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21)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121화(121/343)
121.
관찰 예능.
이현재와 류이든에게 문의한 결과, 사람들의 음험한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형식의 방송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연예인의 사생활을 보고 싶다는 욕구.
다만, 우리가 출연할 예정인 프로그램의 경우 지상파 방송이 아니고, 이번에 새로 시작하는 방송이라 우리가 캐스팅됐다고 한다.
그런데, 그러면 그게 아이돌이 찍는 리얼리티와 다를 바가 무엇인가. 결국에는 연예인의 팬들을 대상으로 방송하는 단물 빨기용 프로그램이 아닐까. 방송 대본 짜기 귀찮아서 만든 거겠지.
하여간 방송국 놈들, 일을 제대로 하질 않는군. 연예인이 되고 나서부터 꾸준히 이어진 방송국 혐오가 만개하는군.
오늘은 나태함이 몸에 밴 방송국 놈들과의 회의가 예정되어 있기에, 우리는 차에 올라탔다.
“저—는, 관찰 예능 같은— 거 한 번 찍어—보고 싶었습니다.”
자신의 일상을 남에게 보이는 게 즐거운 사람도 있을 수 있지. 다만 나는 아니기에 적극적으로 공감해 주지는 못하겠다.
“모두—에게 프루츠 월드의 멋짐을! 보여 줄 겁니다!”
그런 이유였군. 방송을 덕질 대상 홍보용으로 활용할 생각을 하는 인간은 아마 너밖에 없지 않을까 싶구나, 준.
그렇게 소담한 이야기를 나누고 방송국 회의실에 들어갔다. 이번엔 이례적으로 장해진 팀장님이나 강승원 실장님 없이 우리들만 들어왔다. 아마 방송 구조 같은 것만 얘기할 예정이라 그런 것 같다.
얼마 후 들어오신 방송국 관계자분이 들어오신다.
“어우, 안녕하세요, 블로센스 여러분.”
자리에 앉으신 그분은 천천히 설명을 시작한다.
“일단은, 저희 프로그램은 관찰 예능이긴 한데, 조금 특이한 일을 하셔야 해요! 아무래도 그냥 일상 관찰은 너무 흔하다 보니까, 일상에선 접하기 힘든 상황에 여러분을 던져두고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촬영하는 거거든요.”
통제된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관찰하는 걸 우리는 흔히 실험이라고 부르지 않나.
“게다가! 촬영 당일까지 어떤 일을 하게 되실지는 모두에게 비밀이랍니다. 저희 방송국 팀원 중에도 아주 일부만 알고 있어요. 물론 엔터사분들도 알고 계시겠지만 아무도 말해 주지 않으실 거고요, 설레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새로운 일을 하는 것. 상상만 해도 재밌지 않나요?”
자기애가 강한 분이군. 자기가 만든 작품에 대한 애정이 클수록 실패했을 때의 상실감도 큰 편인데.
“그래서 회의에서도 딱히 드릴 말씀이 없답니다. 대신에 저희가 준비한 건 있죠! 여기, 안전을 위한 지침사항이 있답니다. 꼭 읽어보시고, 적혀 있는 대로 준비해서 촬영 날 와주시면 됩니다.”
즉, 아무런 대책 없이 벼랑에 밀린 인간이 어떻게 행위하는지를 촬영해서 대중들로부터 금전적 이득을 얻겠다는 거군. 대단히 가학적인 방송이다.
“어쨌든 여기까지, 혹시 질문 있으신가요?”
질문이 불가능한 상황을 조성하고 묻는 저의가 무엇입니까.
“아무도 없으시네요! 그러면 저희 방송 잘 좀 부탁드립니다. 요즘 잘 나가기 시작했다는 소식 듣고 빠르게 캐스팅해 왔으니까요!”
우리는 달리 할 말이 없어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정보가 최대한으로 제한되는 직업이라니, 뭐 이런 직업이 다 있나 싶군.
곧 목화도 데뷔할 텐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부디 더러운 방송국 놈들의 마수가 내 동생에게는 미치지 않기를.
* * *
“야, 동화야, 이거 안전 수칙 내용이 뭔가 좀 기괴하지 않아?”
류이든의 말에 나는 안전 수칙을 유의 깊게 살펴본다. 곧바로 눈에 띄는 것은 ‘체력을 단련할 것’이라는 문구. ……하, 빡세게 굴리겠다는 의지가 지나치게 투명하다.
“무슨 일을 시키려는 건지. 공사장 같은 데라도 가나?”
거기에 가도 본인은 잘 해낼 것 같은 건강을 지녔잖아, 이든. 자신은 괜찮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지 말았으면 한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힘든 일을 시킬까요? 잘못하면 동화 형은 쓰러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이현재의 말.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나를 무슨 종이 인형 보듯 하는 태도는 안타깝기 그지없다.
“에이, 몸이 지쳐 쓰러져도 동화는 정신력으로 버틸걸.”
“그럼 더 그런 거 하면 안 돼! 그러다가 컴백하고 무대에서…….”
류이든의 예측에 끔찍한 상상을 했는지 채하민이 두 손으로 입을 막고 눈을 꼭 감는다. 미친 토끼.
“…지금 예측해 봐야 알 수 있는 건 없지.”
애초에 안전 수칙도 어떤 일에 가져다 붙이든 말이 되는 것들밖에 없으니. 물론 조금은 이질적인 내용들도 있긴 하지만.
그저 최후의 날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지내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대체 뭘 찍길래, 이걸로 2박 3일을 찍을까…….”
그럼에도 류이든은 생각이 많은지 끙끙대기 시작한다. 빠르게 포기하는 편이 이롭지 않을까 싶다.
어차피 본격적인 촬영은 설 연휴가 끝나고 나서 진행된다고 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목화와 함께 집에서 쉬고 나서 진행되는 것이니, 체력적으로 문제야 없겠지.
* * *
설 명절, 지동화의 팬은 곧 있을 개강에 대한 공포도 잠시 잊은 채 그저 즐거웠다. 왜냐하면, 아침부터 지동화의 한복 차림을 볼 수 있었으니까. 심지어 자컨까지 나오며 서당에서 한시를 짓는 지동화까지.
진지하게 붓을 들고 한자로 시를 짓는 모습은, 지나친 충격 그 자체였다. 아이돌 덕질 역사에서, 한시를 지으라고 시켰더니 한시를 짓는 아이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한시를 번역하면 다음과 같았다.
눈 내리는 산골에 올 이가 없으니
홀로 산책하며 달빛 속을 걷네
눈 속 매화 한 송이 나를 맞이하니
향기 옆에 앉아 한숨을 쉬어 보네
급히 지은 거라 작품성이 좋은지는 약간 이론의 여지가 있겠지만, 이걸 한자로 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미치는 포인트다.
심지어 자신이 국문학 전공자다 보니 아는 것이지만, 운자까지 맞춰서 한시를 짓다니. 커뮤니티와 SNS에 운자 관련해 공유했더니 모두들 한마음 한뜻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너무 좋아서. 대체 뭘 하고 살던 인간이란 말인가!
그녀는 아침부터 지금까지 그 영상을 나노 단위로 쪼개서 반본 재생하는 중이었다. 그때 방문이 벌컥 열리며 성난 목소리가 울린다.
“얘! 너는 대체 아침부터 뭐 하고 있어! 와서 엄마 좀 도와! 니 아버지도 와서 요리 거드는데 너는 뭐해!”
“엄마, 저 지금 화상 데이트 중인데.”
“지랄도, 지랄도, 아주 진짜.”
들어오신 어머니는 고무장갑을 낀 손을 정성스레 벗고 그녀의 등짝을 강하게 후려친다.
“아! 엄마! 아파!”
“빨리 나와, 이년아. 화상 데이트는 무슨, 이 화상아. 망상 데이트에 빠져 가지고.”
그렇게 화상 데이트를 종료하고 밖에 나와서 음식 준비를 돕게 된 그녀는, 두 번째 시련에 도달한다. TV로 아체대 본방 틀기. 현장에, 갔어야 했는데, 망할 손.
“엄마, 심심한데 TV나 틀까?”
“…너 망상 도와주려고 있는 TV 아니야.”
그에 곧바로 의도를 눈치챈 어머니는 날카롭게 톡 쏜다.
“어머니, 노동을 할 때에는 그에 정당한 대가가 주어져야 합니다. TV로 그 보상을 대신한다면 어떨까요?”
“아주, 대학 보내놨더니 이상한 것만 배워와서는, 틀어라, 틀어. 일만 제대로 하면 뭐 어떻냐.”
그녀는 말이 바뀌기 전에 재빨리 리모컨을 들어 채널을 조종한다. 그리고 10분 후 시작이라는 예고를 보며 고개를 흡족하게 끄덕인다.
“빨리 와서 떡 떼!”
그렇게 한참을 노동하며 곁눈질로 TV 보기를 반복하다가, 일이 얼추 끝나자 어머니와 함께 소파에 앉아 TV를 보게 된다.
“쟤네냐?”
“응.”
“어우, 쟤는 엄청 똘똘해 보이네.”
그녀는 어머니의 손가락 끝이 닿은 이가 채하민인 것을 확인하고는 웃어 버렸다.
“쟨 조금 놀게 생겼어. 공부 안 했을 것 같다, 야.”
이번에는 지동화. 약간 차가워 보이는 인상 때문에 어머니의 편견을 자극한 것 같다.
“엄마, 쟤 한국대야.”
“……아니, 무슨 저렇게 어린 가수가. 거짓말하지 말어. 팔 안쪽으로 굽는 거 티나, 인마. 요즘 애들은 다 연습생인가 해서 나오는 거잖아.”
어차피 말해 줘도 믿지 못할 이야기 논쟁해 봤자다.
‘그러고 보니까, 동화 퀴즈쇼 대박이니까 꼭 보라고 했는데.’
이미 아침 설날 자컨부터 지동화뽕을 치사량으로 주입받았는데, 이러다 진짜 죽는 건 아닐까.
그리고, 마침내, 퀴즈쇼.
초반부는 빠르게 편집이 됐지만, 뒤로 갈수록 템포가 느려지더니, 마침내 지동화 홀로 가만히 앉아 MC와 1대1 결투를 하는 듯한 연출이 이어진다.
비장한 배경음악, 마치 전쟁에서 홀로 선 명장 같은 모습, 답을 쓰기 전 잠시 눈을 감고 생각을 정리한 뒤, 막힘 없이 써내려가는 손까지. 모든 것이 지동화뽕을 주입하기 시작한다,
“어머나, 공부한 애긴 한가 보네. 진짜 한국대생인 거야?”
“응, 멋있지 않아?”
“멋은 있는데, 왜 공부 계속 안 하고…….”
그게 배덕 포인트인데 잘 모르네, 우리 엄마.
90번대에 들어서고, 대학물 좀 먹은 본인조차 잘 모르는 사람들의 이름과 이론이 답으로 제시되기를 몇 번. 문제치고는 치졸한 느낌이 드는, 러시아 소설 등장인물 풀네임 쓰기 문제가 마지막 문항으로 등장한다.
더욱 웅장해지는 배경음악, 잠시 생각하다가 슬며시 미소 짓는 지동화.
우승을 확정한 이에게서 보이는 여유로움에 빠져들었다.
들어 올린 정답판이 확 클로즈업되며 한 번에 읽기도 어려운 길이의 답안이 강조된다.
TV 속에서 흐르는 침묵.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비장한 분위기에 압도된 모녀는 손을 모아쥐고 MC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 정답입니다!
MC의 판정과 동시에 터져 나오는 음악. 지동화가 자리에서 일어나 카메라를 향해 살짝 미소 짓는다.
그리고 이후 MC와 인터뷰가 진행될 차례였지만, 왠지 모르게 지동화의 인터뷰는 진행되지 않았다. 다만 약간 어색하게 지동화에게 같은 팀이 달려들어 부둥부둥 껴안는 모습만 나온다.
“아니, 쟤는 왜 인터뷰 안 해. 딴 애들은 다 어느 정도 했잖아. 이게 그 통편집이니?”
어머니의 안타까운 목소리로 이어진 말. 어머니 역시 지동화가 어떤 인터뷰를 할지 기대하는 중이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딸에게까지 닿지는 않는다. 이미 그녀는 핸드폰을 들어 분노를 쏟아내는 중이었으므로.
“아니, 근데 쟤는 연예인 준비도 하면서 공부도 저렇게 했는데. 너는 이년아, 뭐냐!”
그러나 동시에 다른 방향으로 확장된 어머니의 분노로 곧 핸드폰을 손에서 놓아 버리고 말았다. 저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옆에서 폰질이나 하는 딸내미가 약간 미워 보였으니까.
‘…아니, 내 돌이랑 공부로 비교를 다 당하네.’
어머니의 쏟아지는 말의 폭포 앞에 선 그녀는.
“쟤는 어! 저렇게 잘생기고 머리 좋고 어? 노력도 엄청 열심히 하는 것 같고 그런데!”
내 돌에 대한 칭찬에 기뻐해야 하는지, 아니면.
“너는 뭐 해, 너는! 이 밥 먹고 싸는 기계 같은 년아!”
어머니의 잔소리에 슬퍼해야 하는 건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 * *
이 치졸한 방송국 놈들, 예상대로 잘라 버렸군.
“형, 형은 왜 인터뷰 안 나와?”
“예습해 둬. 믿을 수 없는 인간의 민낯이야.”
“오…… 방송국 놈들이 뒤통수친 거야?”
자랑스러운 동생답게 말 한마디에 바로 알아듣는 목화다. 엄밀히 따지면 내가 때리려던 걸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회피한 거지만.
“…응.”
거짓말은 가끔 옳을 때가 있다. 교육 효과가 있으니 이 정도 거짓말은 허락될 것이다.
“진짜, 형이 조기교육 해 준 덕분에 방송국 놈들한테 덜 당할 수 있을 것 같애.”
나는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빠르게 흡수하는 걸 보면, 목화도 공부를 했더라면 이현재처럼 훌륭한 성적을 받았겠지. 참 이렇게 다재다능한 녀석이 동생이라니.
“형, 이번에 나가는 방송에선 뒤통수 안 맞게 주의해야 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그렇게나 가학적인 실험 예능에 당해주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