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130)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130화(130/343)
130.
4월 후순, 차가웠던 날씨가 풀리고 봄기운이 완연한 때, 채하민은 방송국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해맑게 웃고 있었다.
“동화야, 머리 진짜 잘 나오긴 했다. 보면 볼수록 예쁘네!”
“…그래.”
새 앨범을 준비하는 기간에 염색이 확정되는 바람에, 한동안 머리를 숨기느라 외출 시에는 모자와 후드티까지 몸에 걸쳐야 했다. 어제 콘셉트 필름이 공개된 덕분에 이제야 머리를 드러낼 수 있었다. 해방감.
이번엔 류이든만 흑발이고, 나머지 멤버들은 모두 염색을 했는데, 채하민의 분홍색보다는 덜하지만 내 회색빛 머리도 튀는 편이다. 기원전 3200년 경의 고대 이집트에도 모발을 염색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는데, 그때도 이렇게 고통스러웠을까.
“아, 동화 염색할 때 ‘물리적으로 이 고통을 견디는 게 가능합니까’라고 무표정으로 물어보면서 꿋꿋이 버티는 게 진짜 웃겼는데.”
“맞습―니다, 이든 형님, 너―무 잘 견디는데 말로만. 저―는 형님이 아픈 거― 겉으로 티 내는 걸― 본 적이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정말 아팠단다, 망할 것들아. 그때 당시에는 두피 위에서 이태리 장인이 바느질 연습이라도 하는 줄 알았다.
“아, 근데 느낌 좀 새롭긴 하다. 미니 앨범이긴 해도 어느새 3집이고……. 스케줄도 이렇게 곡 홍보하러 가는 건 오랜만이잖아.”
그러고 보니 오늘 심바 씨와 만나게 해줬던 방송이 방영되는군. 다른 멤버들에 비해 나는 편집될 장면이 지나치게 많아서 다른 멤버 위주로 나오지 않을까 싶다.
“아이돌 공작소면, 그래도 나름 큰 곳인데 우리만 단독으로 불러줄 줄은 몰랐네.”
류이든의 말에 이현재가 통계를 돌리는지 잠시 생각하곤 곧 입을 연다.
“신인 중에서 그래도 살아남은 게 우리랑 갓에이 님들인데, 저희가 성적이 훨씬 좋으니까……. 요즘은 음원 사이트 선정 방식도 바뀌어서 차트인도 어려운데 저희는 클라우디 블루로 40위권까지 갔었잖아요? 물론 팬분들이 그만큼 는 건 아니지만.”
“근데 실감이 안 나잖아? 현재야, 기억나? TOT 형들이 아이돌 공작소 나갈 때도 우리끼리 연습실에서 모여서 ‘와, 형들 성공했나 봐.’라고 얘기했었잖아.”
“기억나요. 지금 보니까 이게 성공의 지표는 아닌가 봐요. 저희가 출연하는 거 보면.”
“에이, 자신감을 가져, 현재야. 그래도 아직 쌩신인이 나가기에는…….”
나와 채하민은 공감할 수 없는 추억이므로 가만히 있어야겠다.
“여기가 그렇게 큰 곳이야?”
“응, 나도 연습생 때 여기 나오고 싶었어, 동화야. 너는 아이돌 공작소 안 봤어?”
채하민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에야 어떤 음악이 나오는지 방송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배우려 가끔 멤버들과 TV를 보지만, 전생의 집에서 TV는 장식품이었다.
“진짜, 너랑 연습생 생활같이 한 게 잘 안 믿겨. 연습생치고 아이돌 생태를 너무 몰라, 아주!”
생태라는 단어도 알고 아주 장하다. 그런데 장난스러운 책망에 불현듯 머릿속에 집어 넣어둔 의문이 툭 불거져 나왔다. 기지생에 관한 여러 의문 중 큼지막한 것들에 대해서는 고민하고 물어도 봤지만, 그와 달리 중요하지 않아서 잠시 미뤄뒀던 의문.
‘논리적으로 그게 가능한 일일까. 과거 그 시점에 가능성을 튼 것이라면, 나 역시 그 순간부터 기억이 변화했어야 정상일 텐데.’
나는 채하민에게 한 번 미소 지어주고 피곤하다는 듯이 몸을 누이며 속으로 기지생을 호출했다.
기지생, 해명.
띠링―!
[정말 종 부리듯 부리는 게 저랑 똑같아서 마음에 안 듭니다!]해명.
[놀랍게도 제가 가능성을 뒤튼 여파를 관찰하려고 3년 정도 인공지능에 당신의 행동 패턴과 사고패턴을 학습시켜서 실험 현장에 투입했답니다! 별일 아니니 걱정 마십시오.]오케이, 납득. 저 미친 인간, 정말 종 부리듯 나를 대했군.
[마음에 안 듭니까?]상당히.
[역시 접니다! 서로 다르며 같은 존재인 우리 사이 공통점!]감상적인 소리는 취미에 없답니다, 기지생.
[저도요! 또 공통점입니다. 정말 운명적이네요! 다만 지금의 가능성대로 흐른다면 감상적인 소리를 본인 입으로 쏟아낼 가능성이 있습니다!]……하, 말 같잖은 소리. 목화랑 화해했을 때를 제외하고 ‘감상적’으로 굴었던 전적이 없는데.
어쨌든, 내가 아이돌 연습생이 될 가능성 따위 0일 테니까 강제로 집행하느라 그렇게 됐다 이거군.
“…그런데, 형―님은 연습생 되신 이유가 뭔―지 여쭤봐도 됩니까?”
석준이 아주 조심스레 물어본다. 혹시 말하기 힘든 것일까 봐 걱정하는 듯싶다.
예전에 이현재한테는 기억 상실 때문에 기억 안 난다는 핑계를 댔는데, 여태껏 내가 목화나 멤버들한테 보인 모습을 보면 기억이 거의 돌아왔다고 봐야 합리적이겠지. 또 한 번은 채하민이나 류이든이 나를 보며 기억 거의 돌아온 거 같다고 기뻐하기도 했고.
그냥 아무거나 하나 만들까, 이유.
“아이돌 음악 듣고 작곡하는 게 재밌어서 시작했어.”
그래, 그런 걸로 하자. 단순할수록 의문도 안 생기는 법이다. ‘그럴 거면 작곡가를 하지?’라는 합리적인 의문은 기억 상실이라는 안타까운 사연과 꿈이라는 추상적인 개념 앞에서 적당히 봉인될 테니까.
“오! 형님! 멋있어요! 역시 천재 작곡가!”
“그러고 보면 동화 자작곡으로 월말 평가 보고 그랬지? 그때는 진짜 신기했는데, 쟤는 어떻게 저리 작곡을 잘하고, 또 자기가 만든 곡에 자신감이 있을까 싶어서.”
그거 나 아니야, 하민. 걔는 내 행동 패턴을 학습한 인공지능이란다.
[당신이 그 인공지능과 동일한 상황에 처했어도 그렇게 행동했을 가능성은, 99.984%이며 나머지 0.016%는 작곡에 빠져서 집중하다가 월말 평가에 들어가지 못할 확률입니다! 물론 당신이 가능성이 뒤틀린 자연적 환경에서 스스로의 의지로 연습생이 되었을 가능성은 0.000032%지만요!]……조용, 기지생. 당신에 대한 분노와 감사가 한꺼번에 느껴지니까.
* * *
아이돌 공작소가 얼마나 큰 곳인지는 모르지만, 대강의 정보는 공부해 왔다.
배우 출신 예능인인 예성과 개그맨 출신인 혜성, 쌍성이라고 줄여 부르는 이들이 MC로 있는 3년 정도 된 장수 프로그램이다.
……두 개의 항성이 함께 공전하는 항성계를 쌍성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은 나만 알고 있을 것 같으니 가만히 있자.
어쨌든 3년이나 진행된 이 프로그램은 2명의 MC가 아이돌의 숨겨진 재능과 능력을 개화시켜 준다는 의미에서 ‘아이돌 공작소’라고 명명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이건 방금 이현재의 설명을 통해 알게 된 것인데, 아이돌 문화를 향유하는 이들이 ‘덕질’이라는 걸 하기 위한 이를 찾는 장소로 기능하기도 한단다.
그러니 기왕이면 즐겁게 재밌게 촬영하는 것이 좋겠지만.
나는 나를 잘 아는 편에 든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내가 웃긴 인간은 아니므로 최대한 미소 지으며 리액션을 열심히 하면 괜찮지 않을까 싶다. 목화 얘기 듣듯이.
그렇게 다짐하고 있을 무렵 방송사에 도착했다.
“아, 여러분, 대기실에 방송국 분들 많이 계실 예정이니까, 꼭! 말조심해주시고, 너무 망가지지도 말아 주세요. 아시겠죠?”
로드매니저님은 내리기 전에 당부한다. 왜 당연한 것을 굳이 당부까지 하시는지.
그렇게 촬영 대기실로 들어가 헤어 수정을 하고 있을 때였다.
똑똑, 짧은 노크 후 벌컥 문이 열렸다.
“웰컴 투 아이돌 공작소!”
예성 씨로 추정되는 분의 큰 외침.
류이든이 먹고 있던 김밥을 던지듯 책상 위에 놓아두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영화 ‘광야로 걸어가’에서부터 팬이었습니다.”
얼굴은 정면으로 고정한 채 입으로는 준비해 온 인사말을 뱉으며, 손은 등 뒤로 돌려 모두 모이라는 신호를 보낸다. 인간이 할 수 있는 멀티태스킹의 극단을 목도한 기분이다.
신호에 맞춰 모두 모여 인사를 드리자 예성 씨는 부담된다는 듯이 몸서리치면서 편히 앉으라고 손을 저었다.
“어우, 패기가 좋아요, 좋아. 데뷔 1년도 안 된 아기 그룹은 오랜만이라 나까지 압도되네. 다들 자리에 앉아봐요, 오늘 촬영 브리핑해드릴 테니까.”
예성의 안내에 나는 걸음을 옮기면서 의아함을 느꼈다. …보통 메인 MC가 프로그램 어떻게 촬영할지 안내를 해주던가.
“블로센스 친구들, 반갑습니다! 저는 32살, 아직 귀염뽀짝한 예성입니다. 블로센스 친구들도 소개 한 번씩만 해주실까요?”
세상에나, 왜 굳이 나이까지 언급해서 본인의 수치스러움을 두 배로 만드시는지. 거기에 ‘귀염뽀짝’이라는 단어를 뱉으며 한껏 부풀린 볼과 입술에 댄 검지손가락이 눈길을 사로잡으며, 보는 이까지 수치스럽게 만들어주었다.
다른 멤버들도 생각이 비슷했는지 류이든을 제외하곤 하나같이 당황한 표정이었다.
“저는 22살, 머슬큐티 이든입니다.”
미친놈아, 하지 마. 그런 해괴한 말 만들지도, 그런 거 당당하게 외치지도 마. 매니저님이 분명히 체통을 지키라고 했잖아.
“저, 저는 21살, 거, 거대 토끼 하민입니다!”
채하민이 힘겹게 끝을 맺자 예성과 이든의 시선이 내쪽으로 쏠린다. 류이든의 눈에서 넌 할 수 있다는 강렬한 의지가 전해져 온다. ……망할, 사회생활.
“저는, 21살, 작곡기계 동화라고 합니다.”
“에이! 다시! 다시! 충분히 수치스럽지 않았어!”
예성 씨가 사회에 불만 많은 철학자 같은 목소리로 표독스럽게 외친다. 대체 이게 뭔데. 왜 하는 건데.
“여러분이 대기실에서 충분히 수치스러워야 공작소에 들어갔을 때 화려하게 날아오를 수 있어요! 예행 연습이니까 다시!”
연습 방법이 아주 스파르타식입니다. 곧 로마에 밀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실 예정입니까.
“동화 형, 얼음왕자 하자.”
…혹시 정신적으로 문제가 심각하니, 이든.
“얼음왕자! 저는 좋습니다, 형님!”
닥쳐, 내가 싫어, 준.
“21살, 얼음, 왕, 자 동화입니다.”
그 순간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 내 평소 모습을 아는 이들이 다소 격하게 하하호호 웃고 있다. 멤버들은 영상으로 못 남긴 게 아쉽다고 속삭이고 있었다.
[실망입니다! 저는 그런 짓 하지 않습니다!]호출하기 전에 나오지 마, 망할 기지생. 내가 했으니까 너도 한 셈이야.
인생이란 대체 뭘까. 인간은 왜 존재할까. 그 짧은 사이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망할 아이돌, 루미너스와 함께할 수 있다는 건 나쁘지 않은데.
“어우, 얼음왕자 하기엔 귀가 좀 빨가네. 그런 의미에서 귀염뽀짝으로 한 번만 더!”
나는 예성 씨를 바라봤다. 청컨대 그만해 달라는 요구가 한껏 담긴 눈빛, ‘부탁드립니다.’라고 입모양으로 말씀드리니 다시 꺽꺽 웃으시더니 다른 사람으로 넘어간다.
그렇게 폭풍 같은 자기소개 이후, 안에 들어가서 이렇게 소개할 필요는 없다는 말을 듣고 약간 어이가 없어졌다. 그렇다면 연습조차 아니었다는 건데, 대체, 왜 한 겁니까.
후, 그나마 영상으로 남지 않은 게 위안이 되는 지점이다.