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16)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116화(116/343)
116.
“그리고 이 감독님, 말은 바로 해야 돼요. 대학 동기 덕 본 게 아니라, 블로센스끼리 결정한 사항입니다.”
“결정한 사항? 다른 데서도 제안 들어왔었구만? 그래도, 오랜만에 만났는데 너무 선 긋는 거 아니야? 저 상처 받았어요.”
이 감독은 눈치가 빠른지 퍼뜩 박수를 치며 말하다 상처 받았다는 듯 우는 시늉을 한다. 장해진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마지못해 반말로 답해 준다.
“이제 진정 좀 하고 업무 모드로 좀 돌아와, 동기 씨.”
‘씨’ 소리에 자연스럽게 장해진의 입이 움직이는지를 확인했지만, 다행히 이어지진 않았다.
그러자 이 감독이 다시 껄껄 웃더니 옆에 내려둔 안경을 쓰고는 의자에 정자세로 앉는다.
“네, 그럼 작품 얘기부터 시작해 보겠습니까? 구체적 계약 사항은 이미 말씀드렸지만, 리마인드도 해보죠.”
정말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서 신비롭기까지 하군. 페르소나가 저 정도로 강렬할 수 있다는 걸 정신분석학자들이 보면 뭐라고 생각할지 궁금해진다.
“…형, 저게 관동별곡에 나오는 전반부 페르소나 같은 거죠?”
옆에서 이현재가 내 귀에만 들리게 속삭인다. 잘 배웠구나, 현재.
* * *
“네, 일단은 이 정도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어떠신가요? 말씀드렸지만, OST 삽입 파트는 나름 중요한 부분에 들어갈 거라 기사 내기도 좋을 겁니다.”
이 감독님과 다른 제작진분에 의해 진행된 미팅은 매끄럽게 이뤄졌다. 황가의 사생아로 자란 주인공이 복수를 다짐하는 부분에 삽입될 OST가 주어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에 대한 대우가 나쁘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여러분은 혹시 의견 있나요?”
장해진의 질문에 나는 손을 들었다.
“네! 말씀해 주세요! OST 음원 순위 1위 곡 작곡가님!”
이 감독님은 업무 모드가 반쯤 풀렸는지 다시 헤실거리는 표정으로 돌아왔다. 장해진의 미간이 약간 좁아지려다가 애써 관리하는 것이 보인다. 본능적인 거부 반응에 가까운 것 같다.
“혹시 카메오로 출연하는 건 누가 등장하는 것으로 예정되어 있습니까?”
제발, 채하민.
“아, 제가 그 얘기를 안 드렸네요? 기왕 출연하시는 거 억지로 출연하는 느낌이 들지는 않게 계획 중이긴 한데… 일단은 하민 씨는 확실하고, 나머지 분들은 아직 작가님이랑 토의 중에 있답니다!”
오케이. 일단 이 OST 작업이 채하민에게 도움 될 가능성이 약 2% 정도는 높아졌겠군.
“그럼 동화 씨는 음향 감독님이랑 다시 한번 미팅 짧게 하시러 가시죠!”
나는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어떤 분이실지 모르겠지만, 사전에 알아보니 그래도 경력이 약 10년 정도된 베테랑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어쨌든 전문가시니 작업하는 데에는 수월하지 않을까.
* * *
매니저님의 안내를 받아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간 곳에는 한 여성분이 책상에 머리를 박으며 작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대체 왜.
“나는, 나는 쓰레기야.”
그 말을 듣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자기 자신이 하등하게 여겨지는 순간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나는 그분이 자괴감을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을 존중해 드리기 위해 잠시 가만히 기다렸다.
쾅 하고 터지는 소리와 함꼐 전원이 꺼진 로봇처럼 축 처진다.
“저기, 안녕하십니까.”
벌떡 고개를 든 그분은 의자에 정자세로 앉고는 한 손에 펜, 한 손에 악보를 들고는 재빨리 다리를 꼬았다.
“안녕하세요? 동화 씨 맞죠? 이번에 음악 감독 담당하게 된 이예지라고 합니다.”
절대로 알아차리지 말아 달라는 무언의 신호. 나는 고개 숙여 인사 한 번 드리고 태연하게 자리에 앉았다.
“…보셨나요?”
“무엇을 말입니까.”
“……그걸로 충분하네요.”
씁쓸한 미소를 짓고는 계획안을 전달해 준다. 내가 받아든 종이의 표지에는 데미안의 표지가 적혀 있다.
“그게 컨셉이에요.”
……장난을 치시는 건 아닌 것 같고.
“동화 씨가 작업한 곡은 다 챙겨 들었답니다. 작업 비하인드도 조금 찾아봤어요. 같이 작업해야 되니까. 그런데 보니까, 작업 루틴이 저랑 좀 비슷한 것 같아서.”
이어진 설명은 단순했다. 추상적인 이미지에서 영감 얻는 게 비슷한 것 같아서 데미안이라는 작품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를 곡으로 작업해 보자는 것.
“다만, 이게 약간 트렌디 사극풍의 드라마잖아요? 그래서 국악 느낌까지 나는 게 베스트인 거죠. 쉽게 말하면 조선에서 태어난 데미안 같은 느낌?”
기괴하군. 조선 데미안이라니.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낯선 단어의 조합 때문에 잠시 멍하니 종이를 내려다봤다. 자세히 보니 데미안 표지에 한복 비슷한 두루마기가 합성되어 있네. 세상에나.
“어쨌든 그래요. 요즘 배경음악 작업이 조금 안 풀려서 뒤숭숭했는데 같이 작업하면서 환기 좀 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을 생활 쓰레기에 비유할 정도로 직업에 열심인 훌륭한 분이라는 사실만은 알 수 있었다.
“그러면 일단 어떤 곡을 만들지나 차근차근 얘기해 볼까요? 저한테 샘플링이 좀 있으니까 같이 들어보면서 작업할 걸 골라보죠!”
눈에 가득한 열의가 돋보이는 분이군.
* * *
이예지는 약간 신비로운 기분이었다.
“제 생각으로는 메인 멜로디에 참고하기에는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동양풍 분위기랑 섞였을 때, 이질감을 줄 여지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음, 그건 저도 동의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자기야 작곡 공부 기간 제외 실제 업무 경력만 10년이 넘어가는 인간이니 샘플링을 들었을 때 완성본에서 어떤 느낌일지 예측할 수 있다지만, 눈앞에 있는 사람은 작곡한 지 얼마 안 되지 않았나?
이게 한두 번이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샘플링마다 자신과 비슷한 결론을 내리니 조금 신기한 기분인 것이다.
‘작곡 공부를 어렸을 때부터 했나 보네.’
이예지는 그렇게 결론을 내린다. 가장 합리적인 해석이니까.
“어우, 근데 동화 씨는 작곡 공부 어떻게 하셨어요?”
그러자 계속 곧바로 대답하던 지동화는 잠시 말을 멈추고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을 보였다. 혹시 아픈 이야기 같은 건가? 사람마다 아픈 이야기가 한둘쯤은 있을 테니까.
그렇게 이어지는 침묵.
‘제기랄! 역시 아픈 구석이었나 봐. 이걸 어쩐담. 사과를 하기도 애매하고.’
기본적으로 혼자 일하는 직업으로 살아온 세월에, 그녀는 사회성이 지나치게 떨어졌다. 그렇게 어찌할지 고민하며 다시 침묵이 이어지던 중, 지동화가 입을 열었다.
“어머님이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예지도 상대방과 함께 작업한다기에 간단한 조사는 했었으므로, 알고 있었다. 지동화의 양친은 모두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아, 조졌다.’
“그, 그렇군요.”
어색해서 미칠 것 같은 분위기.
“음, 근데 어머니께선 클래식을 작곡하셨던 분이라 지금 하는 일과는 약간 다르긴 해서, 나머지는 독학했습니다.”
“그랬군요! 정말 어쩜 그리 잘 하나 싶었는데 유전자부터 달랐던! 인재!”
그러자 지동화는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감사하다고 인사한 후 다음 샘플링을 튼다.
그러나 이예지의 눈에는 그 표정이 지나치게 차가워 보여서 어린 애한테 미안한 짓을 한 건 아닐지 고심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여담이지만, 지동화는 음악적 재능이 과연 유전의 영역일지 고민하느라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 * *
어차피 곡 작업이 하루만에 끝날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대강 초안이라도 그려냈다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성과다.
그나저나, 어머니라. 떠올리면 해소할 수 없는 의문이 이어져서 억제해 둔 기억이고, 명칭이다.
죽음이라는 실존적 상황을 최초로 목도했던, 지금과는 달리 아직 정신적으로 완전히 성숙하지 못해 회피하기 급급했던 사건. 그리고 그때 이후로는 억누르는 게 습관이 되어 버린 이름이다.
혼자 살아갈 때는 달리 떠올릴 기회가 없었는데, 아이돌이라는 사회적 직업을 시작한 이후로 가끔 떠올리게 된다.
어머니를 떠올리면 그녀와 닮았던 목화가 보고 싶어진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소파에 같이 앉아서 의미 없는 TV나 틀어두고.
프로이트는 애도와 우울이라는 유명한 개념을 제시하며, 건강한 정신 상태는 누군가의 죽음 이후 다른 대상에 정신을 쏟아서 그 슬픔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얘기했다.
흠, 그렇다면 나는 평생을 정신질환을 앓으며 살아가는 셈이군. 안타깝게도 다른 사람보다 기억력이 조금 더 좋아서 떠올릴 수만 있다면 정신이 그곳으로 쏠릴 테니까.
가장 마지막 기억은, 어린 우리를 배려해 당일치기로 결혼기념일에 여행을 가는 두 분을 배웅해 주던 기억. 내 팔에 매달려 헤실대는 목화와, 둘이서 웃으며 내게 안전 수칙을 일러주던 이야기. 정확히 한 자 한 자, 모두 떠올릴 수 있다.
그때 내가 어떤 표정이었는지는, 당연하게도 볼 수 없기에, 기억할 수 없다. 기왕이면 어렸을 적부터 잘 웃지 않았던 나니까, 그분들이 본 마지막 내 모습이 웃는 모습이었으면 하는 바람만 가질 뿐이다.
“동화야, 무슨 생각하냐.”
류이든이 소파에 가만히 앉아 20분 정도 눈을 감고 있는 내게 말을 걸어온다. 자고 있다기엔 자세가 지나치게 꼿꼿해서 생각한다고 결론을 내린 듯싶다.
“분위기가, 말 안 걸면 위험할 것 같은 분위기라 걸어 봤어.”
눈을 뜨고 바라보니, 류이든은 운동기구에 매달려서 말을 이어나간다. 음, 한 집단의 리더로서 적합한 통찰력을 소유한 강아지다.
이렇게 감정이라는 건 평소에는 잘 조절되다가도 가끔씩 통제를 벗어나는 경우가 있다.
“형은, 부모님과 사이가 좋은 편인가?”
류이든은 턱걸이를 한 번 하면서 생각하더니 답한다.
“음, 솔직히 좋은 편은 아닌 것 같은데. 연예인하는 걸 조금 싫어하셨거든. 경찰하시던 분이라 그런지 그쪽 물 너무 더럽다고 하기도 하셨고.”
채하민과 같은 고민을 공유하고 있으니, 류이든에게 가보라고 채하민에게 조언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군.
“그러면…….”
류이든은 이후 뭐라 질문하려다가 곧바로 입을 닫는다. 아마도 의례적으로 내 부모님에 관해 물어보려다가 문제점을 깨달은 것 같다.
뭐, 지금 와서 호기심을 해소해 주지 못할 것도 없다. 어차피 지금 당장 다시 억누르기 힘든 기억. 남과 대화하며 풀어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지난 가능성에서는 선택할 수 없던 선택지였으니까.
“소설가랑 작곡가였어.”
털썩, 봉을 잡은 손에 힘이 풀렸는지 류이든이 땅에 주저앉았다.
“내 속마음 같은 거 읽지 말아 줄래? 좀 무섭거든, 동화 형.”
대화의 맥락만으로 유추 가능한 당신의 뇌가 너무 투명한 건 아닐까, 강아지.
“그래서 어머니한테 작곡 배웠다고 했던 거구나.”
주저앉은 채 중얼거리는 류이든.
“…너는 그럼 어머니 닮은 거야?”
“모르겠네. 생긴 건 아버지를 더 닮았어.”
소설을 쓰는 일에 빠졌던 것도 아마 아버지의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 흠, 성격은 어머니를 조금 더 닮았을지도 모르겠군. 반면에 어머니와 생김새가 닮은 목화 성격이 아버지랑 똑닮았으니 이론적으로 흥미로운 지점이다.
“아우, 우리 동화가 또 나한테 속 얘기를 들려주니까 고맙네.”
“사소한 궁금증인데, 형은 부모님이 반대하셨을 때 어떻게 했어.”
“엄청 싸웠지, 당연히. 뭐, 지금이야 곧 정산도 받을 거고, 꽤 성공도 했으니 뭐라 하지는 않으셔. 내 덕분에 사건 해결한 것 덕분에 승진 평가도 좋게 받으셨다니까 최근에는 은근히 관심도 가져 주시고.”
그제야 나는 류이든이 서바이벌 때 보여줬던 유약한 정신 상태의 실체를 파악한 기분이었다. 성장기 부모는 최후의 울타리 같은 느낌일 텐데, 그런 이들의 반대 속에서 10년 정도 연습생 생활을 이어나가는 건 쉽지 않았겠지. 이현재야 성적만 잘 내오면 모두 허용되었을 테니 부담감을 느낀 것일 테고.
참,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군.
심리적으로 분석은 할 수 있겠으나, 정작 내게 부모가 없어서 정서적으로 이해를 할 수는 없는 문제다. 부모의 관점에서도, 자녀의 관점에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