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29)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129화(129/343)
129.
“어때.”
나는 자리에 앉은 멤버들에게 타이틀곡 초안을 들려주며 물었다. 곡에서 가장 흥겨운 부분, ‘신난다’라는 말에 부합하는 리듬의 거문고 리프를 토대로 한 사운드.
고개를 돌려보니 고개를 절로 까딱이고 있다.
“와, 이거 뭐야! 동화야!”
채하민은 그러다가 벌떡 일어나서 리듬을 탄다. 춤추는 기계 토끼 놈.
“이게 현재 아이디어 토대로 만든 거지?”
류이든도 고개를 까딱거린다.
“동양적인 게 베이스에 전자음까지 섞여 있는데 낯설지가 않구… 신기해요.”
정작 아이디어를 제안한 이현재는 이런 게 나올 줄 몰랐다는 듯이 감탄한 표정이다.
“근―데, 이거 컨―셉이 뭔가요?”
그 말에 나는 약간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현재를 바라보니 이현재도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푹 숙인다.
“대과에서 탈락할 게 뻔히 보여서 다 포기하고 노는 생원.”
류이든이 흥겹게 리듬 타다가 내가 설명한 컨셉에 눈살을 찌푸린다.
“…뭐?”
“비유적으로는, 수능 끝나고 망친 게 뻔히 보여서 하루라도 즐겁게 놀려는 수험생.”
류이든이 웃음을 터뜨리며 박수친다.
“아니, 현재, 너는 왜 아이디어가 그런 게, 흐핳.”
류이든의 서서히 커지는 웃음 속에서도 무아지경에서 리듬을 타는 채하민. 와중에 춤선이 보기 좋아서 웃음이 났다.
* * *
가제 ‘생원은 오늘 양친께 죽을 각오를 했다’를 쓰게 된 계기는 이현재와 ‘내 인생에서 가장 신났던 순간이 언제인가’에 대해 얘기하면서였다.
“형, 왜 안 들어와요, 작업 중이에요?”
서로 짰는지 내 작업실에 돌아가면서 방문해서 먹을 거나 마실 것을 사 들고 오는 멤버들, 나는 한 명씩 붙잡고 ‘신난다’가 무엇인지에 관해 물어보았다. 여담이지만, 류이든은 그런 철학적인 거 나한테 물어보면 대화가 아니라 지동화의 철학 강의가 될 거라고 웃기도 했다.
“현재. 너는 인생에서 가장 신난 게 언제야.”
그래서 질문을 이렇게 바꿨다. 개념 정의보단 사례가 답하기 쉬울 테니까.
“오우, 뭐예요. 저희 차례대로 오는 거 바로 알아챈 거예요?”
…작업 기간에는 항상 그랬으면서 눈치를 못 채는 게 이상하지 않을까, 현재.
어쨌든 이현재는 커피를 내려놓고 앉아서 미간을 구길 정도로 고민한다.
“와… 이거 막상 말하려니까 고민되네요. 저 신날 때…….”
이현재는 손뼉을 짝 치더니 상체를 벌떡 일으킨다.
“저! 서바이벌에서 지니 무대 했을 때!”
세상에, 정말 먼 추억이구나.
“그때, 저 떨어질 거라 생각하고 있었어요. 집 가서 부모님 어떻게 설득할까, 그 생각도 엄청 했고. 근데 형이 저 보컬 엄청 칭찬해 주구, 편곡도 너무 잘 돼서 마지막 무대 신나게 한다는 마음이었거든요. 그때 무대 할 때가 진짜 신났어요. 아마도 가수 생활 몇 년을 해도 그때만큼 순수하게 신나긴 힘들 것 같아요.”
얘는 절벽 위에 서야 신나는 타입인가 보다. 예전에 번지점프장에서 자체 컨텐츠를 찍고 나서도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번지를 뛰더라니.
“그러니까! 그런 느낌 있잖아요. 조선 시대에 과거 시험 합격 안 될 거 뻔히 보이는데 시험 치고 나와서 국밥 먹으면서 저잣거리 돌아다니는 느낌? 다가올 최후를 외면하고 막 신나 미칠 것 같은 거.”
그게 뭐야, 무섭잖아, 현재.
그건 신나 미칠 것 같은 게 아니라 반쯤 미친 상태 아니야? 그러다 문득, 어떤 멜로디가 떠오른다. 이번 드라마 OST를 작곡하다가 참고했던 거문고 연주곡.
그 은근히 흥겨운 리듬 위에 생원 한 명이 한 손에 술병을 들고 밤길을 흥겹게 걸어가는 풍경이 펼쳐진다. 생원이 걷는 길옆에 가득한 수풀은 소금을 뿌린 듯이 흐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다가 약간 우울해지려 하면 다시 거문고 소리가 거세지고 그저 흥겨워질 뿐이다.
그 이미지가 너무 압도적이라 나는 잠시 말을 잃고 천천히 되새김질한다.
“…형?”
이현재는 갑자기 최면에 걸린 듯 모든 걸 멈춘 내가 의아한지 손을 한 번 내 눈앞에 휘젓는다.
“형, 역시 쉬어야 하는 거 아닐까요?”
“……현재.”
하지만, 그런 모든 걱정보다도 일단 작업이 중요했다.
“네?”
“멤버들 내일 아침까지 출입 금지라고 말 좀 해 줄래.”
이현재가 곰곰이 나를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아마도 말의 의중을 파악한 듯싶다.
“내일 초본 나와요?”
“…아마도.”
“내일 아침 됐는데도 안 들어오면 이든이 형이랑 하민이 형이 찾아오는 건 못 막아요.”
“그때쯤 되면 이미 소파에서 자고 있는 상태라 괜찮아.”
“와, 내일 하민이 형이 잔소리 엄청 할 거 눈에 선하네요.”
* * *
…라는 일화 끝에 지금 듣고 있는 ‘생원은 오늘 양친께 죽을 각오를 했다’의 초본이 완성됐다.
“아침에 왔는데도 작업하고 있어서 놀랐는데 초본 완성까지 한 거구나…….”
곡을 다 듣고 나서 채하민이 홀로 중얼거린다. 그러자 멤버들의 관심사는 ‘과연 이게 가능한 일인가’
“내가 작곡가가 작업하는 걸 본 적이 없어서 그런데, 보통 이러나?”
“신인 작곡가분들은 하루만에 이 정도 퀄리티의 초본을 뽑아내진 못하지 않을까요?”
음, 그건 공동 작업을 몇 번 했었던 전적이 있다 보니 아니라고는 못하겠다. 가끔 AR팀에서도 내가 작업해 둔 파트를 들으면 어떻게 편곡하라고 하는 건지 지시사항이 보일 지경이라고 하기도 했으니. 어느 정도 작업을 계속해서 하다 보니 늘어서 이제야 실력이 중상위권 정도는 되는 듯싶다.
“아마… 동화 형은 지금쯤 자기는 평범한 편이라구 생각하구 있겠죠?”
아쉽게도 틀렸단다, 망할 제자야. 옆에 있던 종이를 들어 올리고 이현재 밑에 줄을 하나 그은 뒤 물었다.
“어쨌든, 어때.”
이현재의 의아한 표정이 보였지만 깔끔히 외면했다.
“근데, 동화 형 비너 슈니첼로 가이드 녹음하는 건 언제까지 할 예정이야?”
입에 붙어서 편하더라, 망할 강아지야. 이번에도 옆에 있던 종이를 들어 올리고 류이든 밑에 줄을 하나 긋고 다시 물었다.
“어때.”
“……동화 형님, 혹시 그게 뭘까요?”
류이든은 종이에 시선을 집중한 채 조심스레 물었다. 이현재에 이어 자신의 이름 밑에도 줄이 그이자 불안감 비슷한 것이 샘솟았나 보다.
“아, 이건 불합리해질 양입니다. 한 줄씩 준과 하민에게 돌아갔습니다.”
“……동화 형, 내가 리드 댄서라 한 줄 빠지면 타격이 큰데?”
“모든 인간은 늘 자신의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지며 살아가, 형.”
물론 진심은 아니지만. 이럴 때가 아니면 사회성이 좋은 류이든을 쩔쩔매게 할 기회는 흔치 않으니 잠시 즐겨보도록 하자.
“동화 형! 농담이지! 내가 놀리고 그래도 동화,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마음은 고맙지만, 아쉽게도 시간은 역행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현재는 장난이라고 생각하는지 웃으면서 ‘왜 역행할 가능성을 남겨둬요.’라고 웃었다. 거짓말은 잘해도 틀린 말은 잘 못 해서.
“동화! 내가 사랑한다니까! 파트 좀 줘!”
음, 농담이 아니고 싶은 심정이군. 꺼져줄 수 없을까, 이든.
* * *
오늘도 평화로운 돌판, 일상적인 싸움과 머리채 잡기 없이는 굴러가지 않는 곳이다 보니, 이 정도 잡음은 평화인 축에 드는 돌판. 오늘의 화두는 ‘TOT의 컴백으로 블루잭을 발랐는가’이다.
분탕종자의 염병에 낚인 몇몇 타이머들은 블루투스를 상대로 깔끔하게 시한폭탄을 날렸고, 블루잭을 위한 맹수의 이빨들이라는 이름답게 전투력 만렙인 이들은 옳다구나 하고 전투에 뛰어들었다. 몇 년이 지나도 앙숙인 팬덤이라 그런지 서로의 멱살 잡기가 수준급인 실력이었다.
그런데 서로를 그렇게 싫다고 말하면서 서로가 무엇을 하는지 놓치지 않는다. 거기에 서로의 멤버들 외모에 대한 비하만큼은 최대한 자제하기로 상호 합의하고 지키려 노력한다. 어쩌면, 이 두 팬덤은 누구보다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유서 깊은 타―잭 대전이 한창인 와중에 지동화가 주목받는 기이한 사태가 터졌다.
[이번 앨범에 작곡이랑 편곡에 이름 올린 애는 대체 누구임?]나년 똑딱이도 아니고 치아도 아닌데 이번 톳 곡들 하나 같이 개 좋아서 작곡가 찾아보니까 나름 돌판에 자신 있었는데 수록곡 중 한 곡 개인적으로 개 좋아하는 스타일에 세련됐는데 난생 처음 보는 작곡가 분이셔서… 외국인도 아니고 실명으로 작업하는 사람인데 몰랐던 거면 신인인가 해서 물어봄 똑딱이들아 알려줘~~~
댓글
―동화라고 톳 같은 회사 후배임
―야 돌판 관심 있었으면 모를 수가 있냐 ㅋㅋㅋㅋㅋㅋ 준성 쏘리 안 들음? 솔로 앨범치고 성적 나쁘지 않았는데
└아 근데…. 쏘리가 곡은 좋긴 하드라… ㄹㅇ 인정할 수밖에 없었어…
└그래서 니년들은 사이가 나쁜 거냐고 좋은 거냐고 ㅋㅌㅋㅌㅇㅋㅋㅋㅌㅋㅋㅋ 왜 곡 좋은 거 인정하는뎈ㅋㅌㅋㅋㅋㅋㅋㅋ
―타이머 아닌 건 확실히 알겠다 ㅇㅇ
―ㄱㅆ) 아니 신인이 대체 왜…? 대체 뭘 믿고 참여시킴?
└예언이 덥앱에서 한 말로는 자기가 직접 부탁했다는데? 준성이도 자기가 부탁했다잖음
돌판 역사에 한 번도 없었던, 신인 아이돌이 다른 그룹 작곡에 참여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준성의 솔로 앨범 때에야 신인 밀어주기 과하다는 말도 나왔지만, 이쯤 와서는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결과물이 구리면 또 모를까, 좋은 데다가, 니체 엔터에선 자기 회사 아이돌 멤버들끼리 거래해서 곡을 주고받은 걸 광고하지는 않았으니까.
[사실 지동화가 니체 엔터에서 키운 비밀병기 같은 건가…?]숨겨 두려고 다른 엔터에 넣어놨다가 서바이벌 때 데려온 거 아님? 말도 안 되는 소리인 거 아는데 이 정도면 지동화가 무슨 기획사에서 10년 넘게 활동한 작곡가도 아니고 이게 말이 되나 싶다 진짜 ㄹㅇ 어렸을 때부터 데려와서 작곡 기계로 만든 건 아니었을까?
댓글
― 숨겨두는 개짓거리를 왜 해 ㅋㅋㅋㅌㅋㅌㅋㅌㅋㅋㅋㅋㅋㅋ 이건 이전 기획사가 그냥 개 멍청했던 거 아니냐 왜 지동화를 떨어뜨리지
└이건 채하민한테도 그대로 적용되는 듯 ㅇㅇ 그 춤선 개쩌는 댄서를 왜 내보냈는지 아직도 의문임
그리고 그렇게 지동화가 아주 잠시 반짝 화두에 올랐을 때, 마치 이때를 노린 듯 우연적으로 한 편의 영상이 블로센스 오피셜 계정에 영상이 하나 업로드된다.
‘Concept Film ― Short ver. : 흥(興)’이라는 제목을 지닌, 약 30초 정도의 영상.
영상이 시작되자, 흑백화면 속에서 올블랙의 개량한복을 입고 회색으로 염색한 지동화가 거문고 앞에 앉아 있다. 고개를 살짝 꺾어 위를 바라보던 지동화가 천천히 손을 들고는 거문고를 느릿하게 한 줄씩 뜯는다. 약간 서글픈 느낌의 음색이 강한 리듬.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리듬은 서서히 빨라진다. 리듬이 더 빨라지기 힘들다 싶을 정도로 격렬해지며 약간 신이 날까 싶은 바로 그때, 전자음이 터져 나오더니, 다른 멤버들이 컷 편집으로 등장한다. 흑백이었던 화면은 온갖 색채로 물들어 붉고 푸르고 노란 빛깔의 연쇄에 정신이 아찔해진다.
지동화를 중심에 두고 둘러서고 흥겹게 서로 웃으며 리듬을 타는 멤버들은, 마치 지동화가 들려주는 음악이 좋아 미치겠다는 표정이다. 지동화도 처음의 무표정에서 약간의 미소로 변한 채 고개를 까딱이며 거문고를 뜯는다.
거문고가 베이스 역할을 하며 밑의 리듬을 잡고, 그 위로 동양적인 전자음이 채워져 흥겨움이 극에 달하려 할 때, 지동화가 거문고 술대를 던지자 모두 함께 동작을 멈추고 정면을 바라본다.
조금씩 검은 레터 박스가 위아래에서 화면을 채우고, 끝내 화면 전체가 검게 칠해졌을 때, 블로센스의 컴백 날짜 하나만이 흰색 글씨로 떠오르고 영상이 끝난다.
짧은 영상이지만, ‘흥’이라는 영상의 제목에 어울리면서도, 전자음과 거문고라는 기묘한 조화로 구성된 음악, 거기에 마침 지동화가 TOT로 인해 주목받고 있을 때였던 덕분에 예상보다 훨씬 더 격한 반응을 얻고 말았다.
심지어 커뮤에는 이 짧은 영상을 보고, 누가 작곡했는지조차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다음과 같은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그래서 지동화는 어렸을 때 니체에 납치돼서 작곡가로 길러진 비밀병기라는 거지?](‘흥’ 마지막 부분 모두 흥겨워하는 부분. GIF)
나 덕질한 지 얼마 안 됐지만 다 이해했어 (이해 못함)
댓글
―아니 비밀병기가 아니…. ㅅㅂ 나도 모르겠다 그런가 봐
―동화 한복… 하민이 한복…. 이든이 한복….. 현재 한복… 준이 한복….. 한복…..
└속보) 룸넛들 이번 컨셉 필름에 실어증 유발돼… 충격!
└자꾸 나쁜 생각이 드는데 제가 나쁜 건가요?
└얘네들이 유죄. 누가 뭐래든 얘네가 잘못한 거임. 아 잡지 마 봐요 납치하러 갈라니까 솔직히 판사님도 납치 계획 세웠잖아!
―지동화 존나 무슨 조선 시대 도련님 같네 근데 이제 약간 무서운 한량 느낌을 곁들인.. 하민이랑 현재는 잘 성장한 바른 도련님 같고… 준이랑 이든이는 공부하기 싫다고 드러누울 것 같은 날티가 나… 미칠 것 같다… 이거에요…
그렇게, 블로센스의 미니 앨범 3집은 의도치 않은 계기로 평소보다 더 주목받으며 그 첫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