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11)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111화(111/343)
111.
침묵이 감도는 경기장. 나는 홀로 그 중앙에 앉아 마지막 전쟁을 기다리는 장수의 심정이 된다.
음, 생각하고 보니 오글거리는군. 고작 이 정도에 무슨 장수까지야.
추측이긴 하지만, 캐스터님은 대본에 없는 상황인지 터져 나오는 애드립으로 방송을 진행 중이다.
“…마지, 막 문제입니다. 만약 맞히게 되면 금메달 3개의 보상이 걸린 마지막 문제. 이야, 제가 내는 입장인데도 쉽지 않아 보이는데요.”
정정해 주십시오. 그 이전 것들도 그 분야 관련으로 지식이 없으면 쉽지 않은 문제들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철학과 과학 등 여러 분야의 문제를 헤쳐 온 D팀의 지동화 선수! 과연 퀴즈 마라톤의 결승선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인가!”
문제를 주시길 바랍니다. 방송국 놈들의 비명을 전리품 삼아 멤버들에게 금의환향하고 싶습니다.
“자, 그럼 마지막 문제입니다!”
긴장감 넘치는 배경음. 나는 꼿꼿이 허리를 세우고 양반다리로 앉아 기다린다.
“이번엔 문학입니다.”
귀찮은 문제를 낼 예감이군.
“러시아의 거장, 도스토예프스키의 ‘칼리마조프 가의 형제들’에 등장하는 인물 중, 드미트리는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의혹을 받는데요.”
…여기서 문제를 낼 만한 포인트가 있던가. 그 후에 감옥에 갇히고 다른 인물의 도움으로 탈옥한 뒤 미국으로 도주하는 줄거리일 텐데.
“이때, 아버지를 죽이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공개해 드미트리의 유죄 판결에 결정적인 도움을 줬으나, 그에 대한 애증 때문에 결국에는 다시 드미트리의 탈옥을 돕는 여인이 등장합니다. 그 여인의 이름은 정확히 무엇일까요.”
대단히 치졸하고 쓰레기 같으며 퀴즈로서 아무런 의미도 없는 문제다.
심지어 서술 트릭까지 넣어두다니.
첫째, 러시아와 같은 서구권에서는 이름 대신에 ‘애칭’을 부르는 경우가 많아, 작중 인물 간 대화에서 저 여인은 카첸카, 또는 카챠로 불리는 게 일반적이다. 만일 애칭을 이름으로 착각하는 경우 실수하게 된다.
둘째, 이름을 쓰라고 했는데, 거기에 ‘정확히’라는 부사를 얹어놨다. 즉 이름, 중간 이름, 성까지 모두 쓰라는 의미. 보통의 경우에는 등장인물의 풀네임을 외우고 다니는 인간은 없을 테니, 대뜸 물으면 답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하… 다행이군. 만약 신조어의 의미 같은 걸 물어봤다면 답하지 못했을 텐데, 퀴즈쇼라는 체면상 그럴 수는 없나 보다.
나는 머릿속에 든 여러 서고와 거기에 꽂힌 파일철을 살펴본다. 기억력을 높이는 가장 최선의 방식은, 일정한 구조를 뇌 안에 만드는 것. 어떤 사람은 검색 엔진 형식으로 만들기도 하고, 방의 형식으로 만들기도 한다. 나는, 도서관. 부모님이 계실 때부터 즐겼던 나의 쉼터.
나는 책 한 권을 빼 들고, 빠르게 훑어본다.
그리고 손을 움직여 한 글자씩 새긴다. 모든 글자를 새겼을 때 곧바로 들어 올린다.
‘카체리나 이바노브나 베르호브체바’
아쉽지만, 러시아어를 몰라서 원문으로 적지는 못하겠다.
* * *
“……세상에.”
무슨, 백과사전도 아니고. 검색해도 알아내는 데 저렇게 빨리 걸릴 것 같지가 않은데.
이번에 처음으로 중간 쉬어가는 코스로 퀴즈쇼를 넣자고 아이디어를 냈던 정 작가는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아니, 그래, 막말로, 종이 외우는 거야 할 수 있다고 쳐도. 저게, 아니, 왜 공부 안 하고 아이돌을!’
“…저, 정답입니다!”
캐스터의 외침에, 97번째 문제를 풀 때 준비해 둔 골든벨 음악 소리가 장내를 가득 채웠다.
“아, 정 작가. 우리 이거 양해 구해서라도 보상은 메달 한 개로 정정하는 게 낫지 않나?”
“……그건 그렇죠. 안 그러면, 마지막 우승팀 고를 때까지 흥미가 반 토막이니까.”
“근데… 그렇다고 아무런 보상도 없이 할 수는 없는데.”
지동화가 원했던 대로, 제작진들의 고민은 깊어져만 갔다.
* * *
웅장한 축포 소리와 함께 음악이 흘러나오고 나는 잠시 캐스터분과 인터뷰를 나누게 되었다.
“D팀의 지동화 선수, 1위를 넘어서서 모든 문제를 푸셨는데, 어떠셨나요?”
음, 캐스터님께서는 눈치채셨는지 모르겠지만, 방송국 놈들의 치졸함의 민낯과 마주할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멤버들을 저들의 마수로부터 지켜야 한다는 뚜렷한 목표 의식을 다질 수 있었습니다.
…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음, 90번 문항부터는 공지와는 달리 배포된 정보집에 없는 문제라 당황했습니다. 하지만 메달 3개를 원했습니다.”
그러니까 통편집을 하지 않는 이상 민낯이 드러나게끔 인터뷰를 하도록 하자. 특히 메달 3개는 갑자기 와서 말을 바꿀 것 같으니 굳이 언급해 주자.
“아! 그래서 저한테 계속 쪽대본처럼 문제가 날라왔군요. 그러면 그 마지막 문제들은 원래 알던 것들인가요?”
캐스터님은 아주 감사하게도 나를 도와주는 방향으로 인터뷰를 진행해주셨다.
“다행히 그렇습니다. 만일 아니었다면 메달 3개는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와…… 진심으로 감탄했습니다. 제가 체육 대회 캐스터를 하러 나왔는데, 이거 엄청난 퀴즈쇼 한 편을 보고 가네요.”
캐스터님은 마이크를 들고 박수를 친 뒤, 몇 가지 질문을 하고 나는 짧게 답한다.
“네, 그럼 지동화 선수의 명품 퀴즈쇼, 거의 골든벨을 울린 정도의 위용이었는데 아주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캐스터 님의 인사에 나도 90도로 고개를 숙인 뒤 선수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어쩌면 당연하게도 저기서 이미 한 무리의 인간이 달려오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우리 멤버들과 TOT 멤버들이 얼굴에 전부 해맑은 미소를 달고는 뛰고 있다.
“와! 동화가 또 일냈네!”
채하민.
“후배님이 후배님했다!”
준성.
여러분, 축하해 주시는 건 고마운데, 왜 이리 저돌적으로 달려오시는지. 나는 그 기세에 약간 두려움 비슷한 느낌이 들어서 약간 뒷걸음질 치고 말았다.
그리고 그런 나를 먹잇감을 노리는 짐승처럼 바라보던 준성이 크게 소리친다.
“잡아! 잡아!”
그 말과 함께 놈들은 나를 잡아들더니 밑으로 내렸다가 위로 던진다. 헹가래. 격하게 뒤흔들리는 풍경에 나는 정신이 아찔해지는 걸 느꼈다.
“엄청 가벼워! 두뇌에 든 건 무게가 0인가 봐요, 작곡가님!”
조용, 예언.
내가 별로 아는 것이 없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면 편하겠지. 아직 모르는 것투성이니까.
그렇게 한참 공중을 배회하고 땅에 내려왔을 때 나는 잠시 어지러워서 비틀댈 수밖에 없었다. 음, 지치는군. 이렇게까지 집중해서 뇌를 혹사시킨 것도 오랜만이라서. 몸을 아끼라는 멤버들의 조언을 받들기로 했다.
“이든 형.”
내 옆에서 걷던 류이든이 고개를 끄덕인다.
“네, 동화 형!”
“업어.”
다리에 힘없으니까, 안전지킴이인 당신이 고생해 주길.
그렇게 류이든의 뒤에 실려 이송되고 있으니, 은근히 다른 사람의 시선이 쏠리는 게 느껴졌다.
다만, 안타깝게도 다른 멤버들 덕분에 더한 수치를 숱하게 겪어온 나는 별다른 타격이 없었다.
“저기, 잠시만요! D팀 여러분!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한 스태프분이 급하게 달려오더니 그렇게 수송되고 있던 우리를 붙잡았다.
“저희가 이번에 100문제 전부 푸는 건 예상에 없던 시나리오라…… 메달 3개는 너무 과한 거 같아서 조정을 할까 합니다.”
저 망할 것들. 그럴 줄 알았으면 혼자 남았을 때 탈락하는 건데, 괜히 힘 뺐군. 어차피 출연진 입장에서 스태프의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으니 나는 반쯤 체념했다.
그러나 같이 듣고 있던 예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는지 과장된 미소와, 커다란 목소리로 소리치듯 말했다.
“어머나나, 스태프님 너무하시네요, 저어어엉말. 우리 애는 100문제 푸는 게 힘들어서 쓰러졌는데. 메달 3개를 다 못 주신다니요!”
……우리 애? 저런, 심히 부적절한 지칭이군.
예언이 굳이 큰 목소리를 내는 건, 아마도 내가 굳이 마지막 문제까지 풀었던 것처럼, 방송국들 엿이나 먹으라는 심보인 것 같다. 어차피 받아들일 것, 지금 상황을 지켜보는 이들에게 알리려고. 저래도 되나 싶기는 하지만, 뭐.
“아니이이! 어떻게 그러언! 설마 막 메달 1개로 정정한다아, 이런 건 아니시죠? 세상에나! 아이고! 우리 메달!”
준성도 거기에 합세해서 일부러 억울한 척 목소리를 높인다. 장난스레 말하면서 방송을 하는 척, 굉장히 예의 바른 척, 예능인 척하고 있지만, 준성과 예언의 의도는 너무 투명하게 관찰 가능했다. 대단히 미친 사람들.
리더의 목소리가 소를 유도하는 빨간 천이라도 되는 건지 다른 TOT 멤버들도 목소리를 놀라는 척 높인다. 이게 다 방송물을 꽤나 오랜 기간 잡수셨기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다.
“아니, 아니, 저희도 메달 두 개를 그냥 뺏겠다는 건 아니고요. 딱 하나만! 하나만 더 드리는 걸로!”
약간 웅성이는 소리가 팬석에서 들렸다. 특히 TOT쪽 팬석에서. 가수의 규모와 팬석의 규모가 비례하기 때문에 은근하게 얘기가 나오고 있는 듯싶다. 다만, 팬분들을 취급하는 방식이 그리 올곧아 보이지는 않는 방송사 놈들이 저런 거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거라는 건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그게 다, 저희가 사정이 있어서 그런 거예요, 정말 죄송합니다.”
방송사 놈들의 공지치고는 대단히 예의바른 전달 방식이다. 아마도 낮은 직책의 분이 윗분들의 명령에 이리 나오는 것 같은데, 안타깝기도 하고.
나는 류이든의 등에서 조심스레 내렸다. 내리다가 다리에 힘이 빠져서 약간 비틀거렸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어우, 우리 애가 이렇게 고생해서 비틀거리기까지 하네. 아이참, 그래, 어쩌겠어요. 메달 두 개도 사실 큰 상이긴 하죠!”
닥쳐, 예언. 우리 어머니가 살아계시더라도 그리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물론 뒷말에는 나도 동의하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 진짜 이해해 주셔서 고마워요. 저 아까 전에 퀴즈쇼 장판파 장비처럼 헤쳐나가실 때 반했습니다. 화이팅!”
스태프님은 내 손을 꼭 부여잡고는 연신 감사를 표한다. 기획을 잘못한 건 윗것들인데, 왜 수습은 아랫분들이 고생하시는지. 사회의 더러운 한 측면이다.
그렇게 스태프님이 돌아가고 나서, 예언과 준성은 서로 하이파이브를 하더니 뭐라 귓속말을 서로 속삭거린다. 가관이군.
“근데, 동화 형, 마지막에 나온 질문들 종이에 없던 거였어요?”
이현재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준성을 본받아 나도 귓속말로 방송국의 치졸한 모습들을 낱낱이 고했다. 와중에 멤버들이 저들도 궁금했는지 이현재의 귀 옆에 서로 고개를 들이밀어 내 말을 들으려 힘썼다. 이상한 짐승들, 하나씩 다 말해 줘도 괜찮은데, 왜.
“근데 그럼 동화, 너는 그 마지막 문제 그 등장인물 이름을 외우고 다녀?”
류이든이 경악스런 표정으로 묻는다. 이 강아지는 사람을 뭘로 보고, 누가 그런 걸 외우고 다닌담.
“외우는 게 아니라, 기억해 내는 거지.”
인간의 뇌가 얼마나 대단한 기관인지 아직 깨닫지 못한 강아지의 한계다.
“역시, 역시 신체에서 뇌가 가장 자신 있는 남자!”
“내세울 신체 부위로 뇌를 내민 남자!”
채하민과 류이든이 순서대로 호들갑을 떨면서 소리쳤다. 하, 여튼 지치는군. 조금은 쉬고 싶다.
* * *
마지막 남은 양궁 경기, 채하민과 류이든을 비롯한 멤버들이 분전했으나, 아쉽게도 우승하지는 못했다. 애초에 양궁이라는 게 잠시 연습한다고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기도 하고.
나는 이제 해야 할 것이 없기에 모든 경기를 가만히 앉아 감상하기만 헀다.
“대박이었어, 진짜, 지동화. 어떻게 1등을!”
그 사이에 갓에이 멤버들과 소담하게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와중에 이지현 놈이 내 눈치를 살피는 게 눈에 띄었지만, 귀찮아서 내버려 두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서.
“여러분, 저녁 드실 시간이에요!”
팬분들께 식사를 대접할 시간이 됐다. 이번엔 회사가 사준 걸로.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
또온 현대 판타지 소설
(주)조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