에 대해선 시간이 없어서 미처 공부하지 못했거든. 하지만 반응을 보니 다 아는 분위기길래 일단 맞춰주기로 했다.
“음, 걸그룹 선배님들 곡이라 어려울 것 같긴 합니다.”
“걸그룹 곡이라, 다른 곡은 뭐가 있었는지 한번 보자.”
그 말에 우리는 하나하나 펼쳐서 곡들을 확인해 봤는데 모두 걸그룹(으로 추정되는) 분들의 곡밖에 없었다.
“…사실 커버곡 경연 앞에 ‘걸그룹’이 생략된 거였나 봅니다.”
“갑자기 난이도가 확 올라간 기분인데, 일단 무대 영상 한번 보고 컨셉 같은 거 어떻게 할지 생각해 보자.”
* * *
무대를 보고 나서도 한동안 침묵이 맴돌았다. 왜 이러는 건지는 잘 이해가 안 가지만 분위기는 맞춰주는 게 낫겠다. 이 침묵을 깬 건 예상외로 류이든이 아니라 이현재였다.
“…어떻게 해야 멋진 무대를 꾸밀 수 있을지 감이 안 와요.”
“그렇지? 일단 이 컨셉 그대로 하면 어울리기는커녕 곡 분위기도 제대로 못 살릴 것 같아.”
음, 그건 맞는 말이다. 이 곡의 내용은 오늘은 내가 당신의 지니가 되어줄 테니 힘겨움을 털어내고 내 곁에 와서 푹 쉬라는 내용이다.
가사는 상관이 없는데 곡 특유의 발랄하고 화사한 분위기라서 그대로 하는 건 무리가 있긴 하다.
필연적으로 몇 키를 내려야 남자 음역대에 맞출 수 있는데 그랬다간 곡의 분위기 역시 절반 정도는 깎여 나갈 테니 엉성해 보일 거고.
애초에 남자 키로 만들어지지 않은 발랄한 노래를 남자 키로 바꾼다는 것 자체가 무리니.
‘…편곡 지식이 이렇게 도움이 되는군.’
“그럼 가사를 수정할까요? 하루만 나의 지니가 되어달라는 식으로 저돌적인 연인 분위기로.”
김현진이 아무렇지도 않게 대공사를 언급했다. 작곡 가능한 놈이 나밖에 없으니, 높은 확률로 그 공사를 내가 하거나, 최소한 내가 참여해야 한다는 걸 고려해 보면, 일은 적게 하면서 효율이 높은 걸 하는 게 낫다.
“꼭 가사를 수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내가 진중하게 말하자, 김현진은 약간 흠칫하더니 내 생각을 묻는다.
“원하는 분위기가 어떤 건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지니라는 걸 꼭 긍정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지니는 아랍족 계통 신화적 존재로 착한 녀석들과 심성이 되먹지 못한 녀석들이 반반씩 섞여있습니다. 그러니 지니를 꼭 선한 존재로 소원을 들어준다고 볼 필요가 없습니다. 거짓말을 하는 거라 생각하면 되니까요.”
류이든은 그 설명에 내가 할 말이 예측이 됐는지 고개를 찬찬히 끄덕였다.
“그럼 어떤 분위기로 곡을 바꾸는 게 좋을까?”
기왕 내가 편곡에 참여할 거면, 일을 적게 하기 위해서라도 기존에 알고 있던 것과 유사하게 작업하는 편이 몇백 배는 쉽다.
“혹시 파우스트라고 읽어보셨습니까?”
* * *
편곡 1차본을 대충 내가 밤새워서 뽑아내기로 하고, 다른 녀석들은 대신 밤새워서 안무를 따 아까 상의한 분위기에 맞도록 동작을 추가하거나 수정하기로 했다.
회사에서 빌려준 작업실은 쾌적하기 그지없어서 아무 생각 없이 곡 작업에 집중할 수 있었다.
소설 쓰는 거랑은 또 다르게 재밌어서 만약에 원래 시공간에서도 작곡을 배웠다면 즐겁게 살았겠다 싶었다.
그때는 방구석 소설가가 아니라 방구석 작곡가가 됐겠지.
그렇게 잠시 곡 작업에 집중했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바로 들어오지 않는 걸 보면 기본적 예의가 머리에 있는 녀석이다.
“들어오세요.”
내가 문을 열자 보인 건 긴장한 표정으로 두 손에 아메리카노를 들고 선 이현재였다.
“어, 형, 여기 이거 드세요.”
“…고마워.”
내가 한쪽으로 비켜서자, 작업실 한쪽에 있는 작은 소파에 자리 잡고 앉는다.
“…어쩐 일이야?”
“저희 안무 따다가 쉬기로 해서 형도 쉬는 게 어떨까 해서요.”
그 말에 시계를 보니 어느새 4시간이 지나있었다. 흠, 어쩐지 눈이 침침하더라니.
나도 그 말에 작업실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앉았다. 고요하군. 아주 좋아. 역시 이현재를 같이 할 멤버로 고른 건 옳은 선택이었다.
“…저기, 형.”
할 말이 있어서 온 거였군.
“아침엔, 그, 고마웠어요.”
“…한 게 없는데?”
진심이다. 고마울 게 뭐가 있나.
“사실, 이번에 데뷔 실패하면 연습생 같은 거 때려치우라고 부모님이 그러셨거든요.”
“…너 아직 열여덟 살이잖아.”
…꿈을 버리라 하기엔 너무 이른 나이 아닌가.
“연습생 생활은 9년 했거든요.”
와, 대단한걸. 불투명한 꿈을 위해 인생의 절반을 바친 셈이다. 그나저나 그러면 얘는 아홉 살이나 열 살 때부터 연습생 생활을 한 건가.
예전부터 느낀 거지만, 아이돌판은 어린애들 괴롭히는 걸 좋아하나 보다.
“그래서, 9년이나 했는데, 만약에 데뷔 못 하면 너무 억울할 거 같고, 아이돌 된다는 거 무시하는 부모님한테도 뭔가 보여주고 싶고, 그런데 주변에 몇 없는 친구들은 이번에 드디어 데뷔하는 거냐며 너스레 떨고, 부모님이랑은 계속 냉전 중이고, 하여튼 부담감이 너무 심해서… 어제 무대 완전 망쳤거든요.”
정돈되지 않은 말을 정리해 보면 주변에 하등 도움이라곤 안 되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 힘들었다는 거군.
“그러다 형 말 듣고, 좀 생각을 달리 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그래?”
“네, 부모님이나 주변 사람이나, 전부 저보다 제가 사는 세상을 잘 알진 못하잖아요. 제가 꾸는 꿈의 간절함도, 9년 동안 버틴 심정도, 제가 아니면 모르는 거잖아요.”
개인의 생각이 지니는 타인의 접근 불가능성, 데카르트의 사적 극장 모델이라고도 부르는 건데, 남들은 배워서 아는 걸 용케도 혼자 깨달았다.
“그래서 그냥 남들이 뭐라 하든 일단 꿈꾸는 데 집중해 보려고요. 하여튼 고마워요, 형.”
녀석은 그렇게 말하곤 고개를 꾸벅 숙인 뒤 밖으로 나섰다. 짧게 손을 흔들어주던 나는 연습실 의자에 몸을 푹 쓰러지듯 기댔다.
꿈.
꿈이라. …자꾸 옛날이 생각날 것만 같군.
참 난해한 말이다. 내 입장상 꿈을 꿀 만한 처지가 돼 본 적이 없었으니.
단 하나 꿈이 있었다면 이 세상에서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라고 할 수 있는 것을 알고 싶었는데, 그게 불가능하다는 걸 나 자신도 분명 알고 있잖은가.
그리고 그나마 꿈이라고 할 수 있는 건… 그 아이를…….
…잠깐.
하, 잠시 쓸모없는 생각에 빠졌군. 이런 감정은 대개 사람을 좀먹는 병해충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커피를 다시 한 모금 마시고 다시 편곡에 집중했다.
꿈이고 자시고 일단 경연에서 이겨 원래 세상에서 이곳으로 떨어진 이유나 알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