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10)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110화(110/343)
110.
이현재가 사실 여우가 아니라 치타였음을 증명하는 달리기 경주.
“형, 형들! 저 1등!”
이현재는 숨이 차서 헥헥거리면서도 기대감에 부푼 얼굴로 멤버들을 본다. 그러다가 특히 내게 시선 집중을 했는데, 아마도 이현재에게 나는 선생 같은 입장이라 그런 것 같다.
칭찬을 받고 싶은 건가.
아무리 정신연령이 다른 멤버에 비해 높아 보여도 결국은 막내인 티가 난다. 서바이벌 때 이현재를 보면 목화 생각이 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겠지.
“현재, 치타인 줄 알았어.”
나는 한 마디만 남기고 물병을 건네줬다. ‘여우가 아니라’는 말은 깔끔하게 일부러 숨겼다. 이현재는 숨길 수 없다는 듯 헤실거린다.
“아, 형은 진짜 동물 얘기 엄청 좋아하는 것 같네요. 제가 금메달 따면 다음에 읽을 책은 제가 고르는 걸로!”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지난번에 소소한 복수로 같이 읽을 책을 어려운 걸 골랐더니, 이렇게 나오는군.
그 정도로 만족할 수 있다니, 소박하기 그지없는 소망이다.
“…그래.”
“제가 또 이럴 줄 알고 미리 책을 사뒀으니까, 딱 기다리세요, 형.”
나는 당찬 대답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다분히 계획된 거였군. 여우는 여우였나 보다.
그렇게 멤버들이 이현재를 띄워주고 있을 때 공지방송이 진행되었다.
— 다음 경기는 씨름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씨름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출전 선수들은 준비해 주세요!
‘음, 누가 될지 모르겠지만 류이든의 상대역은 큰일 났군.’
나는 누가 될지 모르는 희생양을 생각하며 자연스레 애도했다.
“아, 이거 긴장되는데.”
라고 말하는 류이든. 이길 게 뻔한 게임에서 대체 왜 긴장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차피, 들어서 꽂을 예정이잖아요, 형.”
이현재의 날카로운 지적.
“에이,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로 세지는 않아.”
그리고 류이든의 바보 같은 대답. 자기객관화가 안 되면 지켜 보는 입장이 답답해진다는 게 사실인가 보다.
* * *
씨름 선수로서 이름을 날렸던 이호석. 현재는 방송 일에만 집중하는 중이지만, 여전히 모래판을 보면 옛 생각이 나곤 한다.
“호석 씨, 이번에 선수 중에서 눈여겨보신 분 있으십니까?”
진행자의 말에 이호석은 명단을 보다가 눈을 뗐다. 어차피 아이돌 수준의 경기고, 연습할 시간도 많지 않았던 데다가, 전적이라고는 작년 경기밖에 없는데 뭘 예상하라는 건지.
“그래도 작년에 우승한 제이 씨가 조금 가능성이 높지 않나,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네, 역시 전년도 우승자죠. 그럼 이번에 새로 출전하는 선수 중에 조금 관심이 간다, 이런 선수 없으셨습니까?”
“음, 그래도 신인분들 중에, 이든 씨라고 골격 하나는 거의 뭐, 엄청난 분이 있더랍니다.”
이호석은 제작진이 제공한 프로필과 사진을 보며 류이든의 골격과 몸 선에서 튼튼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시작된 경기, 조금은 지루하지만, 그래도 돈 받고 하는 일이니, 최선을 다해 해설을 한다.
그러다가 뽑힌 대진표. ‘제이 대 이든’이라는 문구가 전광판에 떠 있다.
“호석 씨가 지목한 유망주들의 대결이네요! 어떻게 보시나요?”
‘뭘, 이든 선수는 지금 처음 보는데 내가 어찌 아나요.’
라고 답하고 싶구나.
“아무래도 전년도에 우승한 제이 선수가 더 능숙하게 경기를 풀어나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경험이나 기술이 체급보다 중요할 때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결국 할 수 있는 소리라고는 원론뿐. 전문가가 아니어도 할 수 있는 말만 답해 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모래판에 올라온 류이든.
‘…실제로 보니까 근육이, 압축이 많이 돼 있네.’
꽤나 오랜 시간 단련한 게 분명해 보인다. 골격 자체도 운동하기 딱 좋은 골격인데, 혹시 운동선수였나.
서로의 샅바를 마주 잡고 심판이 개전을 선언한 순간, 류이든이 자연스레 제이를 들어 올리고는 살포시 땅에 내려놓았다. 마치 아이의 부모가 품에 안은 아이를 땅에 내려놓듯이 조심스럽게.
“……음?”
저 자세에서 저거를 들어 올릴 수가… 있긴 한데. 이론적으로 가능이야 하다. 손에 힘이 좋고, 상대가 대처 능력이 떨어지면 저렇게 이길 수도 있겠지. 가능이야 한데……
‘이게 선수 대 아이돌이 아니잖아.’
침묵. 해설이랑 캐스터는 너무 단조롭고 평화롭게 마치 아이를 재워주듯 끝난 경기에 당황해서 목소리를 낮췄고, 모래판 위로는 류이든이 지동화를 들어 올린 채 양옆으로 흔들며 기뻐하고 있었다.
“……저곳에 씨름판의 미래가.”
무심코 이호석은 그렇게 중얼거리고 말았다. 그에 옆에 있던 캐스트가 껄껄 웃었지만, 이호석은 진지하게 안타까웠다. 대체 왜 운동이 아니라 연예인을.
‘씨름판에 저런 인재가… 있어야 하는데…….’
저 얼굴, 저 골격에 모래판에 가서 단련만 한다면 많은 이들이 다시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까.
“정말… 예전이었으면 내가 바지끄댕이라도 잡고 씨름해 달라고 부탁했을 텐데.”
또 무의식적인 발화. 그에 옆에 있던 캐스터가 다시 빵 터지고 말았다.
이후 류이든과 만난 모든 가수들은 ‘안전’한 퇴장으로 탈락했고, 모두들 이게 맞는 일인지 의심하는 표정으로 류이든을 한 번 보고는 인사를 하며 떠나갔다.
* * *
‘……저거, 인간 아닌 거 숨길 생각도 안 하는군.’
누가 저렇게 마구잡이로 승리하는지.
결승전에서조차 상대편을 아주 조심스레 들어 올려 완전히 제압한 뒤 살포시 내려놓는 류이든. 처음엔 놀라서 가만히 있던 관객들도 함성을 질러준다.
그중에서도,
“내 돌 안전 지킴이!”
한 분이 이리 소리치는 것이 유독 크게 들리고 웃음이 이어진 뒤 안전 지킴이라는 함성이 점점 덧붙었다.
“아, 작년에 씨름 때문에 부상이 3명 정도 있었대요.”
그럼 대체 그걸 왜 하는지?
나는 얼굴을 잠시 구기고 류이든이 환호하며 내려오는 걸 봤다. 인간이길 포기한 대신 사람들의 안전을 지킨 영웅담의 주인공 같군.
“얘들아, 내가 1등 따왔다!”
그리곤 류이든은 이현재랑 똑같이 기대에 가득 찬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본다. 그리고 다시 이현재랑 마찬가지로 내게 시선을 고정한다.
……제길, 설마 나 이 그룹의 보호자 같은 입장인 건가.
나는 약간 어이가 0에 수렴해서 간신히 입을 연다.
“안전하라고 일부러 노력한 것, 대단하네.”
“어우, 맞아. 그냥 넘어뜨리는 거면 그냥 할 텐데, 은근히 신경 쓸 게 많네!”
……그러니까 그게 인간 범주에서 가능한 건지가 논란의 소지가 있다니까, 이든.
그 이후로도 계속 멤버들은 곳곳에서 독특한 활약을 펼쳤다.
석준은 농구에서 채하민은 뜀틀 비스무리한 것에서. 특히 채하민은 춤을 추던 인간이라 그런지.
“방금! 방금 하민이 형 덤블링한 거예요?”
미친놈이다. 뜀틀을 딛고 ‘어, 이거 이 정도 높이는 할 수 있겠다!’라고 짧게 소리치더니 자연스럽게 한 번 덤블링을 돌았다.
아주 건강전도사 류이든처럼 나한테 건강, 건강 노래를 부르더니 자기는 몸 생각을 안 하는군.
“봤어? 나 방금 거의 날았지!”
라고 소리치며 달려오는 채하민에게 싸늘한 시선으로 부상 걱정 안 하냐고 장난삼아 얘기하니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제대로 뜀틀을 뛰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예선이 끝나고.
“그럼 이제… 퀴즈 대회 할 차롄가?”
고작 100문제에, 거의 상식에 해당하는 질문을 물어 보는 문제로 구성된 퀴즈 대회 시간이 찾아왔다.
대체 이런 걸로 방송이 되기는 할는지.
* * *
“여러분들, 사전에 공지 드렸듯이 골든벨 스타일로 진행할 거예요! 최후의 1인이 탈락할 때까지 문제는 계속 나갈 거고요.”
작가님의 말을 듣다가 나는 약간 의아함을 느꼈다. 그러면 준비한 모든 문제를 맞히면 어떻게 될까.
“혹시 궁금하신 거 있으세요?”
나는 손을 조심스레 들어올렸다.
“네, D팀 동화 씨!”
“준비된 문제를 모두 소진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에 작가님이 의아해하고, 주변에 있던 다른 가수들도 약간 웃음을 흘렸다. 들리기에, 괜한 걱정이라고 하고 있다. 음, 하긴 제작진이 그리 준비가 안 되어 있을까 싶네.
“걱정 마세요! 그럴 일은 아마 없을 테니까! 물론 마지막까지 남으시면 메달 개수를 3개로 인정해드린답니다!”
밝은 목소리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다 준비가 되어 있을 테니, 나는 맞히기만 하면 된다는 거군.
* * *
“…정 작가, 이거 어떻게 하지.”
이번 체육 대회의 PD는 조용히 말했다. 정 작가라고 불린 그녀도 어찌 할 말이 없었다.
“자, 85번째 문제입니다! 송나라 시기, 한 농부의 고사에서 유래된 성어로, 나무 아래에 앉아 토끼를 기다린다는 말로, 융통성 없이 옛 관습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사자성어는?”
캐스터의 지친 목소리와 함께 차가운 인상의 잘생긴 남자가 판넬을 들어올린다.
‘守株待兎’
그는 아무렇지 않게 정갈한 필체로 한자를 써서 들어올렸다. 잠시 판정의 시간이 흐르고, 그 한자가 수주대토임이 밝혀진다.
“저, 정답입니다!”
라는 캐스터의 당황한 음성만 남는다.
정확히 오십 번째 문제부터 혼자 남은 지동화가 자연스럽게 모든 문제를 학살하는 현장이었다. 와중에 한자로 답을 쓰고 획조차 틀리지 않은 데다가 필체까지 아름다워서 더 문제였다.
물론 지동화는 가장 정확한 답을 하기 위해 한자로 적은 것에 불과하지만.
“……이거 마지막 문제까지 풀면, 메달 3개라고 했었는데.”
“…절대 못 온다고 그랬잖아, 정 작가.”
“아니, 이게 원래 그래야 하는 건데…….”
누가 그 바쁜 아이돌이 100문제를 정확히 외워 올 거라고 생각이나 했겠는가. 심지어 제공된 페이퍼도 문제&답 구성이 아니라서 답만 외운다고 될 일도 아니었다. 종이 전체를 외워야 하니까.
“지금이라도 마지막 10문제 난이도를 확 올리면?”
“…지금도 문제지 안에 있는 것 중에 엄청 지엽적인 것들 내고 있는데요?”
수주대토도 소설에 관한 정보 중에 그저 한 줄 정도 언급되고 만 것이었으니까.
“어쩔 수 없네……. 아예 없는 걸 내자. 구십 번째 문제부터. 메달 3개면 다른 경기 안 이겨도 우승 실질적 확정인데 무슨 재미야.”
치졸하지만, 방송을 그대로 조지느니 이게 낫다고 판단한 셈이다.
* * *
음, 약간 고요하군. 쉬는 시간 겸 진행된 퀴즈 대회라 경기장 중앙에 홀로 앉아 칠판에 답을 쓰고 올리기를 반복하니 고독까지 느낄 지경이다.
그렇게 한창 문제를 풀다가, 90번 문제.
달려온 스태프에게 어떤 종이를 받은 캐스터가 당황하는 듯싶더니 곧바로 평정을 되찾는다.
뭐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나올 당시에 그리 주목을 받지 못했는데요. 4차원 시공간 좌표와 세계선 개념을 고안해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조명받도록 한 물리학자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망할 방송국 놈들. 대단히 지엽적인 거 낼 때 이럴 줄 알았지. 어떻게든 떨어뜨리려고 난리가 났군. 팬분들 대우하는 꼬라지에서 알아봤지.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 머릿속에 있는 파일철을 이곳저곳 들쳐 보다가 마커를 들어 올렸다. 한 자 한 자 다 쓰고 나서 들어올렸다.
‘헤르만 민코프스키(1864—1909)’
생몰년은 헛짓거리하지 말라는 충고 차원에서 썼다. 방송국 놈들이 금방 찾아낼 수 있는 어려운 문제라고 해봐야 수준이 거기서 거기니까.
이미 탈락하고 페이퍼를 빠르게 뒤져 보던 참가자 중 한 사람이 비명을 지르며 ‘이거 여기에도 없는 건데?!’라고 소리친다.
엿이나 먹으십시오, 방송국 놈들. 반드시 백 문제까지 풀어 드릴 테니.
“저, 정답입니다. 다음, 그, 91번째 문제입니다! 자율적인 주체 개념이 통념으로 자리 잡았을 때, ‘이데올로기 호명 테제’를 내세우며 타율성에 의한 주체 형성을 주장했던 철학자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루이 알튀세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