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19)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119화(119/343)
119.
작업실에서 조선 데미안 컨셉이라는 해괴한 곡을 건드리고 있던 나. 그리고 나에게 호출당해서 강제로 곡을 들어주고 있는 류이든과 채하민.
오늘도 어김없이 듣기 좋은 곡소리가 작업실에 울려 퍼진다. 음, 연기보다 작곡이 좋은 이유는 아마도 이 비명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오, 동화야. 이거 곡 좋다. 우리가 부르는 거야?”
대금과 가야금 소리를 기반으로 해서 약간 서글픈 감이 느껴지는 도입부가 특징적인 미디엄 템포의 곡. 새벽에 느껴지는 고요함과 은근한 활기를 담으려고 노력해서 그런지 채하민의 취향에 맞았나 보다.
“……음, 사실 현재 개인 곡이 될 수도 있을 것 같긴 해.”
음악 감독님인 이예지 씨와 상의한 결과, 그룹 전체가 부르기보다는 시원한 목소리의 메인 보컬 한 명이 부르면 어떨까 하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아직은 고민 중이긴 하지만. 어쩌면 그룹으로 한 곡 따로 나와 A&R팀이 함께 프로듀싱을 하고 OST에는 이현재 개인으로 수록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맞아. 월간 지동화도, 물론 초기 기획이랑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원래 취지는 그런 거였잖아.”
물론 실제로 한 달에 한 번 팬분들을 모시고 요청하는 곡을 편곡하는 방송을 했지만, 원래는 멤버들을 위한 곡을 만들어주는 방송이 계획이었다.
“팬분들이랑 만날 경로가 W앱 밖에 없으니까 약간 슬프긴 하네.”
채하민의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슬프지는 않지만, 더 많은 것을 보여드리고 싶은 욕심은 있으니까.
그렇게 소소한 담소를 나누며 계속 곡 작업을 하던 중,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린다.
“장해진 팀장입니다! 동화 있나요?”
“네, 여기 고양이 있어요!”
류이든이 구원자를 찾은 눈빛으로 문밖을 바라본다. 드디어 끝없는 작업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헛된 믿음에 빠져 있군.
문을 열고 들어온 장해진은 나를 보자마자 반갑게 인사하고 탁자에 박카스 한 박스를 놓아둔 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방금 연락이 왔는데, 작가진 쪽에서 너가 연기한 가정교사 캐릭터가 마음에 들었나 봐.”
저런. 안 들어도 뒷말을 모두 들은 기분이군.
“그래서 들어온 게, 동화, 너 분량을 좀 늘리면 어떨지 얘기가 나왔는데, 하민이한테 의견 물어봤던 것처럼, 너한테도 의견 물어봐야 할 것 같아서.”
나는 잠시 생각한다.
일단 작가진이 내 예상보다 비경제적인 선택을 하는 데 망설임 없는 인간이라는 건 확실히 알았다. 그리고 또 확실한 건, 분량을 늘린다는 건 나도 채하민과 함께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는 점이겠지. 뭐가 됐든 문제가 될 것은 아니다.
“……음, 저는 좋지만, 약간 작곡 작업이 늦어질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그건 확실히 그렇네. 제작진분들께도 그 문제 관련해서 얘기를 좀 해볼게.”
라고 말하고 뒤돌아 가려던 장해진은 곧 흘러나오고 있던 음악을 듣더니 발을 멈춰 세운다.
“이거 이번 OST?”
나는 간단히 고개를 한 번 끄덕인다.
“이거, 괜찮네. 약간 벅차오르는 느낌도 들고.”
OST답다며 한 번 웃고는 박카스 잘 마시라는 인사를 남긴 채 돌아간다.
“동화야, 너 연기 엄청 잘했구나.”
채하민이 옆에서 해맑게 박수를 치고, 류이든도 따라서 박수를 친다. 다 조용. 작가진이 기상천외한 것에 가깝다, 이건.
* * *
이예지는 지동화와 작업물을 함께 들으며 연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거, 라인, 개쩐다.”
“저도 마음에 듭니다.”
“아니, 너는 어떻게 이런 곡을 뚝딱뚝딱 만들어와? 내 경력이 울겠는데.”
어느 정도 함께 작업을 한 이후로 자연스레 말을 놓은 이예지는 흥겹게 여러 얘기를 던졌다.
“……와, 방금 이거 대금이랑 가야금 소리 같이 나오는 거, 샘플링이야?”
“제가 짰습니다.”
“이거 라인 짜둔 게 엄청 특이하네. 뉴에이지 장르 같은 느낌도 들고. 아주 기특해. 내가 배워 가야 할 판이야.”
물론 실제로 작업하면 내가 훔쳐 가는 기술이 더 많지만, 말만으로도 감사하다.
“아, 근데 이것도 이건데, 어떻게 할까. 메인 보컬 한 명만 해? 나는 개인적으로 그편이 곡 분위기엔 더 괜찮을 것 같긴 한데.”
“저도… 일단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다함께 곡을 부를 수 있다면 그것도 그 나름대로 좋겠지만, 홀로 작업하는 게 아니다 보니 멤버별로 최적화를 하기에는 힘든 부분이 있으니까. 곡의 퀄리티를 높이려면 이현재의 목소리에 맞춰서 프로듀싱하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음, 근데 이건 내가 음악 감독이고 너가 작곡가라서 일단은 우리 둘이서 정하는 게 맞긴 한데, 그래도 멤버들한테도 의견 한 번 물어봐. 아이돌은 멤버들 사이에도 신경전 같은 거 있다며.”
……그렇습니까?
나는 머릿속으로 멤버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려 본다. 과연 그 인간들 중 신경전이라는 단어에 적절한 인간이 있던가. 그나마 류이든이 다른 아이돌 그룹에게 은근하게 웃으며 신경전을 걸기도 하지만, 그건 결국 다른 멤버들을 보호하려는 의도에 더 가까웠다. 마치 체육대회에서 예언이 내게 그러했던 것처럼.
“음, 죄송하지만, 제가 무감한지는 몰라도 멤버들 사이에 신경전이 펼쳐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아, 아니. 그런 의미로 한 말은 아니고 그냥 그럴 수도 있지 않나— 뭐 그런 얘기였어!”
이예지는 서둘러 수습하듯 얘기했지만, 내 입장에서는 별달리 수습할 필요도 없는 얘기긴 하다. 신경전을 하기엔, 너무 지나치게 화기애애한 동물들이다.
* * *
숙소에 도착한 나는 멤버들에게 이번 OST가 현재 솔로 곡이 될 것 같다는 얘기를 우선 꺼냈다.
“……진짜요?”
이현재는 화들짝 놀라 답한다.
“응.”
“어우, 우리 현재 그렇게 동화가 쓴 솔로 곡을 원했는데 드디어!”
류이든은 바로 박수를 치고, 이현재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형, 제가 그거 말하지 말라니까!”
음, 그리 원했으면 나한테 얘기라도 하지 그랬니, 현재.
나는 이현재와 류이든이 투닥대는–사실은 이현재의 분노와 류이든의 얄미움이 교차하는– 장면을 보면서 말을 잇는다.
“근데, 우리 전부 부르기도 할 거야.”
“어? 그건 또 무슨 말이야, 동화야.”
채하민의 물음과 함께 석준의 고개도 함께 갸웃 돌아간다.
“드라마에 삽입될 건 현재 개인 버전이지만, OST 앨범에는 우리가 나눠서 부른 버전도 수록될 거라는 얘기.”
물론 신경전이 신경 쓰이는 것은 아니고, 그저 다 함께 이 드라마에 참여했다는 흔적을 남기고 싶은 내 의견이 관철된 것이지만.
멤버들 모두 화색이 되었다가.
“그래서, 단체 곡은 내가 프로듀싱할 예정.”
이라는 내 말을 듣고는 곧바로 사색이 되어 버리고 만다.
“지난번 앨범 만들 때보다는, 조금 덜 빡빡하게 할 예정.”
이라는 내 말이 이어져도 모두 사색이 된 것은 변하지 않는다.
“아, 이번에도 작업실에서 망령 되겠네.”
류이든의 침울한 목소리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인다. 이게 다 우리가 잘되자고 하는 일인데 말이지.
“혹시…… 이견이라도?”
“아니요! 이견이라뇨! 동화 작업실에서 노래하다가 죽을 수 있으면 그건 대대손손 전해 내려갈 전설이지.”
그런 허무한 죽음이 전설이 되는 경우도 가끔 존재하긴 하지.
“그치, 얘들아?”
류이든이 혼자 갈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인지 멤버들에게 물어보자 모두들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리고 웃었다.
“일단은 현재, 곡에 붙일 가사 한 번 준비해 보자. 네가 써서 괜찮으면 그걸로 그대로 쓰기로 했어. 물론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되고. 그리고 준, 너는 편곡 나랑 같이 할 준비했으면 하는데…… 의견 있어?”
그러자 억지로 올린 입꼬리 그대로 도리도리 고개를 젓는 녀석들. 은근히 우스운 풍경이다. 왜 이렇게 내 말에는 아무런 의견을 표하지 않는 건지.
음, 지금 보니, 독재자가 된 기분이군. 참 안타까운 일이다. 어째서 자유를 가졌는데도 그 자유로부터 도피해 버린 걸까.
“음, 혹시 내 말이 무조건 옳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조용히 물어보자 류이든이 바로 즉답한다.
“음, 근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지. 너는 옳지 않은 거면 옳다고 생각 안 하잖아.”
그게 무슨 논리적인 개소리입니까, 이든.
“동화야, 최소한 나는 니 의견에 무조건 맞다고 따르는 게 아니라 니 의견 근거를 듣다 보면 저절로 납득이 되는 거라니까? 지난번처럼 독재라는 생각하지 마.”
…라고 말하는 류이든의 눈에는 그에 반해 강렬한 신뢰가 담겨 있었다. 만일 내가 무언가 이야기를 한다면 그건 합당한 근거가 있을 거라는 신뢰. 은근히, 기분이 좋군.
“저—는 무조건— 따르는 거 맞—습니다!”
그에 반해서 석준은 자신의 두뇌 속에는 위즈니를 제외한 그 무엇도 자리하고 있지 않음을 인정하며 씨익 웃었다. 징그러운 놈.
* * *
‘석류가 다시 활짝 필 테니’의 촬영과 OST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동화야, 나 조금만 쉬자!”
“안 됩니다. 목 상태가 좋으니 한 번만 더 하겠습니다.”
작업하다가 쉬면 도리어 작업 효율이 떨어진다는 걸 잘 아는 우리 리더가 왜 저러는지 원.
류이든은 자신의 목을 퍽퍽 치며, 제발 상태가 나빠지라고 소리치지만, 그런다고 나빠지기엔 류이든의 자기관리가 너무 철저했다.
“어우, 이 팀은 원래 이런 분위기야?”
옆에서 작업이 궁금하다며 회사 스튜디오에 놀러온 이예지 음악 감독님이 웃는다.
“아니, 얘네들 웃기네. 기싸움이 없을 만도 해. 그냥 너가 기를 다 잡아먹고 있잖아.”
“하하, 동화가 작업할 땐 저러는데 실생활에서는 엄청 순해요.”
마치 ‘우리 개는 안 물어요’라고 설명하는 견주 같은 표정이 됐구나, 망할 강아지.
“어머, 진짜? 그래도 이렇게 기세면 어디 가서 무시당할 것 같진 않네.”
기가 세다는 게 정확히 뭔지 모르겠군. 어쨌든 지금은,
“이든, 뭐 해. 빨리 준비해.”
작업하는 게 우선이다.
“으어, 동화 형! 저희 지금 녹음 3시간짼데요!”
“5시간 동안 하기 싫으면 지금 해야지 않을까, 이든 형.”
“봐, 기 겁나 세.”
이예지는 호들갑을 떨며 ‘어머, 무서워라.’라고 놀려댔지만, 신경쓰지 않아도 괜찮겠지.
* * *
그렇게 OST 작업이 끝나고 완성본이 만들어졌다. 아직 전곡을 모두 들어본 사람은 나랑 석준밖에 없어서 그런지 다들 설레는 표정이었다.
“형—님, 지금 틀면 되겠—습니까.”
“응.”
지금 트는 건 OST 앨범에만 수록될 예정인 단체 버전. 나와 이예지 감독님이 함께 짠 곡을, 우리 그룹에 맞게 편곡했다.
조선 데미안이라는 해괴한 컨셉. 동양풍 자체는 짜기 쉽지만 흔하지 않고 특별하게 만드는 게 어려웠으며, 데미안이라는 소재는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았다.
그러다 감독님이 작품의 전반적인 플롯을 설명해 주고 나서야 어떻게 곡을 써야 할지 알 수 있었다.
씨앗 속에 있던 석류가 자신을 둘러싼 껍질과 자신을 내리누르는 황무지를 뚫고 나와, 찬란하게 성장하는 것. 그리고 마침내 활짝 피어나 자신을 억누르던 땅을 내려다보는 것.
아마도 감독님이 데미안이라는 키워드를 제시하며 염두했던 건 그런 요소인 듯싶다.
곡이 시작되면 한 여인이 홀로 황궁을 걸어가는 모습이 연상되는 쓸쓸함이 풍긴다. 주변을 둘러보며 자신의 나약했던 과거와 후회스러운 선택, 자신을 억누르려 했던 이들을 직시한다.
그 걸음 끝에 황좌에 앉아 모든 걸 내려다보면, 곡은 고요해지고 가야금이 퉁퉁 튕기는 소리만이 남는다. 그리고 연회의 시작을 알리는 팡파레가 터지듯 활력이 넘치는 멜로디로 이어지고, 여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모두를 내려다본다.
……라는 생각을 갖고 만든 곡이다. 안타깝게도 OST라는 대중적인 곡의 특성상 내 멋대로 가사를 쓸 수는 없어서 이걸 스토리로 녹여내진 못했지만.
“와, 이거 가사도 괜찮다, 동화, 현재.”
다행히 이현재가 쓴 가사가 퀄리티가 좋아 곧바로 채택되는 덕분에 곡 분위기에 맞아떨어지는 가사까지 쓸 수 있었다.
“이제, 드라마만 딱 성공하면 되겠다, 그치?”
채하민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해서 촬영하고 작곡했으니,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