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24)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124화(124/343)
124.
심바 씨를 안고 진료실에 들어가 각종 의료 장치로 몸의 여러 부위를 사진으로 찍었다. 나는 아는 바가 없기에 그저 운반용 짐차처럼 심바 씨를 안았다가 내렸다가를 반복하고 있었다.
“어… 잠깐만, 심바 여기 관절부 왜 이래.”
그러다가 들려오는 심상찮은 소식에 나는 숨을 잠시 들이켰다.
“오우, 이거 조금 늦게 검진했으면 탈구 왔겠네…. 근육량도 정상인데…….”
뭐라고 중얼거리면서 촬영한 사진을 훑어보는 연구원분의 눈이 날카로워진다.
“낙상은 아닌 것 같고, 선천성인가?”
“선천성이면 너무 늦게 발견된 거 아니에요? 지난번에 검진할 땐 없었잖아요.”
“그건 맞는데… 활동량이 최근에 늘어서 이제야 표가 나는 걸 수도 있고. 근육량을 심층 검사해 보긴 해야겠네. 흠, 동화 씨죠? 심바 좀 여기에 눕혀 주시겠어요?”
연구원분의 말에 나는 조심스레 심바 씨를 조심스레 내려놨다. 눈빛에 불안한 기색이 뒤섞여 나를 바라본다. 조용히 미소를 지었더니 그 의미를 알았는지 내 손을 가만히 핥는다.
그 모습을 보던 연구원님이 웃으면서 말한다.
“오, 심바가 동화 씨를 믿고 있나 본데요?”
“…예?”
“여기 봐요. 새끼 호랑이는 위험하다고 인식되면 최대한 부모 쪽, 그러니까 믿을 수 있는 쪽으로 움직이려고 하거든.”
나는 심바 씨가 내게 다가오려 아등바등대는 모습을 보다가 깊게 숨을 들이켰다. 이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하루 만에 신뢰를 받는 게, 나 같은 사람에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런 사람들이 있더라고. 태생적으로 동물한테 신뢰 얻는 사람. 나는 진짜 그런 사람이 너무 부러웠는데, 여기도 한 명 있었네.”
“……감사합니다.”
동물을 기른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이유 없는 신뢰는 참 신기한 측면이 있다. 윌 로저스는 만일 천국에 개가 없다면 자신이 죽을 때 개들이 간 곳으로 가고 싶다고 얘기했는데, 이제야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이었는지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
“아니야, 그냥 두려움도 거리감도 없이 바라봐주니까 저러는 거 아니겠어?”
“어쩐지, 나보다 동화 씨를 더 따르더니, 이게 재능 차이인 거네.”
심바 씨 전속 사육사님이 명랑하게 웃는다. 섭섭하거나 기분이 나쁠 법도 한데 즐거워 보이셔서 다행이다.
“뭐, 자네도 심바 말고는 다 무난하게 따르는 축에 들지 않나?”
연구원님은 그러면서도 재빠르게 손을 움직이면서 무언가 기계장치를 이리저리 만지작댄다. MRI 촬영 기계인가 보다. 원리도 알고, 무엇을 촬영하기 위한 기계인지도 알지만, 약간은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혹여나 저 기계를 통해 암울한 예상이 펼쳐질까 봐.
* * *
모든 검사가 끝나고 사진과 영상을 자세히 검토한 후 연구원님은 혀를 차다가 말한다.
“이거 시술을 하긴 해야겠네…….”
모든 검사가 끝나고 나온 최종적인 결론. 말에 담긴 무거운 분위기에 불길한 예감에 휩싸인 나는 무례를 무릅쓰고 손을 들며 입을 열었다.
“큰, 일입니까……?”
“아니에요. 시술이라기도 우스운 정도고…. 다만, 하루 정도는 링거 맞으면서 가만히 있어야겠죠?”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뱉고, 여전히 검사대 위에서 불안한 눈초리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는 심바 씨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괜찮다고 하십니다, 심바.”
고개를 내 손에 비비적대며 눈을 감는 심바 씨.
“근데, 그러고 보니까 동화 씨는 왜 심바한테 존댓말 해요, 동화 씨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동물에게 존대하는 것을 보고 자랐기 때문이지만, 나는 그저 웃어주고 말았다. 애초에 답을 간절히 원하시는 질문도 아니었을 테니.
“그럼, 진우야, 심바 데리고 수술실로 가자. 동화 씨는 밖에서 좀 대기해 주시겠어요?”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심바 씨의 몸을 한 번 쓰다듬어 준 뒤 손을 흔들었다. 끼잉대는 소리가 들리지만, 의료 지식이 없는 머저리가 대체 뭘 할 수 있을까.
밖에 앉아 심바의 울음소리를 듣다가, 한숨을 잠시 내쉬었다.
망할, 일일 직업 체험을 하는 주제에 아이에게 지나친 정을 준 것부터가 문제였다. 사람이었으면 이미 거리감을 충분히 뒀을 텐데, 어째서 동물에게는 그게 이리도 힘든 건지.
거기에, 그토록 그 짧은 시간에. 심바 씨의 귀여움이 지나치게 무거운 탓이고, 인간이 아니라 동물인 탓이다.
* * *
# ‘저, 일하나요?’ 지동화 중간 부분 편집본.
[하루 동안 항생제를 투여받아야 하는 심바]심바의 시술을 간단하게 요약하는 자막 이후 수술실밖에서 가만히 앉아 문을 무표정하게 바라보는 지동화의 모습이 이어진다.
[그리고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심바 동족]자막에서는 이미 지동화를 고양이과의 생물로 인정했다. 지동화는 여전히 완전한 부동자세로 정면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혹시 심바 아버님?]우측 하단에 블로센스 멤버들이 스튜디오에서 영상을 보고 있는 장면이 스쳐 지나간다.
“아니, 동화야, 저러고 1시간 동안 있었던 거야?”
“응.”
“와…….”
채하민은 말을 잇지 못하며 조용히 감탄한다.
그 사이로 심바 씨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과 지동화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장면이 교차된다.
“어! 동화 씨가 여기서 기다리셨네요? 안으로 가죠!”
이후 벌어진 상황은 명확하고 단순했다. 심바 씨는 사각형의 좁은 방안에 제대로 움직이기 힘들어 보이는 곳에 들어가, 다리에 작은 링거가 꽂혔다.
지동화는 그런 심바를 보고 그 앞에 의자를 놓고 앉아 가만히 심바 씨를 바라봤다.
“캬웅….”
“……아프십니까, 심바 씨.”
목소리에서 안타까워하는 감이 뚝뚝 떨어지자, 우측 하단 다른 블로센스 멤버들이 난리가 났다.
“아니, 형님! 저희한테는 저런 목소리에 저런 표정 들려주거나 보여주신 적 없잖습니까!”
“맞네! 우리가 작업실에서 탈출하게 해달라고 애원해도 웃으면서 조용히 하라고 했으면서!”
지동화는 약간 어이없는 표정으로 모두를 둘러보다가 답한다.
“…심바 씨 절반만큼이라도 귀엽고 나서 말해, 이든.”
“이렇게 귀여운 이든이두 있는뎅! 왜 심바만 봐주구! 서운행!”
지동화는 순간 눈이 커져서 류이든이 볼을 부풀리고 손가락을 꼼지락대는 꼴을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는 깊은 숨을 내쉰 뒤, 다시 화면 속 심바의 자태에 집중해 은은한 미소를 짓는다.
다른 멤버들도 별로 감상이 다르지는 않았는지, 모두에게 완전히 무시당한 류이든을 위로해 주는 건 애써 웃으며 나름 귀여웠다고 답해 주는 채하민뿐이었다.
다시 동물 연구소의 상황. 심바 씨가 격리되고 나서, 사육사와 지동화는 함께 열심히 움직이며 심바 주변 환경을 정리하고 밥을 챙겨 준다.
그리고 마침내 찾아온 저녁 시간.
“어, 근데 동화 저녁에 식당 안 왔잖아. 혹시 뭔 일 있었어?”
“…아무 일 없었어.”
[아무 일 없긴 했습니다!]라는 자막이 이어지며 지동화가 정말 아무 이유 없이 밥을 먹지 않고 심바 씨 앞에 가만히 앉아 있는 모습이 이어진다.
“너무해! 우리를 위해서는 식음전폐한 적 없었잖아!”
류이든이 장난스레 서운하다는 듯 이야기하자, 아까 전보다 조금 더 냉정해진 표정으로 얼굴을 약 3초 간 바라본 지동화는, 다시 화면으로 고개를 돌려 심바 씨의 모습에 집중한다.
이후 화면은 배속으로 이어지며, 계속해서 심바의 앞에 앉아 있는 지동화의 모습이 빠르게 지나간다.
“어, 어?”
“뭐야, 동화 일찍 나간 게 아니라 안 들어온 거였어!”
그 사이로 사육사님도 돌아와 옆에서 함께 앉아 있다가 새벽 1시경이 되자 자리에서 일어나 의료실을 나선다. 그 와중에도 지동화는 그저 가만히 앉아 심바를 바라보며 혹여 낑낑대면 불편한 건 없는지 살피고, 잠에서 깨 울면 조용히 손을 흔들어 준다.
그리고 클로즈업되는 시계.
새벽 4시. 여전히 지동화는 꼿꼿이 앉아 미동도 없이 가만히 앉아 있는다. 연구원에게 허락을 받았는지 책을 한 권 들고 와, 가만히 읽고 있는다. 수의학에 관한 책을 한 권 읽으면서, 사이사이 심바를 바라본다.
다시 시계가 보이자 새벽 5시를 알린다. 지동화는 여전히 책을 읽고만 있는다. 진지한 표정으로 책의 문장을 하나하나 살피다가, 배속이 멈춘다.
“꺄…웅…….”
“…아프십니까.”
지동화가 책을 잠시 덮고 유리 안의 심바와 눈을 맞춘다. 심바는 눈앞에 지동화가 보이자 안심한 듯
“음, 책을 읽어보니, 당장은 구조적으로 깁스를 통해 나을 수 있다고 합니다.”
“꺄웅.”
“몸이 약하게 태어났지만, 그 이야기를 아십니까. 네잎 클로버는, 세잎 클로버가 성장하던 도중 상처를 입으며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소나무도 마찬가지로 역경을 이겨낼 때 더욱 아름다운 모습을 가지곤 합니다. 아마도 심바 씨는, 지금 약하기에 이후에 더 훌륭한 호랑이로 성장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자 어김없이 블로센스 멤버들이 소리를 지른다.
“오글거려!”
“낯빛 하나 안 변하고 잘도 저런 멘트를!”
지동화는 평소에 부끄러움이 많은 주제에 저런 건 부끄럽지 않은지 모두 무시하고 심바의 얼굴에 흐뭇하게 미소짓는다.
그리고 멤버들과는 달리 심바는 말을 알아듣지 못함이 분명한데도 자리에서 서서는 자랑스럽게 고개를 치켜든다.
“아니! 동화야! 나도! 나도 클로버인데!”
채하민이 소리지른다. 정작 채하민의 탄생화가 클로버(토끼풀)인데 자신에겐 해 주지 않으니 억울했나 보다.
“…하민, 너는 강하잖아.”
“나도 약한데!”
이번엔 다시 시계가 나타난다. 오전 8시. 사육사님이 문을 열고 들어오다가 화들짝 놀란다.
“도, 동화 씨, 혹시 안 들어가신 건 아니죠?”
지동화는 잠시 사육사님을 보다가 웃으며 말을 잇는다.
“…네, 들어갔다 방금 나온 길입니다.”
“음, 그, 그래요! 심바 씨 상태 봐주셔서 감사해요!”
그렇게, 심바와 함께하는 지동화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심바는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면서 눈을 뜰 때부터, 완전히 깬 지금까지 여전히 지동화의 얼굴이 항상 보이는 게 즐거운지 사육사가 왔든 말든 상관없이 지동화만 바라보며 갸릉댄다.
* * *
깁스가 자리를 제대로 잡았다는 판단이 들고 링거까지 완전히 받자, 심바 씨는 다시 사육장으로 돌아왔다.
한쪽 다리에 무언가 불편한 게 설치되자 거추장스럽다는 듯이 캬릉댔지만, 나와 사육사님이 함께 옆에서 먹을 것이나 간식으로 놀아주려 노력하니 기분이 조금은 풀렸린 것 같았다.
“…동화 씨는 좀 아쉽겠어요. 저렇게 잘 따르면 헤어지기 어렵죠.”
아쉽다라. 나는 심바 씨 앞에서 밧줄을 당겨주며 생각한다. 그리고 고심 끝에 답을 하나 내놓는다.
“……그럴 것 같습니다.”
망할 방송국놈들. 차라리 육체노동을 시킬 것이지, 마음이 심란해지는군.
“저도 예전에 담당하던 동물이랑 이별할 때가 제일 힘들더라고요. 그러니까, 동화 씨는 우리 연구소 프리패스! 제가 심바 사육사로 있으면 언제든 환영! 아마 심바도 좋아할 거 같으니까요.”
대체 무슨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연구소에서, 그래도 괜찮습니까? 아무래도 저는 외부인이고, 전문가도 아닌데.”
“음, 그 심바는 동화 씨만 봐도 스트레스 해소될 텐데 뭐 어때요. 정 걱정되시면 제가 연구소장님이랑 일기토 뜨겠습니다! 허락받아오면 그만이죠, 뭐!”
음, 단기접전은 원래 장수들끼리 승부를 정하는 건데, 연구소장님과 싸우기엔 너무 미약한 것은 아닐까 싶다. 직원과 연구소장 사이의 일대일 결투라니. 바위로 계란을 치는 걸 넘어서서, 지구와 태양의 충돌에서 살아남겠다는 말처럼 들렸다.
그런 불안한 시선을 눈치챘는지 사육사님은 슬쩍 웃으시고는 한 마디를 첨언했다.
“그분이 우리 아버지거든요!”
……저런. 인류가 만들어낸 모든 사회적 산물보다 강렬한 생물학적 연결을 활용한 비리군.
“감사합니다. 혹시, 번호를 조금 교환해도 괜찮으시겠습니까.”
훌륭한 사람을 알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