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22)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122화(122/343)
122.
기린.
나는 고개를 약간 돌려 왼쪽 멀리를 바라봤다.
코끼리.
그리고 나는 고개를 내려 내 아래쪽을 바라본다.
호랑이.
뭔데, 젠장할, 이 망할 방송국.
* * *
아침부터 멤버들은 묘한 열기에 들떠 있었다. 평소라면 무슨 일을 할지 결정된 상태에서 스케줄을 나가다 보니, 이렇게 미결정된 상태의 스케줄을 나가는 건 처음이라 그런 것 같다.
아쉽게도, 나는 기대도 걱정도 되지 않았다. 그저 별 해괴한 일거리가 등장하더라도 넓은 마음으로 받아들이자는 다짐을 할 뿐.
차에 타자 곳곳에 카메라가 이미 설치되어 있는 게 보였다. 음, 관찰 예능이니 저 카메라의 존재를 무시하는 게 맞는 거겠지.
“와— 카—메라! 카—메라가 엄청 많—습니다! 관찰 예—능!”
저 공룡 놈. 아무렇지도 않게 불문율을 씹어 먹는 모습이 아름답다. 굳이 따지면 대형 초식공룡이지 않을까. 지나간 자리엔 그 무엇도 남아나지 않을 테니까.
“설렙니다! 점점! 관찰되고 있습니다!”
미친 것 같아, 준. 그러니 부디 관찰당하면서 말이 빨라지지 않으면 안 될까.
“하하, 준아, 그렇게 설레?”
“네! 여러분들! 이걸 봐주세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입니다!”
“……잠깐만, 근데, 생각해 보니까 거기 저작권 엄청 빡세지 않아?”
류이든의 그 말과 함께, 곧바로 로드 매니저님의 핸드폰이 알림음을 울린다. 운전을 하다가 잠시 정차한 사이 알림을 확인한 매니저님은 살풋 웃는다. 음, 저런.
“준 씨, 그거 안 된대요.”
“네? 어째서입니까, 이렇게 귀여운데!”
귀여움은 자본주의를 넘어설 수 없는 법이지. 어떤 사상가는 하부 구조인 자본 위에서 상부 구조가 형성된다고 보았으니, 귀여움이라는 것도 결국 자본의 힘에 의해 형성되는 가치 중 하,
“동화야, 이상한 생각.”
속삭이지 마, 하민.
“카메라가 너 보고 있어!”
누가 몰라, 이 망할 토끼 놈아.
하여튼 이 동물 농장은, 문제가 많다.
* * *
그렇게 평화로운 차량 이동 중, 뭔가, 점점 더, 산으로 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음, 혹시 생매장 체험인가.
“여기, 점점 외진 곳으로 가는 것 같다, 그지.”
“그러게. 우리 뭐 오늘 나무꾼 체험 같은 거 하나?”
…당신한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하지 마십시오, 이든. 상상만 해도 팔이 저리니까.
“어쩌면! 타잔!”
그만, 준. 자본주의를 벗어나려 하지 마. 역사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증명됐으니까.
“혹시! 뱀 잡으러 다니나!”
미친 토끼 놈, 천적입니다.
“심마니 같은 거 아닐까요?”
……그나마 그럴듯한 소리군. 내 제자답다. 하지만 기각. 2박 3일 동안 무소득으로 끝나는 건 원치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시선이 내게 몰리는 게 느껴진다. 네 생각은 어떻냐는 무언의 압박.
“……동물 농장.”
개판이라고 말할 수는 없어서 완곡하게 말해줬다. 류이든은 내 의도를 알아챘는지 약간 웃었지만, 채하민과 석준은 서로 마주 보고 그럴 수도 있겠다고 납득하기 시작했다.
역시, 동물농장이로군.
* * *
그래서, 이게 왜 진짜인 겁니까,
나는 위생복을 입고 작은 호랑이 앞에 서서 회상을 시작한다.
강원도 소재의 거대한 동물원이자, 동물학 연구자들까지 근무하고 있는 곳.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대뜸 뜬금없이 자신이 닮은 동물은 무엇인지 질문을 받고, 나는 팬분들의 의견을 존중해 고양이를 말했고, 기나긴 교육을 받은 후에, 지금 이 녀석 앞에 서게 됐다.
회상 끝. 정리하고 보니 우습기 그지없는 이야기다. 대체 왜.
“심—바다. 심바!”
종이 달라, 준.
옆에서 그 얘길 들은 사육사님은 청결한 석준의 머릿속 상태에 웃음이 나는지 깔깔대신다.
“…사육사님, 이분의 성함은 무엇입니까.”
아무리 어려도 맹수의 피가 흐르는 생물이니, 목숨의 보전을 위해 예를 갖추도록 하자.
그런 깊은 생각을 알지 못하시는 사육사님은 다시 깔깔대신 후에 힘겹게 이름을 뱉어주신다.
“정말로 심바예요!”
당신, 왜 이분의 종적 정체성을 무시하는 겁니까. 나는 조심스레 쪼그려 앉아 배운 대로 조심스레 다가간다.
“안녕하십니까, 심바 씨. 동화라고 합니다.”
녀석은 정말 고양이라도 되는지 나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내게 다가와서는 다리 쪽에 머리를 부빈다. ……음, 혹시 먹기 전에 자신의 것임을 표시하는 건가.
“어, 뭐야. 심바. 너 지금 얼굴 차별하니?”
저런 애가 아닌데, 왜 저렇게 친밀하게 굴어, 같은 소리가 연구복을 입은 분들 사이에서 울려 퍼진다.
제가 동물들 사이에서 생활하는 바람에 인간이라는 인식이 없나 보군.
나는 내 발밑에 있는 심바 씨가 놀라지 않도록 그대로 무릎 꿇고 앉아 심바 씨를 내려다본다. 자세히 보니, 귀여움이라는 속성에 상당히 근접해 있다. 모든 생물은 새끼일 때 귀여운 모습이라고 하는데, 그 말이 정말인가 보다. 목화가 어렸을 때보다는 못하지만 분명히 귀엽다.
그렇게 조용히 관찰하고 있을 때 심바 씨가 앙증맞은 발로 내 무릎 위로 기어 오려고 버둥댄다.
“오르고 싶으십니까.”
나는 배운 대로 녀석의 목덜미를 잡아 조심스레 무릎 위에 올려 둔다. 편안한지 내 무릎 위에서 다시 갸릉대는 심바 씨. 저런, 귀엽군, 어쩌면 어렸을 때의 목화보다는 못해도 지금의 목화만큼은 귀여울 수도 있겠다.
나는 심바 씨의 가슴과 목 사이를 조심스럽게 긁듯 쓰다듬어준다.
“캬웅.”
어머, 세상에, 캬웅거리다니. 나는 주변의 모든 것으로부터 단절된다. 공간은 무한히 확장되고 시간의 속도는 0에 수렴한다. 이 속에는 오로지, 나와 심바 씨만이 존재한다.
“…왜 이리 귀여우신 겁니까, 심바 씨.”
“갸릉…….”
“…정말로, 귀여움이 자본주의를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캬응!”
“철학적으로 분석하고 싶습니다. 어쩌면… 당신에겐 이성과 감성이 종합된 인간학을 정립할 길이 있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후기구조주의에 들어서 단순히 이성 중심의 사고에 대한 반박이 이뤄졌지만, 심바, 당신이 그 너머로 나아갈 단초일 수도 있지 않을까.
“컁!”
그때는 제대로 듣지 못했지만, 스태프진 측에서 ‘원래 저런 캐릭터냐’라고 류이든에게 묻고, 류이든이 ‘우리 중 제일 이상한 애’라고 답했다고 한다. 심바의 철학적 우수성을 모른다는 게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 * *
지동화가 심바와 무한한 공간을 경험하고 있을 때, 류이든은 멍하니 눈앞에 놓인 생물을 바라봤다.
“……저, 강아지 닮았는데.”
팬분들도 모두 인정하시는데.
뭐라 뭐라 중얼거리면서 앞에 놓인 생물을 바라본다. 코끼리. 왜, 코끼리.
“혹시 제가 코가 길던가요?”
카메라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때, 어둠의 손길이 서서히 다가온다. 스윽, 류이든이 쓰고 있던 사파리 모자를 휑 하니 가져간 코끼리.
“아니, 저기! 저기요! 그거 협찬인데!”
“소리 지르면 우리 애기 놀래요, 이든 씨.”
“……애기라기엔 너무 큰데. 어쨌든, 제가 한 번 제 물건을 받아보도록 할게요.”
놀랍게도 코끼리는 지능이 높은 생물이다. 한 번 본 코끼리끼리는 몇 년이 지나서도 서로 알아보는 경우가 있다고 할 정도로.
“아니!”
그렇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작은 코끼리는 류이든보다 큰 키를 활용해서 붙잡으려 시도하지만.
“이, 이, 얘 이름이 뭐예요!”
“길수예요!”
“길수야! 내 말 들어! 그거 좀 주라! 계약 조건이야!”
그렇게 블로센스의 리더로서 어떻게든 협찬을 이어나가려는 류이든을 후경으로 두고 사육사가 조심스레 카메라 앞에 서서 설명을 덧붙인다.
“우리 길수가 체력이 좋아서 놀아줘야 하거든요. 이든 씨가 제일 체력이 좋다는 제작진분들의 말을 듣고 배정되었습니다.”
“길수야! 길수야! 나 좀 봐봐!”
“안타깝게도 길수는, 참지 않습니다.”
코끼리는 신묘하게도 류이든의 모자를 코로 던졌다가 코로 받는 묘기를 선보이고, 류이든은 그걸 보고 표정이 멍해진다.
“길수야, 혹시 나 놀리는 거니?”
그 앞으로 슥 지나가는 길수의 코.
“와, 세상에나, 우리 길수는 남을 능욕하는 데 진심이구나?”
“이든 씨가 또 동화 씨 같은 멤버 놀리는 거 좋아하신다길래, 교훈도 얻어 보시라고 매칭했습니다.”
* * *
반면, 석준과 이현재는 같은 동물을 배정받았다.
“현재! 현재! 여기 펭귄이!”
“……형, 걔네 아니에요. 저희는 저기루 가야…….”
“펭귄! 너무 귀여워!”
“……형, 저 약간 나이 들 것 같아요.”
“현—재, 펭귄—을 보고 동—심을 되찾으면 어려—질 수 있어.”
“물리 법칙 벗어나지 마요, 형.”
그렇게 이현재가 겉으로 나도는 석준을 힘겹게 이끌고 도착한 곳은, 암석지대 같은 분위기의 여러 조명이 커져 있는 곳.
거기에는, 거대한, 아주 거대한, 생명체가 그 둘을 기다리고 있었다.
“……잠깐만, 저희 거북이라면서요. 그냥 돌덩이 하나가 있는데, 오늘 돌 기르기 속성 체험판인가요?”
지동화와 수업을 한 이후로 어휘력이 부쩍 는 이현재가 그렇게 카메라 쪽에 말하고 있을 때조차, 석준은 눈이 커지고, 입이 벌어지고, 숨이 가빠졌다.
“헤, 헤이든!”
“헤이든……이 뭔데요, 형?”
“프루츠 월드 시즌 2에 나오는 거대 거북!”
“제발, 형. 거기 좀 건들지 마요! 저희 다 통편잡 당하겠어요!”
“헤이든! 마지막에 죽을 때 나 울었어!”
“형, 걔 이름 석상이래요! 그리고 스포일러하지 마요!”
그러나 이현재의 잔소리는 이미 프루츠 월드의 세계로 들어선 석준에게는 그저 소음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그는 석상이에게 달려가며 애절하게 말한다.
“헤이든, 그리웠어! 너무 멋져. 나도 태워줘! 등껍질 위에서! 춤추고 싶어!”
“형, 리듬 타지…….”
이현재는 거기까지 말하다 순간 숨을 몰아쉬고, 내쉬고를 반복하다가, 서서히 침착해지더니 슬며시 미소를 짓는다.
“저기, 스태프님. 정말 죄송하지만, 혹시 중도 하차하면 많은 누가 될까요?”
“소속사랑 상의하셨나요?”
“장해진 팀장님한테 준이 형이랑 한 팀이라고만 얘기 드리면 허락해 주실 것 같은데.”
맑은 미소와 함께 ‘이 형과 일 못 하겠어요.’를 선언하는 이현재는, 청량한 이온 음료 CF의 주인공 같았다. 물론 그 배경으로는 석상이를 헤이든이라 부르며 그 앞에 무릎 꿇고 앉아 헤실대고 있는 석준이 있었지만.
* * *
이때쯤 지동화는 머릿속으로 심바의 귀여움을 토대로 감성적 인식이 이성적 인식과 결합할 수 있는 가능성에 관한 논문 초안을 작성하고 있었다.
그리고 채하민의 경우 아주 당연하게도 토끼장 쪽으로 향했다.
“제가 토끼 닮았다는 얘기를 엄청 많이 하세요. 저는 사실 잘 모르겠는데.”
카메라에 대고 조곤조곤 한 마디씩 말하며 걸어간다.
“사실, 제가 동물을 기른 적은 있는데, 전부 다 파충류 친구들이었거든요. 저희 숙소에도 제 아이들이 몇 명 있어요. 그런데 토끼 같은 애들은 처음이라 약간 설레요!”
그렇게 채하민의 육아일기가 1화씩 작성되며, 새로운 아이들의 양육인으로서 데뷔하게 되는 순간의 환희에 대해 얘기하던 중, 드디어 토끼장의 문 앞에 선 채하민.
아이들이 놀라지 않게 천천히 문을 열고 들어가자, 무언가, 한 번에 돌아가는 소리가, 그래서 바람이 이는 소리가 들리는 착각까지 들 지경이다.
대략 10마리 정도는 되어 보이는 토끼가 일제히 채하민쪽으로 달려온다.
“어, 그, 제 애가 갑자기 많아진 것 같은.”
그리고는 곧바로 약간 점프를 하며 채하민의 다리 쪽에 쿵— 하고 부딪친다.
“어, 윽.”
그중에서도 덩치가 큰, 무리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녀석은 조금 더 높이 뛰어 채하민의 배 쪽으로 뛰어든다.
“억.”
순간 호흡이 힘겨워진 채하민은 아이들이 다칠까 걱정되어서 쓰러지면서도 엎드려뻗쳐 자세로 버틴다.
“얘, 얘들아! 내가 보호!”
퍽—
“아, 그, 얘들아. 약간!”
그리고 그걸 창밖에서 보고 있던 사육사님이 흡족하게 웃으며 말한다.
“토끼는 원래 무리생활을 하는 동물이고, 이곳에서 자란 친구들은 외부인에 대한 공격성이 조금 강한 편입니다. 하민 씨는 토끼와 동족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무리생활에 편입될 수 있도록 노력하길 바랍니다.”
그리고는 뒤를 한 번 돌아보고 다시 앞을 본 뒤 한마디, 짧게 말을 얹는다.
“참고로, 저는 편입되지 못했습니다.”
약간 울먹이는 표정의 사육사님의 뒤로 토끼 무리의 아래에서 채하민이 웃으며 한숨을 내쉰다.
“얘들아, 내가 너희들 사육을 도와줄!”
까지 말하고 토끼 한 마리에게 입이 눌려 끝까지 말을 잇지는 못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