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25)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125화(125/343)
125.
나는 핸드폰을 보며 흡족하게 미소 지었다. ‘사육사 홍헌민 님’이라고 저장된 곳을 보면서. 비루한 번호 목록에 오랜만에 새롭게 이름을 올렸다.
“동화 씨는 진짜 심바 사랑스럽나 봐요. 제 번호 보시는 건데 그렇게 좋아요?”
혼자 사육실에 있는 줄 알았는데, 중간에 홍헌민 씨가 들어오셨나 보다.
“…심바 씨가 성장한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물론 시간이 흘러서 나를 못 알아보고, 지금처럼 친밀하게 교감할 수 없는 맹수가 되겠지만, 자신의 태생적 유약함을 극복하고 우렁차게 울부짖는 모습을 본다면 좋겠지.
“호랑이는 빠르게 크거든요. 제가 가끔 심바 사진 찍어서 보내드릴게요!”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진심이기에 홍헌민 씨에게 고개를 푹 숙였다. 사진의 개발은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전환점이었지만, 이제부터는 내게도 중요한 순간이 될 것 같다.
그렇게 다시 심바 씨와 놀며 웃고 있을 때, 제작진 중에 한 분이 들어와서 나를 호출한다.
“동화 씨! 마지막 인터뷰 따야 해요!”
드디어 찾아왔군. 망할 방송국 놈들. 나는 심바 씨 앞에 쪼그려 앉은 채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얌전히 내 손바닥에 머리를 비벼대는 심바를 보며 나는 웃었다.
“진짜 말도 안 된다니까……. 심바 쟤는 내 손을 그렇게 싫어하면서.”
“심바 씨,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캬웅?”
손에 얼굴을 비비다가 내 손이 선뜻 사라지니 억울한 듯 크릉, 하고 한 번 울고는 사육사 쪽을 불만스럽다는 듯이 바라본다. 마치 무슨 일이냐고 따지는 표정이다. 영리하고 멋지고 귀엽다.
미련 가득한 손길로 심바 씨에게 한 번 더 손을 흔들어 주고, 제작진을 따라 한편에 준비된 인터뷰실로 들어간다.
안에는 왠지 모르겠지만 해맑아진 표정의 채하민이 먼저 인터뷰를 하는 중이었다.
“마지막에 드디어 애들 동족으로 인정받아서 기뻐요!”
미친 채하민.
한 줌 남아 있던 인간으로서의 인식조차 벗어던지고 토끼로서의 첫발을 내디디고 있었다.
“토끼굴까지 들어가지 못하는 게 너무 아쉽지만, 그래도 이젠 제가 가도 애들이 어디 갔다가 이제 오냐고 빨리 들어오라는 듯이 움직이는 게… 정말 기분이 황홀했어요.”
안 돼, 돌아와, 하민. 거긴 인간이 가선 안 될 어딘가야.
“네, 하민 씨! 이 정도면 괜찮을 것 같아요! 토끼로 인정받은 모습이 아름다워요!”
저 방송국 놈이. 종적 정체성을 뒤흔드는 발언을.
그런 말을 들었는데도 예의 바르게 방송국 놈들에게 인사를 하던 토끼 놈이 나를 봤는지 큼직하게 손을 흔든다.
“어? 동화야, 어제 왜 밥 먹으러 안 왔어. PD님은 일이 바빠서 그렇다고 하시고. 밥 좀 거르지 말라고 그렇게 그렇게 얘기를 했는데.”
류이든도 아니고 갑자기 건강의 수호자라도 된 토끼 놈이 단호하게 말한다. 아쉽게도 심바 씨가 아픈데 떠날 수 없었으니 정당방위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채하민의 어깨를 한 번 두드려줬다.
“…애가 아파서.”
“……헉, 진짜? 그러면 어쩔 수 없지. 나도 시작이 아플 때 잠도 못 자고 그랬는데…….”
역시 땅굴을 파고 들어가는……. 망할, 토끼인 걸 나조차 부정하지는 못하겠군.
“…이거 끝날 때까지, 잠시 기다려줄 수 있어?”
“왜?”
“심바 씨 보여줄게.”
“진짜?! 그래도 돼? 밥 먹을 때마다 심바 씨 얘기해서 한 번쯤 뵙고 싶었는데!”
제작진 측에서 ‘왜 심바는 존댓말을?’이라는 반응이 나왔지만, 잠시 무시하도록 하자.
“그럼 기다리고 있을게! 인터뷰 잘하고 와!”
채하민과 작별하고, 카메라가 반원으로 둘러싸고 있는 촬영장 중앙의 의자에 앉자 기다렸다는 듯이 방송국 놈들이 입을 연다.
“동화 씨, 그럼 인터뷰 진행할게요!”
“네.”
“우선, 저희가 촬영분 확인하다가 놀랐던 게 심바한테 존대를 하더라구요. 혹시 이유가?”
“아버님께서 그렇게 가르치셨습니다.”
“오우, 혹시 이유가 뭔지 여쭤… 봐도 괜찮을까요?”
어려울 것도 없는 요청이다. 이럴 때를 대비해 최근에 부모님의 기억을 되짚어 보는 시간을 가지며 익숙해지려 노력하고 있으니까.
“제가 어렸을 때 아버님 책에서 데카르트가 동물에 대해 기술한 내용을 읽었습니다. 그때 아버님께서 동물을 존중하는 마음이 중요하단 걸 알려주시려 했고… 지금 이렇게 됐습니다.”
앞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던 PD님이 흠칫하신다.
“…그게 혹시 몇 살인지?”
“음, 6살 때의 일이었습니다.”
“와, 조기교육이 한국 문제라더니…….”
PD님이 조기교육이라 오해를 하고 있는 듯 싶지만, 어차피 편집될 게 뻔히 보이니 가만히 있어야겠다.
“다음 질문입니다! 심바가 동화 씨한테 적극적으로 애정을 표출하더라고요. 혹시 이유가 뭘까요? 하민 씨처럼 동족이라 그런 걸까요?”
무슨 헛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방송이니 거짓말을 해보도록 하자.
“그러고 보면 하민 씨가 토끼띠고, 동화 씨가 호랑이띠죠?”
빠른 연생은 띠를 계산할 때 앞의 연도로 계산되니 맞는 말이다. 나는 한 번 고개를 끄덕인다.
“와, 혹시 태어난 연도가 사람 얼굴에도 영향을 미치나?”
대체 이걸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PD님께서 진짜로 믿고 있는 듯한 표정을 보자 갑자기 허탈함이 몰려온다. 대체 연예계는 왜 이렇게 민간신앙에 점철되어 있는지.
“…그럴 가능성도, 있을지, 모르겠… 습니다.”
거짓말에 능숙한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양심의 목소리가 이렇게 크다는 사실을 오늘 처음으로 체감했다.
“정말… 모르겠습니다.”
“하하, 그렇죠? 세상엔 신비한 일이 참 많아요. 그럼 다음 질문인데…….”
PD님의 헛소리 이후 진행된 인터뷰는 무난하게 죽죽 이어지다가 어느새 마지막 질문만을 남겨 두었다.
“음, 마지막 질문인데요. 동화 씨는 심바랑 짧은 시간에 많은 교감을 한 것 같아요. 이제 헤어질 시간이 됐는데… 혹시 어떤 심정인지?”
정말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일반인인 내가 호랑이라는 맹수와 함께 있을 수 있었던 유일한 시기가 지금일 테니까.
“…아쉽고, 조금은 안타깝습니다. 사육사나 수의사라는 직업을 만약에 택했다면, 심바 씨를 조금 더 오래 볼 수 있었을까, 하는 우스운 상상도 잠시 해 본 적 있습니다. 물론 그랬다면 지금 팬분들이나 멤버들을 만날 수 없었을 테니 결과적으로는 손해겠지만.”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절로 미소가 흘러나오는 걸 느낀다.
“사육사님의 번호를 받았으니, 나중에 우렁차게 포효하는 심바 씨를 뵈러 한 번 더 오겠습니다.”
* * *
채하민과 함께 심바까지 보고, 정말 떠날 시간이 됐다. 나는 심바와의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심바 씨, 정말 이별입니다.”
그러자 심바 씨는 내 표정을 가만히 보더니 으르렁하고 울어댔다. 처음 보는 맹수 같은 포효지만 무섭다는 생각보다도 아쉽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저 작은 생물은, 아마도 몸이 약하게 태어났지만 그래서 더 현명해졌나 보다.
“죄송합니다. 다만 다음에 꼭 다시 오겠습니다.”
“그르릉!”
“……다음에도, 그렇게 포효해주면 좋겠습니다.”
“갸웅!”
…이런 말을 하자마자 으르렁대지 않는다는 건, 대체 무슨 의미인지.
“갸…웅.”
나는 조심스레 심바 씨 앞에 마지막으로 음식을 전달했다. 놀랍게도 심바 씨는 음식을 먹지 않고 내쪽으로 다가와 얼굴을 비벼댄다. 음, 정말.
“잘 성장해서 보자, 심바.”
이 정도면 친해졌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충분히 심바에 대한 예의를 갖췄으니,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도 괜찮을 듯싶다.
“그럼 잘 있어. 꼭, 다시 올게.”
“캬웅!”
나는 재빠르게 사육실을 나섰다. 뒤로 심바가 홍헌민 사육사님의 품에서 약간 버둥대는 게 느껴졌다.
* * *
“오, 그런 일이….”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기운이 없는 나를 보고 물은 질문에 시작된 장황한 이야기가 끝이 났다.
“……이건, 뭐라고 해야 할까요. 슬픈데 부러워서 미칠 것 같은 기분인데요.”
이현재가 낮으면서도 날선 목소리로 답한다.
“현―재, 우리 헤이든도.”
“석상이에요.”
“헤이든도― 엄청 멋―있고 멋―있고, 음, 또, 멋―있어!”
그러면 굳이 세 번 말할 필요가 있을까, 준.
“…석상이 아니, 아니예요. 형이 맞아요. 아주! 다…… 맞구 말구요.”
‘맞구 말구요’를 말할 때는 약간 이를 악물고 말하는 기분이 들었다. 이현재가 평소에 부정적인 감정은 최대한 속으로 삭이던 성격인 걸 감안하면, 역대 목격한 모든 분노 중 가장 극에 다다라 있었다.
“그래도 준이 일은 잘했다고 사육사님들이 그렇게 칭찬을 하던데?”
“…그건 맞지만, 형, 인간은 육체적 고통보다 정신적 고통이 더 크게 다가올 때도 있어요. 육체적 노동보다 자유가 없는 상태가 더 문제가 될 때가 역사적으로는 더 많았다구요.”
나는 저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잘 배웠군. 아마도 석준이 이현재와 대화할 때 자신만의 세상 깊숙한 곳으로 끌고 들어갔었나 보다.
“…준이 디즈니 얘기만 계속했구나.”
“네, 형.”
내 예측에 이현재가 깊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인다. 예측이랄 것도 없지만.
“그랬구나, 현재야. 나는…… 처음 동화한테 너 과외 맡길 때 나는 동화가 두 명이 되는 걸 바란 건 아니었는데.”
“동화 형 따라가려면 한참 멀었는데요, 형?”
“그래서 더 무서워. 1년 후에는 어떻게 될지. 상상만 해도 뭔가 무서워. 나는 조금 더 평범한 무언가를…….”
저런, 평범함이 뭔지부터 정의하는 게 먼저일 텐데. 어쨌든 그때쯤 되면 이현재와 더 깊은 대화를 나눠도 되겠군. 참 고무적인 일이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다가 새로운 화제가 올랐다.
“그러고 보니까 며칠 후에 목화 데뷔지?”
채하민의 말에 나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름대로 대형 기획사인 디오니 엔터의 신인이라고 이미 충분히 마케팅이 진행됐고, 인기도 끌고 있는 듯싶다. 7인조의 보이그룹. 웬만하면 실패할 일이 없다고 알고 있다.
“음, 제가 분석한 결과 올해 같이 데뷔하는 신인 라인업 중에선 제일 세요.”
이현재의 통계까지 증명해 줬으니까 괜찮을 것이다.
“근데 형, 트레일러 음악 들어보셨어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음원이 나오면 제대로 듣고 평가하기 위해 선입견을 최대한 배제하려고. 이현재와 류이든은 그 한 번만에 의도를 눈치챘는지 자연스럽게 말을 돌린다.
“그러고 보니까 곧 드라마도 첫 방영 한다. 드디어 동화랑 하민이 명연기 보겠네.”
망할, 그러고 보니 그런 일이 있었군. 그 방송국 놈들도 괜히 연기를 더 시켜서는 부끄러운 역사를 한 페이지 새롭게 써내려 버렸다.
“헤헤, 형, 동화가 연기 엄청 잘했다?”
추가 촬영분은 우리만 가서 촬영했으니, 다른 멤버들은 보지 못했다. 그렇기에 거기서 어떤 연기가, 어떤 대본이 펼쳐졌는지 잘 모르고 있다.
“오, 본방사수 하면 되나? 그때 우리 뭐 스케줄 있어?”
안타깝게도 없는 걸로 안다. 하지만 말할 수 없다. 내가 작업한 곡을 그 시간에 맞춰서 다 함께 들어보기로 방금 정했으니까, 말하면 거짓이다. 칸트는 정언명령으로 거짓말을 허용할 수 없다고 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가만히 있을 때 이현재가 고개를 빼꼼 내밀더니 나와 눈을 마주친다. 그러고는 맑게 웃고는
“동화 형이 작업 일정만 안 잡으면 없어요, 형들.”
라고 말한다. 망할 제자 놈. 맑은 웃음이 아니라 탁하기 그지없는 속내를 가리기 위한 연막에 불과했군.
“에이, 설마 동화가 그렇게 중요한 날 일정을 잡겠어?”
“맞―습니다. 제―가 아―는 동화 형―님은 당―당―하십니다.”
“아니야. 동화 진짜 잘해서 다 같이 봐야 돼!”
……닻 내리기 효과. 협상에서 제안을 먼저 내놓는 쪽이 더욱 유리하다는 협상 이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