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20)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120화(120/343)
120.
드라마의 성공은 드라마 방영 이후에 정해질 일이니까, 나는 현재 할 수 있는 일에 주목하기로 했다.
바로 앨범 작업.
이번에는 타이틀이 아니더라도, 한 곡 정도 내가 하고 싶은, 멤버들과 함께 부르고 싶은 곡을 써 보고 싶다.
‘마지막 시작 : the First Last’의 경우 쓰고 싶었던 곡이었지만, 타이틀이라는 이유로 내 욕심을 모두 담기에는 문제가 있었다. 목화에게 주고 싶었던 곡을 작업했던 것처럼, 내 멋대로 한번 곡을 써 보고 싶다.
물론 어느 정도는 욕심이지만.
그렇게 한참을 다시 작업에 몰두하다가 W앱을 켤 시간이 와서 월간 지동화를 진행했다. 부쩍 보는 분들의 수가 늘어난 것 같은데, 이현재가 말했던 ‘떡상’이라는 해괴한 단어의 영향인가 싶었다.
그렇게 키보드를 만지작대며 채팅창을 치다가, 눈에 띄는 댓글이 하나 보인다.
― 곧 아체대 본방인데 혹시 썰 풀 거 없어????
아, 그 망할 체육대회가 본방송을 하나 보군. 나는 살풋 웃음을 흘렸다. 어쩌면 나 때문에 고생하셨을 스태프분들께는 죄송하지만, 당황했을 PD를 상상하면 슬며시 미소가 흘러나오고 만다.
“체육 대회는, 꽤나 재밌게 즐겼습니다. 본 방송 내용을 스포일러할 수는 없지만, 보시면 루미너스분들도 즐거울 거라고 생각합니다.”
채팅창에선 ‘오—’라는 반응이 쏙쏙 튀어나온다.
혹시 친해진 아이돌 없어 동화?
“친해진 아이돌… 이요?”
음, 없는데. 솔직한 말로, 기존에 알던 사람 말고는 딱히 다가가지도 않았으니. 그나마 예언과 계약을 한 일이 하나 있다. 감이 좋다고 본인 입으로 말하지만, 감이라는 건 무수히 많은 경험과 영민한 감각이 통계적으로 모여 만들어지는 것이니, 참고는 할 만할 것이다.
없다고 말씀드리기엔 질문 주신 분께 예의가 아닌 건 아닐까 잠시 고민하던 중 또 다른 댓글이 눈에 띈다.
— 예언 씨가 인별 라이브에서 너 언급했던데 봤어????
“예언 씨가…… 음, 죄송하지만, 인별 라이브가 뭔지부터 우선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다시 채팅창이 난리가 난다. 음, 보아하니 편곡보다도 대화를 나누는 게 더 즐거울 때인 것 같으니, 나는 잠시 키보드에서 손을 내려놓고 댓글을 빠르게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아, SNS에서 W앱 같은 매체를 제공해 주는 거군요. 예언 선배님이 저를 언급해 주셨고.”
나는 차근차근 댓글을 정리해 본다. 인별 라이브가 무엇인지부터 어떤 일이 있었는지 천천히 깨닫는다.
단순하게 말하면, 준성과 예언이 SNS 라이브를 진행하다가 내 이야기가 우연히 나와서 긍정적 평가를 쏟아냈다는 이야기였다.
“그랬습니까. 저도 준성 선배님에겐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예언 선배님은… 사—실 안 지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예전에 제가 곤경에 처했을 때 도와주신 적이 있습니다.”
— 와 동화도 다른 연옌 만나고 했구나 ㅠㅠㅠㅠ 안심이야 진짜 ㅜㅠㅠㅜㅡㅜ
— 친목질 안 할 줄 알았는데 의외네 ㅎㅎ
— 와 동화 입에서 다른 연예인 얘기 처음 듣네 ㅋㅌㅋㅌㅋㅋㅋ
나를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 모르겠군. 옛날 유치원에 다닐 시절, 친하게 지냈던 인간 이야기를 했더니 다행이라며 한숨 쉬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르는 건 우연일까.
“왜 다들 아들 보듯 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들로 볼 만한 인간이 무수히 많은 그룹인데 말이다. 나를 제외하고 전부니까 무수히 많다고 할 수 있다.
* * *
작업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왔을 때, 현관에 처음 보는 신발이 두 켤레 늘어나 있는 게 보였다. 음, 우리 숙소에 놀러 올 만한 인간이 있던가. 나는 신경이 약간 날카로워진다. 이 숙소에 들어올 만한 분들의 신발 종류는 다 외우고 있고, 두 명이나 새 신을 사서 바꿔 신지는 않았겠지.
조심스럽게 고개만 약간 내밀어 확인해 본다. 혹시 모른다, 과거의 일도 있고 하니. 그리고 안에서 낯선 인영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더니 소리 지른다.
“작곡가님!”
뭐야, 저 예언.
그 목소리에 옆에 있던 익숙한 인영도 함께 고개를 돌린다.
“동화 후배!”
준성.
둘 다 꺼졌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이 있는데. 우리 공간에서 뭘 하는.
달려온 둘은 내 팔을 잡더니 안쪽으로 이끈다.
“어서 와요, 감사 선물이 있다고요!”
“그래, 동화 후배! 우리 예언이가 W앱에서 언급해 준 거 고맙다고 아이스크림 사왔어!”
정말 죄송하지만, 두 분 다 그만큼이나 할 짓이 없으십니까. 분명 TOT가 이번에 컴백 앨범 작업 들어가서 내가 곡도 쓰고 있는 걸로 아는데.
탁자로 가보니 이미 채하민과 이현재, 그리고 석준이 앉아서 숟가락을 들고 한 입씩 퍼 먹고 있다. 류이든은 당연하게도 건강상 문제로 먹지 않고 있었다.
“형, 이 집 엄청 맛있다.”
채하민이 어느새 말을 놨는지 예언에게 반말로 헤실대고 있다.
“와, 저두 이거 사 먹어보고 싶었는데! 인터폰 화면에 이거 보이자마자 엄청 설렜어요!”
이어서 이현재. 거기에 석준은 지나친 감격이라도 몰려오는지 눈을 꼭 감고 작은 목소리로 ‘감사합니다.’라고 중얼거린다.
정말, 기분이 묘하군. 목화가 맛있는 거 사주자는 말에 다른 사람 따라갔을 때 이런 기분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준성이 건네는 숟가락을 하나 받아들었다. 음, 그나마 조금 덜 달아 보이는 걸 골라야겠군.
“아, 그러고 보니까 이번에 드라마 대본 하나 결정하셨다면서요?”
한 입 베어 물고 있는 내게 예언이 대뜸 물어온다.
“…네, 맞습니다.”
“그거, 석류랑 뭐더라? 내 인생 뭐시기 중에서 뭐 골랐어요?”
조금 뜬금없는 질문에 의도가 무엇인지 파악하려 얼굴을 잠시 바라본다. 기대하는 눈빛이군. 어떤 드라마를 고르는 게 더 이득이 되는 일인지 명확하게 알고 있다는 뉘앙스가 풍긴다.
“…석류는 다시 활짝 필 테니, 골랐습니다.”
“역시. 은근 도움이 된 거죠?”
나는 뇌를 재빨리 굴려 본다. ……그 목록에 있던 연예인 중에 저 드라마에 출연하는 사람이 있나 보군. 다만 아직 드라마에 누가 출연하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선택한 거였기에 달리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그 대화를 다른 멤버들과 말을 하면서도 멀티 태스킹 능력이 탁월한 준성은 흠칫하더니 예언을 잠시 봤다가 다시 대화에 집중한다. 저런, 영업 비밀이었나 보군.
“……음,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오우, 뭐야. 이번엔 아니예요? 나 좀 슬플라 그래잉.”
자연스럽게 넘어가려고 교묘하게 말을 꼬아놨는데, 굳이 숨긴 부분을 짚고 넘어가는군.
“…죄송하지만, 제가 귀여운 척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어, 예언이는 그냥 귀여운 건데?”
……잘도, 목화가 해야 그나마 납득할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나는 숟가락을 가만히 내려두고 예언을 잠시 바라본다.
“왜요, 귀여워서?”
……준성, 당신이랑 성격이 비슷한 인간이 하나 더 있으면 안 될 것 같은데 말입니다.
예언의 아무렇지도 않은 무리수를 듣던 다른 멤버들까지 우리 쪽을 바라보고 있을 때, 우리의 훌륭한 선배 준성이 입을 열었다.
“하긴, 동화 후배가 나도 좀 귀여워하더라고.”
……하, 귀여움이라는 정서의 근본은 갓난아이를 바라볼 때의 종족 보존의 본능과 맞닿아 있다고 하는데, 당신들은 이후에 보존되면 안 될 어떤 존재들이 아닐까.
나는 조심스럽게 생각했다.
* * *
블로센스의 숙소에 들렀다가 집으로 향하는 준성의 차 안. 준성이 먼저 입을 연다.
“동화 후배한테 얘기한 거야?”
“뭐르을?”
“너 이름값 하는 거.”
원리는 잘 모르지만, 준성은 알고 있었다. 예언이 사람을 보는 눈이 엄청나게 정확하다는 걸. 처음에는 준성 본인도 왠지 모르겠지만 예언이 하는 말을 별로 믿지 않았지만, 경험적으로 알게 됐다.
“에이, 뭐 어때. 어차피 내 얘긴 남들이 잘 안 믿는 거 알면서?”
“아니, 동화 후배는 보니까 너 믿고 있는 거 같던데.”
“그게…… 좀 신기하긴 하지. 걔 기억나? 레오.”
“아, 걔 최근에 행적 좀 이상하긴 하던데. 예전에 너가 주의 리스트에 올렸던 애지?”
이렇게 또 예언의 예언이 하나 더 적중한다.
“응, 그래서 체육 대회 때 쟤 주의하라고 동화 씨한테 얘기했는데, 세상에나, 그걸 한 방에 믿더라?”
준성 본인조차 주의 리스트를 처음 받았을 때, 이걸 믿어도 될까 한참을 고심했다. 경험적으로 이번에도 맞을 거라고 생각했는데도, 분명히 그렇게 이성적으로 판단했는데도 어째서인지 예언의 말을 별로 믿지 못했다.
“뭐, 그러면 됐어. 나는 동화 후배가 예전 우리 멤버들처럼 너 대할까 봐 그랬지.”
태생적으로 타인에게 믿음을 잘 얻지 못하는 인간. 준성은 그렇게 예언을 설명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지금 와서는 자신이 예언에게 믿음을 주는 사람이 되었고, 그래서 멤버들과 예언 사이를 조율하고 있지만, 처음에는 다툼이나 갈등도 심심찮게 발생했었다.
“……괜찮대도. 나도 다 이해한다니까.”
“이해해도, 과거는 변하지 않지. 예전에 멤버들이 너랑 싸웠던 것도 가만히 보고 있었던 것만 해도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미칠 노릇인데.”
예언은 그 말에 조용히 웃는다.
“나는 지금 형이 내 말 들어주는 것만 해도 감지덕진데 무슨.”
“그건 감지덕지가 되면 안 되는 거라고 몇 번을 말하니, 예언아.”
준성은 운전에 집중하면서도 잔뜩 굳은 표정이 되고 만다.
“어쩄든, 다음에도 사람들 보고 어떤 사람인지 알 것 같으면 나한테 꼭 얘기해줘.”
믿지도 못할 말을 어떻게든 믿어주겠다는 리더의 말에 예언은 다시 웃음이 난다. 자신을 믿을 수 없는 인간이 자신에게 보내주는 믿음은 참, 신기한 맛이 난다.
운명적으로 믿을 수 없는 존재가, 대체 어떻게.
“나는 진짜 형 안 만났으면 사는 거 더럽게 퍽퍽했을 거야아.”
예언의 말에 준성은 다시 표정을 찌푸린다.
“너도 참……. 그런 걸 당연시 하면….”
준성은 말을 하다가 늘 반복된 잔소리라는 걸 알기에 입을 닫았다. 그렇기에, 요즘 들어 자신의 예언이 틀리는 걸 절대로 말하지 않을 것이다. 이현재나 류이든이 데뷔하지 못할 거라는 예측이 어긋났다는 것도, 그래서 블로센스의 그룹 구성 자체가 달라졌다는 것도.
절대로, 말하지 않을 것이다.
* * *
드라마 촬영과 OST 작업까지 모두 마치고, 우리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공백기를 잠시 보내게 됐다.
“형, 저 숙제 검사 좀 해주세요.”
이현재는 예상보다 공부에 훨씬 더 진지하게 임했기에, 본격적으로 컴백 준비가 시작되기 전에 기반을 다져두러 최선을 다하고 있다. 요즘은 얼굴 볼 일이 과외 말고는 없을 정도니까.
나는 이현재가 건네준 수학 문제집을 받아들고, 답을 매긴 뒤, 틀리는 유형을 차근차근 분석해 본다. ……아무리 봐도 그냥 똑똑한 것 같은데. 성적이 올랐다기보다는 제대로 머리를 쓰고 있다는 인상이 더 강하다. 아마 연예인으로 데뷔하지 못했으면 부모님의 말을 따라 살다가 학문적으로 큰 성취를 이루지 않았을까.
뭐야, 깜짝이야. 당신 갑자기 뭡니까.
그리고는 다시 아무런 말이 없는 기지생. 대체 뭐하는 인간인지. 대화가 안 될 뿐 지속적으로 본인 스스로를 모니터링하고 있었군. 누가 사회 부적응자 아니랄까 봐, 스토커랑 다를 바 없는 음습한 기질이다.
“형, 뭐 생각해요?”
“…공부 잘한다고.”
일단은 이현재가 보완해야 할 부분 위주로 설명해 줘야겠군,
그렇게 이현재의 스터디 코칭을 하고 있을 때였다. 류이든이 회사 내 새로 생긴 피트니스 클럽에 운동을 나갔다가 돌아왔는지 개운한 표정으로 와서는 우리를 정겨운 표정으로 바라본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났는지 짧은 감탄 후에 류이든이 대형 소식을 하나 던진다.
“얘들아, 우리 예능 들어왔대.”
…하, 공백기를 나름대로 만끽하고 있었는데.
“요즘 그렇게 유행한다는 관찰 예능이야.”
……그게 뭔데. 혹시 기지생이 현재 진행형으로 하고 있는 음습한 짓거리를 말하는 건가.
[정답입니다!]하, 꺼지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