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2)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12화(12/343)
12.
새벽 4시 반. 나는 편곡 결과를 들고 사람들을 찾아 나섰다.
사실 <파우스트>와 관련 지어서 편곡하겠다 했을 때부터 난항을 겪었다. 일단 그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이 그렇게 많을 줄 몰랐고, 들어본 적 없는 놈이 그렇게 많을 줄도 몰랐다. 그나마 이현재가 들어봤다기에 다행이지.
나는 당시를 한번 회상했다.
내가 길고 길었던 파우스트 줄거리 설명을 마치고 나자 류이든이 우선 정신을 차리고 반응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거기에 나오는 메피뭐시기를 컨셉으로 잡자는 거지?”
메피뭐시기가 아니라 메피스토 펠레스다.
“네.”
“그 메피뭐시기는 주인공과 등장인물들을 거짓으로 유혹하는 캐릭터고.”
“거기다가 장난기 많은 성격에, 인간을 엄청 싫어하고요?”
“둘 다 맞습니다.”
좋습니다, 류이든 학생, 이현재 학생. 나머지 이야기하는 동안 듣기는커녕 멍때리고 있던 나머지 낙제생들은 자퇴하세요.
“그런데 그러면 여러 가지 컨셉이 가능하지 않을까?”
오, 낙제생 1(박우진)이 입을 열었다. 자퇴는 보류하도록.
“그렇습니다. 기본적으론 인간을 유혹하는 악마라는 컨셉으, 우울한 분위기, 위험한 분위기, 광기에 찬 분위기, 섹시한 분위기, 장난스러운 분위기 등 별의별 것이 다 가능하죠. 곡의 분위기는 바꾸면서 컨셉이 강제되지 않으니 또 나름대로 좋습니다.”
내가 길게 설명하자 이현재는 신이한 현상을 마주한 것처럼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도 말을 길게 하는 게 신기한 거냐.
“그럼 그중에 뭐가 제일 낫다고 보세요?”
드디어 낙제생 2(김현진)도 입을 열었다. 하지만 기선 제압 사건이 도무지 잊히질 않으니 자퇴는 조속히 절차 밟도록.
“그걸 이제 정하면 됩니다. 어떤 악마가 되고 싶으십니까?”
…라는 과정을 거쳐서 주제가 선정됐다. 물론 나도 그런 주제가 결정될 줄은 몰랐지만.
일단 연습실에 가서 빨리 들려줘야겠군.
* * *
#A팀 연습 과정 가편집본
새벽 4시 반, 연습실에 들어선 지동화를 시체 더미들이 맞이한다. 지동화가 상황이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멍때리고 있고, 그 밑으로 자막이 나타난다.
‘초토화된 연습실, 홀로 남은 지동화 연습생’
지동화는 조심스레 류이든 쪽으로 다가가더니 약간 흔들려다가 관뒀는지 그 옆에 조용히 앉더니 가져온 노트북을 켜고 작업을 진행하기 시작한다.
배속 화면으로 지나가는 화면 뒤에 시계가 오버랩되더니 빠르게 시침과 분침이 운동한다. 그리고 시간은 7시. 깨어난 류이든이 일어나서는 자신이 잤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는지 화들짝 놀랐다. 그러다가 혼자서 곡 작업을 하고 있는 지동화를 보더니 더 크게 놀란다.
‘형이 7시에 일어난 건 처음 봤습니다.’
‘…너 잠은 좀 잔 거야?’
‘밤 새자고 한 건 형 아니었습니까?’
‘…그건 맞는데, 음… 그, 어, 미안하다.’
‘괜찮으니까 와서 편곡한 것 좀 들어보십시오. 컨셉이 (삐―)라서 작업하기 어려웠습니다.’
* * *
결과적으로 편곡의 분위기는 마음에 든다는 평가를 받았다. 가사랑도 잘 어울리고, 장조였던 곡을 단조로 바꿔 분위기도 음산하니 나쁘지 않다는 평가. 이제 파트 분배랑 안무만 맞추면 끝이군.
분위기가 나쁘지 않다. 순풍에 돛을 단 배가 된 기분이다. 아마 이대로만 가면 상대팀이 어떻게 나올지는 몰라도 괜찮게 끝나지 않으려나. 물론 폭풍이 오지 않을 때 얘기지만.
그러나 안타깝게도 기상 이변은 인간이 예측할 수 있는 범주의 것이 아니었다. 무슨 소리냐면… 폭풍이 발생했다는 거지.
파트 분배까지는 나쁘지 않았다. 애초에 내가 메인보컬 라인을 이현재가 아니면 소화할 수 없을 지경으로 손대 놨으니 다른 놈들은 탐도 못 냈고, 자기가 소화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적당히 파트를 나눠가졌다.
음역대 제일 높은 이현재를 굳이 데려왔는데, 제대로 써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여튼 문제는 메인 댄서를 고르는 데서 발생했는데, 류이든이랑 낙제생 2가 자리를 놓고 경쟁하기 시작했다.
그래, 경쟁이야 그럴 수 있지. 아무리 팀전이어도 서바이벌의 본질상 개인전이니.
그런데…….
“형은 저보다 약간 실력이 부족하잖아요.”
저 싸가지 없는 낙제생 2가 먼저 선을 넘었고…….
“음, 그럼 둘 다 연습하고 애들한테 보여줘서 투표를 받는 게 어때?”
류이든이 우아하게 공정한 경쟁을 펼치자고 하자…….
“시간도 없는데 그냥 낭비하는 것 같아서…….”
우아함 따위는 기선 제압 때부터 밥 말아 먹었던 낙제생 2가 추잡한 논쟁의 장을 열었다.
낙제생 2의 자퇴가 시급하다, 진짜.
채하민만 있었으면 입도 못 열고 땅만 바라보고 묵념하고 있을 놈이, 토끼 없는 곳에선 양아치가 왕이라는 식이다.
류이든은 약간 화가 난 듯싶었지만, 팀 분위기를 망치고 싶진 않았는지, 일단 조용히 한숨을 뱉고 있었다.
이현재는 열여덟 살의 어린 나이로 김현진과 동갑이라서, 또 성격상 이럴 때 나설 수 있는 놈은 아니고, 낙제생 1은 별다른 관심이 없어 보였다.
‘하, 싫군.’
웬만하면 나도 분쟁 없이 넘어가고 싶다만, 이런 비논리적인 이유로 누군가 기회를 박탈당한다는 건 불쾌하기 짝이 없는 불합리한 일이다.
“시간 낭비라는 말은 어불성설입니다.”
내가 입을 열자 순간적으로 이목이 집중된다.
“이번 무대의 완성도는 실력 역시 중요하지만, 컨셉이 컨셉인지라, 컨셉을 얼마나 소화할 수 있느냐도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러니 시간 낭비라 생각하지 말고 두 분 다 연습해 댄스트레이너분의 의견을 묻는 것이 나아 보입니다.”
그러자 낙제생 2의 표정이 당황하더니 곧 일그러졌다. 염병도 저런 염병이 없다.
“…왜, 왜 이든 형 편 들어줘요?”
아, 진짜 너무 싫은데. 카메라 앞에서 대체 무슨 자신감인가.
“공정한 기회를 주자는 게 편 들기로 보입니까?”
“이든 형이 저처럼 말했어도 똑같이 그랬을 것 같아요?”
나는 공적인 회의라 높이고 있던 말을 살포시 놓았다.
“이든 형이 그런 말을 할 것 같진 않지만, 하고 싶은 사람이 두 명이 넘는데 실력 확인을 거치지도 않고 자기가 하겠다 무작정 주장하면 누가 됐든 일단 반대할 거야.”
그러자 일동이 모두 당황하는 표정을 짓는다.
…왜 당황하지? 맞는 말을 해도 당황하면 어쩐담.
“그, 형은! 이든 형이랑 룸메니까 더 친하고 그래서 저한테 뭐라 하는 거잖아요!”
낙제생 2가 급발진하기 시작한다. 우아하지 못하군. 나는 냉정한 눈으로 녀석을 응시했다.
“친해서 뭐라 하는 게 아니라 억지 부리면서, 아무런 경쟁도 거치지 않고는 메인 댄서라는 자리를 차지하는 게 불합리하니까 뭐라 하는 거지.”
“…….”
“조금 더 합리적인 방식으로 메인 댄서를 자신이 해야 한다고 주장했어야 한다고.”
녀석은 흘깃 류이든을 쳐다본다. 상황을 중재해 주길 바라는 것 같다만, 너한테 엿먹은 당사자한테 도와달라는 시선을 보내봤자…….
“그만하자, 동화야.”
도와주는군.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입을 다물었다
“하하, 망했네.”
그러자 류이든이 허탈하게 웃기 시작한다. 분위기가 망한 것은 맞으니 닥치고 있자.
“동화 당황하는 모습 한번 보려다가 실패했네.”
그렇지, 내가 당황하는 모습… 음?
“형, 이거 어떻게 마무리해야 돼요?”
김현진이 류이든에게 진지하게 묻는다.
“끝난 거 맞죠?”
그제야 웃을 수 있다는 듯 이현재가 작게 웃기 시작한다.
나는 천천히 상황을 파악한다. 하지만, 모르겠는데?
“…무슨 상황입니까?”
그러자 류이든이 크게 소리쳤다.
“지금까지 깜짝 카메라였습니다!”
그제야 마음이 놓이는지 김현진은 한숨을 푹 내쉬곤 류이든한테 달려가서 안겼다.
“형, 저 진짜 겁나 무서웠어요. 다음부터 동화 형 깜짝 카메라 할 때 저는 빼주세요.”
“그래, 현진아. 나도 옆에서 보는데 무섭더라. 어우, 무슨, 말하는데 냉기가 폴폴.”
나는 천천히 그 상황을 지켜보다가 깨달았다.
속은 거였군. 젠장.
“…누가 주동자입니까?”
그러자 낙제생 2가 류이든에게서 바로 떨어지더니 조심스레 류이든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류이든이 배신감 느껴진다는 표정으로 낙제생 2를 바라보곤 속삭인다.
“현진아, 너도 같이 하자고 그랬잖아.”
“이든 형, 형보다 동화 형이 조금 더 무섭네요.”
그렇게 김현진은 장난스레 웃고 연습실 밖으로 부리나케 도망갔다.
…낙제생 2는 자퇴 보류하도록. 생각뿐이지만 말이 심했던 것에 대해 낙제생 2에게 소소한 사과를 속으로 읊조렸다.
그 후 난 홀로 남은 류이든을 약간의 미소와 함께 바라보았다.
“…진짜 시간 낭비를 했습니다.”
“저, 그게…….”
“중간 점검이 바로 이틀 뒤인데 말입니다.”
“…….”
“저는 시간 좀 아껴보겠다고 지금 밤새운 상태로 편곡하고 나서 한숨도 안 자고 바로 회의하고 있는데, 누구는 남을 속이기 위해 시간을 허비하는 계획을 짜왔군요.”
“…죄송합니다, 동화 님.”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여 줬다. 이현재가 다시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 * *
#A팀 무대 전 VCR 가편집본
[Q. 팀 연습 과정 중 가장 고생이 많았던 멤버는?]질문 자막 뒤로 지동화가 낙제생 2라고 부르는 김현진이 나와 답하기 시작한다.
[저는 동화 형이요. 연습 기간에는 하루에 두 시간 정도밖에 안 잤을걸요?]이번엔 이현재가 나온다.
[Q. 팀 연습 과정 중 가장 고생이 많았던 멤버는?] [음, 동화 형이요. 동화 형한테 정신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은 것 같아요. 제가 힘들 때마다 형한테 가서 상담받고 그랬어요.]다음으로 류이든, 낙제생 1인 박우진이 나와 같은 질문에 지동화라고 짧게 답하는 장면이 지나간다.
이번에는 지동화가 나온다.
[Q. 팀 연습 과정 중 가장 고생이 많았던 멤버는?]똑같은 질문이 주어지자 지동화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답한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다 같이 고생해서 누가 유독 더 고생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그리고 이어지는 질문.
[Q. 류이든 연습생에 대한 음모를 계획하고 있다는데, 맞나요?] [네.]화면이 바뀌고 류이든이 나온다.
[Q. 알고 계셨나요?] [말만 그렇게 하지, 동화가 칼로 찔러도 안 죽을 자신 있어요.] [Q. 그게 가능한가요?]지동화가 나와 다시 답한다.
[그 형은 사람이 아니고 기계라 가능합니다. 그래서 독살을 계획 중입니다.] [Q. 김현진 연습생이 지동화 연습생을 존경한다고 하던데, 알고 계셨나요?] [현진이가 직접 말한 겁니까?]김현진이 잠시 화면에 등장해 답한다.
[네(웃음).] [무슨 의도인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무작정 편들어 줄 일은 없다고 전해주십시오.]* * *
준성은 다시 찾아온 무대를 보았다. 이번에 진행되는 경연은 5 대 5 팀전. 어제 제출된 서류를 보니, 이번에도 지동화가 자기 팀 곡을 편곡하는 데 힘썼다고 한다.
‘레미니아의 ‘지니’라… 모 아니면 도겠군.’
소원을 이뤄주는 요정이라는 컨셉이 너무 확고하다 보니 다른 분위기로 바꾸려면 가사를 뜯어고치는 등의 대공사가 필요할 것이다.
‘A&R팀이 도와주기야 하겠지만, 한계가 있지.’
연습생들의 아이디어가 뒷받침해 주지 않는다면 무대를 망칠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는 연습생 생활을 함께했던 현재와 이든이가 함께 있는 지동화 팀이 이겼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심사위원으로 들어온 이상 냉정하게 평가해야겠지.
잠시 후, 스탠바이가 들어가고 심사위원들은 모두 백스테이지로 이동한 뒤, 관객 입장이 시작되었다.
오늘 팀 경연은 1화가 방영하기 전인데도 관객을 신청받았다던데, 이 프로그램이 아이돌판에서 은근하게 화제가 되는 게 맞긴 한가 보다.
* * *
‘나는 아직 판에 복귀한 것이 아니다. 단지 맛만 보러 온 것이다. 단지.’
자신의 본진이 성추행 이슈로 몰락할 때 탈덕하여 다신 이 망할 아이돌판에 돌아오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그녀는 우연히 친구가 공유해 준 지동화의 소개 영상을 봐버렸다.
냉정한 길고양이가 떠오르는 얼굴, 그러나 목소리는 꿀 떨어지고, 웃으면 따스한 분위기, 그런데 부끄러움은 잘 타서 귀가 쉽게 빨개진다니, 젠장, 아이돌 안 하면 뭐 하고 살려고 했단 말인가?
하지만 그녀는 절대 덕질에 다시 뛰어든 게 아니다.
다만, 다만 호기심에 불과하다.
그냥 조금 심심해서 <더넥니> 공식 유튜브에서 지동화가 나온 모든 영상을 돌려보다가 우연히 방청 신청란을 발견해서 아주 사소한 호기심에 신청했을 뿐이다.
그렇게 그녀는 지동화를 덕질하는 것은 아니라고 스스로 합리화했다.
그런 그녀의 손에 들린 판넬에는 ‘희망을 줄게 지동화’라고 적혀있었다. ‘지동화의 귀를 갖고 싶어’라는 문구랑 끝까지 고민하다가 뒤의 것이 너무 변태 같아서 앞의 걸로 결정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절대 지동화를 덕질하는 것은 아니다.
“자, 신청 순서 1번부터 차근차근 입장할게요! 스탠딩석 아니고, 신청 순서가 좌석 번호니까 뛰실 필요도 없어요!”
스태프가 크게 소리 지르자, 그녀는 손에 든 3번이라 적힌 종이가 주머니에 안전하게 있는지 확인했다.
‘정신 차리자. 딱 한 번만 보는 거야. 더는 아이돌판에 뛰어들지 않기로 했잖아.’
그녀는 심호흡을 한번 하고 어젯밤에 인쇄해 온 패널을 꼭 움켜쥔 채로,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