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14)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114화(114/343)
114.
20분 후, 채하민은 얼굴에 물을 잔뜩 묻힌 채 기어 나왔고, 우리는 소파에 일렬로 앉아 기다리는 중이었다. 누가 그렇게 하자고 말한 적도 없는데, 아주 자연스레 그렇게 앉아 있었다.
우리가 앉아 있는 걸 본 채하민이 놀라선 ‘히익—’이라는 비명을 질렀다.
나는 재빨리 채하민의 얼굴을 훑는다.
‘……뺨이 붉군.’
20분이나 화장실에 들어가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뺨에 계속 물을 쏟아붓기 위해서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우리에게 설렜을 리는 없으니, 맞은 흔적 때문에 붉은 것이라고 가정해 보면, 아마도…….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뭐야, 다들! 여기서 뭐 해.”
채하민이 웃으면서 다가온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한다는 게, 내 눈에는 선명하게 보였다. 이현재와 석준은 채하민이 웃자 안도의 한숨을 약간 내쉬었지만, 류이든은 마찬가지로 눈치를 챘는지 나처럼 약간 굳어 있었다.
“나를 또 기다려 주고, 너무 고마워! 내가 밥이라도 쏠게.”
해맑은 척하는군. 저런 가면은 언제나 유용하다. 특히 채하민처럼 걱정 없어 보이는 인간에겐 더더욱.
물론, 저런 식으로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나오면 내 평소 성격상 모른 척해 주고는 하겠지.
그러나 나는 기억하고 있다, 채하민의 말을. 내가 홀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을 때 보였던 채하민의 모습을.
나는 류이든에게 눈짓한다.
‘애들 좀 진정시켜 줘.’
류이든은 손을 들어 왼쪽 뺨을 살짝 쓸어내린다. 우리끼리 정한, 알아들었다는 신호다.
“하민, 잠시.”
난 자리에서 일어나 채하민의 팔목을 약하게 붙잡고 방으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
뒤에서 류이든이 ‘역사적인 진실의 방이네’이라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일단 무시했다.
침대에 녀석을 앉히고 나도 맞은 편에 앉았다.
“뺨, 누구한테 맞았어.”
당황한 표정, 채하민은 말꼬리를 늘리며 끙끙 앓다가 내 얼굴을 보고는 곧 답한다.
“음, 그…… 아버지.”
그럴 줄 알았다.
이후 이어진 상황 설명은 채하민답지 않게 논리정연하고 명확했다.
아버지는 한 2—3년 정도면 채하민이 미래를 생각해서 ‘딴따라’ 노릇을 관둘 거라 여겼고, 그래서 오늘 휴일에 만나 사업상의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손수 일군 회사니까 아까운 건 이해하는데, 나는 그런 건 꿈도 꾼 적 없거든…….”
그렇기 때문에 채하민은 아버지에게 침착하게 자신의 생각을 전했지만, 결국 아버지와 말다툼이 붙었다고 한다.
“내가… 실수로 그깟 회사 줘도 안 가진다고 해서…… 많이 상처받으셨나 봐.”
나는 얼어붙었다.
채하민이 그런 말도 할 줄 아는 토끼였던가? 평생을 걸쳐 일군 회사에 그런 말을 들었다면, 화가 날 법도 하다.
나는 모든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음, 객관적으로 봤을 때, 아버님이 화를 내신 이유는 납득할 만해.”
그에 채하민이 시무룩해진다. 아마 본인도 말이 심하다는 건 알 테니까.
“물론, 그렇다고 너를 때린 게 잘한 행동은 아니지.”
나는 내 탁자로 가서 약을 약간 가져온다. 자세히 보니 까진 상처가 있기에.
“더군다나, 네 꿈을 막으려 하는 건 더 못 할 짓이고.”
나는 상처 부위를 소독하고 면봉에 약간 약을 짜 발랐다.
“……나는 서바이벌 끝나고 오셨을 때 내 꿈도 인정해 준 줄 알았거든. 그래서 엄청 기뻐했고, 자랑스럽고, 그랬는데.”
약을 발라주고 밴드를 붙여주는 동안에 채하민은 주저리주저리 말을 늘어놓았다.
“아버지한텐 이게 다 애들 장난으로 보이나 봐…….”
이어지는 깊은 한숨. 나는 약간 불쾌해지려는 기분을 억지로 눌러 참는다. 목화를 기를 때, 단 한 번도 목화의 꿈에 반대한 적 없던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들다. 자녀를 바라볼 때 자신의 거울처럼 여기는 부모는 자신이 이루지 못한 것, 혹은 자신이 이룬 것을 자식이 지키는 것을 강요하고는 한다지만…….
이성적으로 알고 있더라도 받아들이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어쨌든 결국 중요한 것은 채하민의 의사다.
“어떻게 하고 싶어, 하민.”
나는 밴드까지 다 붙이고 나서 구급상자를 정리하며 말했다. 불량토끼 같군.
“설득이야 하고는 싶은데…… 안 되면 아마도 연을 끊어야지 않을까.”
채하민의 얼굴에 쓸쓸한 빛이 감돈다. 솔직한 심정으로 연을 끊는 게 편한 답인 건 알지만, 채하민의 낯빛을 보니 절대로 권장할 만한 짓은 아니다. 평생을 땅굴만 파며 살 게 뻔히 보이니까. 또, 가족과 연을 끊는 게 어떤 의미로 남는지 나 역시 잘 알고 있으니까.
“아버님은… 연예인 전체를 안 좋게 생각하셔?”
“음… 그렇지는 않아. 솔직히 드라마 엄청 좋아하신단 말이지? 그냥 아들이 후계 경영을 안 한다니까 약간 좀 그러신가 봐.”
“…어떤 사업하시는데?”
이제 와서 물어보는 것도 우습긴 하지만.
채하민은 내 질문에 ‘아!’라는 소리를 내더니 표정이 부드럽게 변했다.
“우리 아빠는 무역 회사 하셔. 사실 나는 뭐 하는 곳인지 잘 모르기도 하고.”
참 어렵군. 차라리 이현재 부모님이었으면 대화로 설득이 가능할 텐데, 고집이 센 경영인의 후계 문제를 논리로 설득한다는 건 지나친 난도의 문제가 아닌가.
“내가 사과한다고 될 일은 아니겠지?”
“……그건 그렇겠지.”
물론 하긴 해야겠지만.
“아— 좀 어렵다, 그지, 동화야?”
한 쪽 뺨에 밴드를 붙이고 해맑게 웃는 채하민.
……뭐지. 왜 표정이 진짜로 변했지. 아까 전과 달리 괜찮은 척하는 해맑음이 아니라 진짜 해맑음이었다.
나는 관조적인 태도로 채하민을 살펴봤다. 그런 내 시선을 보더니 채하민이 다시 웃는다.
“의심하는 눈.”
손가락을 좌우로 흔드는 채하민. 내가 틀릴 때도 있다면서 신기해하더니 입을 연다.
“진짜야, 나 지금 엄청 괜찮아졌어. 친구한테 털어놓으면 괜찮다는 거 진짠가 봐.”
대체 어떻게 인간이 이리 낙관적일 수 있단 말인가. 삶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자세가 비관적인 나와는 너무 달라서 가끔씩 화들짝 놀라게 된다.
그보다, 이 토끼 놈 동족 친구가 적었나.
“애초에 숨길 생각을 하지를 말걸. 너한테 쪼르르 달려가서 다 말했어야 하는데! 어차피 숨기지도 못할 거.”
채하민이 벌떡 일어나더니 스트레칭을 하기 시작한다. 얼굴에 밴드 하나 붙이고 몸을 푸는 모습이 참, 대단히 불량한 인간 같았다.
“동화, 너도 막 해결해 주려고 노력 안 해도 돼. 그냥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엄청… 엄청 괜찮아.”
망할 놈. 내가 그리 못 하리라는 것쯤은 알 수 있지 않을지.
* * *
고민해 보자.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만일 할 수 있는 게 없다면, 머릿속에 잠시 잠가두면 될 일이니까.
첫째, 인간 군상 분석. 채하민의 아버님은 어떤 분인가.
나는 관련 기억을 하나하나 찬찬히 살펴봤다. 지나치게 짧은 만남과 주변인의 이야기뿐이었지만, 한 가지 키워드는 뽑아낼 수 있었다.
자부심.
채하민의 아버님은 자만하는 사람이 아니다. 도리어 여러 선택을 거치며 자신이 옳음을 깨달아 자부심을 얻은 사람이다. 확률은 약 96%.
띠링—!
[주어진 상황만으로 볼 때, 제 분석으로는 96.2%입니다!]조용, 망할 놈. 약이라고 했잖아.
어떤 이의 관점에서는 부정적으로 보일 수 있는, 본인의 세계관 속에서 자신의 판단이 절대적인 사람.
무역 회사는 거래처를 고르고, 환율을 고려하고, 기타 등등 잡다한 경제적 상황에 대한 판단을 요구하는 곳이다. 그런 회사를 우뚝 세워서 ‘도련님’이라는 개념이 존재하는 집을 일궈내고 인생의 노을녘을 관조하는 이에게 자기 자신은 자랑스러울 만하다.
그렇다면, 둘째. 채하민이 경영을 이어받아서 회사를 유지하는 것이 가능한가.
……확률을 따지자면, 0.4% 정도.
채하민에게 욕심이 있어도 힘들 일인데, 마음이 떠난 상황에서 가능할 리가.
마지막으로 셋째, 어째서 아버님은 채하민에게 집착하는가.
……당연히 독자라 그런 거겠지. 대체 회사가 무슨 왕권 국가도 아니고 대물림에 집착하는 건지는 모르겠다. 이런 걸 보면 합리적인 판단뿐만 아니라, 감정이나 촉에 의한 판단도 하실 수도 있겠군.
얼추 정리는 되었다.
나는 침대에 누워 찬찬히 계산을 시작한다. 무언가, 도움이 될 만한 게…….
‘우리 하민이가 배우도 아니고 가수인 건 맘에 안 들긴 하는데.’
아버님이 서바이벌 때 하셨던 말.
‘솔직히 드라마 엄청 좋아하신단 말이지?’
방금 들은 말.
우선, 채하민 어머님에게 안부 인사 한번 드려야겠군.
* * *
“……드라마 세계도 복잡하고 심오하군.”
나는 최근에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목록과 각각의 줄거리 요약본을 보며 생각했다.
채하민의 어머니와 통화하며 알아낸 정보는 단순했다. 갱년기. 감수성이 부쩍 풍부해질 나이인 50대라 그러신지 요즘 젊은 애들이 자주 보는 드라마에 몰입 중이라고 하신다.
물론 약 2시간 통화하며 간헐적으로 유도 신문하여 얻어낸 것들을 종합한 것이다.
“……드라마 OST 같은 거라도 들어오면 좋을 텐데.”
어떻게든 드라마와 연관점을 만들고, 배우와 친밀도를 쌓는 것. 그리고 TV에서 채하민을 목격하게 만드는 것. 그럴 수 있다면 좋겠지.
다만, 원한다고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어렵군. 공모전 같은 거라도 없으려나.
그때, 내 핸드폰에 메시지 하나가 도착한다.
[동화! 작업실이라고 들었는데 잠시 회의실 좀 와주라! — 장해진 팀장님]나는 그 메시지를 천천히 읽는다. 기묘하군. 지금 시기에 나를 호출할 건이 뭐가 있을까.
……음, 기지생, 혹시 이거.
[가능성이란 참 얄궂지 않습니까? 인간의 의지란 또 어찌나 놀랍습니까?]세상에나.
* * *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류이든이 안녕— 하고 손을 흔든다. 역시 리더 놈, 호출당했군.
“동화, 왜 부르신 건지 알아, 혹시?”
대충은.
“……아니.”
나까지 류이든의 옆에 착석하고 나니, 장해진 팀장님이 들어와선 종이를 나눠준다.
“우선 두 팀에서 OST 작업 제의가 들어왔어요. 아무래도 시상식에서 작곡가분이 직접 언급한 게 유효했던 듯싶어요!”
장해진은 공적인 대화를 할 땐 최대한 진정하는 편인데도 흥겨운 목소리로 말하는 걸 보니 두 건 다 괜찮은가 보다.
“다만 저희도 컴백을 해야 하고, 동화 씨 체력이 제일 중요한 문제라서. 하면 좋지만 거절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답니다.”
그에 내가 뭐라 입을 열기도 전에 장해진은 말을 잇는다.
“근데 어차피 멤버들을 전부 설득해서라도 하신다고 하실 게 뻔하단 말이죠. 그러니까 만약 받더라도 무조건 한 건만 받기로 했어요.”
‘저런, 두 건 다 하고 싶은데’라고 생각했다가,
“동화, 둘 다 하는 건 절대 안 돼.”
류이든이 한마디 하며 쏘아 보내는 눈빛이 너무 매서워 가까스로 납득했다.
“그럼, 한 번 보세요. 두 작품 시놉이에요. 작업하실지 말지, 할 거면 어떤 작품을 하실지 멤버들이랑 잘 얘기해 봐요.”
두 개의 시놉시스를 건네받아 조용히 품에 품었다.
“…아, 그리고, 그거 B안 같은 경우는 카메오도 고려 중이라고 언질을 주기는 했어요. 모모지를 눈여겨봤다고 하시면서.”
장해진이 한 번 웃고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다.
……일이 이렇게 굴러가기도 하는군.
“와, 휴일에 이게 뭔 일이래.”
류이든이 한 번 웃고는 나를 본다.
“곡 작업, 할 거야?”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류이든은 곧바로 한숨을 내쉰다.
“……설득하면 당해줄 의향은?”
류이든과 눈을 맞추고 단호하게 한 어절만 내뱉었다.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