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18)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118화(118/343)
118.
류이든과 이현재, 그리고 석준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입을 벌렸다. 촬영장의 착 가라앉은 분위기는, 비단 촬영장이라 그런 것이 아니었다. 묘하게 활력이 가득했던 분위기였던 촬영장이었으니까.
하지만 지동화가 입을 열고 냉정하고 차가우며 단호한 목소리로 ‘뭐 하십니까.’라고 물은 순간부터 그런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어졌을 뿐이다. 류이든은 작은 목소리로 이현재에게 묻는다.
“너 과외할 때도 저래, 현재야?”
리더로서 이만저만 걱정이 아니라는 듯한 표정에 이현재가 약간 웃으며 고개를 젓는다.
“동화 형은 뭐 가르쳐 줄 때는 엄청 친절하고 따스해서, 저거랑 완전 정반대예요. 수업 내용 전달만 제외하면 말하기보다는 들어주는 타입이기도 하고.”
“동화 형—님, 연기 잘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 몰랐—습니다.”
“나도.”
사실 소소한 대화가 더 연기하기 어렵다. 과장된 분노는 표현하기 쉽지만, 화를 억누르는 것은, 연기를 못하는 이들이 지으면 무표정이 되고는 하니까. 하지만 지동화는 분명히 화를 억누르고 있었다. 눈앞의 상대방을 보며 그 말을 곱씹고 이해해서 생각을 말하고 있었다.
“몰입했나 봐요. 연기 쌤이 말해준 것들 지키고 있는 것도 보이구.”
“그러네. 갓엔터가 배우 전문 회사였어서 그런가.”
물론 당장 배우와 비교하면 부족할지라도, 외운 대사를 뱉는 게 아니라 말하고 있는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리고 장면이 끝날 쯤에 다다랐을 때 대본에도 그냥 대사는 거의 음소거 될 테니 맥락에 알맞은 말 몇 마디나 하라는 지시가 있는 부분이 되었다.
지동화는 앞 장면의 그 무엇보다도 짙은 안타까움과 그로 인한 분노를 억지로 꾸역꾸역 참으면서도, 눈앞의 제자에게 어떻게든 열의를 심으려는 차가운 인간의 흐트러진 모습.
“와, 동화 형, 대사 준비 열심히 해왔네.”
류이든의 감탄 섞인 중얼거림은, 곧이어 의문으로 이어진다. 제인이 원래라면 끝나야 했을 대본에 추가로 대사를 얹었으니까.
그리고 지동화 역시 전혀 당황하지 않고 대사를 받아낼 때 류이든은 감탄해 버리고 말았다. 제인이야, 연기력으로 인정받은 배우지만, 거기에 합을 맞추고 있는 지동화는 신인 아이돌이었으니까.
‘얼마나 캐릭터 분석을 해댄 거야.’
저 짧은 장면을 위해, 다 헤져 버린 지동화의 대본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스스로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만일 빈 공백이 있다면 자신의 상상력을 발휘해서 채워넣은 지동화이기에, 저런 갑작스러운 물음에도 여전히 캐릭터로서 말할 수 있었을 테니까.
“…저거, 동화 형, 지금 애드립인 거죠?”
“응.”
이현재는 의아하다는 듯 류이든에게 중얼거리며 묻는다.
“……동화 형이면 두려움을 더 이해해줬을 것 같은데.”
“지금 저건 동화 생각이 아니잖아.”
캐릭터가 하는 거지. 류이든은 그렇게 생각하며 울려 퍼지는 컷 소리에 약하게 박수를 쳤다. 자랑스러운 형!
* * *
지동화의 연기에 놀란 것은 비단 멤버들뿐만이 아니었다. 스태프진도 적잖이 놀랐으며, 그중에서도 가장 놀란 것은 작가 두 명이었다.
‘저 정도로 생명력 있는 캐릭터는 아니었는데.’
소설이든 드라마든 서사 장르를 쓰다 보면, 아무런 영혼도 부여받지 못한 인물들이 존재하고는 한다. 이 장면은 그저 말괄량이 같은 이미지의 주인공과 고지식해 보이는 가정교사 사이의 말다툼으로 주인공의 현재 상태를 설명하는 데 더 집중했던 장면이다. 즉, 가정교사는 현 상황을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조각에 불과했다.
그런데, 지동화가 보여준 인물의 입체성과 이후 이어진 애드립 때문에 단순한 상황 설명을 넘어서, 추후 주인공이 황제가 되는 열망의 씨앗을 심어주는 순간이 되고 말았다.
“이거, 괜찮지 않아?”
“어. 뒤에 이어질 그 장면이랑 엮으면 엄청 괜찮은 거 하나 뽑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나도 바로 그 생각했어.”
“그래도 일단, 일단 킵. 지금 당장 대본 바꾸면 또 난리니까, 오늘 밤에 결정하자.”
저 너머에서 제인과 얘기를 주고받는 지동화를 보며 첫 촬영이라고 와 보길 잘했다고, 둘은 생각했다.
* * *
“동화야. 아니, 너 연기 지망이었나? 아니잖아? 너 작곡 멤이었지 않아?”
컷 사인이 끝나자마자 제인은 내게 질문을 폭탄으로 던졌다. 순간적으로 제자가 왜 이리 건방질까, 라고 생각해 버렸다는 사실이 우스워져 약간 자괴감이 들고 말았다. 드라마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은 이룰 수 있었던 것 같군.
“애드립까지 할 생각이 아니었는데, 그냥 저절로. 당황했지, 미안.”
“아닙니다. 저도 재밌는 경험이었습니다.”
예의상 이렇게 말하긴 하지만 당황스러웠던 건 분명하긴 하다. 만일 몰입하지 못한 상황이었으면 나도 제대로 받지는 못했겠지.
“어쨌든, 좋다, 이거. 대본 밖이긴 한데 잘하면 쓸 수도 있을 것 같아.”
음, 그건 무리지 않을까. 이 장면의 기능은 눈에 빤히 보인다. 단순한 정보 전달 이상으로 고려하지 않은 장면이니, 만일 쓰려면 뒤에 적잖은 영향을 줄 테니까. 이 장면 하나를 위해 대본을 수정하는 건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그렇다면 저도 영광일 것 같습니다.”
“아주 말을 엄청 잘하네. 아부하면 잘겠다.”
제인은 활짝 웃으면서 박수를 치고는 감독님 쪽을 바라본다.
“어때요, 작가님? 조금 추가 촬영할 컷 있어요?”
“아니, 아니. 완벽했어. 작가님들도 만족하신 것 같애!”
곧바로 돌아오는 답변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안경을 벗었다. 젊어져서 눈이 좋아진 탓인지 눈앞을 유리가 막고 있으니 조금 귀찮다.
“어쨌든, 연습부터 본 촬영까지 감사했습니다.”
류이든의 사회생활 특강을 완강한 덕분에 자연스레 답이 나올 수 있었다. 물론 어느 정도는 진심이긴 하지만, 사회생활에선 표현이 중요하다는 3번째 강의를 되새기며 입으로 뱉는다.
“에이, 내가 더 고맙지. 사실 은근히 실수 많이 하면 어떻게 커버할지만 생각했거든. 예상보다 엄청 잘했어. 진짜. 디텍션에서 남들 다 속여 먹은 게 괜히 나온 게 아니었네.”
제인 역시 류이든의 사회생활 특강을 완강했나 보군. 역시 연예인의 필수 교양답다.
“이거, 나중에 또 작품 들어올 수도 있겠다. 지금 보고 계신 스태프님들 때문에 업계에 나름 긍정적인 얘기 오갈 테니까.”
“음… 기왕이면 저는 하민이나 다른 멤버들이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오, 너는 연기 욕심 없나 보네?”
연기 욕심도 그렇지만, 애초에 명예욕이 0에 수렴하는 인간이라 그렇습니다.
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나는 그저 다음과 같이 답할 뿐이다.
“작곡이 조금 더 즐거운 것 같습니다.”
* * *
나는 머리의 왁스를 바른 채로 채하민에게 다가갔다. 채하민은 대본을 읽고 있었는데, 대본을 쥔 손이 약간 떨고 있었다.
“하민.”
옆에 앉으며 이름을 부르자 채하민이 나를 바라본다. 현대식으로 개량된 한복을 입고 약간 부스스하게 세팅한 머리가 눈에 띈다.
“도, 동화야. 촬영 잘 했어?”
“조금 실수했어.”
나는 거짓말을 하는 데 별로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인간이라.
“헉, 진짜?”
놀란 눈.
“응. 실수해도, 별로 뭐라지는 않으시던데, 하민.”
“와! 다행이다. 걱정 많이 했는데.”
채하민은 다시 해맑은 모습으로 돌아와서 다시 대본에 집중한다. 채하민의 성격상 자기만 실수한 걸 안다면 스스로 민폐라며 난리 칠 게 눈에 뻔히 보이니, 이렇게 얘기해 주면 그나마 부담감을 덜 것이다. 그리고 애초에 채하민은 연기까지 잘하는 만능 엔터테이너니 긴장만 하지 않아도 잘해내겠지.
“야, 동화야, 너도 실수하고 그러더라. 그래도 몇 번 하고 나니까 긴장감 탁 털어내고 연기 제대로 했잖아.”
뒤늦게 들어온 류이든이 재빠르게 상황 파악을 하더니 말을 얹는다. 눈치 빠른 강아지 놈.
채하민은 대본을 보고 있지만, 귀는 열려 있는지 약간 손에 힘이 들어간다.
“실수 한두 번이야 사람의 일반적 특성에 해당하니까.”
류이든이 웃음을 참는다. 그러고 나선 입모양으로 조용히 묻는다.
‘그러면 너는 고양이인 부분?’
‘쉿.’
* * *
채하민이 맡은 배역은 황실에서 주인공에게 붙여 준 집사 겸 하인. 현대의 보좌관의 개념에 조금 더 가깝다. 나는 아까 전 촬영한 장면에서 한 번 등장하고 추후 거의 등장하지 않을 예정이지만, 채하민은 몇몇 장면에서 짧게 등장할 예정이다.
성격은 채하민과 다른 편. 나와 함께 분석해 본 결과, 약간 어리숙하지만, 그런 어리숙함을 노력으로 채우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의지할 곳 없는 황실에서, 주인공이 어렸을 때부터 옆에서 삼촌처럼 일일이 옆에서 챙겨준 사람. 지나치게 선하고 맡은 역할의 책임을 다하기에, 황실에서 서자라는 편견을 갖지 않는 유일한 인물.
솔직히 말해서 조금은 클리셰적인 인물에 해당한다. 이런 인물이 한둘은 있어야, ……잠깐. 이런 인물은 보통 작품의 마지막까지 함께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게 왜 우리 같은 1화 나오고 말 배우에게.
스토리의 특성을 고려해서 계산해 보자. 황실에서 일어나는 정치 암투가 주된 스토리 라인임을 고려할 때. 그리고 주인공이 외부에서 공개되지 않은 인물이라는 걸 고려할 때. 예상되는 것이 있기는 하다.
눈앞에선 제인과 채하민이 즐겁게 대화를 나누며 개그를 통해 분위기를 환기하고 있다. 망나니처럼 궁내를 이리저리 뛰어나니는 제인과 그걸 붙잡으며 말리고 사과하러 다니는 채하민. 지나치게 평화로워 보이는 분위기다.
“……동화 형.”
“왜, 현재.”
“하민이 형, 죽겠죠?”
이현재도 지금 흘러가는 이야기 꼴을 보고는 예상이 되는지 조용히 묻는다. 나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인다.
“응.”
죽거나, 최소한 거기에 준하는 상태가 되겠지. 아마도 다음 주에 있을 2차 촬영에서 채하민이 맡은 캐릭터는 죽을 것이다. 카메오가 되려면 그렇게 퇴장하는 것이 최선이니까.
“황녀님! 제발 좀! 제발 정숙! 궁내에서는 뛰면 안 된다니까요!”
“아니, 저기 고양이가 있는데 그걸 참아?”
“고양이고 자시고, 거긴 어머님께서 기르시는 석류밭이잖아요! 어머님께서 보시면 뭐라고 하실 거예요!”
“에이, 괜찮아! 나도 같이 기른 곳인데!”
그리고 눈앞에서 펼쳐지는 채하민과 제인의 대사는, 그런 확신을 더해 준다. 어머니라고 부르는 이유는, 안타깝게도 황실은 현대적 정서에 맞게 축첩 제도가 폐지된 상태라 그렇다. 이름을 얻지 못한 여인과, 천시받는 그녀의 딸. 그리고 그 둘이 애정을 갖고 기르는 석류밭.
“……저건 아마, 제목에 석류가 들어가는 이유겠죠?”
이현재의 예측에 나는 다시 고개를 끄덕인다.
“저기, 아마 불탈 것 같네.”
“맞아요. 그래야 다시 활짝 피겠죠?”
“동화 형, 현재, 제발 스포 좀 그만해. 왜 둘이서 2화 내용 미리 보기 하고 있어.”
그런 우리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류이든이 옆구리를 쿡 찌른다.
“형님— 그럼 형님—도 죽는 것 아—닙니까?”
이어서 석준이 하는 말.
글쎄, 나는 추가로 등장할 일이 없을 것 같은데.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할 운명과 비슷한 상황에 처했다.
물론 안타깝게도 다음 날 내 예측은 모두 보기 좋게 빗나갔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