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3)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13화(13/343)
13.
그녀는 니체 엔터테인먼트가 일을 잘한다는 것에 안심했다. 놀랍게도 빠른 번호일수록 앞줄 중간에 가깝게 배치해 둔 것이다. 1번이 제일 왼쪽에 들어가는 거면 반쯤 기획팀을 죽여버리려 했는데 말이다.
150명 규모의 관객 입장이 끝났는지 곧 이동석 MC가 들어와 심사위원이 입장하는 걸 소개하고, A팀과 B팀이 모두 무대로 올라온다.
“개쩐다…….”
그녀는 환호하는 것도 잊고 지동화를 쳐다보며 작게 읊조렸다.
무슨 컨셉의 의상인지 모르겠지만, 약간 짙은 눈 화장에 검정색 가죽바지에 흰색 셔츠, 그리고 초커를 목에 차고 있는 지동화.
그녀는 숨을 크게 들이켰다.
목의 초커가 약간 불편한지 손을 들어 초커를 잡고 꼼지락대고 있는 지동화의 모습은, 그녀 속에 있는 무언가를 자극하고 있었다.
‘아냐, 맛만, 맛만 보는 거다. 절대로 나는 지동화에게, 그 누구에게라도 입덕하지 않는다.’
“자, A팀 무대 준비 과정을 영상으로 만나보기 전에, 팀원들의 한마디를 듣지 않을 수 없겠죠? 우선 리더로 선정된 우리 류이든 연습생부터.”
류이든 역시 지동화와 비슷한 의상을 입었지만 지동화가 초커로 포인트를 줬다면 류이든은 허리에 묶은 체인을 사선으로 어깨에 걸쳐 포인트를 줬다. 안 그래도 넓은 어깨가 부각돼 보였다.
‘더넥니 피지컬 1등이라더니…….’
“우선, 부족한 저희 무대를 보시기 위해 여기까지 와주신 관객분들께 감사합니다! 저희 팀원들 모두 고생해서 준비한 무대니 좋게 봐주셨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다음은 지동화 연습생!”
그녀는 절로 집중하기 시작한다.
“…음, 곡을 새로운 분위기로 바꾸는 데 많은 노력을 할애했습니다. 그 부분에 집중해 무대를 봐주시면 감사할 것입니다.”
‘살아 움직이는 지동화… 눈앞에서 말하는 지동화… 목소리 실화냐고……. 차가운 표정에 초커 진실이냐고……. 여태 데뷔 못 한 거 말이 되냐고…….’
그녀는 속으로 중얼거릴 뿐 차마 말로 뱉진 않았다.
“지동화 연습생이 편곡에 참여했다고 하던데, 맞나요?”
“…맞습니다. 하지만 아이디어는 모두가 함께 회의를 통해 결정했습니다. 다른 팀원도 고생한 덕입니다.”
‘심지어 인성도 좋은 거 말이 되냐고. 스포트라이트 혼자 받을 수 있는 건데 굳이 다른 애들 언급해 주는 거 진짜 미쳤냐, 동화야, 너가 일단 데뷔를 해야지, 다른 애들 챙길 때냐.’
그녀는 다시 한번 말로 뱉지 못할 말을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이어지는 멤버 인터뷰가 끝나고 이어지는 무대 준비 과정을 편집한 영상.
지동화가 하루에 두세 시간만 자고 계속 편곡과 연습에 시간을 쏟는 장면이 이어질 때마다 그녀는 울컥하는 심정으로 지동화를 바라보았다.
특히 이현재의 고민을 지동화가 경청하고 진지하게 답해주는 모습에서 그녀는 은근히 자신이 위로받고 있음을 깨달았다.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건 자신이라는 그 흔한 말이 왜 이리 가깝게 다가오는지, 모를 일이다.
* * *
소개 영상이 끝나고 조명이 암전되자 어둠 속에서 A팀이 무대를 준비하는 게 느껴진다. 그녀는 곧 시작된다는 설렘에 짧게 심호흡을 한번 하고 눈에 힘을 주었다.
툭 하고 켜지는 보라색 조명, 그 밑엔 누군가가 무릎을 끌어안고 고개 숙이고 있었다. 울음소리가 효과음으로 깔리고 그 뒤로 우울한 피아노 연주 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리고 발소리와 함께 지동화가 걸어 나온다. 그 소리에 누군가가 고개를 들자,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남자가 이현재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위로해 주는 건가?’
지동화는 이현재 뒤에 자리 잡더니 천천히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이현재가 부드러운 손길을 받아들이며 다시 고개를 푹 숙일 때, 지동화의 표정이 눈에 선명하게 들어온다. 그는 웃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재밌다는 듯이.
‘아파트 뿌셔…….’
그리고 울음소리의 톤이 높아지더니 자연스럽게 웃음소리로 변주되고 우울했던 피아노 소리는 기계음이 덧입혀져 위험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그리고 흘러나오는 지동화의 목소리.
힘들고 지쳐 도망치고플 때
누구에겐가 도움을 청하고 싶어질 때
나를 찾아와 너만의 지니
‘지니’라는 음이 끝나는 순간, 베이스 사운드가 울려 퍼지며 다른 팀원들이 들어온다.
이현재는 화들짝 놀라며 도망치려 하지만 지동화가 미소 지으며 부드러운 손길로 붙잡아 뺨을 어루만져 주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진정시킨다.
그동안 다른 팀원들은 김현진을 센터로 대형을 잡아 나가더니 지동화와 이현재를 가린 채 일렉 사운드에 맞춰 춤을 펼치기 시작한다. 부드럽게 연결된 선으로 몸 전체에 반동을 주며 씨익 웃는 모습이 묘하게 야했다.
세 명의 군무가 끝나고 곡이 잠시 안정을 되찾을 때 대형의 중앙에서 지동화가 불안해하는 이현재를 끌고 나온다. 이현재를 바라볼 땐 부드러웠던 미소가 앞으로 고개를 돌리니 금세 차가운 비웃음으로 변했다.
‘지동화, 표정 변화, 무엇.’
그녀는 지동화의 표정에 명치라도 맞은 듯 가빠지는 숨을 가다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현재를 중앙에 둔 상태에서 제대로 시작하는 무대. 이전까지의 무대는 프롤로그였는지 다시 비트가 흘러나온다.
장조였던 레미니아의 곡과 달리 단조로 바꾸고, 뒤를 받쳐주는 악기들도 위태로운 분위기를 한껏 고조한다.
다른 멤버들은 노래를 불러 자신에게 이목이 집중될 때마다 바라보는 이를 유혹하려는 듯한 표정과 제스처를 통해 섹시함을 표현했지만, 곡의 분위기는 그 유혹에 넘어가선 안 된다는 경고처럼 다가온다.
그리고 이어지는 후렴구가 나올 타이밍. 곡은 여러 악기가 빠지고 도리어 잔잔함에 가까워진다. 이현재는 입을 열어 후렴구를 부른다.
Tell me your wish, wish, wish
I’ll make it come true―ooh―ooh―ooh
그 노랫소리에는 무언가를 떨쳐내려는 듯한 의지가 담겨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지동화의 속삭이는 듯 울려 퍼지는 목소리.
네가 뭘 원하든
이루어줄 테니
원곡에선 단체로 해맑게 웃으며 부르는 부분이 지금은 유혹의 속삭임이 되어있었다.
그러자 다시 한번 이현재가 목소리를 높여 후렴을 부른다.
Tell me your wish, wiah, wish
I’ll make it come true― ooh― ooh― ooh
그리고 다시 한번 지동화가 허밍하듯 노래한다.
너의 그 모든 걸
나에게 주겠니
그리고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손을 뻗는 지동화. 이현재는 망설이듯 지동화의 손을 잡으려다 만다. 다른 팀원들은 기대된다는 듯 바라보다가 아쉬워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지동화만이 유일하게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재밌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고 대형에 합류한다.
‘악마… 악마잖아.’
그녀는 후렴 부분에서 컨셉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잠시 머리를 맞은 듯한 기분을 느낀다. 레미니아의 ‘지니’ 같은 노래를 대체 누가 악마로 해석할 생각을 했는가.
지동화가 무대 시작 전 바뀐 부분에 주목해 달라고 했던 것이 십분 이해되는 그녀였다.
곡의 후반부는 전반부와 유사한 분위기로 흘렀지만 위험한 분위기는 조금씩 줄어들고 유혹적인 분위기가 강력해진다. 이현재를 제외한 다른 멤버들의 춤 선도 더욱 매혹적으로 변했다. 조금만 더 하면 노골적이라는 인상을 줄 수도 있었으나, 아슬아슬한 줄타기에 성공했다.
‘지동화, 춤 선, 개쩐다, 진짜.’
그리고 다시 찾아온 후렴구. 잔잔한 분위기는 같았지만 신디사이저 소리가 더해져 야릇한 분위기를 만든다.
Tell me your wish, wiah, wish
I’ll make it come true― ooh― ooh― ooh
이전과 똑같은 가사였지만 이현재의 목소리에선 떨쳐내려는 의지보단 이젠 포기하고 싶다는 체념이 묻어난다.
그리고 다시 지동화의 속삭임이 이어지고 두 번째로 이현재가 입을 열었을 땐 지동화를 매료된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너의 그 모든 걸
나에게 주겠니
그리고 다시 지동화가 손을 뻗자 이현재는 천천히 지동화에게 다가간다.
‘잡지 마, 등신아!’
그녀는 어느새 마치 위험한 곳으로 걸어가는 공포 영화의 주인공을 보는 심정으로 몰입해, 판넬을 꼬옥 부여잡은 채 숨을 멈추고 이현재를 지켜보고 있었다.
곡이 잠시 멈추고 모든 소리가 고요할 때, 그리고 이현재의 손끝에 모든 이목이 집중될 때, 서서히 올라간 그 손은 턱 하고 지동화의 손을 꼬옥 붙잡았다.
‘저 미친놈, 저걸 잡네!’
그리고 그 순간 터져 나오는 비트, 이현재가 고음을 지르고 다른 멤버들은 흥겹게 웃으며 각을 맞춰 춤을 추기 시작한다.
두 팔을 크게 돌리며 발로 옆을 툭툭 차는 안무는, 원곡에선 발랄한 요정을 떠올리게 했지만, 지금은 악마들이 연회장에서 환호하는 것처럼 보였다.
춤이 멈추고, 이현재가 앞을 바라보며 애처로운 눈으로 마지막 후렴을 부르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무대가 끝이 났다.
그녀는 어느 순간부터 멈춰 있던 숨을 몰아쉬며 속으로 읊조렸다.
‘…집 가면 일단 트위터부터 깔아야겠어.’
* * *
‘하, 초커를 대체 왜 해야 하는 건가.’
무대가 끝나고 심사평까지 다 듣고 백스테이지로 걸어 나오던 나는 빨리 초커부터 풀어달라고 옆에 서있던 이현재를 붙잡았다.
스타일리스트의 강한 주장으로 착용은 했지만 더는 이 숨 가쁜 목을 감당할 수 없었다.
‘초커는 프랑스 혁명기에 참수당한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 만든 건데. 왜 21세기 대한민국 출생인 내가 이딴 걸…….’
내 말을 듣던 이현재는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다.
“형, 이거 풀면 안 돼요.”
“…왜?”
“스타일리스트분께서 마지막까지 무대 의상 착용하고 있어달라던데요? 그 우승 팀 결정될 때까지.”
“…저런.”
“그나저나 형, 저희 무대 잘한 것 같죠?”
“일단 네가 내 기대치 어쩌고를 걱정할 필요 없었다는 건 확실해졌지.”
“맞아! 우리 현재 노래 실력이 또 그새 늘었더라. 어쩜 매번 느냐.”
이후 우리가 이현재를 칭찬하는 분위기로 이어지자 이현재는 더욱 활기차져선 이리저리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동화야, 컨셉 잘 잡은 것 같애. 심사위원분들도 칭찬 엄청 해주시고.”
류이든을 비롯한 놈들이 요구했던 ‘위험한 줄 알면서도 다가갈 수밖에 없는 섹시함’이라는 얼토당토않는 컨셉에 맞추느라 편곡하는 내내 머리가 터질 뻔했지만, 결과가 좋으니 됐다.
“…형도 고생 많았습니다.”
“근데 동화야, 언제까지 그 극존칭으로 말할 거야.”
“…불편하십니까?”
내가 멍하니 바라보자, 류이든은 고개를 젓더니 말한다.
“거리감 느껴지잖아. 그래도 꽤 친해졌는데.”
…친해졌다고?
“그건 맞아요, 형! 저 처음 봤을 때도 완전 극존칭 써서 저 엄청 기죽었어요!”
넌 조용히 하고, 낙제생 2. 네가 속한 무리가 처음 만날 때 뭔 짓을 했는지 벌써 까먹은 거냐?
그나저나 친해졌다고?
나는 어색한 기분에 잠시 멍때리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어, 이든 형.”
그러자 류이든이 내 어깨를 툭툭 치곤 그거면 됐다는 식으로 걸어 나갔다.
낯간지럽군. 나는 볼을 약간 긁적이며 그 뒤를 따라 대기실로 걸어갔다.
그나저나… 무대는, 꽤나 신비로운 공간이군.
나를 향해 환호하는 사람들에게 열심히 준비한 결과물을 보여준다라… 소설과 비슷하면서도 또 다르다. …그래, 훨씬 더 흥분감이 드는군.
* * *
B팀의 무대까지 마치고, 관객들이 사라진 텅 빈 무대에 이동석과 우리만 남아 승자 발표를 진행했다.
“승리 팀은…….”
그렇게 미칠 듯한 시간 끌기가 이어지고…….
“A팀입니다!”
우승자가 발표됐다. B팀도 잘했지만, 원곡에서 예상 가능한 무대였기 때문에 아쉬웠다는 심사평을 언급하며, 이긴 이유를 설명해 준다.
“동화야, 축하해! 무대 진짜 잘하더라. 나 백스테이지에서 너 무대 보고 와, 우리도 열심히 했지만 이건 별수 없겠다, 싶었어.”
채하민은 져놓고 뭐가 그렇게 좋은지 내 쪽으로 와선 박수를 쳐대기 시작했다. 나도 고맙다고 답해주던 그때…….
띠링―!
알림 소리가 울렸다.
[퀘스트 ‘화려한 조명’ 완료!당신은 팀이 우승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하며 무대를 마쳤습니다! 다음과 같은 보상이 제공됩니다.
보상 : 메인 퀘스트 ‘진척’, ‘가능성의 조각’ 1개]
‘가능성의 조각……?’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판넬을 읽었다.
“동화야, 왜 그래?”
내가 잠시 멍하니 있자 채하민이 걱정됐는지 물어온다.
일단, 저건 일단 나중에.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대충 고개를 저어주고 채하민과 함께 백스테이지로 이동했다. 아, 그 전에.
“하민, 나 초커 좀 풀어주라.”
이게 혼자서 풀기 어렵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